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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28일 10시 20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0월 28일 14시 12분 KST

왜 보수와 진보의 틀에 갇히지 않는가 | 경제학적 사고방식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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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 철학자 마이클 샌델이 존 롤스의 차등의 원칙을 강연할 때, 몇 명의 학생들이 반론을 제기합니다. "약자에게 최대의 이익이 되게 하는 원칙을 적용하면, 열심히 일할 인센티브가 사라집니다." 일군의 학생들이 박수를 치며 동의를 표시합니다. 샌델은 실력주의(meritocracy)를 지지하는 것이냐고 학생에게 묻고, 반론을 펼칩니다. "열심히 일하려는 노력과 근무 태도조차도 자의적인 환경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지 않느냐"고 지적하며, 집안에서 첫째로 태어난 사람들에게 손을 들어 보라고 합니다. 강의실을 가득 메운 하버드 학생들의 절대 다수가 손을 듭니다. 모두가 놀라는 순간, 샌델의 승리로 토론은 끝이 납니다.

경제학적 사고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샌델에게 문제를 제기한 학생처럼 인센티브와 효율성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경제학적 사고방식이란 다음 두 가지를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첫째, 샌델과 학생의 논쟁처럼 이분법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실력주의와 차등의 원칙이 경쟁할 때, '흙과 백', '모 아니면 도'라는 식의 결판을 내지 않습니다. 실력주의와 차등의 원칙 사이에서 연속적으로 존재 가능한 정책 대안들을 찾아냅니다. 완벽하게 실력주의일 필요도 없고, 완벽하게 차등의 원칙일 필요도 없습니다. 어떤 식으로 조합 가능한지를 살펴 봅니다.

둘째, 선형적으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정책 대안이 실력주의에서 차등의 원칙으로 가까워질 때, 학생이 염려한 것처럼, 경제학자는 인센티브 손실로 인한 비용을 계산합니다. 동시에 샌델의 설명이 암시하듯, 실력주의 사회가 가져올 양극화된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 노력과 근무태도 같은 인센티브 손실이 경제 하층부에서 커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합니다. 이는 차등의 원칙이 가져오는 편익입니다. 결국 비용과 편익을 고려한다는 것은 실력주의와 차등의 원칙 사이에서 비선형 모양의 관계를 찾는 것입니다. 경제성장 및 번영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할 때조차도, 극단적인 실력주의와 극단적인 차등의 원칙은 최적이 될 수 없습니다. 경제학자는 그 둘 사이 어디에 존재하는 최적을 찾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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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미첼이라는 자유시장 경제학자는 "스웨덴이 미국처럼 변화할 때, 왜 오바마는 미국을 스웨덴처럼 만드는가?"라는 칼럼을 써서, 많은 시장주의자들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대니얼 미첼은 경제학자로서 자격 미달입니다. 그의 사고방식은 선형에 갇혀 있기에, 경제학 원론부터 다시 공부해야 합니다. 그는 정부의 크기가 작아질수록, 경제가 더욱 번영한다고 생각합니다. 스웨덴은 미국처럼 정부의 크기를 줄이고 있고, 미국은 정부의 크기를 더더욱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둘 사이의 관계는 비선형입니다. 따라서 스웨덴은 미국처럼 변화하고, 미국은 스웨덴처럼 변화하는 것이 합리적인 전략일 수 있습니다. 자유시장 경제학자들은 자유시장을 주장하기 위해, 경제학적 사고방식을 포기했습니다. "복지과잉으로 가면 국민이 나태해진다"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발언,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로 인해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있다" 라는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발언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선형의 세계에 갇혀 세상사를 단조롭고 시시하게 봅니다. 그들은 비용편익분석을 하는 것이 아니라, 비용만 보거나 편익만 보는 직선의 외눈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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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Jordan Ellenberg, "How Not to be Wrong: The Power of Mathematical Thinking

경제학자는 비선형의 세계에서 최적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비용편익분석이 비인간적이라는 비판을 멍에처럼 짊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비용편익분석은 극단적인 정책 대안을 거부하고, 거의 항상 중간 어디에서 최적 대안을 찾아냅니다. 경제학자가 보수와 진보의 틀에 갇히지 않는 것은 최적이라는 날 선 칼날에 서는 것을 숙명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