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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3월 27일 13시 09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5월 27일 14시 12분 KST

그게 동성애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3월 26일자 연합뉴스의 '도심 아파트서 마약파티한 동성애자들 무더기 입건'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필두로 해당 기사는 거의 모든 언론사의 메인 페이지 한 켠을 한동안 차지했다. 제목과 내용이 모두 천편일률적이었다. 한국의 언론사들에게 중요한 것은 마약사범들을 현장에서 붙잡은 팩트보다 그들이 동성애자들이라는 사실이었나보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은 과연 그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사건의 본질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연합뉴스

3월 26일자 연합뉴스의 '도심 아파트서 마약파티한 동성애자들 무더기 입건'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필두로 해당 기사는 거의 모든 언론사의 메인 페이지 한 켠을 한동안 차지했다. 제목과 내용이 모두 천편일률적이었다. 한국의 언론사들에게 중요한 것은 마약사범들을 현장에서 붙잡은 팩트보다 그들이 동성애자들이라는 사실이었나보다. 기사의 내용으로 유추해보건데 그들은 이태원의 한 게이클럽에서 만나 마약에 대한 정보를 공유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들 중 한 명의 집으로 이동해 마약을 투약하고 춤을 추며 마약파티를 벌였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은 과연 그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사건의 본질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불현 듯 약 4년 전 영국에서 발생한 비슷한 사건이 떠올랐다.

2009년 10월 10일, 아일랜드 출신의 인기 밴드 보이존(boyzone)의 전 멤버였던 스티븐 게이틀리(Stephen Gately)의 죽음(당시 33세)은 영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 음악 팬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게이틀리는 보이존 멤버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1999년 스스로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공개함으로써 일부 보수 언론과 타블로이드 신문에 자주 등장하는 이슈 메이커가 되었다. 그는 동성애자들의 인권 신장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했으며, 2006년에는 그의 동성애 파트너인 앤드류 코울즈(Andrew Cowles)와 함께 동성애 권리조합에 가입함으로써 앨튼 존(Elton John), 데이비드 퍼니쉬(David Furnish) 커플과 더불어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동성애자 인권 운동가가 되었다.

다음날인 2009년 10월 11일,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 메일(Daily Mail)의 칼럼리스트 잔 모이어(Jan Moir)는 "A strange, lonely and troubling death..."라는 칼럼을 통해 이미 사자(死者)가 된 게이틀리를 다시 한번 논란의 중심으로 끌어왔다. 모이어의 칼럼은 게이틀리의 죽음을 동성애와 연관시키면서, 33세의 매력적인 젊은이가 동성애라는 너저분한(sleazy) 쾌락주의적(hedonistic) 삶에 빠진 이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는 요지의 결론을 내렸다. 이 칼럼은 데일리 메일의 인터넷판에서 약 일주일 동안 최다 검색 기사로 기록되었으며, 1600여개의 댓글이 달릴만큼 동성애 관련 논쟁을 뜨겁게 달구었다.

논란이 되었던 데일리 메일 잔 모이어의 칼럼

게이틀리와 연인 관계였던 코울즈는 곧바로 데일리 메일과 모이어에 항의의 뜻을 밝히고, 공식적인 사과와 함께 해당 기사를 삭제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데일리 메일은 언론의 자유 보장을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코울즈는 2만 5천명(역대 최다 언론중재 신청인 기록으로 남아 있음)의 동성애 인권 지지자들과 함께 PCC(Press Complaint Commission, 영국의 언론중재위원회)에 중재 요청을 신청했고, 그에 대한 판결이 2010년 2월 19일에 결정되어 공식적으로 발표되었다. PCC는 판결문을 통해 "코울즈와 2만 5천명의 동성애 인권 지지자들이 왜 분노하고 있는지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만, 보다 넓은 차원의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공식적으로는 언론중재 요청을 기각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PCC는 또한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사회가 다양한 구성원으로 이루어진다고 가정할 때, 때로는 언론의 보도가 일부 단체나 사람들의 입맛에 맞지 않거나 비위에 거슬릴 수도 있으며, 그럴 때마다 언론에 제재를 가하는 것은 자칫 민주주의를 위축시킬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고 밝히면서 언론의 자유에 무게를 둔 판결임을 재차 강조했다.

그러나 이러한 PCC의 판결은 오히려 더욱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일부 매체는 PCC의 존재 이유에 대해 재검토해 보아야 할 시점이라며, PCC의 결정을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은 시중에 떠돌고 있는 TPCC(Toothless PCC)라는 용어를 이용해 PCC의 결정이 매우 용기있는(?) 행동이라고 비꼬았다. 가디언의 칼럼리스트 개리 넌(Gary Nunn)은 PCC의 판결이 언론을 시궁창(gutter)에 방치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주장하면서, "탄광을 소유한 회사가 해당 노동자들을 안전하지도 청결하지도 않은 작업장에서 일하게 한다고 해도 이를 방치해야 하는가?"라는 반문과 함께 "모든 영역에는 공공이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준(standard)이 존재하며, PCC 역시 이러한 기준에 맞추어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단체에서도 PCC의 결정을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PCC의 존재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을 내어 놓았다. 시민 운동가이자 동성애 인권 운동가인 피터 태첼(Peter Tatchell)은 "언론 권력을 감시할 수 있는 보다 힘있는 법정기관이 PCC를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성적 취향을 비방하는 행위와 사실과 다른 내용을 허위(게이틀리의 최종 사인은 '폐부종에 의한 자연사'였지만, 모이어는 게이틀리의 죽음이 동성애 행위와 관련이 있는 것처럼 칼럼 작성)로 유포한 행위 등 명백히 PCC 권고 사항을 벗어난 보도에 대해서조차 위법성을 인정하지 않는 무기력한 PCC는 해체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라며 PCC를 비난했다.

당시 PCC 판결의 핵심 쟁점은 '언론의 자유'와 '사회적 소수자들의 인권 보장'이 상충하는 상황에서 언론이 어떤 기준에 맞추어 기사를 작성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PCC의 Editor's Code of Practice(편집자 권고 사항) 12번 i항에 "언론은 반드시 개인의 인종, 피부색, 종교, 성별, 성적 성향 혹은 어떠한 신체적 혹은 정신적 질병이나 장애와 관련된 편견을 갖게 하거나 이에 대한 경멸적인 표현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PCC의 결정을 계기로 그동안 영국 언론에서 자주 문제시 되어왔던 사회적 소수자 계급 - 소수 종교(이슬람, 불교, 힌두교 등) 및 인종적 소수자들(인도계, 파키스탄계, 중국계,흑인 등) - 에 대한 편파적인 보도에 대해서도 언론의 자유를 이유로 방치하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2014년의 한국 사회와 언론에 당시의 논의들을 적용해보고 싶다. 새로운 사회적 소수 집단이 계속해서 생성되고, 이들에 대한 권리 보호가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는 요즈음, 언론의 자유와 사회적 소수자 인권의 충돌 양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며 이에 따라 이를 중재하는 자율적 중재 기구의 역할에 대해서도 사회적 논의가 확장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한 가지 명확한 사실은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찬 언론기사를 언론의 자유를 이유로 방치한다면 결국 언론의 불편부당성과 공정성에 대한 독자들의 신뢰는 추락할 것이다. 더이상 추락할 신뢰가 남았냐고 물어본다면 할 말은 없다만... 마지막으로 동성애자들을 마치 불법을 자행하는 집단이나 성적으로 타락한 사람들로 정형화하는 한국의 언론에 말하고 싶다. "너나 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