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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17일 06시 46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7월 17일 14시 12분 KST

작가의 '타고난 재능' 강조하는 순문학 시대 가고 있다

오쓰카 에이지는 대형출판사의 매출에서 만화와 순(정통)문학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면서, 만화와 같은 장르문학에 기대어 연명하고 있는 순문학을 향해 '불량채권'이라는 직격탄을 날렸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에서도 순문학과 장르문학 사이의 주도권 교체를 문학의 돌파구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오쓰카 에이지와 순문학계 사이에 세워진 긴장은 어느 장르가 오늘의 대세인가를 다투는 것에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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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독서 일기]

오쓰카 에이지-순문학의 죽음, 오타쿠, 스토리텔링을 말하다

오쓰카 에이지·선정우 지음/북바이북(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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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쓰카 에이지는 만화 스토리 작가와 평론가로 활약하면서 문학·정치 분야에서도 논쟁적인 비평서를 낸 전방위 평론가다. 그의 관심사가 얼마나 폭넓은지는 한국의 만화 평론가 선정우와 나눈 대담집 <오쓰카 에이지-순문학의 죽음, 오타쿠, 스토리텔링을 말하다>만 봐도 금세 알 수 있다.

어린이 유괴와 아동 살상 사건을 저지른 일본의 비행 청소년과 미국의 연쇄 살인마가 가진 공통점은 표현 욕구다. 비행 청소년의 방에서 발견된 공책이나 컴퓨터에서는 미완성으로 끝난 이야기를 볼 수 있고, 연쇄 살인범은 범행 현장이나 경찰서에 '나 잡아 봐라' 식의 편지나 전화를 남긴다. 오쓰카 에이지는 이런 공통점에 착안하여, 그런 범죄자들은 '자아 찾기'를 언어화하는 데 실패하는 바람에 사건을 저지르게 된 것이 아닌가라고 말한다. 즉 "그들은 '이야기'를 만들면서 자기표현을 하고 싶었지만 '이야기 작법'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에 완전한 이야기를 만들지 못했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불완전 연소'가 범죄에 이르게 된 간접적 원인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이 논리를 연장하면, 다행히도 작가는 자아 찾기를 언어화할 수 있었기 때문에 범죄자 신세를 면한 것이리라.

몇 년 동안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만화 스토리 창작을 강의했던 오쓰카 에이지의 경험에 따르면, 창작 워크숍의 열성적인 참가자는 아프리카계·중동계·아시아계의 비율이 높다고 한다. 이야기 짓기는 소외받는 주변인의 정체성을 수립하는 데 도움을 주는 한편, 좋은 이야기에 반드시 필요한 그림자(악)와의 통합을 통해 본인의 성장을 돕는다. 이런 신념 아래 집필된 것이<스토리 메이커>(북바이북, 2013) <이야기 체조>(북바이북, 2014) <이야기의 명제>(북바이북, 2015)와 같은 이야기 작법 책으로, 그가 크게 원용하고 있는 이론가는 민담 분석으로 저명한 블라디미르 프로프다.

오쓰카 에이지는 대형출판사의 매출에서 만화와 순(정통)문학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면서, 만화와 같은 장르문학에 기대어 연명하고 있는 순문학을 향해 '불량채권'이라는 직격탄을 날렸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에서도 순문학과 장르문학 사이의 주도권 교체를 문학의 돌파구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오쓰카 에이지와 순문학계 사이에 세워진 긴장은 어느 장르가 오늘의 대세인가를 다투는 것에 있지 않다.

순문학계는 은연중에 작가 혹은 창작을 일종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창작을 하기 위해서는 '신이 주신 재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순문학계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의 자부심이다. 오쓰카 에이지는 순문학계의 '작가=창조자' 등식을 단호히 거부한다. 그는 <캐릭터 메이커>(북바이북, 2014)에서, 창작에는 운명보다 "누구나 배워서 할 수 있는 부분이 의외로 많다"고 말한다. "미완의 이야기를 남긴 청소년 범죄자들에게 없었던 것은 재능이나 운이 아니라 적절한 '학습'이 아니었을까"라고 묻는 지은이는 자신의 이야기 창작 매뉴얼을 "창작 행위의 민주화"라고 부른다. '작가=창조자'가 18세기 낭만주의 시대부터 오늘까지 이어져 내려온 근대문학의 핵심적인 신화라는 것을 안다면, 지은이가 겨누고 있는 비판의 초점도 그만큼 분명하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