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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4월 19일 07시 31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4월 20일 14시 12분 KST

경쟁하며 살 수 있을까 | 비정규직 차별의 경제학

Gettyimage/이매진스

연말이 다가오자 회사는 직원들에게 간단한 선물을 합니다. 정규직 안영이, 장석기, 한석율은 5만원 짜리 스팸햄 세트를 받고 퇴근을 합니다. 비정규직 장그래는 만원 정도하는 식용유 세트를 들고 회사 문을 쓸쓸하게 나섭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차이도 큰 문제이지만, 기업은 왜 연말 선물마저도 비정규직에게 4만원 정도를 아끼려는 것입니까. 인간적인 경영자라면 비정규직 직원들에게 더 좋은 선물을 주며 미안한 마음을 표시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부산의 D 조선업체는 본사 직원과 협력사 직원에 따라 통근버스의 좌석을 분리했습니다. 자동차 회사 G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름표 색깔을 달리 했습니다. 강남 S병원은 식권 색깔을 달리하였습니다. 자동차 회사 H의 지방 공장은 야간조 간식을 정규직에게만 주었습니다. 항의가 일자, 비정규직에게 제공하기 시작했는데 그마저도 다른 종류의 간식입니다. 안산의 H 업체는 회사창립일을 맞아 정규직에게만 특식을 제공했습니다.

임금 격차를 줄이는 시장의 힘

시장경제는 직업별로 상이한 임금과 노동 조건을 제공합니다. 노가다라 불리는 건설 현장 일용근로자의 일당은 수수료 떼고 9만원입니다. 황교안 총리나 안대희 전 대법관은 변호사 시절 억대의 고액수수료를 받았습니다. 이런 점을 지적하며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본질적으로 차별적이라고 비판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복잡한 존재이듯, 인간의 집합인 시장경제도 복잡한 존재입니다. 시장경제는 차별을 야기하기도 하지만, 임금과 노동조건의 차이를 줄이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임금은 우리가 선택한 직업뿐만 아니라, 대안적으로 선택할 수 있었던 외부 대안에 의해 결정됩니다. 달리 표현하면 다양한 직업군이 더 능력있는 노동자를 고용하기 위해 경쟁을 펼치는 것입니다. 몇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교회 목사들의 일은 크게 달라진 게 없고, 딱히 생산성이 증가하지도 않았습니다. 순전히 자기의 생산성대로 임금을 받는다면, 목사의 임금 상승폭은 다른 직업과 비교할 때 아주 낮아야 합니다. 그러나 목사의 평균 임금도 시장의 전체 추세에 맞추어 상승했습니다. 그 이유는 다른 직업군이 목사가 될 수 있는 능력의 사람들을 두고 경쟁을 펼쳤기 때문입니다. 이 예가 암시하듯, 시장경제는 전체 노동자의 임금 분포를 평균 생산성 중심으로 압축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게다가 우리에게 임금을 제공하는 기업, 정부, 학교는 임금 차이를 추가적으로 대폭 축소시킵니다. 같은 조직에서도 사람들이 하는 일은 다양하고 조직에 기여하는 바도 큰 차이를 보입니다. 그러나 조직은 거의 비슷한 수준의 임금을 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경제적 불평등을 거부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임금 차이가 생기면 내부 갈등이 벌어질 것입니다. 즉, 임금의 차이를 제한하는 이유는 바로 내부 갈등으로 인해 조직의 생산성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조직 간 경쟁은 임금 차이를 더욱 축소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미국의 스포츠 시장은 오랫동안 인종적 장벽을 경험했지만, 경쟁이 치열해지자 결국 그 차별이 현저히 줄었습니다. 여성에 대한 차별도 경쟁적인 산업일수록 빠르게 감소했습니다. 미국의 은행은 남성과 여성의 임금 격차가 두드러진 대표적 산업이었지만, 규제완화에 따른 은행간 경쟁이 심화되자 그 격차가 대폭 줄었고, 여성의 경영진 진출도 크게 증가했습니다.

인간은 부자가 되려고 한다기보다, 남보다 더 부자가 되려고 한다"

시장 경쟁을 압도하는 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차이, 사용자들의 비인간적 차별은 시장의 경쟁 메커니즘이 잘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기업과 고용주의 힘이 시장의 경쟁을 압도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지배력을 지닌 고용주가 선택하는 인센티브 제공 방식은 바로 지위의 격차를 만드는 것입니다. 동기 부여 방식이 꼭 금전적인 보상일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사회적 지위 상승을 위해서도 열심히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부자가 되려고 한다기보다, 남보다 더 부자가 되려고 한다" 존 슈트어트 밀의 통찰은 다양한 연구로 입증되고 있습니다. 다트머스 대학의 경제학자 루트머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이웃 소득이 높을수록 행복도가 감소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워릭 대학교 심리학자 브라운 교수 연구팀은 연봉 차이가 노동자들의 행복도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연구하였습니다. 16,000명의 영국 노동자들을 바탕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노동자들의 행복 및 직업 만족도는 절대적인 임금 수준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자신이 속한 조직 내에서 임금 서열순위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고용주는 수직적 구조를 만들고, 지위 상승의 인센티브를 주기 위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과 근무 여건의 차이를 두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비정규직에 대한 과도한 차별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 조직관리의 전략일 수 있습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차이를 늘리고, 비인간적 차별을 서슴지 않는 이유는 정규직의 임금을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갑, 좋아할 일이 아니다

저는 의심합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차이를 늘리고, 비인간적 차별을 서슴지 않는 이유는 정규직의 임금을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사실 경제학의 계약이론이 담고 있는 교과서적인 메시지입니다. 계약이론은 조직 내에서 주인(고용주)이 대리인(노동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문제를 연구합니다. 그 핵심은 주인이 대리인의 협상력을 줄이기 위해 계약 형태를 수직적으로 차별화하고, 하층부와의 계약을 과도하게 하방 왜곡시킨다는 것입니다.

비유를 하자면, 고용주가 두 명의 노동자와 계약을 맺는 상황을 생각해 봅니다. 고용주는 노동자 을의 업무와 임금을 과도하게 차별적이고 비효율적인 수준에서 계약합니다. 이는 을로부터 이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사실 비효율적인 계약으로 인해 고용주도 손실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를 통해 노동자 갑과의 계약을 유리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갑의 외부 대안을 왜곡시킴으로써 갑의 협상력을 줄이고, 갑에게서 더 많은 이득을 얻는 것입니다.

을이 차별받는 상황을 갑이 좋아해서도 안 되고 지켜보고만 있어서도 안 될 이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위의 격차에서 오는 만족감을 누리고, 수직적 구조에서는 차별하는 것을 통해서도 만족감을 누립니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를 출간한 사회학자 오찬호 박사에 따르면, 대학서열에 중독된 이들은 아직 경험하지 않은 직장 내 갑을관계와 비정규직 차별을 찬성한다고 합니다. 아! 우리는 비참한 사람들입니다. 누가 우리를 건져줄까요.

공정한 시장경쟁

과도한 임금 차이와 차별은 시장경제가 낳은 문제라기 보다, 시장의 실패가 낳은 문제입니다. 교회 목사가 지나치게 높은 임금을 받는다면, 이는 경쟁의 힘이 아니라 다른 권력이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황교안, 안대희 같은 이들이 억대의 수임료를 챙길 수 있었던 것은 전관예우라는 권력이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두 시장의 경쟁이 공정하게 작동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입니다. 시장실패입니다.

경제학자들은 시장과 시장실패를 엄격하게 구분해서 사용합니다. 반면 진보적 지식인들은 둘을 마치 하나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대중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시장은 실패할 수 밖에 없다고 믿는 이들은 시장과 시장실패를 구분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판만 할 수 없는 경제학자들은 문제의 처방을 내리기 위해서 둘을 명확하게 구분합니다.

경제학자들의 운명은 시장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경제학자들의 사명은 공정한 시장 경쟁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전인 경제학 교과서에 따르면, 공정한 경쟁은 소비자의 친구이고, 노동자의 친구입니다. 경쟁을 회피하고 싶은 이들은 바로 기업입니다. 공정한 경쟁이 펼쳐진다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이동이 자유롭게 가능해야 합니다. 이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해소할 것이고, 노동자들의 연대를 가져올 것입니다.

경제학 교과서대로 자신있게 가르칠 수 있는 날이 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