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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14일 05시 25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12월 15일 14시 12분 KST

촛불집회가 막은 이민

연합뉴스

외국 생활을 포기하고 와서인지 웬만해선 이민은 떠올리지 않았다. 처음 이민을 가고 싶었던 때는 2010년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고 나서였다. 검찰, 사법부, 국회, 정부 모두 삼성에 의해 좌우되는 현실이 낱낱이 적혀 있는 책을 읽으면서 '이런 나라에서 살아야 하나'라는 절망감을 느꼈다. 이민 가고 싶다는 욕구는 올봄 총선 이전에 절정을 이뤘다. 박근혜가 세운 새누리당이 2012년 총선과 대선, 2013년 4·24 재보선, 10·30 재보선, 2014년 6·4 지방선거, 7·30 재보선까지 여섯 번의 선거를 모두 이기는 것을 보면서 받은 충격은 감당할 수 없는 정도로 셌다. 세월호를 겪은 이후에도 새누리당이 선거에서 압승할 때는 특히 더했다. 동시대에 숨을 쉬는 사람들에 대한 실망이 이만저만 크지 않았다. 세월호 유가족을 공격하고 비난하는 언론과 정부의 패륜성이 먹히는 세상을 보면서 이런 사람들과 함께 살기 싫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번 총선 유가족들이 박주민 변호사 선거운동을 할 때 유가족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자극할까 싶어 인형탈을 썼다는 말을 들으면서 뭐 이런 세상이 다 있나 싶었다.

주변 민심도 흉흉해지는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더 이기적이 된 듯했다. 잠시의 불편한 상황에도 무섭게 화를 내는 사람들. 길거리에 넘쳐나는 쓰레기들. 사람들이 이상해져서 자동차에 블랙박스를 달기로 했다는 옆방 교수의 판단에 공감해 작년에는 나도 블랙박스를 달았다. 정치도 무너지고 공동체도 무너지고 사람들의 합리적인 판단능력도 무너진 느낌이었다.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이 '민중은 개돼지' 같다고 했을 때 솔직히 그런 말 들을 만하게 우리들이 행동해왔다고 냉소하기도 했다.

오랫동안 사람들에 실망했기에 촛불집회에 참여하면서 얻은 것 중 개인적으로 제일 의미 있는 것은 동시대 사람들에 대한 신뢰 회복이다. 그 공간에서는 서로에게 너무 친절하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옆 사람의 존재가 소중한 느낌이 절절하게 전해진다. 꽤 오래 경험해왔던, 불신과 불안에 휩싸여 타인에게 공격적이고 거친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집회 초기에는 박 대통령이나 최순실이 여성이라는 사실에 초점을 맞춘 여성혐오적인 발언도 꽤 나왔다. 그러나 여성혐오적인 발언이 나온다는 사실보다 그 발언을 빠르게 비판하고 다시 나오지 않게 조심하는 모습에 더 눈길이 갔다. 에스엔에스(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한 비판과 자정노력뿐만이 아니다. 집회를 진행했던 지인은 여성혐오적 발언을 한 진보권 어른이 단상에서 내려오면 관계자 모두가 그런 식으로 말을 하면 안 된다고 바로 비판했다며 이전에는 있을 수 없었던 상황이라고 전해주었다. 그런 마음과 노력의 바탕에는 '이번에는 정말 잘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깔려 있다. 평화집회도 의욕적인 청소에도, 털끝만큼도 비난받을 요소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작동하고 있다. 어떻게든 정부와 검찰, 종편이 만들어내는 역프레임에 걸려들지 않겠다는, 축적된 시련에서 만들어진 예민함이 집단지혜가 돼서 말이다.

촛불집회를 이어가면서 시민은 위대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시민혁명'이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그 의미가 나에게는 두 가지로 다가온다. 그 하나는 이제 제대로 '부역자'라는 말을 쓸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진보, 보수, 지역, 세대를 불문하고 다수가 공통으로 인정할 수 있는 정치적 경험을 하고 있다. 적어도 박근혜 정권의 출현과 유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기능했던 정치가, 경제인, 검찰, 공무원을 처벌하고 그 정신을 청산하는 것에 동의하고 실천할 수 있는 경험적, 심리적, 실질적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그리고 '우민화의 시대'가 끝났다는 의미이다. 물론 앞으로도 이미지 조작과 안보정치는 계속 시도될 것이다. 그러나 정치는 이제 시민이 직접 하는 것이 되었다. 11월5일 "혁명정부 수립하자"라는 중학생들의 플래카드를 보면서 앞으로 젊은 세대에게 정치는 삶의 일부가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젊은 세대의 정치 관심과 투표율이 높아지면서, 적어도 안보불안과 몰계급적 국가의식에 점령당한 노령세대가 주도하는 선거와 판단을 막을 장치는 마련된 것이다. 그것은 재벌 지배의 양극화 시대에 엄청난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다.

물론 이제 이민에 대한 생각은 달아났다. 앞으로도 정치에 실망할 일은 많겠지만 촛불집회의 공감과 연대의 기운이 꽤 오랫동안 나를 지킬 것 같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