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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16일 13시 20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2월 16일 14시 12분 KST

안철수는 왜 혁신전대를 소집하지 않았나

안철수

글 | 여택수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부소장

안철수 의원은 문재인 대표에게 전당대회(전국대의원대회) 개최를 요구했다. 자신과 문 대표가 각자의 당 혁신안을 내놓고 대표경선을 하자고 주장했다. 문 대표가 이를 거부하자 당을 버리고 떠나갔다. 안 의원은 "혁신전대는 대국민 약속이었다. 이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말로 탈당을 합리화했다. 그러나 당헌이 보장하는 전대 소집 절차를 스스로 외면함으로써, 혁신전대 주장이 진정한 당 혁신 의지라기보다 탈당을 위한 명분 쌓기에 불과했던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갖게 만들었다.

그는 왜 스스로 혁신전대를 소집하지 않았던 것일까.

새정치민주연합의 당헌 16조는 전국대의원대회 소집 요건을 명시하고 있다. "당무위원회의 의결이 있거나, 대의원 3분의1 이상의 요구가 있는 때 의장이 2개월 이내에 소집한다. 다만, 기한을 정하여 소집요구를 하는 때에는 그 기한 내에 소집하여야 한다."고 못 박고 있다. 요건을 갖춘 전대 소집요구는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강제조항이다. 요컨대 새정치민주연합의 당헌은 안 의원이 대의원의 동의를 받아 요건만 갖추었다면 얼마든지 '주권자인 대의원의 이름'으로 혁신전대를 소집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도 중요한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주주총회 소집 절차를 거쳐 경영진을 탄핵한다. 경영진이 거부하더라도, 1.5% 또는 3%의 주식을 보유한 소수주주는 임시주총을 소집할 수 있고 경영진 해임요구도 할 수 있다. 오랜 기업 경영 이력이 있는 안 의원이 이 같은 상식을 차용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소수주주의 주총소집이 2000년대 이후 일반화된 주주민주주의 훈련과정이었다면, 1980~90년대에는 어용노조 지도부를 퇴진시키는 '총회투쟁'이 있었다. 울산의 현대그룹을 필두로 조그만 중소기업에 이르기까지 기업주 편을 드는 어용노조 집행부를 퇴진시키고 민주노조를 만드는 과정은 조합원의 서명을 받아 총회를 소집하는 절차로 시작됐다. 노동조합법과 노조규약이 총회소집 요건과 지도부 선출절차를 명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한국노총이 민주화되었고, 민주노총이 탄생했다.

이 민주주의 훈련은 사실 전 국민의 직선제 개헌운동이 성공한 뒤에 이어진 것이다. 1987년의 호헌철폐 직선제 개헌 쟁취 운동은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 국가지도부를 뽑는 헌법을 만들기 위해 서명운동을 주요수단으로 삼아 일궈낸 것이었다. 이처럼 국가로부터 기업 노동조합에 이르기까지 각급 공동체에서 주권자의 요구로 총의를 모아 지도부를 교체하는 민주주의 훈련이 정착되어왔지만, 정당에서는 여전히 이런 문화가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

우리시대 '새정치'의 표상이었던 안 의원이 당헌에 따라 주권자인 대의원의 이름으로 전대를 소집했다면 어땠을까. 참여민주주의의 감동적인 장면을 끌어내면서 3김시대 이후 표류하고 있는 야당을 안정되고 강력하게 탈바꿈시키는 공을 세울 수 있었을 것이다. 전대의 당대표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민주주의자로서 새정치의 지평을 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안철수 의원은 혁신전대를 소집하지 않았을까.

안 의원은 당의 주권자인 당원·대의원에게 호소하지 않았다. 자신이 계파보스로 규정한 문재인 대표를 상대로 전대를 요구했다. 주권자가 아닌 계파보스와의 밀당이라는 3김시대의 폐습을 답습한 셈이다. 어쩌면 그는 당의 주권자를 당원·대의원이 아닌 몇몇 정치지도자로 본 것은 아닐까. 당헌을 무시하고 자기들끼리 밀당으로 당을 운영할 수 있다고 여기는 계파정치에 어느덧 자신도 물들어 버렸던 것은 아닐까. 문 대표는 안 의원을 '공동창업주'라고 불렀고, 안 의원은 '공동창업자에게 쫓겨난 스티브 잡스'를 운운했다. 이들의 머릿속에 당의 주인은 당원·대의원이 아닌 자신들이라는 관념이 스며있기 때문은 아닌지 되물어볼 일이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법의 지배를 말한다. 한 나라에는 헌법이 있고 정당에는 당헌이 있다.

헌법이 독재자의 전유물이던 시대에 국민들은 헌법의 가치를 무시했고 헌법 철폐를 요구했다. 민주적 헌법이 들어선 1987년 이후 국민들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가치를 앞세워 국가지도부의 반민주적 행태를 비판했다.

그러나 정당의 역사에서 당헌의 신세는 어떤가. 3김시대 계파보스들은 당헌 위에 있었다. 당헌은 계파보스들의 야합에 따라 휘둘리는 문서쪼가리에 불과했다. 법은 하위 당직자의 징계에나 쓰는 밀걸레쯤으로 여겨졌다. 거물급 지도자들은 여전히 당헌과 무관하게 밀당을 통해 정당을 운영하려 하고 있다.

3김시대에는 당 지도부가 공고했다. 정치자금과 공천권으로 강력한 계파를 만들고, 반대파는 강압으로 제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3김시대 이후 야당은 분열과 통합을 거듭해 왔다. 지도부의 부침은 이보다 더 잦았고, 당의 대선후보조차 탈당하는 콩가루 집안이 되었다. 강력하고 안정된 정당을 만드는 것은 정권교체를 위한 절대필요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새정치민주연합은 그와 반대 방향으로 퇴행하며 약체화되고 있다. 그렇다고 과거처럼 제왕적 총재를 뽑고, 공천장사를 해서라도 뒷돈으로 계파를 만들고, 행동대장을 보내 반대파를 폭력으로 제압할 수는 없다. 이제는 다른 선례를 만들어야 한다.

안철수 의원이 이번 일을 당헌에 따라 혁신전대를 소집함으로써 정당민주주의의 초석을 세울 기회로 삼았다면 어땠을까. 국회의원 몇 사람이 자신의 공천권 때문에 당 지도부를 흔들고, 언론을 이용해 침소봉대하며, 국민의 환멸과 정치 불신을 부추기는 패악을 차단할 수 있는 정당문화가 시작될 수 있지 않았을까. 전대소집 요건을 갖추지 못한 선동과 해당행위에 중지를 명령할 수 있는 당 기율을 세우고, 당원도 절차와 요건을 갖춘 문제제기를 받아들이고 결과에 승복하는 풍토가 만들어질 수 있지 않았을까.

탈당을 운위하는 인사들이든, 당의 수습을 고심하는 쪽이든, 나아가 총선을 앞두고 범야권의 또 다른 재편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모든 정당인은 '당원·대의원이 주권자인 정당'이라는 민주적 원칙을 구현해야만 국민의 지지를 회복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식상한 그들만의 이합집산을 극복할 길이 여기에 있으므로 모두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우리 앞에 정권교체의 목표가 아무리 절실하더라도 받침돌 없이 어찌 도약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