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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3월 26일 14시 34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5월 26일 14시 12분 KST

코미디언들에게 더 많은 자유를 허하라!

많은 이들이 한국 코미디는 재미가 없다, 맨날 외모 농담밖에 하지 않는다고 불평들 한다. 어째서 미국 코미디언들은 저렇게 할 말 안 할 말 다 하고도 재미있는데 한국 코미디언들은 몸개그나 외모 비하 농담밖에 못할까? 설마 그게 한국 코미디언들의 재능이 떨어져서 그렇다고 믿는 건 아니시겠지요. 한국 코미디에서 외모 비하 농담, 특히 여성에 대한 농담이 넘쳐나는 이유는, 한국 사회 전체가 사과를 요구하지 않는 유일한 영역이 그것이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지 않을까?

 

얼마 전 온라인에서 작지만 흥미로운 소동을 관찰했다. 3월 8일 한국판 SNL에서 방영된 '지금 만나러 갑니다. 제이슨 두영 앤더슨'이라는 콩트와 관련된 논쟁이었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어릴 때 (아마도 미국으로) 입양됐던 '제이슨 두영 앤더슨'이라는 청년이 한국에 돌아와 공항에서 친엄마를 만나 준비했던 이야기를 읽어준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에 한국어에 익숙하지 못한 외국인의 억양과 중간중간에 섞이는 영어 표현들, 그리고 직역 과정에서 발생하는 뉘앙스의 차이와 반말/존댓말의 경계 등을 이용한 농담들이 4분 남짓한 시간 동안 쏟아졌다. 엄청나게 잘 만든 농담이라고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기술적으로는 완성도가 높았고, 마지막의 몇몇 불필요한 장면을 빼면 농담의 수위도 그렇게 높은 편은 아니었다. (이 동영상은 현재 페이지에서 삭제됐으나 여전히 여기 에서 볼 수 있다.)

문제는 이 코미디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적어도 내가 확인한 트위터에서의 반응이나 동영상에 달린 댓글들은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그 중에서도 흥미로웠던 반응 하나는 "미국에서 이런거 만들었으면 바로 인종차별. 피디 구속... ;;"이라는 댓글이었다. 정말? 누군지는 몰라도 미국의 코미디를 많이 보지 않는 분임을 확실하다. 문제가 제기되자마자 SNL 코리아 제작진 측은 여기에 대해 잽싸게 반응했다. 자신들의 잘못임을 인정하고 재방영분과 온라인 공개 버전에서 이 콩트를 삭제하겠다고 발표했다. 2000년대 이후 한국인들의 정치적 공정함(political correctness: PC)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이 코미디 자체보다 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과 대응이 훨씬 흥미로웠다.

우선 '미쿡'의 예를 들어보자. 과연 미국에서 저 코미디가 방영되었다면 큰 문제가 됐을까? 글쎄올시다. 미국은 복잡한 인종구성을 가진 나라이고 지역과 인종에 따른 액센트(사투리, 억양)는 코미디의 주요 도구 중 하나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액센트를 강조하거나, 반대로 다른 집단의 액센트를 모사해서 웃음을 유발하는 건 아주 흔한 일이다. 몇몇 특수한 경우 넘어서는 안되는 터부로 여겨지는 조건들이 있긴 하지만 (예를 들어 흑인을 비하하는 N-word나 동성애자를 비하하는 F-word 정도), 이건 아주 예외적인 경우이고, 그 외에 코미디언이 사용하는 액센트 자체가 '차별적'이라는 이유로 비난받거나 제재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 "그래도 강자가 약자에 대한 농담을 할 때는 더 조심해야 한다."가 있는 모양인데, 이분들은 정말로 자신들이 미국, 혹은 다른 나라에 입양 간 사람들보다 자기들이 강자라고 믿는지 묻고 싶다. 물론 대한민국의 입양 문화가 뒤떨어진 편인 건 사실이고, 경제 수준에 비해 많은 수의 아이들을 해외로 입양 보내고 있는 건 좀 민망하게 여겨지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게 "부끄러운 일"이라거나 "그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건 과연 공정한가? 다른 나라에 가서 일생 대부분을 보내고 성인이 된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는 건 반대로 내가 그들보다 나은 삶을 살았다는 근거 없는 오만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다시 말해 "조금이라도 차별적인 농담을 했다가는 피디가 구속되는 선진국, 미국!"이라는 환상과 "해외에 수출되어 불행한 삶을 산 한국계 입양아"에 대한 미안함은 모두, 입양된 사람들 스스로가 내는 목소리라기보다는 평생을 한국에서 산 내 마음 안에서 비롯된 기준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위에서 언급했던 이 사태에서 흥미로웠던 점 중 하나는 제작진의 재빠른 사과였다. 이들은 변명하지 않았고, 문제가 된 콩트와 관련된 영상자료를 공식 채널에서 삭제했다. 아마도 SNL 코리아(그리고 그 외 다른 코미디 프로그램)의 작가들은 다시는 입양아와 관련된 농담을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반응이 한국 코미디계에서 결코 드문 일이 아니라는 거다. SNL 코리아는 작년에도 간호사에게 비슷한 이유로 사과했고, 다른 방송국의 프로인 <개그 콘서트>는 성우를 비하했다는 이유로 역시 공식 사과한 적이 있다. 대조적으로 미국 코미디언들은 항상 기본 태도로 "사과하지 않는(unapologetic)" 것임을 내세우곤 한다. 왜? 한 번 사과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으니까.

농담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 주체의 역동적인 관계 안에서 의미가 정의된다. 발화자, 청자, 그리고 대상이 되는 자. 언제나 이 셋의 관계(높낮이)는 약간씩 변화하기 마련이지만 코미디언은 자신이 농담을 던지는 상황 안에서 각자의 무게를 예리하게 판단하고 거기에서 허용되는 최대한의 무례함을 밀어붙인다. 다시 말해 코미디언이 던지는 농담은 사회가 허용하는 관용의 한계를 반영하기 마련이고, 이런 이유로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코미디언에게는 좀 멍청하고 차별적인 발언이라도 일단 할 수 있게 해주는 프리 패스가 주어져 있다고 믿는다.

많은 이들이 한국 코미디는 재미가 없다, 맨날 외모 농담밖에 하지 않는다고 불평들 한다. 그렇지만 왜 그런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은 적은 것 같다. 어째서 미국 코미디언들은 저렇게 할 말 안 할 말 다 하고도 재미있는데 한국 코미디언들은 몸개그나 외모 비하 농담밖에 못할까? 설마 그게 한국 코미디언들의 재능이 떨어져서 그렇다고 믿는 건 아니시겠지요. 한국 코미디에서 외모 비하 농담, 특히 여성에 대한 농담이 넘쳐나는 이유는, 한국 사회 전체가 사과를 요구하지 않는 유일한 영역이 그것이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지 않을까? 정치인에 대한 농담, 특정 직업에 대한 농담, 인종 농담, 사투리 농담, 뭐든 하기만 하면 차별이라고, 사과하라고 난리를 치는데 도대체 뭐를 가지고 코미디를 만들라는 소린가?

코미디언이 해야 할 일은 사회의 모순을 드러내는 것이지 그것을 해결하는 게 아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이 움직일 수 있는 범위를 최대한 확보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이 내 직업을 좀 놀렸다고 내 월급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내버려 두면 그들은 너도 까고, 나도 까고, 모두 모두 까서 언어의 무게 자체를 가볍게 만들어 줄 것이다. 코미디언들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더 심화시킬 뿐이다. 물론 명백한 사실 관계의 착오가 있다거나 맥락상 누구나 차별어임을 인지할 수 있는 특정 단어들, 예를 들어 이른바 '일배어' 같은 것들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제한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도 있겠지만, 그 외의 경우라면 되도록이면 하고 싶어 하는 걸 하도록 내버려두는 편이 낫다. 정치적 공정성은 나름의 효용성을 가진 도구이지만, 어느 문화에나 일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만능의 도구는 아니다. 심지어 원조국인 미국도 그런 식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코미디의 영역이 제한된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코미디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똑똑한 사람들이다. 코미디를 사랑한다면, 그리고 좋은 코미디를 더 보고 싶다면 그들이 마음껏 헛소리를 할 수 있는 자유를 허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