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2015년 12월 02일 07시 16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2월 02일 14시 12분 KST

경제학자의 핫딜 후기

gettyimagesbank

해리와 시드 형제는 함께 옷가게를 운영합니다. 손님이 마음에 드는 옷을 입고서 가격을 묻습니다. 시드는 청각이 좋지 않다고 말하며, 가게 저편에 있는 해리에게 옷 가격을 물어봅니다. 해리는 42불이라고 크게 답하지만, 시드는 잘 듣지 못했는지 다시 묻습니다. 해리는 42불이라고 더 큰 소리로 대답합니다. 시드는 손님에게 22불이라고 말합니다. 손님은 얼른 22불을 지불하고, 매장을 떠납니다. 사실 시드의 청각은 문제가 없습니다. 구매를 유도한 상술입니다. 로버트 치알드니가 쓴 "설득의 심리학"에서 소개된 이야기입니다.

연말 쇼핑시즌이 다가옵니다. 백화점과 쇼핑몰은 연말 할인 행사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최대 80% 할인! 할인 전 10만원 하던 청바지가 2만원에 팔리고 있습니다. 이런 기회는 자주 있지 않습니다. 얼른 구매해야 합니다. 잠깐! 최초 소비자 가격을 일부러 비싸게 책정하고, 할인가를 제시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 가격이 원래부터 2만원이었고, 할인행사 직전에 가격을 10만원으로 인상했다가 다시 2만원으로 재조정한 것이라면?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는 MIT의 마케팅 전공 학생들을 대상으로 다음과 같은 실험을 하였습니다. 한 병의 와인을 보여줍니다. 주민번호 마지막 두 자리를 쓰게 한 후, 얼마까지 지불할 용의가 있는지 물어 봅니다. 흥미롭게도 더 높은 번호를 지닌 사람들이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겠다고 합니다. 주민번호 숫자와 최대 지불의사가 상관관계를 가져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주민번호가 지불의사에 영향을 주었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다들 그렇지 않다고 대답합니다. 저도 수업에서 K-pop 가수들의 콘서트 티켓으로 실험을 하는데, 언제나 비슷한 결과를 얻습니다.

행동경제학은 이것을 닻내림 효과 (Anchoring Effect) 라 부릅니다. 초기에 주어진 기준점이 이후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숫자도 기준점 역할을 하여 우리의 지불의사에 영향을 미칩니다. 왜 우리가 할인가격을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10만원이라는 할인 전 가격은 기준점 역할을 하고, 2만원이라는 할인 가격을 매력적으로 느끼게 해줍니다. 많은 매장에서 비싼 제품이 입구에 전시되어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패드 신제품을 소개할 때, $999 라는 숫자를 스크린에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999이 아니라, $499에 판매할 수 있게 되어서 너무나 기쁩니다."

전통 경제학은 소비자가 합리적이고 자신의 지불의사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가정합니다. 실상 우리는 그렇게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반면 기업들은 소비자의 비합리성을 잘 이해하고 있고, 그것을 이용해서 더 큰 이윤을 얻습니다. 기업들은 가격 책정만 아니라, 다양한 마케팅 전략을 통해 우리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특히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인간의 욕망을 제일 잘 활용합니다. 남들은 다 가지고 있다, 남들에게 잘 보일 수 있다는 기준점을 제시하면, 구매 유혹을 뿌리치기 쉽지 않습니다.

합리적인 소비 의식을 키우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습니다. 싼 가격을 찾기 위해서 다들 애쓰지 않습니까. 그 노력의 반의 반만 들여서라도 정말 필요한 물건인지, 자신이 지불할 수 있는 가격인지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커피 한 잔에 오천원, 시계나 가방 하나에 수십만원을 지불할 용의가 있는지, 아니면 나의 구매 결정은 마케팅 전략에 의해 영향을 받은 것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것만로도 부족합니다. 우리는 확증 편향 (confirmation bias) 이라는 비합리성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이 믿고 생각한 것을 뒷받침하는 증거들만 찾고 싶어합니다. 나름대로 합리적인 구매 이유를 말하는 것은 노력 없이도 가능합니다. 그래서 배우자, 연인, 친구들에게 의견을 물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얼마 전, 아내와 쇼핑몰에 갔습니다. $2000이던 식탁이 $1000이라며, 당장 사자고 합니다. 유학생 시절 선배네 집에서 받은 식탁을 아직까지 사용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합니다. "여보, 저거 다 상술이거든. 내가 경제학자이고, 이 분야 쫌 전문가야." 옆에 있는 스포츠 매장에 들렸습니다. $300 짜리 테니스 라켓이 $80에 팔리고 있기에 얼른 샀습니다. 완전 대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