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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2월 26일 10시 31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2월 26일 14시 12분 KST

[바다생물 이야기] '게의 왕'은 게가 아니었다. 킹크랩

바다생물 이야기 18. '게의 왕'은 게가 아니었다. 킹크랩

우리가 '왕게' 또는 '게의 왕'이라는 뜻의 이름으로 부르는 킹크랩 때문에 '게 왕국'의 게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을지 모르겠다. 일반 게와 함께 킹크랩을 보여주면서 이게 킹크랩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와! 딱 이름대로네"라고 하기 쉽다. 킹크랩의 외양은 게와 다르지 않고 덩치는 다른 게들 보다 훨씬 크다보니 당연한 반응이다.

그런데 '킹크랩은 게가 아니다'라고 말해주고 킹크랩과 게를 같이 보여주면, 많은 사람들이 킹크랩은 다리가 8개, 게는 다리가 10개로 다르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왜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을까?" 할 수 있지만,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많고 특히 선입관이 작동하면 사실을 보는 눈이 없어진다. 그러나 분명한 진실을 알고 있거나 비판적으로 사물을 볼 경우에는, 비교적 쉽게 사실을 판단할 수 있다. 알고 보니 '게의 왕'은 게가 아니었다.

만일 어떤 왕국에서 왕의 자식이라는 혈통만을 보고 도저히 나라를 통치할 능력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왕으로 모셨는데, 알고 보니 다른 나라 사람이란 것이 밝혀졌다면 백성들의 심정은 어떨까? 게가 아닌 킹크랩을 '게의 왕'이라고 부르면 그것을 듣는 게의 심정이 딱 그런 것 아닐까? 그나마 킹크랩은 덩치도 크고 육질의 맛도 뛰어나 이름값을 하고, 어부들에게도 큰 경제적 이익을 주는 바다생물이어서 앞에 예시한 무능한 왕보다는 훨씬 나을 듯싶다.

반면에 대게는 진짜 게다. 다리도 물론 10개다. 그러니 진짜 혈통의 게들 중에서 왕을 뽑는다면 대게가 왕이 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킹크랩에 비해 다리가 가늘고 몸통도 약간 왜소하지만 그래도 진짜 게니까 말이다. 그러고 보면 킹크랩과 대게는 서로 위치와 이름이 바뀌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어울리지 않은 위치에 있는 왕은 모두에게 혼란만 주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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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좋게 야간에 만난 킹크랩 ⓒ장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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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가 10개인 대게, 바다에서 찍은 사진이 아니고 죽은 것이다. ⓒ장재연

그런데 킹크랩 이외에도 게가 아니면서도 게(Crab)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바다생물들이 또 있다. 사람들이 게와 비슷하게 생겼으면 전부 게로 불렀기 때문이다. 겉모양이 비슷하다고 다 같은 것은 결코 아닌데,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너무 쉽게 단정해버리는 인간의 약점이 게 이름에도 남아 있는 것 같다. 대표적으로는 허밋 크랩(Hermit Crab)과 포슬린 크랩(Porcelain Crab)이 있다. 킹크랩은 분류학상 게보다 허밋 크랩에 더 가깝다.

허밋 크랩은 '은둔자 게', '숨어사는 게'라는 뜻이다. 주로 소라 빈 껍질을 집 삼아 발만 내놓고 걸으며 살아가기 때문에 그런 이름으로 불린다. 그래서 우리말 이름은 소라게 또는 집게다. 이런 방식으로 살다 보니 허밋 크랩은 다른 게와 달리 딱딱한 등딱지나 아랫배가 없이 연약한 몸통을 갖고 있다. 소라게 껍질이 보호 역할을 하는데, 몸이 커지면 자기 몸에 맞는 더 큰 소라 껍질을 찾아 주거지를 옮긴다. 일부 허밋 크랩은 소라껍질을 보호용으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소라 껍질위의 말미잘과 공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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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네모네 허밋 크랩(Anemone Hermit Crab) ⓒ장재연

딱딱한 껍질이 없다는 것보다도 허밋 크랩이 해부학적으로 특별한 이유는 좌우 비대칭이라는 점이다. 오른쪽이 큰 종류도 있고 왼쪽이 큰 종류도 있어 오른손 허밋 크랩(Right-Handed Hermit Crab)과 왼손 허밋 크랩(Left-Handed Hermit Crab)으로 나누기도 한다. 허밋 크랩은 대부분 야행성이어서 야간 다이빙을 해야 쉽게 볼 수 있다. 야간 다이빙 때 바닥에서 돌 같은 것이 슬슬 움직이는 것을 보면 허밋 크랩인 경우가 많다. 드물게는 낮에 먹이 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아래 사진은 낮에 발견해서 촬영한 것인데, 허밋 크랩이 물고기를 사냥한 것은 아닌 것 같고 죽은 것을 먹는 장면으로 보인다. 게는 새우와 함께 죽은 바다생물들을 처리하는, 해양생태계 먹이사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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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스포티드 허밋 크랩(White-Spotted Hermit Crab) ⓒ장재연

포슬린 크랩도 외양은 영락없이 게와 똑같지만 킹크랩처럼 외부로 보이는 다리가 8개여서 진짜 게와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집게발은 상대적으로 매우 큰데 먹이를 잡는데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영역다툼에 사용한다고 한다. 포슬린 크랩은 플랑크톤이나 작은 입자의 먹이를 입 근처에 있는 털 같은 것을 이용해서 먹기 때문에 다리를 쓸 일이 없다. 보이지 않는 다리 2쌍은 퇴화되어서 걸을 때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게들이 네 쌍의 다리로 걷는 것에 비해 세 쌍의 다리로 걷는다.

포슬린 크랩은 다리가 잘 부러진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磁器)처럼 잘 깨진다고 이름도 그렇게 붙여졌다. 실제로 몸통도 매끈거려서 마치 자기로 빚은 게처럼 보이기도 한다. 크기는 1-2cm로 앙증맞고, 몸통은 납작하면서 매끈거리고 예쁜 색깔의 무늬나 점들이 촘촘히 박혀있고 사진도 예쁘게 나온다. 포슬린 크랩은 말미잘에 공생하면서 살아가는데, 말미잘에는 새우나 아네모네 피쉬 등 다양한 생물들이 공생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어울린 모습도 보기 좋고 재미있는 사진 소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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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드 포슬린 크랩(Spotted Porcelain Crab) ⓒ장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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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슬린 크랩과 아네모네 피쉬 ⓒ장재연

포슬린 크랩은 체구도 작고 집게도 먹이 사냥 하는데 사용하지 못하는데, 말미잘 등과 공생하면서 살다보니 그런 기능들이 모두 퇴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신 주변 환경과 비슷한 모양을 취하게 되다 보니, 다양한 색깔과 무늬의 포슬린 크랩들이 있다.

킹크랩, 허밋 크랩, 포슬린 크랩들은 다리가 10개가 아니어서 게, 새우, 랍스터 등 다리가 10개인 갑각류들이 속한 십각목(十脚目)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렇지는 않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다리 두 개가 퇴화해서 등딱지 안에 숨겨져 있어, 분류학적으로는 십각목에 속한다. 그러니까 킹크랩, 허밋 크랩, 포슬린 크랩은 새우나 랍스터처럼 진짜 게는 아니지만 먼 친척뻘인 것이다. 진짜와 아닌 것을 구분할 줄 아는 것은 이래저래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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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 코럴 포슬린 크랩(Soft Coral Porcelain Crab) ⓒ장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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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면산호에 사는 포슬린 크랩 ⓒ장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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