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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12일 10시 40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12월 13일 14시 12분 KST

척수마비 환자가 걸어다니는 날

[정재승의 영혼공작소] 뇌-기계 인터페이스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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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카고 재활의학연구소는 고압선 전기 사고로 양팔을 잃은 제시 설리번에게 최첨단 인공팔을 만들어줬다. 뇌에서 뻗어나온 신경다발과 인공팔의 전자회로를 연결함으로써 설리번은 팔을 움직이겠다는 생각만으로 손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사진은 인공팔의 초기 모델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사이보그'란 뒤떨어져 있는 신체 기능을 회복하거나 정상인들보다 더 나은 기능을 갖기 위해 기계장치를 몸에 장착한 사람들을 말한다. 로보캅처럼 총격으로 사지를 잃은 경찰이 기계팔과 기계다리를 갖게 되었거나, 아이언맨처럼 외골격 장치를 단 사람들이 대표적인 사이보그들이다.

물론 이 기준에 따르자면, 콘택트렌즈를 한 사람, 임플란트를 심은 사람, 가슴에 실리콘을 삽입한 사람들 모두 사이보그에 해당된다. 그래서 새로 정의된 사이보그는 배터리가 들어 있는 기계장치를 장착한 사람들로 한정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제시 설리번은 사이보그다. 그는 원래 고압선을 다루는 전기기술자였다. 2001년 5월, 비가 많이 오던 어느 날, 그는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게 되는 사고를 겪게 된다. 정전이 된 건물의 옥상에 올라가 수리를 하던 중 감전이 되어 두 팔을 잃게 된 것이다.

통상 이런 비극적인 사고를 겪은 환자들이 받을 수 있는 치료는 고작해야 뻣뻣한 의수를 양쪽 팔에 장착하는 것 정도다. 하지만 미국 시카고 재활의학연구소는 제시 설리번에게 최첨단 기계장치가 장착된 인공 기계팔을 장착해주기로 계획한다.

이 계획의 책임자는 시카고 재활의학연구소 인공 팔다리 연구센터의 뇌공학 연구책임자인 토드 쿠이켄 박사였다. 그는 미국 국방부의 지원을 받아 '뇌-기계 인터페이스' 연구를 5년 가까이 진행해왔다. 사람의 뇌로부터 신경활동을 측정해 생각을 읽어 들인 다음, 이 정보를 기계에 보내서 의지대로 움직이는 인공 팔다리를 개발하는 프로젝트였다.

사람의 뇌로부터 뻗어 나온 신경다발과 전자회로가 가득 장착된 기계팔을 직접 연결해 뇌와 기계 사이에 정보교환을 할 수 있게 해준다면, 팔다리를 잃은 환자들에게 신체의 일부처럼 움직이는 기계팔 혹은 기계다리를 선사해 줄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최초의 바오이닉맨 탄생

만약 뇌-기계 인터페이스 기술을 환자가 아니라 정상적인 사람의 팔다리에 장착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미국의 과학소설가 로버트 하인라인은 자신의 소설 '스타십 트루퍼스'에서 외계 종족으로부터 지구를 지키는 지구연방군에게 이른바 '외골격'을 장착하는 설정을 제시한 바 있다. 바로 그 외골격이 '뇌-기계 인터페이스'를 정상적인 군인에게 적용한 사례에 해당한다. 무거운 짐을 쉽게 들거나 치타처럼 빠른 속도로 달리는 인간,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트랜스휴먼'이 이 기술로 가능할 수 있다. 군인들을 가공할 만한 위력을 가진 살인 기계이자 병기, 즉 슈퍼솔저로 만드는 기술로 응용할 수 있기에 미국 국방부가 이 기술에 관심을 갖고 지속적인 투자를 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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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팔을 단 설리번이 물컵을 능숙하게 쥐고 있다. 시카고 재활의학연구소 누리집 갈무리

제시 설리번은 이제 인공팔로 집에서 사다리를 올라갈 수 있고, 페인트칠을 할 수 있다. 제초기로 잔디를 다듬을 수도 있고, 손자를 안아주거나 물컵의 물을 마시는 것도 가능하다. 그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손과 팔을 장착해 일상적인 생활을 돕고 있다.

절단된 어깨 면의 신경다발을 가슴으로 옮겨 신경활동의 패턴을 읽는다. 예를 들어 주먹을 쥔다고 생각해보자. 뇌가 그에 맞는 신호를 팔에 보내면 신경다발의 활동을 통해 인공팔이 움직이는 것이다. 제시 설리번은 생각에 의해 제어되는 인공팔을 가진 최초의 사지 절단 수술을 받은 사람, 즉 최초의 바이오닉 맨이다. 600만불의 사나이나 로보캅 같은 SF소설 속 인물이 세상에 등장한 것이다.

미국의 의학과 보건 분야 연구비를 나누어주는 미국 국립보건원은 뇌-기계 인터페이스에 상당한 연구비를 책정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국방부 산하의 군사기술 연구개발 기구인 국방고등연구계획청(DARPA)까지 합류해 집중 투자하고 있는 분야다. 육군 의무사령부에 따르면, 전쟁이나 훈련을 수행하던 중 부상을 입어 팔다리를 잃은 군인이 이라크에서 411명, 아프가니스탄에서 37명이나 된다고 한다.

현재 제시 설리번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어깨가 떨어져 나갈 듯이 무거운 인공 기계팔의 무게를 줄여주는 연구다. 20킬로그램에 가까운 인공 기계팔의 무게 때문에, 편리한 점도 많지만 1시간 이상 장착하고 있으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힘들기 때문이다. 살빛의 생체조직으로 인공팔을 덮는 일도 중요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어서는 안 되며, 회로가 노출될 경우 손상이나 감염의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인공 기계팔을 가진 최초의 여성은 클로디아 미첼이다. 2004년에 해병대를 제대한 뒤에 모터사이클 사고로 부상을 입어 팔을 잃었다. 그 역시 가벼우면서도 정교하게 움직이는 인공 기계팔을 갖는 것이 소원이다.

뇌-기계 인터페이스 연구는 주로 뇌파로 한다. 뇌에다 칩을 삽입하거나 전극을 삽입해 뇌활동을 측정하는 연구가 주목받고 있지만, 환자들을 대상으로만 실험을 할 수 있어 연구자들이 많지 않다. 뇌파는 일반인들에게 사용할 수 있어 90%의 연구자들은 뇌파를 사용한다. 가끔 자기공명영상장치를 이용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일례로, 일본 국제전기통신 기초기술연구소와 혼다 기술연구소에서는 기능적 자기공명영상장치(fMRI)를 이용한 실시간 로봇팔 제어에 성공하기도 했다. 이 장치의 뇌영상 정보를 분석하여 실시간으로 인간이 원하는 손의 움직임을 로봇이 그대로 표현하게 하는 로봇 제어 시스템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이 시스템은 사용자가 기능적 자기공명영상장치에 누워서 손 모양을 바꿔 가위바위보를 하면, 뇌 영상을 촬영해 손 움직임을 제어하는 뇌 영역의 활동을 측정한다. 가위바위보라는 손 움직임의 뇌 활성화 패턴을 분석하여 최종적으로 사람이 취하고 있는 손 모양과 같은 형태로 로봇 손을 만드는 것이다. 약 5초 정도 시간 지연이 있어 좀 답답하긴 하지만, 뇌영상장치를 이용한 뇌-기계 인터페이스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화제가 되었다.

사이보그들의 올림픽

지난 10월8일 취리히 근교 클로텐의 스위스 아레나에서는 제1회 사이배슬론(Cybathlon) 대회가 열렸다. 사이배슬론은 로봇공학 기술을 이용한 기계장치의 도움으로 장애인 스포츠 선수가 컴퓨터 자동차 게임, 전기 자극을 이용한 자전거 경주, 전동 휠체어 경주, 로봇 의족 달리기, 로봇 의수 경주, 로봇 슈트 걷기 등 6가지 종목에 참여해 실력을 겨루는 대회다.

이 대회를 창설한 로베르트 리너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교수는 뇌-기계 인터페이스 기술의 발전을 도모하고, 이 기술에 대한 국민적 저항감을 줄이기 위해 이 대회를 열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대회에는 스위스가 2개 종목에서 1위에 올랐고, 미국과 독일, 네덜란드, 아이슬란드도 각각 1개 종목에서 1위를 차지했다. 뇌-기계 인터페이스 기술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결과였다.

쾌거는 완전마비 장애인들이 로봇을 입고 장애물을 통과하는 사이배슬론 외골격 착용 로봇(Powered Exoskeleton) 종목에서 한국이 동메달을 땄다는 사실이다. 김병욱(42·지체장애 1급)씨는 착용형 로봇 종목에 유일한 한국팀으로 출전했다. 서강대 공경철 교수 연구팀과 공동연구진은 김병욱씨에게 외골격 로봇 '워크 온'을 착용시키고 일자로 서 있는 4개의 장애물 사이를 지그재그로 통과하기, 20도 경사의 오르막 오르기, 징검다리 건너기 등 일반 장애물 경기처럼 다양한 미션을 수행해 메달을 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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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수마비가 된 원숭이에게 뇌파를 원격으로 끊어진 척수의 신경과 연결해서 걷게 한 것을 쉽게 설명한 개념도.

지난달, 그레구아르 쿠르틴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 생명과학과 교수와 미국 브라운대,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 등 국제 공동연구진은 척수 손상으로 하반신이 마비된 원숭이를 걷게 하는 데 성공했다. 뇌파를 읽을 수 있는 센서와 척수에 심은 전기자극 장치를 이용해, 인공 기계 다리를 장착하지 않고 원숭이가 걸을 수 있게 해준 것이다. 국제 공동연구진은 척수마비로 두 다리를 사용하지 못하는 원숭이의 뇌와 척수에 센서와 전기자극 장비를 심어 보조기기 도움 없이 걷게 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중추신경계의 일부인 척수는 뇌에서 발생한 전기신호를 온몸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만약 척수가 끊어지거나 손상되면 뇌에서 보내는 신호가 몸으로 전달되지 않아 신체의 일부를 움직일 수 없게 된다. 현재로선 손상된 척수를 복원하는 방법도 없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척수 손상으로 수십년 동안 장애인으로 지내야 하는 전 세계 환자 수는 매년 25만~30만명에 달한다.

마음 읽는 기계 장착한 트랜스휴먼

연구진은 기계장치를 장착하지 않고도 척수마비 환자들을 움직이게 할 방안을 고민해 왔다. 그 결과, 척수에 전기자극을 줄 수 있는 전극을 직접 심은 것이다. 연구진은 먼저 척수마비 원숭이가 두 발로 일어서거나 걸을 때 뇌에서 발생하는 뇌파를 검출해냈다. 뇌에 심은 센서는 원숭이가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 나타나는 뇌파를 읽은 뒤 이를 무선으로 척수에 심은 전극으로 보낸다. 척수에 심은 전극은 신호를 받고 두 다리에 전기자극을 준다. 이 방법을 거쳐 흉추 7번 부근의 척수 신경이 손상된 두 마리의 원숭이가 불과 6일 만에 걸을 수 있었다.

몸을 움직일 수 없거나 불편한 분들을 위해 개발된 뇌-기계 인터페이스 기술은 기계가 인간의 마음을 읽을 수 있고 행동을 대신해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기술로 성장하고 있다. 이 기술의 발전으로 컴퓨터 같은 지능적인 기계가 책상 위에서 무릎 위로, 손바닥 위로, 그리고 이제는 우리 몸에 붙거나 몸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정상인이 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 기계를 몸 안에 장착하게 된다면, 우리는 새로운 인간, 이른바 트랜스휴먼으로 변모해나갈 것이다.

기술의 도움으로 능력을 배양한 사이보그들은 과연 미래 사회에서 인간을 지배할 것인가? 성형수술이라는 의료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인간들이 더 높은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현실에서, 사이보그 기술이 만들어낼 미래 사회는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인간은 지금 지구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