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2014년 03월 19일 06시 35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5월 19일 14시 12분 KST

닥터 황과 민족의 알 - 꽃파는 처녀(들)의 재림

황교수는 "현재" 줄기세포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논문은 새빨간 거짓, 아니 위대한 '사이언스 픽션'이었다. 누군가가 구슬프게 노래했듯 "소원과 예감은 착각하기 쉽고, 신뢰와 기대는 너무나도 닮은" 법이다. 의심받지 않는 과학은 종교가 되고, 예고 없는 순간에 가차 없이 당신을 상처 입힌다.

.

이 글은 Sasa[44]작가님과 공동작업으로 작성하여 2006년 아트인컬처 1월호에 게재됐던 원고를 수정, 편집한 것임을 밝힙니다. 이미 8여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이지만, STAP 세포를 둘러싼 괴상하도록 유사한 소동을 보면서, 지난 날 대한민국에서 숨가쁘게 전개됐던 사건의 추이는 어떠했는지 총체적으로 기억을 떠올려보자는 의미에서 허핑턴포스트에 공개를 부탁드렸습니다. 당시의 분위기를 전하기 위해 편집은 최소화했습니다.

글을 허핑턴포스트에서 재공개하도록 허락해주신 아트인컬처의 호경윤 편집장님과 임근준 전편집장님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대한민국 최초의 메디컬 아티스트

황우석 박사와 희생된 난자들을 기념하며

1. 들어가며

오늘은 2005년 12월 16일. 현재 시각 오후 4시 26분. 황우석 박사와 노성일 이사장이 이제 막 기자회견을 마쳤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이렇게 시점을 밝히는 이유는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의 양과 질에 대한 변명을 하기 위함이다. 분명,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가진 정보는, 내가 발 딛고 있는 정보와 현격한 양적, 질적 차이를 갖고 있을 것이다. 장담컨대 앞으로 몇 주 동안 펼쳐질(진) 배신과 폭로의 전장은 지금까지 펼쳐진 논란과는 차원이 다른 추저분한 그림을 그려낼(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글을 써 갈기기 시작한 이유는, 우선 그 동안 내가 이 사건을 모니터링하면서 쏟은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뭔가 결과물을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이 사건이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애써 서로의 존재를 못 본 척하며 평안히 지내왔던 두 세력, 다시 말해 과학의 원칙에 익숙한 식자와 그렇지 않은 '대중' 간의 명시적인 충돌을 그려낸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딱딱한 이야기는 집어치우자. 이론적인 이야기는 할 깜냥도 안 되고 (줄기세포는 내 전공이 아니다), 일목요연한 사건의 진행과정은 인터넷에 널려있다. 여기서는 '이무기'들의 싸움 방식과 무서움, 그리고 그 와중에 커밍아웃한 수많은 무뇌아들의 입놀림에 대해 가차 없는 농담을 퍼부어댈 생각이다. 스캔들은 지저분할수록 달콤한 법. 수많은 루머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도 되는대로 까발려보자. 사실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되도록 정확한 레퍼런스를 붙이도록 노력하겠지만, 그럴 수 없는 소위 '카더라' 통신 역시 다수 인용할 생각이다. (링크로 붙인 웹사이트 중의 일부는 이미 접속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지만, 기록의 의미로 삭제하지 않고 그대로 남겨두었다)

2. 사건의 개요

사건의 발단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시계바늘을 좀 한참 되돌려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하고 있지만, 황우석 박사의 주요업적으로 알려진 체세포 치환 기법은 이미 1998년 국내 연구진에 의해 성공을 알렸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의 기사를 보시라. 이근미, "경희의료원팀이 성공한 세계최초 배아(胚芽)단계 복제과정 추적" <월간조선> 1999년 2월호) 경희대의 이보연 교수 외 연구팀이, 현재 황우석 박사 팀이 트레이드마크로 내세우고 있는 미세조작 기술을 이용해 배아복제에 성공했지만, 자기들도 성공의 무게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 모르고 있었던 듯 갑자기 쏟아지는 언론과 학계의 관심에 밀려 초기 분화 단계의 세포를 고정시켜 버렸고, 제대로 된 논문 한 편 발표하지 않아 이내 세간의 관심에서 잊혀졌다. 재미있는 건 이때 남의 실험실에 쳐들어가, 아직 제대로 발표도 되지 않은 연구의 실사를 운운하며 '딴지'를 걸어댄 조직이 바로 황우석 박사를 포함한 대한의학회 산하 생명복제소위원회였다는 점이다. (김진국, "황우석, 남의 연구는 검증하고서 이번엔 왜?", <프레시안> 2005년 12월 9일). 물론 당시 경희대 팀의 연구는 체세포 치환 복제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기에, 지금 논란이 되는 줄기배포 배양 연구와는 차이가 있다.

이 해프닝 직후 황박사는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성공한 복제 동물'인 "영롱이"의 탄생을 알리고 언론의 큰 주목을 받는다(1999년 2월). 황박사가 "복제기술의 달인"으로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한 건 이 무렵부터였다. 이후에도 최초의 복제 한우 "진이"나 최초의 유전자 형질변환 돼지(탄생 직후 사망했다) 등의 업적을 알리면서 착실한 연구자의 이미지를 쌓아나갔다.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있을 "백두산 호랑이 복제 프로젝트"도 이 무렵부터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대충 1999년 중반부터 언론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백두산 호랑이 복제 시도는 잊혀질 만 하면 한 번씩 언론을 타면서 사람들에게 그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물론 한 번도 성공한 적은 없다).

이후 사이언스에 논문을 발표하기까지, 황박사는 다양한 강연 활동과 로비를 통해 정치적인 커넥션과 인간 배아 연구를 위한 연구팀 구성에 힘쓴다. 80년대 후반부터 황박사의 오른팔이 되어 보좌해온 이병천 박사 외에, 미비했던 유전학과 분자생물학 분야를 커버하기 위한 강성근 박사와 앞으로 있을 임상 적용에 대비한 안규리 박사가 연구팀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이후 논란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 게 조작된 DNA 핑거프린팅과 세포의 면역염색 사진이었으며, 안규리 선생이 이끄는 이종장기이식팀의 연구 성과는 태어난 직후 몰사한 무균돼지 이외에 가시적인 게 없다는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미즈메디 병원의 노성일 이사장은 이 숭고한 연구를 위해 사비를 털어 난자를 구해주기로 약속하고 연구팀의 일원이 되었다.

이 사이에 황박사를 둘러싼 소문들이 재미있는데, 그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서울대 강의 중 했다는 음담패설 수준의 성희롱 발언들 (황교수는 이 발언과 관련해 공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다)이고, 그 외에도 여러 곳에 강연을 다니면서 흘리고 다닌 문제적 발언들은 '이 바닥'의 알 만한 사람들 사이에선 꽤 유명한 전설로 회자됐다. 물론 수의학과 출신에다 "소 수정란이나 쪼개던" 양반이 갑자기 복제 연구의 태두로 떠오른 데에 대한 과학 엘리트 사회의 반감 역시 부정할 수 없다. 거기다 자기 연구원들은 주말도 없이 "월화수목금금금" 일정으로 일을 한다느니, "좋아하는 일 하는데 라면만 먹고 해도 감지덕지죠"라는 소리들에 대해서도, 강연을 듣는 일반인들에게는 성실한 연구자의 모범이라는 인상을 심어주었지만, 동업자들(최소한 박사과정급 이하 연구원들) 사이에서는 끔찍한 '한국 아저씨 교수'의 전형이라는 미운 털을 박아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가 "라면황"이라는 잘 어울리는 별명을 얻게 된 것도 이 무렵의 일이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 무렵 라면황, 아니 황교수는 자신이 진행하고 있는 인간 배아 연구에 대해 강연할 때마다 자기 휘하의 연구원들이 몸 바쳐 난자를 기증했다는 사실을 공공연히 떠벌리고 다녔으며(무식하면 용감하다!), '같은 바닥'의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가 학생들에게 난자 기증을 직/간접적으로 강요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아무튼, 2004년, 드디어 그는 크게 사고를 쳤다. 세계 "최초"로 타인의 체세포 핵을 삽입한 난자에서 줄기세포를 발생시키는 데 성공하고, 그 놀라운 과학적 업적을 사이언스지에 실었다는 소식이었다. (Hwang et al., "Evidence of a Pluripotent Human Embryonic Stem Cell Line Derived from a Cloned Blastocyst" Science 12 Mar 2004 303, pp. 1669-1674). 대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렇게 대단할 것도 없었다. 앞에도 이야기했듯, '인간 체세포 치환' 자체는 엄청나게 독보적인 기술을 요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필요한 건 충분한 양의 난자와 '숙련된 미싱공'의 꾸준한 공예적 노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언스>지라는 이름의 무게는 온 국민에게 달콤한 '구국의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고, 급기야는 '노벨상의 수상'을 점치는 사람들이 하나씩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 김혁, "황우석 교수 후원회 오늘 출범" <한국일보> 2004년 4월 19일). 그의 업적은 학계에 새로운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는 게 아니며, 엄청나게 새로운 기술적 발전을 보여주지도 못했고,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에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없다는 사실, 그렇기에 노벨상을 받기에는 모자란 점이 너무나 많다는 점 등에 대해서는 모두들 함구했다. (노벨상을 숭앙하는 '우리 국민'들은, 김대중 전대통령께서 탁월한 정치력을 발휘하시며 노벨상을 수상하시는 보습을 본 뒤로, 그리고 정치 문학가 고은 시인마저 노벨상의 영예에 근접하는 모습을 본 뒤로, 노벨상을 너무 우습게 알기 시작했다.)

황박사가 하고 있는 연구란, 1) 인간 배아 사용을 둘러싼 윤리적 문제와 실정법상의 제약과 2) 현실적으로 어려운 난자의 대량 수급이라는 두 가지 문제로 인해 다른 나라들의 발이 묶여 있는 동안 한 수 치고 나간 것일 뿐이라는 인식 역시, 과학/기술 집단 내에서만 공유되었을 뿐, 일반 대중과는 공유되지 않았다. 체세포 핵치환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이른바 "내부인"과 "외부/일반인" 사이의 인식은 "남들이 안 하는 연구"와 "남들이 못하는 연구"라는 간극을 넓혀가고만 있었다.

2004년 논문 발표 이후 황박사 팀의 정치력은 절정에 이른다. 작년에 이룬 공로에 힘입어 정부는 심사 없이 연구비 265억을 약속했고(당연히 다른 관련 연구팀의 연구비는 줄어들었다), '세계 복제 과학계의 거두'라 불리던 제럴드 섀튼 박사 역시 연구팀에 참가했다. 2005년 5월(하드카피로는 6월)에 발표된 논문(Hwang et al., "Patient-Specific Embryonic Stem Cells Derived from Human SCNT Blastocysts" Science 17 June 2005 308, pp. 1777 - 1783)은 세계적으로 엄청난 찬사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전 논문이 그저 "할 줄 안다" 내지는 "처음으로 해봤다" 수준이었다면 이번 논문은 "아주 잘 한다," "맡겨만 달라" 수준으로 격상된 셈이었다. <사이언스>지의 엠바고(보도시한제한) 관련 해프닝은 당시 대한민국에서 그의 위상을 보여주는 예였다. 엠바고를 깬 신문사들, 그러니까, <사이언스>지의 발표 이후 같은 시각에 보도하기로 한 약속을 깨고 먼저 뉴스를 터트린 신문사들은 신랄하게 비판당했고, 처음으로 그의 연구를 방해하는 사람들에 대해 "매국노"라는 무시무시한 표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고향에서는 그의 생가 복원 계획을 발표했고 ("황우석 교수 생가주변 명소로 꾸민다" 연합뉴스 2005년 5월 31일), 2005년 6월에는 정부가 선정하는 '제1호 최고과학자'로 결정되어 30억에 이르는 연구비를 추가로 받아갔다. 그 사이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황우석 위인전이 적어도 8종류 이상 발매되었다. 그가 서서히 성인의 반열에 오르기 시작했다는 신호였다. 이어 10월에는, 드디어, '말만 들어도 가슴 떨리는' (그러나 누구도 정확히 뭘 하는 건지는 잘 몰랐던) "세계 줄기세포 허브" 설립 계획이 발표되었다.

물론 루머 역시 분분했다. 논문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했을 것이 명백한 박기영 청와대 보좌관이 공동 저자로 논문에 이름을 올린 것은 상당히 기이했다. 박기영 보좌관은 황박사와 정부 사이의 연결 고리임에 확실해 보였으니, 화제는 될지언정 의혹을 불러일으킬 요소는 적었다. 의혹은, 2004년 논문 발표 직후 <네이처>지가 제기한 연구원의 난자 사용 문제에 집중됐다. 이후 공동저자로 명기된 이들의 면면에 대한 루머와 난자의 출처에 대한 문제는 꾸준히 회자됐다. 그러나, 누구도 그의 연구에 대해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지는 못했다. 그만큼 그가 발표한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의 의의는 대단했다.

3. 아트 혹은 농담의 시작

<네이처>지가 '딴지를 걸기 시작'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일단 <네이처>지는 <사이언스>지의 경쟁지이며, 영국을 본거지로 두고 있다. 알려진 대로 영국 역시 줄기 세포 연구에 엄청난 지원을 하고 있으며, 황교수 팀에 버금가는 체세포 핵치환 기술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Stojkovic M, Stojkovic P, Leary C, Hall VJ, Armstrong L, Herbert M, Nesbitt M, Lako M, Murdoch A. Related Articles, "Derivation of a human blastocyst after heterologous nuclear transfer to donated oocyte," Reprod Biomed Online. 2005 Aug 11, pp. 226-231). 반면 미국의 부시 정부는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인간 배아 연구를 금지하고 있으며, 많은 주정부가 이러한 중앙 정부의 정책에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사이언스>지 입장에서는 성공적으로 수행된 줄기세포 연구를 내세워 관련 연구의 가능성과 타당성을 강조하고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고 싶어 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 상황에서 제3세계 변방 국가에서 날아온 거의 초현실적인 연구 성과는 이들에게도 유용한 도구였다. 황교수 측에서 200개도 안 되는 난자를 가지고 11개의 줄기세포를 만들어냈다는 소식은 줄기세포 연구의 실용화를 알리는 효시 역할을 할 수 있었기에, 이들은 비상하게 빠른 심사 절차를 걸쳐 논문을 발표했다 (문제의 2005년 논문은 2005년 3월에 승인을 받아 심사를 받은 뒤, 5월에 온라인으로 발표되었다. 일반적인 논문 심사 절차에 비추어보면 이례적으로 빠른 편이었다). (주: 8년후 <네이처>지는 일본의 연구자 오보카타 하루코의 STAP 세포를 발표하면서 줄기 세포 연구의 새 장을 여는 듯 보였으나, 불과 몇 달도 지나기 전에 논문 철회라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인생은 돌고 도는 법.)

<사이언스>지와 경쟁관계에 있는 <네이처>지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이 아니꼽게 보였던 모양이지만, 자신들 역시 줄기세포 연구 자체에 대해서 '딴지를 걸기'보다는 우회적인 수단을 택했다. 2004년 논문에 대해 인터뷰하던 중 자신의 난자를 연구에 사용했음을 자기 입으로 밝힌 황박사 팀의 연구원은 '좋은 먹잇감'이었다. 나중에 부랴부랴 취소하기는 했지만, 연구실 내 여성 연구원의 난자 기증이 얼마나 윤리적으로 큰 문제인지 알지 못했던 연구원은 얼떨결에 <네이처>지에 결정적인 증언을 흘려버렸던 것이다. 이후 <네이처>지는 꾸준하게 문제 제기를 하면서 황교수 연구의 잠재적인 절차적 흠결 가능성을 지적했다.

따라서, 지난 11월 22일 <피디수첩>이 문제를 처음 터트렸을 때, 이 부분에 집중한 것은 당연했다. 연구자의 난자 사용은 국제 과학계에서 불문율로 지켜지던 "헬싱키 선언"에 위배되는 사건이었을 뿐만 아니라, 황교수의 거짓말은 무엇보다 정직과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과학 분야에서 용서받기 어려운 대죄였다 (난자 매매 여부는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피디수첩>의 보도 직전에 터진 섀튼 박사의 결별 선언 역시 황교수 팀의 연구에 뭔가 문제가 있음을 알리는 분명한 신호였다.

그러나 사건은 결코 정상적인 궤도에 따라 흘러가지 않았다. 황교수는 재빨리 기자회견을 열어 절차적 흠결을 인정했다. 여기에서도 사과에 대한 관점이 "내부인"과 "외부/일반인" 사이에서 극명하게 갈리는데, 과학 종사자들이 보기에 이 사과는 이미 때늦은 '악어의 눈물'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미 그를 "대한민국의 유일한 희망"이자 "위대한 과학자"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대중들의 눈에는 신실하고 시기 적절한 사과로 보였다. 그 동안 심각한 과학계 스캔들을 경험해본 적이 없는 대한민국 대중들이 보기에는 이런 절차적 문제점들은 사소한 것이 지나지 않았다. "본인이 동의했다는데, 뭐? 돈도 줬다며." "고생했는데 당연히 얼마 줘야지. 돈 받고 넘긴 알이 어디에 쓰이든 무슨 상관이람?" 이른바 "동양적 윤리관"이라는 괴이한 논리는 "외세의 치졸한 모함"에 시달리는 '민족의 영웅'을 지키기 위한 방패막이로 거의 완벽하게 기능했다. "아이러브황우석" 카페―차후 황우석 박사의 측근에 의해 주도적으로 운영되었음을 밝혀진―가 인터넷에 개설되었고, 자발적으로 난자를 기증해 연구를 돕겠다는 여성들이 줄을 이었다. 이들은 난자기증 운동 본부를 "하늘 아래 최고로 성스러운 곳"이라고 불렀고, 난자 기증에 서명한 여성들은 "성녀"의 칭호를 받았다(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에 개설된 아이러브황우석 카페의 메뉴 참고). 황우석 박사 연구에서 난자 출처가 문제가 되기 바로 2주 전만해도 난자 매매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잠재적인 난자 적출 수술의 부작용을 구체적으로 강조하던 주요 언론들은 태도를 뒤바꿔 "대부분은 시간이 지나면 좋아진다"느니 막연하게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느니 하는 정도로 두리뭉실한 표현을 사용하며 간접적으로 난자 기증을 장려했다. 똑 같은 병원에서 똑 같은 절차로 난자를 매매한 여성들이 하루아침에 파렴치한에서 숭고한 난자 기증자로 탈바꿈한 셈이다(손병관 "난자매매는 파렴치, 연구용 매매는 숭고?" 오마이뉴스, 2005년 12월 1일).

첫 번째 방송 내용이 통하지 않자, <피디수첩> 측은 본래 준비했던 내용, 즉 연구의 절차적 문제만이 아니라 논문 자체가 상당부분 조작되었다는 제보가 들어온 바 있음을 시사했다. 본래 2차에 걸친 DNA 검증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 황박사 측의 비협조로 인해 불가능해지자 이미 손에 넣고 있었던 1차 검증 결과만이라도 발표해서 논문에 실린 줄기세포들의 문제점을 밝히고자 시도했다. 솔직히 <피디수첩>이 수행한 1차 검사는 과학 전공자 입장에서 보아도 참으로 제대로 된 실험 설계였다. 샘플을 받아서 검사를 맡기는 동안 제3의 전문가와 법률가가 동행했으며, 블라인드 검사가 가능하도록 샘플을 뒤섞어 맡기는 절차 역시 적절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절대적으로 MBC와 <피디수첩>에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던 몇몇 언론은 황교수 측이 시도한 '말도 안 되게 시시한 물타기 작전'을 증폭해서 <피디수첩> 기자들에게 '엿을 먹여버렸다'. 웃기지도 않는 물타기 작전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인간유전체기능연구사업단의 단장이시라는 유향숙 박사와 황교수 랩의 강성근, 이병천 박사께서는 "줄기세포의 DNA는 체세포의 그것과 같지 않을 수 있어서 검사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는 둥, "샘플을 받았을 때 사용한 고정액이 DNA를 변성시켰다"는 둥, 조금이라도 줄기세포와 분자생물학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면 내뱉을 수 없는 완전한 헛소리를 언론에 흘리기 시작했다. (DNA 검사도 불가능할 정도로 변성이 심하다면 도대체 체세포를 이용한 줄기세포 연구의 의의는 무엇이며, 논문에서 사용한 검증 방법은 무엇이었단 말인가?) 더욱 놀라운 것은 이들의 이런 어설픈 둘러대기가 하나 같이 먹혀 들어 <피디수첩>을 곤경에 몰아넣었다는 사실이었다. "감히 과학자를 일개 언론이 검증하려 들다니" 라는 국민의 분노는 급기야 <피디수첩>에 붙어있던 TV광고를 모두 취소시키는 언론사상 초유의 사태에 이르렀다. (그런데, 언제부터 국민 여러분들이 이렇게 과학자들의 권위를 인정하고, 안위를 챙겨주셨더라?) MBC가 회생할 방법은 하루라도 빨리 김선아와 다니엘 헤니를 설득해서 "내 이름은 김삼순"의 속편을 제작하는 길밖에 없을 듯 보였다.

이 무렵부터 과학자들의 내부 모임이라 할 수 있는 몇몇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황교수 측의 노골적인 언론 플레이에 대한 냉정한 비판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피디수첩> 측이 확보한 샘플들 중 제대로 DNA가 검출되지 않은 것은 실험 기법이 서툴러서가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부족으로 인해 잘못된 DNA 진단 키트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이 나왔다. 논문에서처럼 줄기세포가 당연히 인간 피더셀에 담겨있으리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황박사 측에서 넘긴 세포는 쥐의 피더셀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결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문제점을 알았으니 남은 샘플을 이용해 재검증을 받으면 된다는 상식적인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이후 프레시안에서는 <피디수첩>이 의뢰했던 줄기세포 검증의 제대로된 결과를 발표했지만,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강양구, " '2번 줄기세포'는 '가짜'인가 '실수'인가?" 프레시안 2005년 12월 6일). 정말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궁지에 몰린 <피디수첩>이 그 동안 모은 자료로 2차 방송을 터트릴 기세가 보이자, 안규리 박사는 YTN의 기자를 대동하고 미국으로 날아가 "제보자"로 지목됐던 모 연구원과 인터뷰를 따와 뿌렸다. 애국주의가 든든하게 후원을 해주는 상황에서 황박사 측에 필요한 건 그저 적당한 반론이었다. 그 내용이 어떤 것이든, 국어책을 읽는 듯 들리든, 옆자리에 연구원의 지도교수가 앉아있었건, 그런 건 아무 상관없었다. (지도교수가 카메라 켜고 앉아서 증언을 따는데, 과연 목숨줄이 교수에게 달린 일개 연구원이 진심을 말할 수 있었을까?) <피디수첩>이 "검찰"을 운운하며 강압적인 취재를 했다는 한 마디만으로 황우석 박사측은 무시무시한 여론 전쟁에서 주도권을 쥐게 됐다. 전 국민의 분노는 <피디수첩>의 프로듀서를 향했고, 담당 프로듀서와 그 가족들의 사진은 인터넷에 공개됐다. 처음에 문제가 된 논문의 진위 문제에 대해서는 이제 말조차 꺼낼 수 없었다. 안규리 교수가 미국으로 향할 때만 해도 이런 반향을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미 황교수는 '민족의 희망'이었고, 줄기세포 허브는 밝은 미래를 위한 유일한 '구국의 사업'이었다. 중요한 건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찾아내서 적절한 타이밍에 흘려주는 예술적인 감각이었다. 대응은 부정확하고 모호할수록 효과가 좋았다. 좋은 작품에는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어야 하는 법. 적당히 어려운 단어를 섞어낸 과학 기사는 포털 사이트를 타고 퍼져 나가 황우석 지지자들의 양식이 되었다. 온라인에는 전문가를 빙자한 가짜 문서들이 떠돌며 진짜 전문가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막말로 꼭지가 돈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MBC는 즉각 (인터뷰 방영 9시간만에!) 문제에 대해 사과하고 다음 주로 예정됐던 <피디수첩>의 방영을 유보했다. (그러나, MBC 출신들이 대거 포진한 외주 프로그램 제작사들의 배나 불리는 부실한 운영으로 이제 껍데기만 남았다는 MBC에, <피디수첩>이나 <시사매거진 2580>의 취재진마저 없다면, 과연 언론사로서의 존재이유를 찾을 수나 있을까?)

그러나 <피디수첩>의 기자들이 역시 바보는 아닌 것을. 준비한 방송이 유보된 직후 이들 역시 언론 플레이를 시작했다. 12월 5일 새벽 '브릭(BRIC)'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생물학 관련자들의 모임에 'anonymous'라는 이름으로 올라온 글 ("The show must go on..."확인된 바는 없으나 타이밍과 내용을 볼 때 <피디수첩> 관계자가 올렸거나 최소한 관여한 것처럼 보인다)에서 2005년 <사이언스>지 게재 논문의 보충 자료 중 같아서는 안 되는 그림들이 같아 보인다는, 그러니까 동일한 도판이 중복 게재됐다는 내용이 발견되었다. 어도비 포토샵 프로그램이나 하다못해 윈도우에 딸린 그림판으로만 이리저리 잘라보아도 금세 확인할 수 있는 "인위적인 실수"였다. 이른바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기겁을 했고, 정보는 몇 시간 만에 온 인터넷으로 퍼져나갔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인터넷 폐인들이 <사이언스>지의 웹사이트에서 황우석 박사의 논문을 다운 받았고, 마치 병렬로 연결된 생체 컴퓨터처럼 움직이며 정보를 교환했다. 그림 실수는 일본의 유명한 오타쿠 사이트인 <2ch>에서도 추가로 발견되었고, 이름을 숨긴 생물학자는 논문에 실린 DNA 핑거프린팅 자료 역시 미심쩍다는 의견과 함께 비전공자도 알아볼 수 있는 자세한 분석 자료를 첨부해 온라인에 올렸다. 생물학자들의 <브릭>, 과학자 일반의 <사이엔지>, 카이스트와 기타 이공계 학생들의 <키즈>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논문의 허점들을 고구마 줄기 캐듯 찾아냈으며, 일반적인 인터넷 사용자들이 접근하기 가장 용이한 <디씨인사이드> 같은 웹사이트에서는 이런 문제점들을 가장 평이한 형태의 그래픽 파일로 구성해 사람들에게 제공했다.

물론, 이 시점에서, 황박사 측의 화려한 퍼포먼스 역시 절정에 달했다. 일주일 전만 해도, 과학에 있어 우리만의 "동양적인 윤리"를 내세우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변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사이언스>지를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로 섬기기 시작했다. '이미 <사이언스>지의 검증에 통과한 논문인데, 그 정도 문제점이야 상관없다, 재검증은 세계 제일의 학술지의 권위를 욕보이는 짓이다'라고 말하던 사람들은 <사이언스>지가 이정도 윤리적인 문제나 근거 없는 제보는 논문의 의의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의견을 내놓자 크게 고무됐다. 그들에게 <사이언스>지는 신이었다 (KBS 과학기술부 담당기자인 홍사훈 기자는12월 4일 KBS 뉴스에 나와 <사이언스>지는 일반인들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구독할 수 없을 정도로 격조있는 학술잡지임을 강조했다. 물론 사실이 아니다). 아무튼, <사이언스>지의 '버티기' 덕분에, 근거를 묻지 않는 '애국질'과 국수주의, 끝 간 데 없는 '세계 일류 콤플렉스'는 분열적인 상태로 공존의 길을 찾았다. <조선일보>는 <피디수첩>의 취재에 방해 받아 옆 나라 일본에게 논문을 빼앗기고 말았다는 이병천 교수의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여과 없이 실어 <피디수첩>과 일본을 분노의 동격에 놓는 초역사적 신공을 발휘했으며 (이영완, "세계 첫논문' 日에 선수 뺏겨", <조선일보> 2005년 12월 5일), 2005년 논문의 제2저자인 노성일 이사장은 <동아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연구 과정에서 검사 과정을 생략하는 결함이 있었음을 자랑스럽게 자인하기도 했다 (서정보, "노성일 이사장 "방송이 과학논문 검증하는 경우는 없어"", <동아일보> 2005년 12월 5월).

산사에서 칩거하던 황우석 교수는 "수면장애와 스트레스"로 탈진하여 서울대 병원에 입원했으며 수염을 잔뜩 기른 초췌한 모습만이 언론에 공개되었다 (의외로 이 수염을 기르는 연출이 그의 외양에 꽤 잘 어울려 '남자'를 그리워하는 수많은 아주머니 팬들과 '아빠 사냥꾼daddy hunter'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다. 힘 센 남자가 수염을 기르고 병상에 누워있는 모습은 굉장히 섹시한 법이다. 온라인의 많은 팬들은 퇴원 이후에도 황교수가 수염을 길러주기를 기원했다).

'전국가적 총체예술'은 난자기증을 약속한 '성녀'들의 진달래 꽃길 퍼포먼스 ("난자기증 전달식, 황교수 응원열기로 가득"<연합뉴스> 2005년 12월 6일)에서 초절정에 달했다. 병원에 누워있는 황박사를 맞이하기 위해 그의 집무실 앞을 진달래꽃과 무궁화로 장식한 이 자리에서는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감동적인 장면들이 연이어 펼쳐졌다. 200여명의 <아이러브황우석> 카페 회원들은 바닥에 꽃을 하나하나 놓으며 황박사의 회복과 연구복귀를 빌었고, 소월의 "진달래꽃"은 텍스트의 한계를 넘어서는 과감한 해석으로 새로운 메타-시학의 영역을 열었다. (그런데... 소월의 시는 꽃 즈려밟고 안녕히 떠나시라는 소리가 아니었던가?) 사무라이에게 딸을 바치듯 딸의 손을 쥐고 찾아온 어미들의 열정과 지금은 나이 때문에 할 수 없지만 자격이 되는 대로 난자를 기증하겠다는 여고생들의 약조는 애국의 이름 아래 하나로 어우러졌고, 황우석 교수는 드디어 종교적 지도자의 위치에 올랐음을 만방에 선언했다. (이 글을 쓰는 현재 시각, 황박사님은 "11개면 어떻고 3개면 어떻"냐는 비장의 공식을 발표하시었다. 이제 "줄기교"는 아무나 제대로 해석할 수 없는 경전(<사이언스> 논문)과 이를 한 줄로 설명해줄 수 있는 물리 공식까지 갖춤으로써, 사이언톨로지나 라엘리안 무브먼트에 버금가는 과학 종교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완성했다.)

꽃분홍 진달래 조화는 무궁화와 어울려 이념을 넘어선 민족의 화합을 상징했고, <조선일보>와 '노빠 서프라이즈'가 손잡은 역사적인 순간은 이제 뉴스 속에 영원히 아로새겨졌다. 지만원씨는 이 같은 사태에 관련해 황우석과 노무현-김정일 정권을 둘러싼 시나리오를 자신의 홈페이지인 www.systemclub.co.kr와 <독립신문>에 게재한 바 있기도 하다 (지만원, "황우석 왜 죽이는지 이제 알겠다!", 2005년 12월 8일). 2005년 서울 한복판에서 화려하게 재현된 <꽃파는 처녀>의 공연은 줄지어선 '성녀'들과, '성모'의 자리에 오른 '우리 안규리' 교수의 애틋한 '레즈비언 러브신'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안준호, "울어버린 안규리 교수", <조선일보> 2005년 12월6일).

그러나, 일단 클라이막스를 지나고 나자 양쪽 모두 김이 빠지기 시작했다. 신나라 논문의 문제점을 찾아내던 '인터넷 워리어'들도 논문의 허점이 셀 수도 없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이젠 슬슬 논쟁이 지겨워졌다. 황교수의 연구를 핑계로 정적들을 공격하던 <조선일보> 역시 어느 날 갑자기 1면에서 황박사의 기사를 내리고 논조를 바꿨다. 여기저기서 "역시 <조선일보>!"라는 탄성이 터져 나왔음은 물론이다. 버틸 때까지 버텨보려던 <사이언스>지 또한 계속되는 제보와 공동저자 섀튼의 배신에 떠밀려 재검증에 반대할 뜻이 없음을 명확히 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2005년 논문에 사용된 사진들이 미즈메디 병원에서 준비 중이던 논문 중의 "수정란 줄기세포"와 같은 그림임을 찾아낸 눈 밝은 이들 덕에, 이 총체극은 거의 대단원의 막을 앞두고 있는 듯 보였다. 중간 중간 손학규 경기도 지사 (송혜진, "황 교수 탄압하는 '악인'들 격리시켜야"<조선일보>, 2005년 12월 9일)나, 유시민 의원 (김성덕, "유시민 "PD의 황우석 연구 검증은 터무니 없는 일", <브레이크뉴스>, 2005년 12월 10일) 등이 뒤늦은 헛소리로 '커밍아웃'했던 자잘한 해프닝을 제외하면 이미 대세는 기울고 있었다. 미술평론가 반이정 선생의 피디수첩 폐지 반대 1인시위 역시 그 의의는 가상했으나, 대세에 비추어볼 때 딱히 이 추운 날 밖에 서서 고생할 필요까지는 없는 듯 보여 안쓰러웠다. 섀튼은 논문에서 자기 이름을 빼달라고 <사이언스>지에 요청했다 거절당하자, 황교수에게 직접 논문 철회를 요구했고, 급기야는 미즈메디 병원의 노성일 이사장이 줄기세포의 존재 여부에 대해 스스로 의문을 제기하는 '자폭 혹은 셋푸쿠 같은 인터뷰'를 터트렸다. 알만한 내부자들은 매일매일 조금씩 흘러나오는 새로운 소식에 짜증을 냈고, 황교수의 지지자들은 앞뒤가 맞건 안 맞건 일단 그쪽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자양분 삼아 계속적인 자가발전에 들어갔다.

4. 피날레

<피디수첩>은 유리하게 변화한 기류에 힘입어 2차 방송을 터트렸고, 황교수는 "현재" 줄기세포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노성일 이사장은 미즈메디 병원 쪽으로 책임을 전가하려는 황교수의 계획은 눈치 채고 바로 그의 뒤를 이어 눈물로 뒤범벅된 기자회견을 열었다. 앞으로도 비열한 폭로전은 몇 주간 계속되겠지만, 적어도 이제 처음 시작한 싸움은 마무리가 되었다. 논문은 새빨간 거짓, 아니 위대한 '사이언스 픽션'이었다.

지루한 전투가 진행되는 동안 단연 돋보인 것은 여론을 주도하는 황우석 박사 팀의 단아한 언론 플레이 솜씨와 다양한 저급 그림 조작 기술로 굴지의 사이언스지를 엿 먹인 담대함이었지만, 한정된 소재만으로도 최대한의 정보를 뽑아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한 인터넷 집단 구성원들 역시 그에 겨루어 부족함이 없었기에, 비로소 과학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초대형 퍼즐 맞추기 인터랙티브 퍼포먼스 아트'가 성립될 수 있었다. (게다가 이건 완전 '참여 예술'이다!)

누군가가 구슬프게 노래했듯 "소원과 예감은 착각하기 쉽고, 신뢰와 기대는 너무나도 닮은" 법이다. 의심받지 않는 과학은 종교가 되고, 예고 없는 순간에 가차 없이 당신을 상처 입힌다.

그건 그렇고 도대체 그 수많은 '인간 알'들은 누구의 알인가? 이제 사람의 알은 어찌되는 것인가? 박혁거세라도 재림시켜 '줄기교'를 부흥시킬 속셈인가. 위에서 언급했듯, 그럴듯한 경전에 핵심 금언까지 완성하고, 피부 좋고 핸섬한 교주님까지 갖춘 마당이니 조금 더 정진해서 날라 가버린 "33조원"의 국익을 벌충하는데 조금이나마 이바지해주길 바란다.

PRESENTED BY 일동제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