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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20일 09시 45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1월 20일 14시 12분 KST

에리히 프롬이 자본주의를 찬양했다고?

[장정일의 독서 일기]

<자유로부터의 도피> 에리히 프롬 지음, 김석희 옮김/휴머니스트 펴냄(2012)

어쩌다 정규재 <한국경제신문>주필이 진행하는 인터넷방송(정규재TV)을 본 적이 있다. '책 읽어주는 남자 정규재'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이었는데, 내가 본 것은 어느 사립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이자 자유와창의교육원 교수인 조동근과 함께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소개하는 거였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기까지 '나는 어떻게 먹고살까?'라는 걱정과 고독을 피하려는 정신적 갈망에 시달린다.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인간은 타인과 협력하지 않고서는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경제적·실존적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인간은 국가나 종교 같은 강력한 외부 세계에 소속되는 길을 택했다. 인간은 자신의 자유를 외부에 저당잡히고 복종을 바치는 대가로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두 가지 고민을 덜었다.

인간이 자신의 담보물(자유)을 되찾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긴 세월 동안 도구를 발명하고 생산력을 갱신하면서 자연을 지배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다. 중세가 이울 무렵, 종교개혁과 맞물리며 급속하게 퍼져나간 자본주의 정신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개별 인간의 자유를 지고선으로 추구하게 되었다.

정규재와 조동근은 이 대목에서 무궁한 감동을 받았나보다. 녹취를 풀어보자.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실제로 시장으로부터의 도피를 뜻하는 거다. 경제민주화는 기본적으로 권력에 자유를 반납하는 건데, 그건 경제의 노예화지 민주화가 아니다. 경제민주화는 국가와 국민 사이의 비합리적인 가·피학성 이상심리가 투영된 거고, 복지도 국가 독재에 나를 맡기는 거다. 시장으로부터 도피하면 노예의 길로 가게 된다.

두 사람은 자본과 시장이 인간의 개별적 자유를 확대했다는 주장을 이 책의 결론으로 삼지만, 책 전반부에 나오는 저 주장은 이제부터 프롬이 행하려는 자본주의 분석의 전제일 뿐이다. 게다가 프롬은 저 전제에다가, 두 가지 부정적인 단서를 달았다. 첫째, 겉으로는 자유를 선사한 것처럼 보이는 자본주의는 인간을 "경제라는 거대한 기계의 톱니, 항상 외부의 목적에 이바지하는 톱니"로 만들었다. 둘째, 자본주의는 모든 계급에게 동일한 자유를 증가시켜주지 않고, "사회 계급마다 다른 영향"을 끼쳤다. 최상층은 부와 권력이라는 자유의 열매를 마음껏 누리고, 하층계급인 노동자·농민은 더욱 심한 착취와 빈곤을 겪는다. 반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 중간계급은 서로 간의 경쟁과 신분 추락이라는 위협 앞에서 예전보다 더 많은 경제적·실존적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하여 중산계급은 민족·국가·영웅 등 자신보다 더 높은 힘에 자신을 의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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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롬이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는 히틀러가 선거를 통해 권좌에 오르게 된 원인을 찾기 위해서였다. 자유와 개인주의를 무한히 확장했다는 자본과 시장은 공동체의 안정을 파괴함으로써 오히려 인간의 근원적인 불안을 증폭시켰다. 그 결과가 전체주의의 귀환이다. 이처럼 명료한 자본주의 비판서를 자본주의 찬양서로 둔갑시키다니?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의 <위대한 탈출>(한경비피·2014)이 자유기업주의자들에 의해 원서 자체가 훼손되었듯이, 왜곡의 달인인 이들이 국정교과서 사업의 배후라는 것을 주시해야 한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