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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2월 27일 18시 55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4월 29일 14시 12분 KST

정치개혁인가 자승자박인가

민주당과 새누리당이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는 상향식 공천제에 대한 논의가 과연 '정치개혁'일까? 정치개혁. 참 좋은 말이다. 그런데 과연 정치'를' 개혁하는 것만이 능사일까? 국민들이 정치개혁을 원하는 것은, 정치'를' 개혁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정치'가' 개혁하는 모습을 보고 싶기 때문은 아닐까?

1만 명의 군인들이 적진 한 가운데에 갇혔다. 고대 그리스에서 벌어진 일이다. 페르시아의 퀴로스 2세는 자신의 형인 아르타크세르크세스 대왕을 공격하고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이민족 정벌을 핑계 삼아 대규모의 용병을 불러온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그렇게 1만 3천여 명의 군사들이, 대부분의 경우 생전 처음 가보는 적진 한복판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아르타크세르크세스가 퀴로스의 음모를 몰랐지만, 곧 발각되었고, 반란 수괴인 퀴로스는 전투 중 사망하게 되었다.

그리스 군은 그 전투에 말려들지 않았다. 그러므로 1만여 명의 병력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들은 잘못된 정보를 듣고 용병이 되어 온 것이므로, 품삯을 지불해야 할 퀴로스가 죽은 이상 이제 귀향하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그들이 페르시아, 즉 최강의 적국 한 가운데에 뚝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본의가 아니라고 하지만, 아무튼 아르타크세르크세스의 입장에서 보면 그리스 군사들은 반란 세력의 일부, 적군이다. 페르시아의 대왕은 그리스 군을 향해 무장을 해제하고 항복하라고 요구한다.

자존심 강한 그리스의 보병들은 그 말을 무시했다. 만약 페르시아가 그리스 군을 상대로 이겼다면, 직접 와서 시체 위에 떨어진 창과 방패를 주워가라고 응수한 것이다. 죽으면 죽었지 싸워보지도 않고 무장을 해제한 채 항복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리스의 중무장한 밀집 대형의 보병들은 상대하기 매우 까다롭다. 맞붙어 싸운다면 큰 손실을 각오해야 한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는 '우리는 친구다, 친구끼리는 무기를 내려놓는 것이다'라는 논리를 꺼내들었다. 그러자 그리스인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는 무기를 버리지 않겠다. 만약 우리가 너희들의 친구가 된다면, 무기를 내려놓았을 때보다 무기를 들고 있을 때 더 유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너희들이 우리와 친구가 되지 못한다면, 우리의 손에 무기가 들려있지 않을 때 우리는 너희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기를 내려놓지 않겠다.

개인 대 개인, 집단 대 집단의 협상에 대해서 이보다 더 탁월한 통찰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일시적인, 혹은 극복 가능한 불리한 조건으로 협상을 하는 것은, 전략적 목표가 확실하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때로는 단기적인 손실을 감내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역량이나 능력 그 자체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쪽에서 먼저 무장을 해제하고 '친구'가 되면, 그 '친구'는 금새 '정복자'로 돌변할 것이니 말이다. '내줄 수 있는 것'과 '내줄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 전자를 양보하더라도 후자는 포기하지 않아야 역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이제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보자. 민주당과 새누리당이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는 상향식 공천제에 대한 논의가 과연 '정치개혁'일까? 정당의 가장 큰 힘 중 하나가 바로 새로운 인물을 발탁하고 그를 정치적 판단에 따라 적절한 위치에서 적절한 선거 투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한국의 여당과 야당은 모두 자신들이 가진 무기를 내던지는 '개혁'을 하겠다고 목청을 높히고 있다.

여기에 제3후보 안철수 의원 측에서, 어차피 잃을 게 없는 처지이므로, 선수를 쳐서 민주당을 머쓱하게 만드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제 민주당은 그놈의 '개혁'을 해도 문제고 안 해도 문제다. '정치개혁'을 해버리면 정당의 가장 크고 중요한 정치적 수단을 더는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정치개혁'을 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그것을 '정치개혁'이라고 말해버린 이상, 개혁에 역행하는 세력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페르시아의 한복판에 갇혔는데, 이미 방패와 창을 버리겠다고 선언해버렸고, 페르시아의 대왕은 그저 청와대에서 껄껄 웃고 있을 뿐이다.

정치개혁. 참 좋은 말이다. 그런데 과연 정치'를' 개혁하는 것만이 능사일까? 국민들이 정치개혁을 원하는 것은, 정치'를' 개혁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정치'가' 개혁하는 모습을 보고 싶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데 이미 창과 방패를 내려놓고 페르시아의 '친구'가 되어버린 정치가, 대체 누구를 어떻게 개혁할 수 있단 말인가. 기업은 국민들의 사적 생활을, 관료들은 국민들의 공적 생활을, 이미 침식할대로 침식해버린 상황이다. 정치권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일단 벗고 보는 눈물의 홀딱쇼를 멈추고,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와 힘을 이용해, 국민들의 행복과 권리를 지켜달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