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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07일 09시 56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0월 07일 14시 12분 KST

한국문화 속 안전불감증

일반적으로 안전체감도가 낮은 국가는 안전중시도가 높은 반면, 안전체감도가 높은 국가는 안전중시도가 낮다고 한다. 즉,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환경이 안전하지 않다고 느낄수록 안전을 더 중요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이러한 일반적 경향과는 사뭇 다르다: 우리나라는 안전체감도(15개국 12위)와 안전중시도(15개국 중 13위)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모두 낮은 편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신의 주변 환경이 안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왜 안전함의 중요성을 낮게 평가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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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작은 사고가 대중매체를 통해 알려질 때마다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안전불감증이다. 2015년 한국심리학회 연차대회의 기조연설에서 차재호 서울대 명예교수께서 지적하였듯이 직관적으로 보면 안전불감증보다는 위험불감증이라는 말이 더 적절한 표현일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안전불감증이란 안전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둔감하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전불감증에 대한 이러한 사전적 해석에 앞서 더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것은 안전불감증이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비교적 오랜 시간에 걸쳐 우리 사회의 한 모습으로 형성된 것이고 이렇게 형성된 태도는 변화되기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Maslow(1970)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충족하고자 하는 욕구들을 우선성에 기초하여 위계화했다. 이 욕구위계에서 안전함과 안정감을 확보하고자 하는 안전 욕구는 배고픔이나 갈증을 해소하려는 생리적 욕구 다음에 충족되어야 하는 기본적 욕구로 설정되어 있다. 비록 Maslow의 이러한 욕구위계가 고정되거나 보편적인 것은 아니고 개인이 속한 문화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안전 욕구가 충족되어야 소속감이나 사랑, 자아존중 혹은 자아실현 등과 같은 좀 더 높은 수준의 욕구를 추구할 수 있다는 생각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욕구위계에서 가장 기본적 수준인 생리적 욕구 다음으로 안전 욕구가 중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 사회에 안전불감증이 팽배해 있는 것일까? 15개 OECD 회원국의 안전체감도와 안전중시도 사이의 관련성을 살펴본 한 조사결과(World Value Survey, 2012)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안전체감도가 낮은 국가는 안전중시도가 높은 반면, 안전체감도가 높은 국가는 안전중시도가 낮다고 한다. 즉,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환경이 안전하지 않다고 느낄수록 안전을 더 중요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같은 자료에 소개된 우리나라의 경우는 이러한 일반적 경향과는 사뭇 다르다: 우리나라는 안전체감도(15개국 12위)와 안전중시도(15개국 중 13위)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모두 낮은 편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신의 주변 환경이 안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왜 안전함의 중요성을 낮게 평가하고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면 우리사회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안전불감증의 원인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행위는 본질적으로 생산성과 안전함을 동시에 지향하며 수행된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서로 교환적인 득실관계(trade-off)를 갖고 있어 생산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안전함에서 손실이 있게 마련이다. 많은 학자들은 우리나라의 지나친 생산성 강조, 예를 들어 빠른 시간 안에 많은 것을 달성하고자 하는 풍토가 안전불감증의 한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짧은 시간에 이루어낸 경제적 고도성장의 이면에 안전에 대한 둔감함이 동시에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사고나 안전에 대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갖고 있는 사고방식 역시 안전불감증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한국, 일본, 그리고 미국 운전자들을 상대로 만일 교통사고가 발생한다면 그 원인 중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이 무엇일지에 대한 응답 결과 자료를 접한 적이 있다. 이 질문에 대해 다른 나라 운전자들은 '자신의 실수'나 '타인의 실수'를 높은 비율로 선택한 반면 우리나라 운전자들은 '재수가 없어서'라고 응답한 비율이 가장 높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물론 일부 자료를 통해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고를 바라보는 시각을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필자에게는 이 자료가 기억에 오래 남아 있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사고의 발생이 운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한다면 사고를 줄이거나 방지하고자 하는 노력은 사실 의미가 없다. 운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단 말인가.

이에 사고를 방지하고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들이 다양하게 제안되었다. 위험 행동에 대한 규제보다는 자율적인 안전 행동의 강조, 행동 오류에 대한 처벌보다는 안전 행동에 대한 강화, 사후 대처보다는 사전 예방, 혹은 위험요소의 일시적 수정보다는 안전의 계속적 향상 도모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모두 지당하신 말씀일 뿐만 아니라 안전 혹은 사고와 관련된 책자나 언론보도에서 우리가 자주 그리고 이미 많이 접했던 내용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안들이 제안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사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또 이에 대해 마치 공식에 대입하는 것처럼 똑같은 방책들이 제시되는 것은 좀 더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인 것 같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안전과 사고의 갈림길에서 어느 길로 가게 되는지는 다양한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사고가 하나의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사고 방지와 안전 확보를 위해서는 인간, 시스템 그리고 인간과 시스템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환경 모두를 통합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건이 된다. 안전불감증을 해소하고 사고를 방지하여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들에 대해 필자의 평소 생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방안 1. 안전한 행동 인식

먼저 다양한 행동 대안들 중에서 안전한 행동이 어떠한 행동인지 인식하고 이것을 선택하는데 익숙해져야 한다. 의식적으로 안전하게 행동하려는 태도도 좋지만 이보다 더 바람직한 최선의 행동은 의식하지 않았는데도 결과적으로 어떤 행동이 안전하게 수행될 수 있는 경우이다. 최악의 경우는 불안전한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의식적 불안전 행동이나 의식적 안전 행동은 각각 위반이나 법규준수 등의 형태가 된다. 여기서 핵심은 무의식적 행동의 중요성이다. 이러한 행동은 쉽게 형성되는 것은 아니고 장시간에 걸친 반복적 연습의 결과로 나타난다. 일상적이고 사소하다고 생각될 수 있는 행동이라 할지라도 어려서부터 안전하게 수행하는 방법을 몸에 익히는 것이 개인의 사고 가능성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안이 될 것이다.

방안 2. 안전 행동 유도하는 공학적 기술

사고 방지와 안전 확보를 위해 고려해볼 수 있는 또 다른 방안은 행동이 안전하게 수행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공학적 기술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사실 안전장치나 보호장구 등을 포함하여 사고방지를 위해 특별하게 설계된 시스템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인간 사용자가 그러한 시스템을 사용하면서 추가적인 인지적/신체적 부담을 경험하지 않도록 함과 동시에 시스템의 목적이 충분히 발휘되도록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시스템이 설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 친화적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설계 접근들은 다양하지만 필자는 행동유도성(affordance)의 개념을 적용한 생태학적 설계를 추전하고 싶다. 행동유도성은 Gibson(1977)이 소개한 개념으로 간단히 말하면 외부 자극의 특정 속성이 유기체의 행동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성질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속도를 줄여야 하는 도로의 표면에 운전자의 차량 위치로부터 점점 거리가 좁아지는 선들을 제시하면 속도감이 점점 증가하여 운전자가 운전속도를 자연스럽게 감소시키도록 하는 것이 여기에 포함된다(Denton, 1980). 행동유도성을 이용한 이러한 생태학적 설계는 인간이 특별한 인지적 노력없이 "세상"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기만 되기 때문에 장시간의 훈련과정 없이도 무의식적 안전행동을 즉각적으로 유도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을 단박에 "치료"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쉽게 찾아질 것 같지 않다. 그러나 만병통치약 수준은 아니더라도 우리가 (특히 심리학자가) 이에 대한 해결 방안을 고민하고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사고를 야기한 대부분의 원인이 사람에게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어느 학문분야보다 인간심리와 행동에 대한 심층적 이해에 방법론적이나 이론적으로 강점을 갖고 있는 심리학의 적용이 사고의 방지와 안전의 확보 방안 모색에 필수적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Denton, G. G. (1980). The influence of visual pattern on perceived speed. Perception, 9, 393-402.

Gibson, J. J. (1977). The Theory of Affordances. Hilldale, USA.

Maslow, A. H. (1970). Motivation and Personality(2nd Ed.). New York: Harper & Row(pp. 472).

World Value Survey. (2012). http://www.worldvaluessurvey.org

* 이 글은 한국심리학회 웹진 PSY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