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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2월 02일 06시 56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2월 02일 14시 12분 KST

천하삼분지계는 시효가 끝났다

연합뉴스

글 | 서누리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선임연구원

삼국지연의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아마도 유비가 제갈량을 삼고초려(三顧草廬) 끝에 만난 때일 것이다. 그 때, 제갈량은 유비에게 서천(西川) 54주의 지도를 쭉 펼쳐놓고는 "장군이 패업을 성취하시려면 일단 북쪽은 하늘의 때(天時)를 얻은 조조에게 양보하고, 남쪽은 지리의 이점(地利)를 차지한 손권에게 양보하고, 장군은 민심(人和)을 얻어 먼저 형주를 차지한 다음 서천을 취해서 정족지세(鼎足之勢: 3개의 솥발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형태)를 이룬다면, 후에 중원을 도모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이른바 그 유명한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이다. 번번이 전쟁에서 패해 형주의 유표에게 겨우 몸을 맡기고 있던 유비의 입장에서는 떨리고 감격스러운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천하삼분지계는 제갈량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비슷한 시기 오나라의 노숙도 이를 주장하였고, 그보다 400년 정도 앞선 초한지 시대 한신의 모사 괴통은 천하삼분지계의 원조격이라고 할 것이다. 괴통은 제나라를 차지하고 있던 한신에게 유방으로부터 독립하여 항우, 유방과 함께 천하를 삼분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한신은 유비와는 달리 고민 끝에 제안을 거부하였으며, 이후 결국 유방의 부인인 여황후에게 목숨을 잃는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의 전형적인 예이다.

천하삼분지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첫째, 우선 천하삼분지계를 펼칠 적절한 때를 타고 나야 한다. 둘째, 민심을 얻을 수 있는 출중한 인물의 등장은 절대적이다. 셋째, 그 인물의 단호한 결단도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그 인물과 함께할 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천하삼분지계가 오늘날 우리 정치권에서 다시 회자되고 있다.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면서 독자세력화를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대 양당의 구조 속에 안철수의 천하삼분지계는 성공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는 가능'했었다'고 생각한다. 현재가 아니라 4년 전에는 가능했었다는 말이다.

2011년 말 혹은 2012년 초로 돌아가 보자. 당시 지역주의를 바탕으로 한 거대 양당의 기득권을 비판하는 강한 민심이 있었다. 그리고 국민들은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으로 양분되어 펼치는 정치권의 이념적 정쟁에 이미 염증이 날만큼 난 상태였다. 따라서 중도실용적 세력을 모으면 거대 양당 구조를 3당 구조로 재편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즉, 천하삼분지계의 적기였다. 거기에 안철수라는 신선한 인물이 등장하였다. 기존의 정치인과는 전혀 다른 출중한 인물이 등장한 것이었다. 그리고 '간철수'라는 별명이 붙긴 했지만 그는 결단을 내리고 대선을 향한 출사표를 던졌다.

문제는 '새정치'라는 브랜드의 세력화 실패에 있다. 안철수 의원은 지난 2012년 총선에서 독자세력화하지 않고 단기필마(單騎匹馬)로 청와대 직행에 도전하였다. 그의 입장에서는 기존의 정치와 다른 '새정치'를 보여주기 위해 전략적으로 판단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국민의 비난을 받는 국회를 우회하여 대선에서 승부를 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즈음에서 "(서울)시장은 국회(의원)와는 다르게 한 사람이 바꿀 수 있는 게 많은 것 아니냐"고 말했듯이 그의 국회에 관한 부정적인 인식도 판단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전략은 완전히 실패하였다. 세력화되지 않은 민심은 결국 뜬구름과 같다는 것을 그가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2012년 총선에서 안철수 의원이 독자세력화하여 수도권에서 10석만 얻었더라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총선을 통해 제2의, 제3의 안철수를 만들어서 '새정치'를 성공적인 브랜드로 정착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대선에 나갔더라면 더욱 경쟁력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만약 대선에서 실패하였다고 하더라도 민주화, 산업화 세력에서 이탈한 중도층을 계속 품었다면 천하삼분지계는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오늘 그가 다시 천하삼분지계를 꿈꾸고 있다. 지난번 전략적 실패 혹은 판단 착오 때문인지 이번에는 세력화에 중점을 두는 모습이다. 그러나 그는 지난날 '안철수 현상'이 불던 황금기를 냉정하게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안철수' 개인에 관한 환호가 아니라 지역주의를 기반 한 거대 양당의 기득권에 대한 반란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무기는 무엇인가. 그는 지역주의를 대체할 '새정치'라고 하겠지만, 자신이 이미 지역주의를 기반으로 한 정치인에 불과하지 않은가.

다가오는 총선 이후에도 거대양당의 기득권 지키기가 계속 된다면, 우리 정치가 지금처럼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다시 누군가 천하삼분지계를 들고 나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철수 의원의 천하삼분지계는 이미 시효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