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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2월 11일 10시 08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2월 10일 14시 12분 KST

내 강간범은 자신이 강간범이라는 걸 모를 수도 있다

JOSEPH MCDERMOTT VIA GETTY IMAGES

나는 최근 친구에게서 "OO랑 만났던 건 어땠어?"라는 질문을 들었다. 놀랐고 기분이 나빴다.

그 이름을 듣자 배를 얻어 맞은 것 같았고 내 인생 최악의 밤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려 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음, 걔는 나를 강간했어. 그러니까 별로였지."

내 친구는 그 이야기를 꺼낸 것을 정말 미안해 했다.

또한 그들은 혼란스러워 했다. 나를 강간한 사람은 친구들에게 우리의 만남을 자랑하며 웃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나를 강간한 것을 재미있고 합의에 의한 관계로 묘사했다. 한편 나는 엄청난 상처를 받았다.

그 일에 대한 강간범과 나의 해석은 크게 달랐고, 그의 말을 들으면 그날 밤 회복될 수 없는 손상이 일어났다는 것에 대한 회한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충격적인 생각이 떠올랐다. 그가 자기가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른다면?

나를 강간한 사람이 자신이 강간범이라는 걸 모를 수도 있을까?

최근 뉴욕타임스에 대학들이 성 폭력 방지 교육을 더 많이 하면서 빠르게 변하고 있는 지형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기사에서 논의한 주제 중 하나는 적극적 동의였다. 동의를 '예스는 예스다'라고 규정하는 정책이다.

적극적 동의는 대학 캠퍼스에서 성 폭력을 예방하려는 노력을 강화하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전국 학생 지도자들과 대학 행정처들이 적극적 동의 정책과 의미있는 논의, 정책 변화의 의미에 대한 규정된 트레이닝을 도입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여성의 4명 중 1명은 대학교 시절 성 폭력을 경험한다. 그 중 하나로서, 덴버 대학교 부학생 회장으로서, 나는 분명히 말한다. 대학생들은 섹스와 동의에 대해 안전하고 건강한 대화를 하지 못하고 있다.

이 주제에 대해 혼란스럽게 하는 글들이 많고, 동의와 성 폭력에 대한 논의를 할 때 당황스러운 질문들이 많이 제시된다. 당혹해 하고 있는 대학생들이 수십만 명이 있다. 그러나 뉴스룸 책상 뒤에서 학생들을 분석할 수도 있지만, 대학생들은 이런 어려운 물음들을 현실에서 겪으며 살고 있고, 실제로 영향을 받는 경우도 많다.

'예스는 예스다.'는 학생들에게 앞장서서 묻고 동의를 하라고 가르친다. 낡은 '노는 노다.'는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거부에 의존한다. 그러나 거부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뇌의 공포 회로가 극단적인 생존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에 '얼어붙어' 버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강간 피해자 중 12~50% 정도가 긴장성 무운동을 경험한다. 나는 성 폭행을 당했을 때 여러 번 노라고 말했지만, 막상 일어났을 때는 맞서 싸울 수 없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나를 강간한 사람의 이해가 부족했던 이유를 추측해보자면, '예스'는 없었지만 '노!'라고 외치지도 않았기 때문일 것 같다. 사실 나는 꼼짝할 수도 없었다.

동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으면, 정보가 없는 개인은 이러한 무운동을 동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러한 해석은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가 철저한 '예스'를 무언가를 원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철저한 '노'를 무언가를 원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경우, 우리는 동의를 얻는 것을 파트너의 책임으로 지우는 대신 강간을 예방하는 것을 피해자의 몫으로 지우는 것이다.

적극적 동의에 대한 매체 보도는 여기저기서 의문을 불러 일으켰다. 적극적인 동의라는 게 좋은 생각일까? 학생들이 이런 정책을 원하거나 필요로 하기는 하는가? 섹스처럼 복잡한 것을 둘러싼 확정적 정의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지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나는 이러한 진퇴양난이 모든 대학에 적극적 동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에게 명확한 정의를 주지 않는다면 이런 질문들에 답을 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적극적 동의는 우리가 이런 복잡한 질문들을 전부 다루고 난 뒤의 목표가 아니라, 이 질문들에 답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

이것을 준비하며 조 바이든 부통령과 통화를 했을 때, 나는 그의 이런 말에 큰 영감을 받았다.

우리는 자신이 원하지 않았는데 몸에 남이 손에 닿았던 모든 여성들이 스스로에게 "내가 무슨 잘못을 해서 이렇게 되었을까?"라고 묻지 않을 때, 육체적으로 여성에게 잘못을 저지른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의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시도하지도 않을 때에야 승리를 알게 될 것이다.

바이든 부통령의 말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이것은 모든 젠더와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 우리가 모든 대학에서 명확하고 간결한 동의에 대한 정의를 공유할 때 더 성취하기 쉬운 목표는 아닐까?

우리가 캠퍼스의 강간을 없애려면, 우리는 모두가 강간이 무엇인지, 자기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강간인지 아닌지 알게 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허핑턴포스트US의 My Rapist Might Not Know He's a Rapist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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