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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6월 12일 12시 48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6월 14일 14시 12분 KST

사이코패스를 만드는 방아쇠

그는 자신의 뇌를 찍은 사진이 사이코패스의 뇌와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고, 그 사실에 촉발되어 자신의 가계를 거슬러 올라가 보니 선조가 살인자투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행적을 돌이켜보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냉정한 인물평을 구한 결과, 그 자신이 사이코패스였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그런데도 그는 어떻게 무지막지한 범죄자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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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독서 일기 | <괴물의 심연> 제임스 팰런 지음, 김미선 옮김/더퀘스트 펴냄(2015)

제임스 팰런의 <괴물의 심연>은 저명한 뇌과학자의 사이코패스(psychopath) 연구서다. 이 용어는 영화 <양들의 침묵>으로 널리 퍼졌지만 정신의학자들의 성경이라는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편람>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 편람에서 사이코패스에 가장 가까운 건 반사회성 성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다. 반사회성 성격장애자는 "사회규범을 지키지 못한다. 사기성이 있다. 미리 계획을 세우지 못한다. 쉽게 흥분하며 공격적이다. 타인의 안전을 무시한다. 무책임하다. 자책할 줄 모른다" 가운데 3개 이상의 항목을 충족시킨 사람이다.

이보다 더 정교한 사이코패스 점검표가 PCL-R이다. PCL-R 점검표는 전체 20개 항목별로 '사이코패스 특성이 존재하지 않는다(0점)' '부분적으로 존재한다(1점)' '확실히 존재한다(2점)'로 점수를 매긴다. 40점 만점을 받으면 명백한 사이코패스로 분류되고, 25~30점은 경계선이다. 하지만 지은이는 PCL-R에 대한 보완책으로, 뇌와 유전자 검사를 병행·종합할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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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의 뇌는 감정을 조절하는 변연피질이 손상되어 있거나 저조한 활동을 보인다. 그 결과 자기 억제, 사회적 행동, 윤리, 도덕성은 무뎌지는 대신 냉정하고 대담한 행동을 저지르게 된다. 범죄자 분석 기법을 확립한 로이 헤이즐우드와 스티븐 미초드의 <프로파일러 노트>(마티, 2015)를 보면, 단 한 번의 범죄로 들통이 나는 우발적 범죄자와 달리 대부분의 사이코패스 범죄자는 오랫동안 잡히지 않고 태연하게 연쇄살인을 계속해 나간다. 제임스 팰런은 그 이유를 감정 능력을 담당하는 뇌 영역의 부재와 차가운 이성 능력을 유지하는 뇌 호르몬 활성에서 찾는다. 딱히 연쇄살인범이 되지 않더라도, 이 두 가지 조합은 대인 공감 능력을 찾을 수 없는 사이코패스 아류를 만든다.

지은이는 "우리는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태어난다"는 과학적 확신으로 무장하고, 환경의 힘이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한다는 관점을 물리쳐 왔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뇌를 찍은 사진이 사이코패스의 뇌와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고, 그 사실에 촉발되어 자신의 가계를 거슬러 올라가 보니 선조가 살인자투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행적을 돌이켜보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냉정한 인물평을 구한 결과, 그 자신이 사이코패스였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그런데도 그는 어떻게 무지막지한 범죄자가 되지 않았을까?

결론이 조금 빤할지도 모른다. "독재자를 포함해 모든 사이코패스가 어릴 때부터 학대를 받았고, 나는 그런 적이 없었다. 우리를 만드는 건 양육이 아니라 본성이라는 나의 신념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떻게 키우느냐'가 결국은 범죄자를 만들어내는 데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공표하게 된 것이 '세 다리 의자 이론'이다. 사이코패스는 "세 개의 안와전두피질과 편도체를 포함한 전측두엽의 유별난 저기능, 전사유전자로 대표되는 고위험 변이 유전자 여러 개, 어린 시절 초기의 감정적·신체적 학대나 성적 학대"가 어우러져 탄생난다. 환경이 사이코패스를 만드는 방아쇠다. 지은이는 자신을 대상으로 삼은 이 연구로 대중적인 명사가 되었지만, 많은 지인들은 그 곁을 떠났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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