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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6월 29일 10시 28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6월 29일 14시 12분 KST

삼권분립을 훼손하는 대통령

과거 독재 혹은 권위주의 정부 시기 국회는 '대통령의 거수기'에 불과할 정도였다. 오랫동안 독재 정부에 대항하였던 YS와 DJ 또한 대통령이 된 이후 집권당 총재의 자리를 내려놓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노무현,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국회의 독립, 즉 절차적 삼권분립은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통해서 국회는 다시 먼 과거로 회귀하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삼권분립의 원칙을 훼손하기 때문에 거부권을 행사하였다고 말하지만 정작 삼권분립의 원칙을 훼손하는 이는 바로 박근혜 대통령 자신인 셈이다.

연합뉴스

지난 6월 25일 예상대로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서 거부권을 행사하였다. 박 대통령은 이번 국회법 개정안이 정부의 입법권과 사법부의 심사권을 침해하고 결과적으로 헌법이 규정한 '삼권분립의 원칙'을 훼손하여 위헌의 소지가 크다는 것을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다.

이번 국회법 개정안이 과연 '삼권분립의 원칙'에 위배되어 위헌인지 여부에 관해서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여기에서 국회법 개정안의 위헌성에 관하여 논하고자 함은 아니다. 이번 사건에서 박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을 위헌이라고 판단하고 이에 관하여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대한민국 대통령의 헌법상 부여된 고유한 권한(헌법 제53조 제2항)이기 때문이다. 물론 마찬가지로 앞서 국회가 이번 국회법 개정안에 관하여 본회의 의결을 거쳐 정부에 이송된 것 또한 헌법이 보장한 국회의 권한(헌법 제53조 제1항)이다. 즉, 국회와 대통령은 각각 대한민국 헌법이 부여한 권한을 행사한 것이다.

그러면 남은 절차는 무엇인가. 바로 재의결이다. 즉, 법안이 거부되면, 국회에서 재의에 붙이게 되며 재적의원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전과 같은 의결을 할 경우 그 법률안은 법률로서 확정되는 것이다. 이 역시 헌법이 국회에 부여한 권한(헌법 제53조 제4항)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여당인 새누리당 지도부를 겁박하여 헌법이 국회에 부여한 권한인 재의결을 막았다. 이것이 이번 사태의 본질인 것이다.

박 대통령은 "여당의 원내사령탑도 정부 여당의 경제살리기에 어떤 국회의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 가는 부분입니다."라고 주장하면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배신의 정치'라는 과격한 언어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언론에서는 일제히 박 대통령이 유 원내대표에게 불신임을 천명하였다고 보도하였으며, 서청원 의원 등 친박계 의원들은 유 원내대표가 사퇴하여야 한다고 압박하였다. 새누리당은 긴급히 의원총회를 열어 원내대표의 신임 여부를 논의하였는데, 일단 유 원내대표에게 일방적인 책임을 묻긴 힘들다며 그를 재신임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리고 박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한 바로 다음날인 6월 26일 유 원내대표는 공개적으로 박 대통령에게 사과하였다. 유 원내대표는 머리를 90도로 숙여가면서 "박 대통령께 거듭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대통령께서도 저희들에게 마음을 푸시고 마음을 열어주길 기대한다."라고 사과한 것이다. 굴욕적인 항복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굴욕이 단지 유 원내대표만의 굴욕일까. 그렇지 않다. 이는 바로 대한민국 국회의 굴욕이며, 대한민국 헌법의 굴욕이다. 주지하다시피 대한민국은 대통령제 국가이다. 즉, 입법부와 행정부가 상호 견제하도록 되어있는 시스템인 것이다. 물론 대통령과 그 대통령을 배출한 집권여당은 일반적으로 협력적 관계가 예상된다. 그러나 집권여당은 여전히 국회를 구성하는 주요 정당으로서 권한을 행사하고 이에 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 특히 집권여당이 다수당일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유 원내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 지도부는 박 대통령의 한 마디 호통에 와르르 무너져버렸다. 국회가 무너져버린 것이다. 이런 까닭에 이번 사건의 굴욕이 단순히 유 원내대표의 굴욕만이 아닌 것이다.

과거 독재 혹은 권위주의 정부 시기 국회는 '대통령의 거수기'에 불과할 정도였다. 오랫동안 독재 정부에 대항하였던 YS와 DJ 또한 대통령이 된 이후 집권당 총재의 자리를 내려놓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노무현,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국회의 독립, 즉 절차적 삼권분립은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즉, 노무현, 이명박 정부는, 이유는 상당히 다르다고 할지라도, 국회의 독립성은 보장함으로써 대통령이 국회를 쥐락펴락하던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듯하였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통해서 국회는 다시 먼 과거로 회귀하였다. 국회는 더 이상 대통령을 견제할 헌법상의 권한을 행사할 수 없게 된 것이며, 이로써 헌법이 규정한 삼권분립의 원칙은 크게 훼손되었다. 이처럼 박근혜 대통령은 삼권분립의 원칙을 훼손하기 때문에 거부권을 행사하였다고 말하지만 정작 삼권분립의 원칙을 훼손하는 이는 바로 박근혜 대통령 자신인 셈이다.

글_ 서누리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정책실장

* 이 글은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홈페이지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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