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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03일 12시 44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7월 03일 14시 12분 KST

아베의 구상에 꽃길 깔아준 박근혜 대통령

한일협정 체결 50년인 지난 6월 22일에 한일 정상은 서울과 도쿄에서 열린 기념행사에 교차로 참석했다. 일본 언론은 9월이면 한일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지금까지 지나칠 정도로 강경정책을 펼쳤다. 박대통령의 대일강경책이 지나치다고 평가했던 사람들도 이같은 대일정책의 전환에 대해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뚜렷한 이유가 없는 갑작스런 전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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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2일,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 리셉션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


'2차대전 종전 70주년 외교'

한일관계는 개선되어야 한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정책전환은 중심과 전략이 없이 아베의 구상에 휘둘릴 수 있다. 국내정치를 잘못하면 국민들이 심판할 수 있지만 외교를 잘못하면 수십년간 나라의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 청일전쟁이나 2차대전 종전 이후 한국의 외교가 이후 우리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한국의 외교는 미, 중, 일, 러가 벌이고 있는 '2차대전 종전 70주년 외교'라는 장기판에서 수동적으로 끌려가고 있는 상황이다. 한일협정 체결 50년을 맞아 갑작스럽게 정책전환을 하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2차대전 종전 70주년을 계기로 각국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특히 일본의 아베 총리는 샌프란시스코 조약 발효일인 4월 28일에 맞춰 미국을 방문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1951년에 한국을 배제하고 일본에게 관대하게 체결된 2차대전 강화조약이다. 그 결과로 우리는 식민지 침략을 비롯하여 독도문제와 종군위안부 문제를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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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조약 발효일인 4월 28일 아베 총리 미국 방문 ⓒThe White House


아베의 구상에 꽃길 깔아준 박근혜 대통령

아베는 성공적인 미국 방문 분위기를 연장해서 일본의 패전 70주년인 8.15에 맞춰 아베담화를 발표할 예정이다. 아베는 과거사에 대한 사죄와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재무장을 강화하면서 자위대를 세계로 진출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아베는 이러한 전략에 입각해서 침략과 패전의 멍에에서 벗어나는 보통국가 선언을 하려고 하고 있다.

한일협정 체결 50년에 박근혜 대통령이 기념식에 참석한 것은 8.15 담화를 통해 과거를 부정하고 재무장하려는 아베에게 꽃길을 깔아준 것이다. 한국은 일본에 대해 과거사 반성과 사죄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도덕적 정당성을 가진 나라이다. 1965년 한일협정은 굴욕적인 협정이었다. 한일협정 50년은 아베의 반성을 끌어낼 수 있는 우리의 전략적 카드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도 한일협정 50년에 맞춰서 협상 카드를 일본에게 보여준 것이다.

한국이 이렇게 카드를 쉽게 내주는 것이 한일관계 개선에도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다. 일본 관리들은 익명으로 박근혜 정부의 갑작스런 태도변화가 오히려 당혹스럽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표정관리 하는 것이다. 아베정권은 이미 한국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함께 할 수 없는 나라라고 말했다. 이미 아베정권은 아시아 민주주의 G3는 일본, 인도, 호주라고 말하면서 한국을 제외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갑작스런 대일정책 전환 때문에 일본은 표정관리는 하겠지만 한국을 외교의 중요한 상대로 고려하지는 않을 것이다.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태도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일본 주간지인 슈칸겐다이(週刊現代)는 한일협정 50주년에 윤병세 외교장관이 일본을 방문한 것에 대해서 아베총리가 "내가 말했지 않나, 기다리고 있으면 한국이 스스로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김대중과 노무현의 한일관계 개선 시도

한일관계는 개선되어야 한다.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과거사가 늘 발목을 잡았다.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진정성을 훼손하는 조치를 반복적으로 취해왔기 때문이다.

한일관계 개선의 교과서는 김대중-오부치 선언이다. 1998년 10월 김대중 대통령은 일본의 오부치 총리와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위한 공동선언'을 했다. 이 선언에서 오부치 총리는 식민지 지대에 대해 반성하고 사죄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일 간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발전시키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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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10.08 한일정상회담,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

'21세기의 새로운 파트너십' 공동선언문 채택 ⓒe영상역사관

노무현 대통령 역시 한일관계를 개선하고자 했다. 2004년 7월 제주 한일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내 임기 동안에는 과거사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하거나 쟁점화시키는 것을 가급적 피하려 한다"고 말하면서 한일관계 개선을 시도했다. 그러나 2005년 2월에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지정하면서 한일간 외교갈등이 재연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동안 일본이 형식적으로나마 사과를 했기 때문에 한일관계를 개선하고자 했다. 하지만 고이즈미 총리는 신사참배를 강행하고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선포하는 것을 묵인했다. 노 대통령의 대일외교는 강경하게 변화했다. 일본의 진정성을 믿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정책전환은 일본의 과거사 부정과 재무장이 더욱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이뤄졌기 때문에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종군위안부 문제를 한일정상회담의 전제조건으로 삼은 것은 한일관계 자체를 입구에서부터 가로막아 버린 경직된 정책이었다. 한일 정상회담을 하면서 일본에 대한 다차원적인 접근을 시도했어야 했다. 과거사와 미래지향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한일관계에서는 한국정부의 유능한 균형능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정치지도자의 역할이다.


한일관계, 3차원 병행전략

경제와 문화교류, 과거사와 영토문제, 정치와 군사 등 세 가지 영역은 각각 다른 차원에서 동시에 다루는 것이 바람직한 전략이다. 경제와 문화교류는 활성화해야 한다. 과거사와 영토문제에서는 단호해야 한다. 정치적 관계에서는 유능해야 한다.

이렇게 3차원 병행전략을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세 가지 영역에서 균형을 이뤄야 할 대일정책이 한일협정 50년을 계기로 모호해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과거사와 영토문제에 대해서 지금까지의 강경정책과는 전혀 다르게 단순한 립서비스 차원에서만 언급하고 있다. 영토문제와 연관될 수밖에 없는 군사문제에 대해서도 입장은 어리숙하기만 하다.

일본이 미국과 방위협력지침을 개정함으로써 자위대가 한반도에 상륙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박근혜 정부는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일본이 한반도에 군대를 파견할 때는 한국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을 뿐이다. 일본은 당연히 국제법에 따라서 한국의 동의를 받는 것이라고 화답했다. 한국이 '별은 하늘에서 떠야한다'고 하니까 일본이 '알았다'고 답한 꼴이다.

일본은 한국전쟁 당시부터 꾸준히 한반도에 군사력 파견을 구상해왔다. 이미 1997년 개정된 미일 가이드라인을 뒷받침하기 위해 일본은 주변사태법을 제정했다. 주변사태법 역시 한반도 위기 상황에 대해 일본이 응급조치 차원에서 개입한다는 것이 근본 목적이다. 그런데도 당시 일본은 주변사태는 지리적 개념이 아니므로 한국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식의 궤변으로 일관했다.

일본에게 한반도에 자위대를 파병하는 것을 문의하고 일본의 답변을 구할 일이 아니다. 한국의 안보와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일본이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못을 박아야 한다.


광복 100주년에 세계 5강 국가로

앞으로 아베의 8.15 담화와 중국이 9월 3일에 성대하게 치를 2차대전 승전일 행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의 질서가 어디로 갈 것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미, 중, 러, 일 등 한반도 주변 국가들이 2차대전에서 제국주의 세력을 패퇴시킨 승전 70주년을 기념하면서 종전 70주년 외교를 펼치고 있다. 그 하이라이트는 아베 담화에 이은 9월 3일 중국의 승전일 행사가 될 것이다.

2015년 '2차대전 종전70주년 외교무대'에서 한국이 소외를 자초하는 무능을 보이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의 신냉전 조짐과 미, 중 갈등, 일본 재무장 등의 주변정세는 청일전쟁, 아시아태평양전쟁 이후 우리 국익과 운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국가전략을 다시 준비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에 머물지 말고 적어도 2045년 광복100주년까지 흔들림 없이 계속 추진할 국가전략을 짤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 정세변화를 읽고 30년을 내다보는 광복 100주년 대비 국가 전략이다. 광복 80주년인 2025년에는 남북연합을 만들고, 광복 100주년에는 남북연합국가가 세계 5강이 될 수 있는 구상이 필요하다. 시진핑도 궁극적으로 2049년 건국 100주년을 목표로 해서 '중국의 꿈'을 구상하고 있다. 국가 비전을 새롭게 만드는 것은 외교를 통해서 가능하다. 중국을 왼날개로 하고 미국을 오른날개로 해서 대륙과 해양으로 자유롭게 나다니는 국가위상을 정립해야 한다. 이를 위한 몸통은 남북관계 개선이다.

글_ 김창수 코리아연구원 원장

* 이 글은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홈페이지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