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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8일 12시 18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1월 18일 14시 12분 KST

대학구조전환, 어떻게 할 것인가 | 장수명 교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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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높은 교육열은 산업화 시기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동력이었다. 그러나 2015년, 우리교육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있다. 교육을 통해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은 가고, 교육이 세대 간 계층 대물림의 수단이 되고 있다. 사교육비는 중산층마저 빈곤의 딜레마에 빠트렸으며, 무한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이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고 있다. 현재의 교육시스템으로는 창의적 인재 육성은커녕 어떤 미래 시민도 살려낼 수 없다는 위기감이 크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개혁의 깃발을 올렸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때로는 병증을 더욱 악화시켰다. 하지만 교육이 우리사회의 골칫거리가 되었다고 해서 그것을 도려내고 다른 무엇으로 그 역할을 대신할 수는 없는 일이다. "교육은 사회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교육은 사회의 반영인 동시에, 사회의 모습을 통해 그 공동체의 교육이 어떠한지를 엿볼 수 있다는 뜻이리라. 지금 한국교육의 위기는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가 질적으로 나빠진 것에 기인한다고 보아야 옳다. 그렇다면 위기의 한국사회를 구할 방법은 무엇일까. 그 답 역시 '교육'을 통한 변화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는 교육 문제에 천착해온 교육 현장, 학계, 정치, 시민사회 전문가들의 지혜를 듣는 '교육만이 대안이다' 시리즈를 통해, 위기의 한국을 구할 교육 패러다임 전환의 길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① 이해찬 전 교육부장관

② 하연섭 연세대 교수

③ 정성식 교사

④ 이기정 교사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학구조개혁의 핵심 중 하나는 산업현장의 요구에 맞게 대학의 체질을 개선하는 것이다. 흔히 교육과 노동시장의 미스매치 해소라고도 일컬어지는 이 기조는 고등교육의 역할을 무엇으로 보는가에 따라 찬반이 크게 엇갈리기도 한다. 장수명 한국교원대 교수는 현 대학구조개혁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면서도, 시민적 자질을 키우는 것뿐 아니라 경제적 능력을 강화하는 데에도 교육의 역할이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교육에 담아야할 핵심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휩쓸던 무렵 미국에 머물면서 미국교육의 문제점을 피부로 느꼈다고 한다. 공교육 예산의 대부분을 지역 재산세로 충당하는 미국은 부자동네와 빈민지역의 교육격차가 심각했지만 연방정부나 주정부가 어떤 적극적 대처도 하지 않았다. 그제야 장 교수의 눈에는 강대국 미국이 아니라 가난한 가정 아이는 더 이상 아메리칸 드림의 주인공이 될 수 없는, 활력을 잃어가는 미국사회가 보였다. 이후, 발전된 국가 중에서 다른 교육모형을 가진 곳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한국노동연구원 프로젝트로 교육개혁의 핀란드 모형을 연구했고, 2013년에는 헬싱키 행동과학대학에서 1년 동안 연구교수로 머물며 핀란드 교육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이번 인터뷰에서 장수명 교수는 핀란드 사례를 곁들여 가며 인적자원과 교육정책에 대한 평소의 소신을 담담히 풀어냈다.

-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정원 축소를 위해 대학구조개혁이 추진되고 있다. 현재 방향이 맞다고 보나?

= 대학구조전환은 필요하다.

첫째, 학령인구 감소와 관계없이 대학의 질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교수-학생 비율 제고나 일정 규모의 교수 연구 집단 확보가 중요하다. 물리학의 임계질량 같은 것이다.

둘째, 대학과 노동시장의 미스매치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 어차피 구조전환을 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중등교사가 100명 필요한데 300명을 기를 필요는 없다. 교과목도 어느 정도 일치하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셋째, 국가균형발전을 위해서다. 각 지역이 경제나 사회적 발전을 동시에 이뤄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데, 가장 중요한 역량 중 하나가 혁신역량이다. 그 핵심이 고등교육기관이라 할 수 있다.

- 대학구조전환은 필요한데, 학령인구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 학령인구 감소가 계기가 될 수 있다. 이 문제가 심화된 것은 5.31 교육개혁의 대학설립정책과 정원 자율화 때문이다. 시장 경쟁을 통해 대학이 질적으로 고양되고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보았는데,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취업률로 대학평가를 해보았지만, 노동시장과의 매칭은 더욱 안됐다. 전문가와 준전문가 일자리가 다 합쳐도 20%가 안 되는 사회에서 준전문가와 전문가를 길러내는 전문대와 대학 진학률이 70~80%다. 대학과 노동시장 매칭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학령인구 감소는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대학구조전환의 계기를 만들어 주고 있다.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 정부는 대학-노동시장 미스매치를 해소한다며 이공계열을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 결코 우리나라 이공계 비율이 낮지 않다. 제가 관련 연구를 했었다. 지금은 이공계를 많이 길러놔서 시장 수요보다 인력이 훨씬 많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임금이 떨어진다. 결국 능력 있는 사람은 의과대학 등으로 탈출하게 된다. 미국이나 독일은 공학기술자가 상당히 높은 임금을 받지 않나. 당연히 그 분야로 우수 인재가 간다. 이게 노동시장의 기본적인 작동 원리다.

- 과거에 비해 산업구조 변화의 주기가 짧아진 것 같다. 대학이 급격히 변화하는 시장에 맞춰 인력을 공급한다는 것이 실제로 가능하고 바람직한 것인가?

= 일대일 매칭이나 개별 기업에 대한 대응은 불가능하겠지만, 고등교육을 받았다면 갖춰야할 소양 내지는 전문적 역량은 산업과 연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전문대학이나 폴리텍 대학은 특히 그렇다.

연구와 교육이 통합되어야 한다는 독일식 훔볼트 전통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고등교육이 직업적 연계를 가져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로스쿨이나 의과대학처럼 전문 직업인을 양성하는 대학이 있지만, 지식을 축적하고 혁신적 이론을 재생산해내는 대학 고유의 역할 또한 있는 것이다. 어디다 방점을 찍을 것인가는 개별 대학의 특성, 건학이념, 사회로부터 요청 받는 임무 등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흥미롭게도 영국이나 미국은 대학의 상아탑 역할을 강조하고, 그에 비해 북유럽 국가들은 산업과의 연계를 더 강조하는 실용적 경향이 있다.

- 학제에 따른 역할 분리는 어떤가? 예를 들면 직업교육은 전문대와 폴리텍 대학 등이 담당하고, 4년제 대학 이상은 연구 목적을 가진 학생이 진학하도록 한다든지.

= 다른 나라들은 그렇게 해왔다. 특히 유럽은 그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왔다. 핀란드의 경우 유니버시티(University)라고 하면 학사도 배출하지만 석사 이상이다. 주로 석·박사 위주의 연구중심대학이다. 폴리텍(Polytech)이라고 하면 학사과정이다. 보통 3년제다. 석사과정도 있긴 하지만, 직업계열 석사 과정이다. 명확하게 역할이 구분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는 모든 대학이 경쟁한다. 전문대학도 대학교라는 이름을 쓰고, 이름만 봐서는 어떤 과정인지 알 수가 없다. 4년제 대학도 미용학과 같은 직업교육 학과를 만든다. 정부가 이 부분은 조정해야 한다.

- 대·중소기업 업종 분리를 하듯이?

= 그런 접근 자체가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사립이 70% 이상이라 정부가 개입하기 굉장히 어렵다.

- 우리는 사립대학에도 많은 공공기금이 들어가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조를 이끌어내기는 어렵다는 것인가?

= 공공기금이 많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생각보다 적다. 미국보다 적은 수준이다. 그나마 대학으로서는 추가적인 50억, 100억 확보가 무척 크게 느껴지기 때문에 정부 사업에 목을 매는 것이다.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정부 자금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제가 사립대학의 자발적인 준국공립화를 주장해왔다. 공익자금을 대거 받아들이고, 정부가 투자를 하고, 그럼으로써 대학을 준공립화 시키는 것이다. 특히 전문대를 보면, 미국도 커뮤니티칼리지는 공립이다. 최근에는 오바마가 학비를 없애겠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전문대학일수록 사립이 더 많다. 우리 고등교육은 저소득층에 더 불리한 구조인 셈이다.

- 지금의 노동시장 미스매치 현상은 산업수요와의 미스매치라기보다 질 좋은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누구든 교육 투자 대비 터무니없이 낮은 급여를 받는 곳에는 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 우리가 흔히 양질의 일자리라고 하는 것은 대기업이나 공사, 공공부문 정규직을 얘기하는 것 아닌가. 많지는 않지만 괜찮은 중견기업들도 있기는 하다. 왜 이런 구조가 되었나. 산업정책하고 관련이 있다. 우리 산업구조는 소수의 재벌 대기업이 일반 시장보다 높은 임금을 주고 우수한 인력을 데려가는 형식이다.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숙련된 노동자가 많아야 하는데, 키워놓으면 월급 조금 더 주고 데려가니 그걸 유지하기가 굉장히 힘들다.

- 일부에서는 고학력화로 중소기업 취업을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라며 학력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 대학을 그만 가야 한다고 얘기하기 보다는 일자리를 잡으면서 교육을 하고, 교육을 하면서 일자리를 잡는 형식의 평생교육 개념으로 가는 것이 좋다고 본다. 핀란드 같은 경우 대부분 학교를 다니면서 일자리를 갖고 있다.

- 우리는 대학 진학 시 전공보다 대학 간판을 먼저 따진다. 그렇다 보니 전공과 취업이 따로 논다. 졸업 전부터 무슨 일을 할지 다시 고민해야 하고, 취업 준비 기간도 길다. 정부나 산업계도 어느 분야 인력이 얼마나 공급될지 예상할 수 없다. 말씀하신 것처럼 일·학습 병행제가 자리 잡으면 이런 문제가 해소될 수 있을까?

= 부분적으로 해소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얘기한 것처럼 특정 산업의 고용시장 규모에 비해 너무 많은 졸업생을 배출하는 무계획적인 고등교육 시스템 자체를 손대지 않으면 안 된다. 산업과 연계해 좋은 직업훈련을 제공하기만 하면, 고등학교 단계에서 끝낼 수 있는 분야도 많다. 일을 하다가 필요하면 다시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구조로 가야 한다. 물론 양질의 고등학교 졸업자 일자리가 있느냐의 문제부터 시작해서 고민할 것이 많다.

- 학력과 대학서열에 따른 급여 수준의 차이에 대한 연구도 하셨다. 학력이 높아야 급여를 잘 받는다는 것이 확연하게 보이더라. 이런 구조 속에서 고등학교 졸업만 하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 평균차이는 늘고 있지만 개인의 급여 수준도 다양해지고 있다. 학력에 따른 차이뿐 아니라 대학 졸업생 간의 차이 또한 크다. 대학만 가면 다 해결된다는 생각은 이제 환상이다.

- 과거에는 "나는 기름밥 먹지만 내 자식은 펜대 굴리며 살아야지"하는 부모들이 많았다. 그런데 요즘에는 "시시한 대학 나와서 취직도 잘 안 되는데 기술 배워라"하는 부모도 많아진 느낌이다.

= 학습효과다. 1995년 대학 정원 자율화와 함께 대학을 졸업하면 뭔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많은 사람이 진학했다. 그 후 10여 년이 지나 2005년, 2010년이 되니까 이게 환상 이었다는 걸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중요한 계기다. 고등학교 단계에서 양질의 직업훈련을 제공해 줌으로써 이 수요를 빨리 채워줘야 한다.

- 정부는 직업훈련을 위해 산학협력을 강화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기업은 오히려 학교에 건물을 지어 달라고 하면 마음이 편한데, 산학협력 하자고 하면 부담이 된다는 얘기를 한다. 한 쪽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산학협력이 잘 될까?

= 쉽지 않다.

미국은 R&D 중심인 데 반해 유럽은 R&D뿐 아니라 직업훈련 쪽으로도 광범위하게 산학협력이 이뤄진다. 코포라티즘(corporatism)이라고 하는, 노동조합과 기업연합체가 함께 움직이는 시스템이다. 내가 키운 좋은 인력을 남이 데려가 버린다 생각하면, 누가 훈련을 시키려고 하겠나. 그래서 이것을 일종의 공동 자원으로 보고, 함께 훈련시켜 채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노조와 기업연합회도 모여야 하는데, 정부만 혼자 산학협력 해야 된다고 압력을 넣고 인센티브를 주는 단계다. 기업은 연합체가 별로 없고, 동종 분야 인력을 어떻게 훈련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없다. 노동조합도 중요성을 크게 못 느끼는 것 같다. 구조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태다.

- 취업준비생들로부터 "요즘 기업은 신입을 안 뽑고 경력직만 원한다"는 하소연을 듣는다. 그 경력은 어디서 쌓나. 결국은 중소기업이다.

= A기업은 신입을 훈련시키느라 돈이 들었으니 그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임금을 낮게 주려 할 것이다. 하지만 B기업은 훈련비용이 안 들었으니 A기업보다 임금을 조금 높게 주고 숙련공을 데려갈 수 있다. 숙련공은 당연히 임금을 높게 주는 B기업으로 옮겨 가게 된다. 이것이 '숙련 도둑질'이다. 이 문제를 유럽은 노사정의 제도적 협의를 통해 풀고 있다.

- 갈 길이 멀다.

= 기존에 해왔던 산학협력의 성공적 사례와 실패 사례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

장수명 교수

- 최근 정부의 대학구조개혁 평가결과 발표 이후, 평가방식에 대한 불만이나 신뢰성 문제 등이 불거졌다.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할까?

= 첫째, 국립대학과 사립대학은 분리 평가해야한다. 국립대학은 국가가 설립한 대학인데, 사립대학과 같이 비교해서 4등급을 주고 없애겠다는 게 옳은가? 평가가 못 나오면 지원이 부족해서인지, 지방에 있어서인지, 안 되는 이유가 뭔지, 정부가 종합적으로 파악해서 책임지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사립대학보다 좋은 대학으로 만드는 국가적 노력이 필요하다. 교수 학생 비율도 평가항목인데, 국립대학의 교수 인력을 몇 명 고용할지 결정권은 국가가 쥐고 있다. 비율을 맞추려면 결국 학생 수를 줄여야 되는데, 그러면 재정수입이 줄어든다. 사립대학의 경우, 교육의 질과 학원운영의 투명성을 높이면서 준공립화 하겠다는 내부 결의가 있다면 그 부분을 평가해 대대적 지원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둘째, 지금처럼 교육부가 어느 날 교수들을 모아서 평가하는 방식이 아니라, 국가의 고등교육평가기관을 만들어야 한다. 핀란드는 대학을 평가하는 위원회를 구성할 때 다른 나라 교수들도 많이 넣는다. 현장을 방문해보고 여러 가지 항목을 검토하고 권고하는 질적 평가를 한다. 평가를 인센티브와 연결시키지도 않는다. 물론, 취업률을 평가에 포함시키는 나라가 없지는 않다. 그렇다면 동종 취업률을 따져야 한다. 대학이나 학과의 목적, 전공에 부합하는 교육을 했느냐를 평가해야 한다.

- 대학 평가기관이 따로 있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전문성 때문이다. 교육부에 누가 전문성이 있나? 갑자기 실국장이 바뀌고 담당자도 순환 근무를 하는데, 전문가 정보를 축적하고 평가가 정확한지 누적 판단할 수가 없다.

사실 유럽이나 어느 나라나 자체평가를 제일 중요하게 여긴다. 외부에서 이러 이런 기준을 주고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는 프로세스는 곤란하다.

- 국민 세금이 대학에 투입되는 만큼 분명히 관리감독이 필요하다. 그러나 총장직선제 폐지 등 정권의 입맛에 맞는 조건을 평가항목에 넣어 통제 도구로 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 그래서 독립된 전문기관이 있어야 한다. 국회에서 고등교육재정을 배분할 때 국립대학은 어떤 기준으로 배분할지 평가결과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 그 때 신뢰할 수 있는 전문기관에서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 임의로, 교육부 정책을 따르는 어느 대학에 더 주려는 영향력을 행사해선 안 된다.

- 교육개발원 같은 기존 기관에서 이 역할을 할 수는 없나?

= 직업능력개발원과 교육과정평가원을 왜 따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핀란드는 국가교육위원회 안에서 교육과정, 개별 학교에 대한 평가가 모두 이뤄진다. 교육과정과 교육정책이 구분될 이유가 있나.

- 교원대와 사범대가 별도로 필요한가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다.

= 보편적으로 초등교육은 전문성을 인정해 기관을 따로 둔다. 아이들의 발달과정에 맞춰 섬세하게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등교육 이상은 대체로 일반 전공에 더해 교직 과목을 이수하도록 하는데, 교사가 되는 트랙과 일반 트랙은 엄청나게 다르다. 다만, 우리처럼 한 학교에 역사학과도 있고 역사교육학과도 있는 형태는 아니다.

핀란드에서 교직은 석사과정으로 학습기간이 길고, 대체로 복수전공을 한다. 중등교육과정을 다양하게 제공하려면 한 과목만 가지고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 교원양성을 별도 대학이나 단과대로 분리해놓았기 때문에 다른 학문과의 교류가 이뤄지기 어렵고, 교육학의 틀 속에서만 교육을 접근하는 시각을 갖게 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한다.

= 학문적 경향도 그렇고 일반론으로는 그 말이 맞다. 다른 나라들도 종합대학 안에 있다. 다만, 한국의 역사적 맥락에서도 이게 맞는가, 또 개혁할 것인가는 판단이 필요하다. 일단 제주교대와 제주대의 통합 사례가 있으니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좀 더 지켜보자.

사실 우리나라도 핀란드에 이어 세계적 수준의 학업성취도를 보이고 있다. 우수한 교사자원의 덕도 있다. 한국의 혁신학교가 가능했던 이유도 우수하고 헌신적인 교원 때문이라고 본다. 하지만, 학부 수준의 교육만으로는 이런 교원을 길러내기 어렵다. 그래서 교원양성전문대학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대학원까지 따로 만들지 않더라고 5년이면 5년 쭉 배우고 훈련하게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핀란드 교육이 왜 높은 성취를 보일 수 있나. 교사와 학교의 자율성이 높고, 전문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핀란드는 연구기반교사교육(Research based teacher education)이라고 해서 연구와 이론에 기반하고, 동시에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이론과 과학적 근거하도록 한다. 교사라고 하면 사회적으로도 전문가로 존경을 받는다. 온 국민이 교육전문가이고 교육에 대해 누구나 쉽게 얘기하는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 그 정도면 교수 수준 같다.

= 그렇다. 교사들이 학계와도 바로 이어진다. 생물학을 가르치는 교사인데 생물학의 최첨단 연구 내용을 모르면 안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교사도 점차 지식전달자뿐 아니라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 학습촉진자, 조력자)로서 역할 해야 한다. 인터넷에 정보가 넘쳐나고, 아이들도 얼마든지 논문을 찾아 읽을 수 있는 시대다. 그런데 교사들은 본인의 입시나 임용고시 준비할 때의 전략을 최고의 교수학습법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자기가 초기에 가르쳐 본 경험들만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래서 핀란드에서는 이런 질문을 한다. "당신의 실천은 당신한테 자명할지라도 어떤 이론적 근거가 있습니까?" 성찰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니 교사들끼리 자꾸 모여서 토론하고 반성하며 '성찰적 자율성'을 갖게 될 수밖에 없다.

- 대학서열화와 학벌주의 문화가 과도한 사교육과 입시경쟁을 불러오고 있다. 그래서 '국·공립대 공동선발제' 같은 입시 단계에서의 평준화 방안을 제시하는 분도 있다. '대학평준화' 바람직한가? 실현 가능할까?

= 기본적으로 대학의 역할은 나눠져 있어야 한다. 국공립은 국공립대로, 사립은 사립대로 명확한 역할 구분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학문중심대학, 연구중심대학, 산업대학과 폴리텍의 역할에 차이가 나야한다. 그러나 그것은 각 지역별로 균형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굳이 서열을 따지자면 서울교대가 좋겠지만, 제주교대의 교육도 서울교대보다 뒤떨어지지 않는 정도면 된다. 이것은 단순히 대학 서열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도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대학 서열상으로 따지면 지방대의 수준이 굉장히 낮다. 여기서 연구와 산학협력을 해서는 최고의 혁신기업을 세우는 것이 불가능하다. 각 지역에 양질의 대학이 있어야 한다. 학생 선발에서도 연구중심대학은 달라야 한다. 정원에 맞춰 모두 뽑는 게 아니라 일정 등급 이상의 지원 기준을 두고 부합하는 사람만 뽑으면 된다. 그러면 수준은 몇 년 안에 좋아진다.

- 정원을 채우는 방식이 아니라 절대적인 입학 기준을 두고 덜 뽑을 수도 있다? 대학들이 대부분 등록금으로 재원을 충당하고 있는 현실에서 정부의 재원지원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겠다.

= 그렇다. 사실 이런 사례가 없지 않다. 정부가 지원하는 카이스트, 광주과기원, 대구경북과기원 같은 곳은 거의 공짜다. 그곳 학생들은 해주면서 왜 다른 학생들은 안 된다고 하나. 지금까지 아무도 여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 과거에는 수도권이 아니더라도 지역 이름만 대면 떠오르는 지방명문대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경쟁력을 잃고 지방거점국립대학이라는 명칭만 남았다. 지역에서 어떤 거점 역할을 하는지 모르겠다.

= 거점대학이라고 하는 것이 지역의 주요한 종합대학인데, 옛날에 균형발전 차원에서 지정한 것이다. 서울대 수준으로 지원을 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물론 지원을 해준 만큼은 책임을 물었어야 하는데 정부가 사실상 손을 놓았다. 20년 전, 대학을 확장하지 않고 거점대학들에 대한 지원만 잘 했어도 달라졌을 것이다. 일본을 보라. 노벨상이 다 지역 대학에서 나오지 않나. 그게 대학 균형발전의 결과물이다. 지역 국립대학들이 장기적인 전략을 세울 수 있도록 정책을 펴야 한다.

거점대학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지역의 연구역량이 결집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예를 들어 대구에 있는 노동경제학자를 다 합쳐봐야 여섯 명도 안 될 텐데, 이들이 각자 연구도 하고 석·박사를 길러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들이 거점대학 안에서 하나의 학문적 공동체를 구성해 연구도 하고 박사과정도 함께 기를 수 있도록 만들자. 그러면 그 분야만큼은 여느 수도권 명문대 못지않은 수준을 갖출 수 있다.

- 지방대의 역할에 대해 강조해오셨다. 교육정책 담론이 수도권 지식인과 중앙 언론을 위주로 형성되는 만큼, 지방대학의 의미나 역할에 대해 깊이 생각할 기회가 적다. 그래서 지방대 살리기를 이야기하면 지역이기주의로 오해하기도 한다.

= 세종시가 생기고, 정부 관료와 사회과학 연구자들이 많이 내려오면서 사람들 생각이 달라졌다. 주무부처 사람들도 먼 서울까지 애들 안 보내도 되게 충남대, 공주대, 한국교원대, 충북대가 좋은 대학이면 좋겠다고 말한다. 국가균형발전은 각 지역에 있는 모든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문화와 새로운 혁신의 터전인 대학이 지역적으로 형성되어 있지 않으면, 그 지역의 산업도 문화도 예술도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강해지면 구태여 탁한 공기 마시면서 서울에 살 필요가 없다.

- 그렇게만 되면, 비싼 집값을 내면서 서울에 살 필요가 없다. (웃음)

= 국토균형발전을 실현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대학의 기능이 중요하다.

솔직히 지금은 정치인도 관료도 서울의 명문대를 갔다가 내려와야 고위직이 된다. 판사, 검사, 교수, 다 그렇다. 그나마 지방출신들이 차별 없이 활동하는 데가 교사, 의사 정도다. 지방이 식민지다. 이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지역사회와 다 유리되어 있다. 지배자 같다. 우리는 법정에서 재판받아야 되는 사람이고 누구는 판결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관리 대상이 되고 누구는 관리자가 된다. 누구는 우리의 이익을 대변해주는 사람이 되고 우리는 그 사람한테 이익을 청원하는 사람일 뿐이다. 이건 아니지 않나.

- 교육개혁에서 재정과 추진동력은 한정된 자원이다. 차등을 두고 실행한다면 어디에 좀 더 방점을 찍어야 할까?

= 기본적으로 고등학교의 직업계열교육과 전문대학 개혁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이건 명확한 것 같다. 전문대학은 고용기금을 가지고 운영되는 폴리텍 모형이 있으니 잘 들여다보고, 제조업 위주로만 협소하게 구성된 부분은 보완해야 한다.

두 번째는 국공립대학의 등록금을 실질적으로 현격하게 낮추고, 미국의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 소수 계층 우대 정책)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저소득층 자녀일지라도 학업의지와 능력이 있다면 좋은 지방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자. 지방대학도 살리고 교육 불평등도 해소할 수 있다.

- 높은 교육열만큼이나 욕을 많이 먹는 것이 교육부다.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교육부의 관료주의에 대한 불만과 반감이 커서 교육부 축소론도 나온다.

= 교육부를 슬림화하고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 지금은 학교 폭력이 일어나도 교육부가 성명을 발표하는 지경이다. 하지만 교육부의 조정 기능은 필요하다. 국가교육위원회를 만들어 국가교육과정과 학교평가진단을 관할토록 하고, 전문가 집단을 통해 이뤄진 평가 결과를 가지고 교육부가 재정 지원 등 행정을 하면 된다.

초중등교육의 실천적인 핵심은 시도교육청이 하고, 평가와 진단은 국가교육위원회에서 제공할 수 있다. 고등교육부문에서는 국가고등교육연구평가원을 만들어 연구와 평가를 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교육부가 재정을 어떻게 지원할지 조정하면 된다.

- 학교교육과 직업훈련의 연결성을 높일 수 있는 교육 거버넌스는 무엇일까? 90년대 교육부와 노동부를 통합한 영국처럼 관할 부처를 통합하는 방안이 얘기된 적도 있다.

= 노동부와 교육부를 묶는 것은 '교육=고용'으로 너무 협소하게 규정될 수 있다. 조심해야 한다. 오히려 과학부와는 연관이 있다. 대부분의 과학연구는 교육기관에서 하니까. 예를 들어 카이스트는 교육부 산하가 아니기 때문에 대학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사립대학으로 분류된다. 실제로는 국가재정이 지원되는 국공립대학이다.

- 매 정부마다 교육개혁을 추진했지만, 우리 교육이 크게 나아졌다는 느낌을 받기 힘들다. 교육정책의 철학 부재가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어떤 철학을 가지고 교육개혁을 접근해야 할까? 기본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가능할까?

= 교육에 대한 합의는 두 가지 측면이 있을 것 같다. 우리사회는 민주공화국이다. 경제는 시장경제, 정치는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그런데 민주공화국도 시대에 따라 다르다. 지금은 환경 문제가 무엇보다 중요해졌고, 내부의 다양성도 커졌다. 그런 변화된 시대적 지역적 조건 속에서, 독립적이고 책임 있는 국가공동체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시민을 기르는 것이 교육이다. 다른 한 측면으로는 인류 보편성이 결합되어야 한다. 어느 한 민족이나 집단에 속한 지식과 양식이 아닌, 보편성이 있는 교육을 해야 한다.

이것을 기본으로, 고등교육 영역에서는 뭘 할 거고 초중등교육 영역에서는 뭘 할 거냐는 또 다르다. 초중등교육에서는 시민적 자질을 키워주고 배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인류의 중요한 특징이 바로 호기심이다. 그걸 체험하고 실현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이와 동시에, 경제적 능력을 강화해가는 의미에서의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어느 공동체든 자기를 재생산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가만 들어보면 교육의 핵심 가치에 대해서는 진보든 보수든 비슷한 얘기를 한다. 때문에 쉽게 합의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각자 이게 최선이야, 이게 절대적이야 하면 어려워진다. 핀란드 같은 경우는 국가교육과정 안에 초중등교육에서는 평등, 민주주의, 환경, 다양성 같은 항목이 기본 키워드로 다 들어간다. 우리도 교육에 담을 핵심 가치를 찾아가야 할 텐데, 사실은 헌법정신에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인터뷰 및 정리: 최해선 선임연구원

* 이 글은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홈페이지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