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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3월 20일 13시 46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5월 20일 14시 12분 KST

급작스럽게 찾아온 승리의 날

최근 여론 조사에 따르면 미국민의 대다수(72%)는 이미 동성혼 법제화를 피할 수 없는 미래로 받아들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심지어 스스로 동성혼에 반대하는 입장이라고 밝힌 사람들의 59% 역시 "피할 수 없을 것이다"고 답했다는 사실이다.

Getty Images/Flickr RF

동성혼의 실질적 승리와 게이-되기의 어려움 <3> 급작스럽게 찾아온 승리의 날

이제 시간을 빨리 돌려 지난 해 미국 연방대법원이 판결한 결혼보호법DOMA 위헌 판결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에 대해 간단하게 이야기해보자. 대법원은 "일단 주에서 인정하는 결혼을 했다면, 그리고 그 주가 동성혼을 인정하고 있다면 연방 차원에서도 이 결혼은 인정되어야 한다"는 결정은 충분히 전향적이지만, 반대로 말해 특정 주정부가 스스로 동성혼을 법제화하지 않는 경우 연방이 이를 즉각 강제하지는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 이 결정에 여러모로 제한적인 측면이 존재한다는 점에도 불구하고, 여기서는 이 판결이 실질적인 LGBT 인권 운동의 정점을 찍었다는 관점을 전재로 그 근거에 관해 이야기를 전개해보고자 한다.

우선 미국의 인구는 대륙 전체에 균일하게 분포하고 있지 않다. 이 글을 쓰는 현재 동성혼을 법제화한 주는 16개의 주와 워싱턴 DC이지만, 미국 인구로 보면 이미 30% 이상이 이 주들 안에서 거주하고 있다. 또한 게이들이란 원래 도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생각해보시라. 님에게 선택권이 있다면, 자기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비하하기를 일삼는 종교적인 가족들과 친구들 곁에서 평생을 살고 싶겠는가? 많은 수의 이성애자들이 그러하듯 게이들은 성인이 되면서 자기가 태어나 자란 동네를 떠나게 되는데, 많은 경우 다른 게이들과 접촉하고 공동체를 꾸리기 용이한 도시나 그 주변을 선택한다. 미국 전체의 LGBT인구는, 일반적인 연구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은 3.5% 정도지만, 대도시에 거주하는 비율은 이에 비해 훨씬 높다. 따라서 실제로 뉴욕(4.5%)과 LA(5.6%), 샌프란시스코(15.4%), 보스턴(12.3%), 시애틀(12.9%), 시카고(5.7%), 워싱턴 DC (8.1%)를 포함한 상당수의 '게이' 대도시들이 동성혼을 합법화한 이 시점에서 실질적으로 동성혼에 대한 장벽은 거의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DOMA 판결 이후 연방지방법원은 자기가 사는 동네에서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아도 옆의 다른 주에 가서 하고 오면 인정해주도록 강제하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으며, 아니면 '결혼'은 아니지만 이름만 빼면 법적 권리는 거의 유사한 시민 결합을 통해 실리를 취할 수도 있다. 입양 역시 상당수의 주들에서 가능하다. 물론 동성 부부로서 입양하는 것은 아직 쉽지 않지만, 이미 많은 주에서는 싱글의 입양이 가능하기 때문에 파트너 중 한 쪽의 이름으로 입양하거나 하는 꼼수를 부리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연방 차원의 세금 관련 문제도 해결됐으며, 외국인과 결혼해서 배우자에게 미국 영주권을 주는 것도 가능해졌다. 또 이번 판결로 인해 더 이상 보수적인 주들이 동성혼을 명문으로 금지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남은 것은 저들을 계도해서 법제화시키는 시간 싸움이 남았을 뿐이다.

덧붙여 최근 여론 조사에 따르면 미국민의 대다수(72%)는 이미 동성혼 법제화를 피할 수 없는 미래로 받아들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심지어 스스로 동성혼에 반대하는 입장이라고 밝힌 사람들의 59% 역시 "피할 수 없을 것이다"고 답했다는 사실이다. 어차피 이렇게 큰 나라에서 전국민이 문명인이 되길 기대하기는 무리인 법. 이 정도면 이미 말로 해서 알아들을 만한 사람들은 대충 다 알아들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실제로 타임지는 지난 3월, DOMA 판결이 나오기 몇 달 이전에 이미, "GAY MARRIAGE ALREADY WON."이라는 문구와 키스하는 동성 커플 사진을 박아 넣은 표지로 동성애자 진영의 승리를 선언하고 분석했다.

이렇게 되자, DOMA 위헌 판결에서 약간 몸을 사리는 것처럼 보였던 미국연방법원은 몇 달도 지나기 전에 더 강력하게 동성혼을 보호하는 자세를 취하게 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DOMA 판결의 의의는 "특정 주정부에게 허가한 유효한 혼인을 한 동성 부부에게는 연방 차원에서 부부로서의 권리가 인정된다"는 것과, 미국인과 외국인의 결혼문제, 부부 세금 문제, 연방공무원의 복리 문제 등에 모두 적용된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여기에는 보수적인 주들의 저항이 잇따랐는데, 특히 법으로 동성혼을 성립과 인정을 금지한 경우는 더욱 심했다. 이런 저항을 박살낸 최초의 판결은 놀랍게도 몰몬의 성지인 유타주에서 터졌다. 연방법원은 동성혼은 금지한 유타주의 주헌법을 연방헌법 위헌으로 판결했고, 이 판결을 기다리고 있던 게이 커플들은 자기들의 사진을 트위터에 실시간으로 올리며 결혼허가서를 받아 나왔다. 뒤를 이어 오클라호마와 버지니아, 그리고 무려 텍사스주의 동성혼 금지 법안들이 순서대로 작살나면서 보수적인 남부주들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또 켄터키주의 경우에는 DOMA 관련 결정에도 불구하고 타주에서 이루어진 동성혼을 혼인으로 인정하는 걸 거부했는데, 이 역시 위헌 판결과 함께 24시간 이내에 조치하라는 집행명령을 받았다 (이후 약 21일 간의 유예기간으로 수정되었다). 켄터키주는 처음에 당연히 이를 거부하고자 했으나 며칠 간의 법률적 검토 끝에 법무장관인 잭 콘웨이Jack Conway가 나서 이 법안은 명백히 차별적이기 때문에 소송을 지속하는 것은 세금낭비일 뿐임을 인정하고 연방법원에 항소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자기 부인 이야기를 꺼내면서 막판에 울먹이기까지 하는 콘웨이씨의 모습은 전국적인 웃음거리가 됐다).

분위기가 이렇게 역전된 건 언제였을까? 가만히 뒤돌아보면 "이길 수도 있다"는 기대가 "우리가 이긴다"는 확신으로 변화한 건 2010년 캘리포니아의 Prop 8 소송 과정을 지켜 보면서였던 듯하다. 사실 2008년 캘리포니아가 주민 투표를 발의해서 동성혼을 금지하고자 시도했을 때, 그리고 거기에 반발한 LGBT 측이 위헌소송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를 보면서 "아직 때가 이르다," "괜히 이러다 실패하면 장기적으로 일을 더 지연시킬 뿐이다"고 걱정한 이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2003년 엔론사Enron의 비리 사건에서 재무본부장이었던 앤드류 페스토Andrew Fastow를 변호한 것로 유명한 데이비드 보이스David Boies 변호사가 동성혼 진영에 참가하면서 "생각만큼 나쁜 상황은 아닌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보이스는 엔론사 변호 이외에도 냅스터의 저작권 관련 소송이나 미국 정부 대 IBM의 소송 같은 유명 소송에 참가했으며, 부시와 고어가 선거 결과를 놓고 대립한 상황에서는 고어 편에서 변론하기도 했다. 그 자신은 민주당 지지자이며 단순하게 '보수적 인사가 동성혼을 지지했다'고 해석하기에는 적절치 않다. Prop 8와 관련된 소송에서 어느 편이 더 유리한지를 정확하게 읽고 참가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덧붙여 Prop 8 변론팀에는 이미 부시 대 고어 소송에서 보이스에 맞서 부시를 대변했던 시어도어 올슨Theodore Olson이 참가하고 있었다. 이전에 적으로 맞섰던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동성애 지지 편에 섰다는 점이 언론의 주목을 끌었다.

거기다 막상 소송이 진행되어 증인들이 법정에 소환되자 상황은 전혀 달라졌다. 동성혼을 반대하기 위해 나온 증인들은 줄줄이 누가 들어도 말도 안되는 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고, 반대로 수 십 년 간 이 날만을 기다려온 각종 사회과학/정신과학/LGBT 역사 연구가들은 철저하게 사실과 연구에 기반한 증거들을 들이대며 동성결혼이 사회 전체에 위해를 끼치지 않으며, 자녀 양육에도 문제가 없고, 인권의 측면에서도 인정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점을 일관적으로 진술했다. 일방적인 재판은 위헌 판결로 이어졌으며 얼마 전 DOMA 판결과 함께 최종 결정으로 인정된 것이다.

다시 말해, 2014년 현재 동성혼은 이미 미국 내에서 '대세'이며, 대다수의 게이들은 이미 동성혼이 가능한 환경 하에 살고 있으며, 아무리 보수적인 주라도 이 흐름을 오랫동안 거스르는 것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몇 년 간 미국에서 거듭된 동성혼을 둘러싼 법정 논쟁 장면들은 이 상황을 확인시켜주는 증거들이었다. (계속)

*이 글은 지난해 독립잡지 'DOMINO' 4호에 실렸던 글을 편집하고 업데이트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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