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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19일 08시 37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0월 19일 14시 12분 KST

"교육의 중립성 표방하면서 교육부는 중립성 안 지킨다" | 정성식 교사 인터뷰

"내용은 둘째 치고라도 처리 방식에 반감이 들 수밖에 없다. 말은 공청회라지만 평일 2시에 어느 교사가 수업도 안 하고 갈 수 있나. 조퇴라도 하고 가서 말하면, 의견을 반영은 해주나? 제일 나쁜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면, 마음껏 말해보라고 해놓고선 결국 자기 마음대로 하는 사람이다. 그럼 뭐 하러 입 아프게 얘기하라고 하나. 지금 정부가 딱 그렇다. 일반 기업도 대표가 회사를 그런 식으로 운영하면 직원들 반감이 있게 마련인데, 하물며 정부는 말해 무엇 하겠나."

한국의 높은 교육열은 산업화 시기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동력이었다. 그러나 2015년, 우리교육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있다. 교육을 통해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은 가고, 교육이 세대 간 계층 대물림의 수단이 되고 있다. 사교육비는 중산층마저 빈곤의 딜레마에 빠트렸으며, 무한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이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고 있다. 현재의 교육시스템으로는 창의적 인재 육성은커녕 어떤 미래 시민도 살려낼 수 없다는 위기감이 크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개혁의 깃발을 올렸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때로는 병증을 더욱 악화시켰다. 하지만 교육이 우리사회의 골칫거리가 되었다고 해서 그것을 도려내고 다른 무엇으로 그 역할을 대신할 수는 없는 일이다. "교육은 사회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교육은 사회의 반영인 동시에, 사회의 모습을 통해 그 공동체의 교육이 어떠한지를 엿볼 수 있다는 뜻이리라. 지금 한국교육의 위기는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가 질적으로 나빠진 것에 기인한다고 보아야 옳다. 그렇다면 위기의 한국사회를 구할 방법은 무엇일까. 그 답 역시 '교육'을 통한 변화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는 교육 문제에 천착해온 교육 현장, 학계, 정치, 시민사회 전문가들의 지혜를 듣는 '교육만이 대안이다' 시리즈를 통해, 위기의 한국을 구할 교육 패러다임 전환의 길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① 이해찬 전 교육부장관

② 하연섭 연세대 교수

작은 농어촌학교 선생님이 지난해 말 출간한 책 한 권이 교사들 사이에서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교육과정에 돌직구를 던져라>라는 도발적 제목의 책이다. 이 책은 교육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교육 내용과 학습 활동을 편성한 '교육과정'이 현실과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지, 그 원인은 무엇인지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학습연구년을 맞은 저자 정성식 교사는 전국 각지에서 밀려오는 강의요청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을 보내고 있다. 우리 초중등 교육의 문제점에 대한 공감과 이를 함께 풀어보고자 하는 현장의 갈증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일 것이다.

교육부의 '2015 교육과정 개정' 고시와 역사교과서 국정화 움직임으로 시끄러웠던 10월 초, 정성식 교사를 만나기 위해 익산을 찾았다. 우리나라 최대의 곡창지대로, 대하소설 '아리랑'의 배경이기도 한 만경평야는 누렇게 익은 벼로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정성식 교사는 "어느 교과서는 이곳 쌀이 일제로부터 수탈당했던 역사를 '수출'이라 왜곡하고 있다"며 에둘러 역사교과서 문제를 비판했다.

- '2015 개정 교육과정'이 확정 고시됐다. 졸속 개정이다,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았다 등 여러 비판이 있다. 어떻게 평가하시나.

= 교사들 상당수는 말도 안 된다고 한다. 개정 이유 자체가 너무 짜 맞춘 것 같다.

내용은 둘째 치고라도 처리 방식에 반감이 들 수밖에 없다. 말은 공청회라지만 평일 2시에 어느 교사가 수업도 안 하고 갈 수 있나. 조퇴라도 하고 가서 말하면, 의견을 반영은 해주나? 제일 나쁜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면, 마음껏 말해보라고 해놓고선 결국 자기 마음대로 하는 사람이다. 그럼 뭐 하러 입 아프게 얘기하라고 하나. 지금 정부가 딱 그렇다. 일반 기업도 대표가 회사를 그런 식으로 운영하면 직원들 반감이 있게 마련인데, 하물며 정부는 말해 무엇 하겠나.

- 일선 교사들의 반감을 사면서까지 왜 이렇게 밀어붙이는 걸까?

= 2007년, 2009년, 2011년, 2015년 교육과정 개정 이유를 다 봤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급변하는 시대상황을 교육과정에 반영하고, 미래사회를 주도할 인재 양성'이 핵심 이유다. 그런데 시대가 그렇게 2년마다 급변하나?

바꾸려면 시대에 뒤떨어진 내용만 조금 손대면 되는데, 매번 총론부터 뜯어 고친다. 저는 거기에 다른 뜻이 있다고 본다.

정성식 교사

- 잦은 교육과정 개정에 다른 의도가 있다?

= 교육부 입장에서 보면 말 안 듣는 (진보) 교육감들을 제어하기 위한 것이다. 교육부가 시도교육청을 제어하는 방법은 교육과정과 예산, 이렇게 두 가지다. 현행 행정체제 속에서 교육과정을 고시하면, 이것을 근거로 모든 사업이 파생된다. 예산도 사용처를 정해서 교부금으로 내리면 교육감도 어쩔 수 없다. 학교로 내려오는 공문의 주범이 교육부 사업인데, 추진 근거를 교육과정 총론에서 많이 따온다. 바꿔 말하자면, 정권의 입맛에 맞는 사업을 추진하고 교육감들을 제어하려면 교육과정을 바꿔야 하는 것이다.

교육의 중립성을 표방하면서도 교육부는 중립성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본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도 마찬가지다. 국정화하고 있는 곳이 OECD 국가 중에서 거의 없다. 독일의 나치시대, 일본이 군국주의시대, 우리도 유신시대, 지금은 북한, 몽골, 베트남 정도다. OECD 34개국 중 17개 국가는 아예 자유발행제다.

- 현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집착하는 이유는 뭐라고 보나.

= 교육을 통해 정권 재창출의 교두보를 마련하자는 의도로 교육에 손을 대고 있다. 잦은 교육과정 개정이 이렇게 혼란을 초래하는데도 기어코 추진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독일의 교육의 출발점은 반나치 교육이다. 패전 이후 독일은 그릇된 역사와의 결별을 선언하고 권력의 중앙집중화를 막았다. 국가는 복지를 포함한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갖추는데 주력하고 개인의 삶을 최대한 보장한다. 교육정책도 이런 방향으로 일관되게 유지되어 왔다. 주정부에 따라 학제가 다르기도 하다. 연방정부는 이를 최대한 존중하고 지역별, 광구별 학교담당자를 두어 기본적인 운영실태만 점검하고 있다. 교육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우리 정부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 교육과정을 졸속으로 자주 바꾸는 게 문제라는 데 동의한다. 그런데 만약 다음 정권이 들어서면 이렇게 망가진 교육과정을 그대로 놔둘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겠나? 그럼 또 개정할 수밖에 없는데, 딜레마다.

= 개정을 하더라도 어떤 방향과 원칙을 가지고 하느냐의 문제다.

지금 우리는 교육과정에 대한 교사의 결정권이 없다. 지난달에 독일에 다녀왔는데, 독일 교사들은 '내가 교육과정이다'라는 자부심이 있더라. 국가는 큰 틀의 가이드라인만 준다. 교과서도 자유발행제인데, 심지어 잘 보지도 않는다. 수업에 맞는 교육 자료를 교사가 만들어 쓴다. 그게 교사의 전문성이다. 정부에서 다 짜준 것, 그것도 교과서 한 권으로 획일화된 체제는 곤란하다. 교사가 의지를 가지고 계속 전문성을 개발하면서 교육을 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개정이 되어야 한다.

- 교사들이 교육과정을 창의적으로 구성하고 직접 교과서도 만들어 쓸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 여건이 만만찮다. 공문 처리 때문에 교육을 못한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 철학자 칼 포퍼는 "추상적 선의 실현보다 구체적 악의 제거를 위해 노력하라"고 말했다.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뭘 새롭게 하려 하지 말고, 교육의 본질에 부합하지 않는 것을 학교에서 빼내야 한다.

학교가 이런 시스템을 갖고 있는 것은 결국 교육이 정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정책기관이 아니라 행정기관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 예전부터 나온 얘긴데, 백년지대계를 얘기하려면 가칭 교육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어서 정권과 무관하게 교육의 앞날을 내다보고 설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권 바뀐다고 교과서를 국정화하는 이런 구조를 근본적으로 깨지 않으면 교육정상화는 어렵다.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도 불완전하다. 실질적으로 직선 교육감을 임명직 장관이 컨트롤한다. 이런 모순을 해결해야 학교가 살아난다.

- 교육보다 교무를 잘 하는 선생님이 승진을 하는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셨다. 일선 교사들도 오랜 교육 현장 전문가로서 자부심을 갖는 게 아니라 직급이 높아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아닌가? 관리 업무 담당자가 아니라 상급자란 의미의 '교장'이라는 명칭 자체를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 얼마 전, '감'이 일제식 표현이라면서 '교감'을 '부교장'으로 하자는 개정안이 나왔다. 그러면 '교육감'은 왜 안 바꾸나. 또, 학교는 교장-교감 순인데, 교육청은 교육감-교육장 체계다. 누가 더 높냐고 아이들도 물어본다. 똑같은 한자인데, 그렇게 쓰고 있다.

결국엔 승진제도의 문제다. 이름을 어떻게 바꾸는가 보다 어떤 역할을 하는가가 중요하다. 저는 최소한 법리에는 충실했으면 좋겠다. 초중등교육법에 보면 '교무'는 관리자에게 권한이 있다. 교사에게는 '교육'의 책임밖에 없다. 행정업무는 교장, 교감이 해야 하는 일이란 얘기다. 그 인력으로 부족하니까 보직교사를 둬서 교무를 분장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부장교사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각 교사별로 업무분장표를 짜고 내부 결재까지 해서 책임을 지우는 식으로 운영한다. 현행법과 달리 관행적으로 하는 것이 너무 많다. 승진이 아니라 전직 개념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래야 교사가 가르치는 데 전념할 수 있다.

- 고쳐야할 관행이라면 또 어떤 게 있을까?

= 학교 안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학습연구년을 보내며 학교 밖에서 바라보니 이상한 게 많다. 어디나 교장실에 가보면 역대 교장단 사진이 있다. 오래된 곳은 일본칼을 찬 일제강점기 교장 사진도 있다. 교육청에 가도 강당, 회의실에 역대 교육감, 교육장 사진이 있다. 학교의 역사라고 걸어두는 것일 텐데, 어떻게 기관장이 역사인가. 볼 때마다 "영정사진 좀 내리자"고 얘길 하고 있다. 관료조직의 민주성이 그 사회의 민주성을 대변하는데, 우리의 관료조직은 그렇게 민주적이지 못하다. 대통령 하나 바뀌었다고 행정부가 이렇게 후퇴하는 걸 봐도 그렇다. 우리 사회의 조직이 그만큼 민주적이지 못하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학생대표에게 학교장이 임명장을 주는 것도 그렇다. 임명은 법적으로 인사권을 갖고 있는 사람이 주는 것이다. 직접 선출된 학생대표를 어떻게 임명하나. 당선이다. 그럼 당선증을 줘야한다.

또 있다. 가정통신문이다. 레터 형식으로 틀을 갖춰 작성하고 결재 받아서 복사해 나눠주려면 한 시간이 그냥 간다. 급하게 써야 할 때는 아이들을 자습시키고 그 일을 해야 한다. 형식적인 면도 많다. 제일 막히는 데가 계절인사다. 창밖을 한참 보고 멍 때리면서 문학적 감수성을 불러와야 한다. 본론은 간단한데, 인사에서 막히면 답답하다. 알림이나 앱도 많은 요즘 세상에 용건만 간단하게 전달하면 될 것을 꼭 문서화해서 결재하는 시스템이 필요한가.

학교 자체적으로 작성하는 문서도 많다. 그냥 하면 되는데 모든 걸 문서로, 간단하게 계획서 한 장 가지고 하면 될 것을 10장, 20장씩 쓰게 한다. 그걸 실적이라고 학교 등급을 매긴다. 그런 정책을 계속 펴나가니까 관료조직은 비대해지고 학교의 신음소리는 높아지는 것이다.

- 교육부가 과도하다고 느낄 만큼 구체적으로 교육과정 틀을 만들어 지침을 내리는데, 매년 교사들이 두꺼운 종이형태의 교육과정을 또 만들어서 교육청에 제출해오고 있다고 지적하셨다. 법적 근거도 없는데, 이런 일이 계속 현장에서 벌어질 수 있었던 것도 관행이어서라고.

=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가 만들어진 게 2003년이다. 도입 목적이 '교원의 업무 경감', '학교교육의 경쟁력 강화'였다. 교사들이 문서업무 하지 말자고 만들었으면 기존 방식은 없애야 하는데, 10년간 중복작업을 한 것이다.

그래서 제가 민원을 넣었다. 행정은 법치가 기본인데, 법적 근거도 없을 것을 왜 요구하는지 물었다. 문서작업으로 인한 교사들의 고충이 너무 크니 법령을 검토해서 시정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김승환 교육감이 헌법을 전공한 분이라 법적으로 타당한 얘기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해당 과에 지시해 검토 한 후, 17개 시·도 중 제일 먼저 종이 교육과정 제출 관행을 없앴다. 그게 2012년이었다. 그렇게까지 되리라고는 기대를 못했던 일이다.

공모사업도 좀 줄이라고 책에 썼는데, 올해 전북교육청은 공모사업을 대폭 축소했다. 40여 개에 달했는데, 6개를 제외하고는 없앴다.

- 중복 작업만 없어도 교사들의 고충이 줄겠다.

= 대부분의 학교가 이미 홈페이지를 가지고 있는데,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학교 알림이라는 것을 또 만들었다. 채널이 하나 더 생기니 양식에 맞춰 자료를 중복 업로드해야 한다. 부가되는 행정업무가 만만찮다.

1년간 학교에 1만 개가 넘는 공문이 온다. 국회의원 요구자료는 왜 이렇게 많은지, 가져다가 어디에 쓰는지 궁금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매번 3년치, 5년치 자료를 뒤져서 보고하려면 서고를 다 뒤져야 한다. 하루 종일 씨름할 때도 있다. 그러니 수업이 안 된다. 그런 공문일수록 기일도 촉박하다. 저는 거꾸로 요구하고 싶다. 이렇게 많은 자료를 요구하는데, 보내면 어떤 용도로 활용되었는지 알 수 있도록 출처라도 좀 밝혀달라고.

정성식 교사

- 일부에서는 행정 전담 요원을 배정해 교사의 공문 작업을 줄이자고 하는데, 현실에선 학교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 지금도 학교 행정사무원의 처우가 상당히 열악하다. 한 달 급여가 백여만 원인데, 교사보다 퇴근시간은 더 늦다. 이래서 어디 일할 맛이 나겠나.

예전에 교사들이 해왔던 교무를 요즘은 행정실로 많이 넘기는 추세다. 일은 줄어들지 않은 상태이다 보니 교무실과 행정실 간 네가 할래 내가 할래 갈등만 깊어진다. 대학을 보면, 교수들이 있고, 교수의 교육활동을 행정이 지원해준다. 그런데 학교는 교육과 행정 양대 조직으로 이분해놓고, 서로 싸우게 만드는 구조다. 정규직 행정사무원을 채용하고 이런 분들이 교육을 지원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근무 환경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교사의 행정업무 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방과후학교와 돌봄교실도 지적하셨다. 학부모나 정부 입장에서는 기존 학교 시설을 폭넓게 활용하는 게 합리적으로 보일 텐데, '방 빼!'라고 말하는 건 어찌 보면 교사나 교직원 이기주의로 비칠 수도 있을 것 같다.

= 처음엔 상당한 오해를 받았다. 학부모한테 "저 선생님 그렇게 안 봤는데"라는 얘기까지 들었다.

방과후학교는 참여정부 시절 만들어진 것인데, 의도는 선한 것이었지만 너무 조급했다고 생각한다.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주무부처를 명기했어야 하는데, 교육인적자원부에서 고시만 발표해버리니까 모든 일이 학교에 떠넘겨졌다.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교육부, 3개 부처가 예산은 각자 가지고 책임은 누구도 지지 않는다. 예산 규모도 만만치 않다. 작년에 우리학교는 교수학습비가 8000만 원 정도인데 방과후학교 운영비가 7800만 원이었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농어촌학교라서 좀 더 혜택을 받은 것이긴 한데, 혜택이 오히려 아이들을 혹사시키는 결과로 가고 있다.

지금의 방과후학교는 정상적인 교육과정도 침해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정규 교육과정에도 몇 학년 때 리코더를 배우는 게 있는데, 교육과정과 별도로 방과후학교 리코더 반이 개설된다. 목적사업비를 소모하려면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고, 교육부 평가지표에도 잡혀 있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반강제로 학생들을 동원한다. 그나마 예체능 위주면 다행인데, 영어, 수학, 주산 같이 교과 위주인 곳도 많다. 아이들의 학습 부담이 크다.

지난달 다녀온 독일도 그렇고 북유럽 국가들도 방과후학교가 있다. 필요하면 학교 시설을 쓰는데, 운영주체는 확실히 구분되어 있다. 학교는 정상적 커리큘럼을 전담하고, 방과후학교는 법규에 명문화해 지자체가 운영을 책임진다. 우리도 이런 시스템이로 가야한다.

- 법적으론 주당 22시간이지만 아이들이 사실상 주당 44시간 수업을 받고 있는데, 왜 자식을 끔찍이도 걱정하는 어른들이 여기에 대해서는 침묵하는지 문제제기를 하셨다. 무작정 돌봄교실 시간과 대상을 늘릴 것이 아니라, 아이들과 교사 모두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문제의식에도 공감한다.

= 아이들이 8교시 수업을 연중 받는다고 보면 된다. 하루 8시간 일하는 어른을 위해 아이를 맡겨놓기 위한 시스템이다. 게다가 아이들은 하교 후 학원까지 가야한다.

먹고 살기 바쁘다 보니 요즘은 아이 키우는 걸 '아웃소싱'한다. 학교든 학원이든 지역아동센터든 어딘가에 위탁해야 교육이 좀 되는 거 같다고 느낀다. 그런데 이게 옳은 길일까? 스웨덴 국립교육청 과장을 지낸 황선준 박사의 책 제목 '스칸디 부모는 자녀에게 시간을 선물한다'가 저는 참 인상 깊었다. 부모가 자녀와 시간을 보내면서 인성을 키워야지, 학교에서 애들 붙들어두고 경찰을 불러서 인성교육을 한다고 그게 인성 함양이 되는 것인가. 너무 어른 중심의 이기적 접근이다.

우리학교에서 시범적으로 1년만 금요일을 방과후학교 없는 날로 운영해봤다. 애들이 금요일에 만세를 부르면서 하교를 하더라. '불금'이라는 말 있지 않나. 애들은 금요일에도 아동센터에 있는데, 어른들만 불금을 즐겨서야 되겠나.

- 학부모들이 놀면서 아이들을 맡겨놓는 건 아닐 것이다.

= 저도 예전에는 학부모들이 참여하기 좋게 학예회 같은 것을 저녁에 하려 했다. 그러다 보면 9시, 10시까지 애들이 집에 못 간다. 초등학교 1, 2학년생이 연습한다고 저녁까지 붙들려 있다. 가만 보니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더라. 학교의 프로그램과 행사는 제때 하고, 부모가 내 자녀의 학교에 일이 있다고 떳떳하게 직장에 얘기하고 월차도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어디 우리나라 직장이 그런가. 눈치 보여서 말을 못하는 거다. 이런 시스템 자체가 문제다.

- 학생들의 진로체험기회를 강화하기 위해 '자유학기제'가 도입되었는데, 또 다른 사교육 시장을 열었다는 비판도 있다. 진로탐색도 한 학기에 몰아서 한다는 벼락치기 발상이다.

= 자유학기제의 취지 자체는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프라가 구축 안 된 상태에서 이렇게 시행되면, 직업체험과 무관하게 갖춰야 할 '또 하나의 스펙'이 될 뿐이다. 서울시내 중학교 2학년이 다 자유학기로 쏟아져 나온다고 생각해보라. 이걸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현실적인 우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성하는 이유는 하나다. 한 학기만이라도 애들이 시험으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이다. 제 아들이 중3인데, 모의고사는 분기별로 한 번,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도 있다. 시험 끝나면 그날 친구들이랑 노래방·PC방 가서 잠깐 스트레스 풀지, 금방 다시 시험공부 체제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게 지금 중학생들의 삶이다.

- 요즘 진로체험프로그램이라는 것들이 그럴듯한 현장에 가서 코스프레를 해보는 것에 불과한 것 같다. 실제 그 일의 본질적 특성, 필요한 재능 등을 탐색할 수 있는 형태가 아니다. 방과후학교를 추가 공부가 아니라 그런 취지의 프로그램으로 운영할 수는 없을까?

= 독일 김나지움(중고등학교)을 참고할 만하다. 제가 방문했던 곳은 100여 개의 학내 동아리가 있었다. 의학동아리는 지역 의사, 법학동아리는 법조인 학부모가 재능기부를 하기도 한다. 2년 동안 여러 동아리를 체험한 후, 졸업 전까지 한두 개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지역 전문가와 선배로부터 지도를 받는다. 우리와는 차원이 다르다.

아이들을 그냥 풀어놓을 것이 아니라 체계를 잡아서 제대로 개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교육과정 운영을 중심으로 학교예산이 집행되지 않는 문제도 지적하셨다. 자율적 활용이 가능한 학교기본운영비 보다 용처를 교육부가 미리 다 정해둔 목적사업비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예산을 조금이라도 더 따기 위해 각종 공모에 지원한 서류 작업을 하느라 교사들의 교무 부담이 가중되는 면도 있고 말이다.

= 교사들이 맡기 싫어하는 업무가 돈을 많이 집행해야 되는 업무다. 회계처리 절차가 있으니 공문 작업도 많이 해야 하고, 회계감사도 받아야 한다. 방과후교실이 대표적인 경우다.

교육부의 특별사업이 문제라고 말했는데, 이 사업으로 배정된 예산이 각 시·도교육청과 시·군·구 교육지원청에 떨어지면, 공모사업 형태로 다시 학교에 내려온다. 원청에서 하청, 재하청, 이런 구조다. 그러다 보니 교육과정과 무관하게 일회성 전시성 행사로 예산이 편성된다. 한 날 한 시에 버스 불러서 전교생이 같이 어디 가는 것이다. 담임선생님이 교과와 연관 지어서 반 아이들을 데리고 체험을 하러 갈 수가 없다.

학교는 업무분장표로 업무를 다 쪼개놓았다. 도서 담당자, 학습준비물 담당자, 교실환경 담당자, 각 담당 교사에게 예산 집행 권한도 준다. 그런데 집행 계획을 내라고 하는 게 3월이다. 1년치 학습준비물 구입 계획, 도서 구입 계획을 3월에 내라고 한다. 그 때는 새로 맡은 아이들 파악과 수업계획도 준비가 덜 된 시기다. 그러다 보니 돈 안 가져가려고 한다. 하지만 담당자 입장에서는 예산을 빨리 털어야 한다. 학습준비물은 3월 초에 빨리 사줘서 학습에 차질이 없도록 하라고, 어느 시기에 집행했는지 확인하는 공문까지 온다. 그러면 담당자는 각 반별로 독촉을 하게 된다. 결국 고민할 틈 없이 만만한 학용품이나 사게 되는 것이다.

나에게 예산 집행의 권한이 있다면, 필요한 학습 준비물을 제 때에 좀 더 치밀하게 준비해서 살 것이다. 우리반 아이들과 어떤 책을 읽고 토론해보면 좋겠다 싶으면, 같은 책을 여러 권 살 수도 있다. 수업과 연관된 예산집행이 가능하다.

지금까지 많은 분들이 교육과정-수업-평가의 불일치 문제를 얘기했다. 여기에다 학교회계와의 불일치도 해소가 되어야 학교교육이 정상화된다고 생각한다.

- 이런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교사공동체'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말씀하신 것 같다. 지난 7월 세종시에서 열린 '교사가 만들어가는 교육이야기' 모임을 주도적으로 준비하셨다고 들었다.

= 정부 탓, 교육청 탓, 누구 탓할 것이 아니라 교사의 자각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자각은 연수 몇 학점 들어서 길러지는 게 아니지 않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움직임, 발품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교사모임, 독서모임, 수업공개모임 같은 모임을 좋아한다. 익산에서 지역교사네트워크모임도 해왔는데, 올해는 학습연구년으로 조금 쉬면서 욕심이 나서 다른 지역에서도 모여보자 한 것이 일이 커졌다.

전국에서 교사 330명이 참석했다. 제주도에서 비행기로 날아오고 강원도에서도 카풀로 왔다. 반향이 커서 놀랐다. 기존 교원 단체들도 이런 활동을 안 했던 것이 아닌데, 색깔을 전혀 띠지 않고 그냥 갈증을 느끼는 교사 누구라도 올 수 있게 열어뒀더니 많이 왔다.

이 모임을 정례화해 나가려 한다. 일부에선 제3의 교원단체로 가는 것이냐고도 하는데, 저는 느슨한 연대를 기본으로 하는 자발적 온-오프라인 교사 네트워크 정도면 족하다는 생각이다. 10월 31일 전북에서 다시 모임을 가질 예정이다. 그 전에 세종시의 모임 내용을 묶은 책도 출간된다.

- 제목이 뭔가?

= '교사독립선언'이다. 우리교육에서 한 번도 교사가 주체가 되었던 적이 없다. 교육과정을 포함한 교육정책은 늘 정치권력, 교육학자, 교육관료들의 전유물이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교사인데, 가르칠 내용은 이들이 다 정해줬다. 교육과정에 학술적으로 심오한 것을 반영해야 하니까 그런가 싶었는데, 들어 보니 서로 자기 전공 분량을 많이 넣으려고 싸운다더라. 교사와 교육이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한 적은 있나? 없다. 교육운동도 과도한 이념성과 진영논리로부터 독립할 필요가 있다.

한 번 모임을 가지고 어떻게 책을 만드냐, 침소봉대하는 것 아니냐, 그런 말도 있었다. 하지만 뭐 어떤가. 교수들은 학회 한 번하고 책을 만드는데, 교사라고 왜 안 되나. 교수들이 전유했던 교육학을 실제 교육현장에서 삶으로 실천해온 우리 교사들이 '실천교육학'으로 풀어내보는 것도 좋지 않겠나. 교사들이 모이고 떠들고 꿈꾸는 그런 마당을 계속 만들고 싶다.

인터뷰 및 정리: 최해선 선임연구원

* 이 글은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홈페이지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