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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28일 06시 20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8월 28일 14시 12분 KST

샴페인보다는 고등전략이 필요한 남북관계

글 | 김창수 코리아연구원 원장

이번 남북합의가 중요한 것은 대화와 협상으로 군사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20일 북한이 14.5mm 고사총 1발을 남측 야산에 발사했다. 이어서 76.2 mm 직사포 3발을 비무장지대 남측지역에 발사했다. 이어서 국군이 155mm 자주포 29발을 북측 GP 주변에 대응발사했다. 이로써 남북한의 긴장은 고조되기 시작했다. 북한은 이례적으로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비상확대회의라는, 처음으로 공개된 회의를 소집했다. 이 회의에서 준전시상태를 선포하면서 군사적 긴장은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으로 치달았다. 미국이 B-52를 비롯한 전략무기들을 배치한다는 소식도 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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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22일 18시 부터 사흘간 진행된 남북 당국회담 ⓒ통일부

대화와 협상으로 군사위기 극복한 윈윈 협상

이런 상황에서 전쟁불사를 외치는 주장들이 난무했다. 심지어 7일 전쟁론까지 대두했다. 북한에서도 노동신문이 100만 명이 군입대 청원을 했다고 보도했다. 이런 상황에서 무박 4일의 대화와 협상으로 군사적 위기가 해소되기 시작한 것이다. 군사적 해결은 전쟁으로 이어지고, 그 결과는 파멸이다.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서 전의를 불태우는 것을 이해못할 바는 아니지만, 평화적 해결 능력을 키우지 않고 전쟁불사만을 외칠 경우 실제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대포가 쌓이면 저절로 터지기 때문이다.

흔히 정책을 말할 때 강경파와 온건파로 구분한다. 강경파는 원칙을 중요시하고, 온건파는 타협을 중요시 여긴다. 하지만 복잡하게 꼬인 세상사를 풀어가는 방법을 강경과 온건으로 구분하는 것은 단순한 이분법이다. 세상일은 무 자르듯이 둘로 싹둑 잘라지는 것이 아니다. 정책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강경이나 온건보다 '현명한 정책'이냐의 문제이다. 모든 상황에서 강경책이 옳고, 모든 상황에서 온건책이 옳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황판단을 정확하게 하고 현명하게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남북한의 대결상황에서 가장 현명한 것은 국방능력은 튼튼히 하면서도 대화와 협상의 수단에 의한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대화와 협상에서 지혜로운 협상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윈윈(win-win)협상이다. 이번 8.24 남북합의는 윈윈 협상이기 때문에 칭찬받을 만하다. 그런데 남한은 원칙을 가지고 상대를 이겼다는 식으로 해석한다. 북한은 남한이 있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일방적으로 사태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모두 자신들의 강경책에 의해서 승리를 거두었다는 식으로 해석을 하고 있다. 협상의 결과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것이 인간사이기는 하다. 그렇더라도 윈윈 협상이라는 훌륭한 성과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은 현명한 태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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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25일 새벽, 남북 고위당국회담 공동보도문을 발표 ⓒ통일부

체면 세워주기

윈윈협상의 필요성은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에서부터 제시된다. 인간의 뇌간은 파충류의 뇌라고도 불리는 것으로, 먹고 싸우고 도망치고 성적인 행동을 하는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감정의 원천이다. 이 도마뱀 뇌는 이성적인 뇌를 쉽사리 지배해버린다. 인간이 체면을 구길 때마다 도마뱀 뇌가 전면에 나서기 시작한다. 도마뱀 뇌가 전면에 나서면 구겨진 체면에 대한 반응은 오직 복수 한 가지밖에 없다. 협상과정에서 패자는 체면을 구기고 구겨진 체면은 도마뱀 뇌를 발동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협상이나 인간관계에서 지혜는 상대의 체면 살려주기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지난 남북 고위급 접촉의 공동보도문 2항은 윈윈 협상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정부는 주체를 명시한 북한의 사과를 목표로 했다. 2항은 "북측은 최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남측 진영에서 발생한 지뢰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하여 유감을 표명한다"고 되어 있다. 여기서 사과의 주체로서 '북측'을 명시한 것은 남한의 성과이다. 사과라는 표현 대신에 '유감'을 표현한 것은 북한에 대한 체면을 살려주는 것이다.

이처럼 체면 세우기는 인간의 개별적인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에서도 중요한 것이다. 국제정치의 역사에서 체면 세우기를 실패해서 더 큰 실패를 가져온 사례도 많다. 소탐대실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1차대전 강화조약인 베르사유조약과 쿠바 미사일 사태다.

베르사유조약은 역사상 패자를 응징하고 승자가 전과를 거둔 대표적인 조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베르사유조약으로 독일에 대해 과대하게 배상금을 요구함으로써 독일은 실업과 가난에 노출되었다. 이런 혼돈 속에서 히틀러가 "내가 베르사유조약을 찢어 없애겠습니다"고 제안하자, 독일 국민들은 "아돌프, 당신이 최고입니다"라고 응답한다. 그 후 몇 년 사이에 히틀러는 베르사유조약이 빼앗아간 모든 것을 독일인에게 돌려주었다. 그리고 유럽은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전쟁터가 되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케네디는 단호하게 핵전쟁 최후통첩을 하였다. 미국과 소련이 팽팽하게 치킨 게임을 하던 상황에서 케네디는 흐루시초프를 향해서 단호한 태도를 취했던 것이다. 케네디는 영웅이 되었고, 흐루시초프는 희생양이 되었다. 케네디가 이런 선택을 한 배경에는 재선을 겨냥한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인간의 사건들 속에는 '그 후에 영원히 행복하게'라는 것이 없다"는 교훈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쿠바 미사일 사태 이후 흐루시초프는 해임되고 브레즈네프가 실권을 장악하였다. 브레즈네프는 소련을 군사강국으로 만들었다. 미국에게 제한적인 위협밖에 되지 않던 소련이 10년 만에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후 미국은 냉전이 해체될 때까지 소련의 위협에 노출되어야 했다. 실제로 1980년대 소련의 핵능력은 미국을 능가했다. 또 쿠바 미사일 사태의 교훈으로 소련은 해양군사능력을 급격히 향상시켜서 냉전 후기에는 세계 최대규모의 배수량을 자랑하는 거대해군으로 성장하기까지 했다.

사실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흐루시초프가 일방적으로 양보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은 소련이 쿠바 미사일 배치를 중단하면 터키에 배치한 주피터 미사일을 철수하기로 했던 것이다. 주피터 미사일의 사정거리에는 모스크바가 포함되었다. 하지만 미국과 소련은 미국이 모스크바를 겨냥한 주피터 미사일을 철수하기로 했다는 사실은 공개하지 않았다. 소련은 전체주의이기 때문에 국민여론을 관리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결국 쿠바 미사일 사태는 케네디의 과감한 결단과 원칙에 의한 승리로 포장되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자존심에 손상을 입은 소련이 군사력을 강화해 그 후 30년 동안 미소군비경쟁의 시대로 돌입한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베르사유조약과 쿠바사태는 협상의 전리품을 일방이 독식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전리품은 승자에게'가 아닌, 패배한 적들의 체면을 세워주는 것이 협상이 추구하는 지속된 평화를 보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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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7월 4일, 7.4남북공동성명서를 발표하는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e영상역사관

박정희의 고등전략

"1972년 남북한은 분단 역사상 최초로 대화를 통해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당시 남북간 대립과 갈등의 골은 지금보다 훨씬 깊었고, 한반도의 긴장도 매우 높았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815 경축사)

박근혜 대통령의 지적처럼 냉전시기에 북한과의 대결을 통해서 자신들의 정통성을 보완하려고 했던 박정희 정권이나, 나아가 전두환 정권도 대화와 협상을 겁쟁이나 비겁한 행동으로는 여기지 않았다.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대화의 수단을 꺼내들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7년부터 1969년까지 북한의 도발이 극에 달했음에도 불구하고 1970년에 8.15 평화통일선언을 발표하고 적십자회담을 시작했다. 전두환 역시 1983년 아웅산 테러 2년 후인 1985년에 최초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실시했다.

1970년 평화통일선언을 하면서 남북대화를 추진할 때에도 반대여론이 있었다. 이에 대해서 당시 청와대는 "남침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북한에게, 전쟁을 하지 말고 어느 체제가 더 잘 살게 할 수 있는가를 경쟁하자고 던져 주는 것이 전쟁억제를 위해 몇 십 배의 효과를 낼 수 있는 고등전략"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긴장을 고조시켜서 협상을 압박하는 북한의 군사모험주의에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대응하며 사생결단을 강조하는 것은 분명 하등전략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8.15 평화통일구상 선언에서 "긴장상태의 완화를 거쳐 평화통일을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통일 이전에 긴장완화, 전쟁방지, 평화정착 등의 중간단계 설정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다. 이러한 정책은 역대 한국정부에 계승되었다. 이 중간단계가 바로 노태우 정부시절에 제기되어 지금까지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이 된 '남북연합'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6.15 공동선언에서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낮은단계 연방제 사이에 공통성'이 있다고 합의했던 바로 그 연합제가 남북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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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월 13일 남북정상회담, 평양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과 환대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e영상역사관

박정희의 전략이 김대중 노무현 시대에 꽃피다

박정희 대통령은 8.15 평화통일 선언 이후 본격적으로 대북협상을 준비하였다. 대북협상은 남북한의 안보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도 세웠다. 이에 따라서 1971년에 이산가족 재회를 위한 적십자회담을 제안하였다. 북한이 수락하여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남북대화가 재개되었으며, 이후 남북 적십자회담을 거쳐서 1972년에는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기에 이른다. '선 인도주의 회담, 후 남북당국자 회담'이라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남북대화의 패턴은 이미 박정희 시절 그 기초가 마련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자존심 경쟁이 아닌 '고등전략'을 사용하기 위해 남북대화를 시작했던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구상은 7.4 남북공동성명으로 이어지는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7.4 공동성명은 남한에서는 유신체제, 북한에서는 주석제를 출범시키는 동력이 되었을 뿐 더이상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는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 역설적이게도 박정희 대통령이 구상했던 대북 고등전략이 김대중 노무현 시절에 꽃을 피웠다.

박근혜 대통령 시대에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 고등전략을 복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려서는 안 된다. 한반도의 불안은 여전하고, 평화를 위해 갈 길은 너무나 멀다.

* 이 글은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홈페이지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