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2018년 01월 17일 12시 59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1월 17일 13시 01분 KST

돈 잘버는 디자이너는 무슨 일을 할까?

the

[1인 디자인 기업으로 10년 먹고살기①]

어느덧 출근하지 않는 디자이너의 3번째 파트가 시작되었다. 이번 파트에서는 1인 디자인 기업으로 10년 먹고살기라는 제목처럼 혼자 일하는 디자이너로 생활하며 10여 년을 활동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나는 2005년에 회사에서 나와 프리랜서가 된 후 13년째 혼자 일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독립한 여러 동료들 중에 아직까지 1인 기업을 유지하며 활동하는 디자이너는 나 하나뿐인걸 보면, 혼자 일하는 것이 체질에 맞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다시 회사로 돌아간 동료도 있고, 사업의 규모를 키워 직원을 거느린 회사를 만든 동료들도 있다. 물론 디자인 자체를 포기한 동료들도 있다. 어느 일이든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게 마련이니까.

이번 파트에서 이야기할 주제는 총 10가지인데, 누구나 하는 조언이 아닌 좀 더 현실적이고, 직접적으로 와 닿을 수 있는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회사를 나와 1인 디자인 기업으로 일하려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테지만, 월급도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디자이너는 박봉이다. 나는 돈 잘 버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데, 회사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성장한다 해도 월급의 마지노선이 눈에 보이는 수준이다. 방송에 가끔 나오는 성공한 디자이너들이 얼마를 벌었네, 사회에 얼마를 기부했네, 하는 이야기가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렇다면 독립을 하면 나도 큰돈을 벌 수 있을까? 퇴사자들의 가장 큰 착각 중에 하나가 바로 이것인데, 이 환상에서 빨리 벗어나길 바란다.

생업으로써의 디자인

어쨌든, 독립을 하고 나왔으면 그때부터는 월급 받는 직장인이 아니라 나 스스로 수익활동을 해야 하는 자영업자가 된다. 빨리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

어떤 디자인을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

회사를 나와 프리랜서가 된 후배들이 가끔 물어볼 때가 있다. 어떤 디자인을 해야 하냐고...

답은 명확하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야 한다. 속담 중에 '직업에 귀천이 없다'라는 속담처럼 디자인에도 귀천이 없다.

막돼먹은 영애씨라는 드라마가 있다. 개그맨 김현숙이 주인공 영애씨를 연기하는데, 극 중 직업이 디자이너다. 그중에서도 흔하디 흔한 그래픽 디자이너. 영애씨도 처음에는 회사 소속으로 일했지만 사장님과 트러블이 생겨 퇴사 '당'한 후 1인 디자인 기업을 만들었다. 처음엔 다른 디자이너와 함께 동업으로 시작했지만 다른 디자이너가 기존 회사로 돌아가며 혼자 일하는 디자이너가 되었다. 그 드라마를 내가 정말 흥미롭게 본 지점이 이것이었다. 극 중에 영애씨는 별다른 기반이 없이 독립했기에 직접 발로 뛰며 영업을 했는데 접근 방법이 굉장히 올드하면서도 마음에 와 닿았다.

the

'막돼먹은 영애씨'의 주인공 이영애가 '이영애 디자인'이라는 1인 디자인 기업을 운영했다.

일단 식당 같은 곳에 들어가서 명함을 주며 전단지 같은 것 필요하지 않느냐고 물어본 후 명함이라도 필요하시면 연락 달라고 하고 나온다.

디자이너들이 독립하면 주변 지인들이 가장 쉽게 의뢰하는 것이 명함이다. 나도 프레젠테이션 디자이너로 독립했지만 주변에서 명함을 만들어달라고 부탁받은 일이 꽤 많다. 명함은 사실 돈이 안된다. 명함만 전문적으로 제작하며 하루에 20~30명의 명함을 처낸다면 모를까, 한두 명의 명함을 만들어 준다고 큰 수익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영애씨는 명함이라도 수주받아 성심성의껏 디자인해준다. 그런데, 그 명함을 발판으로 전단도 수주하고 간판도 수주하고 인테리어도 수주한다.

'내가 회사에서 하던 일이 얼마 짜린데, 난 그런 일 안 해' 이렇게만 생각하지 말고 작은 일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하다 보면 더 큰 일을 할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한번 더 말하지만 디자인에는 귀천이 없다. 내가 의뢰받은 일이 윤리적으로 지탄받는 일만 아니라면 일단 다해보며 경험을 만들자.

자신의 가치는 자신이 결정한다

내가 독립해서 처음으로 갖게 된 직업이 프레젠테이션 디자이너였는데, 이 프레젠테이션 디자인은 디자인의 단가를 책정하는 게 아주 심플했다. 슬라이드 당 얼마. 가령 슬라이드 한 장에 10만 원을 받으면 10 슬라이드면 100만 원, 20 슬라이드면 200만 원인 샘이다.(물론 기획비라는 명목으로 일정 금액이 더 청구되기도 한다.) 한참 프레젠테이션 디자이너로 활동하던 시절에 같은 일을 하고 있는 디자이너들끼리 모이면 이 장당 단가가 항상 안주거리였다. 누구는 15만 원을 받고 있고 누구는 10만 원, 누구는 8만 원, 누구는 5만 원... 재밌는 사실은 거기 모인 디자이너들의 실력은 다 비슷비슷했다는 것이다. 고 단가를 유지하는 디자이너는 저단가를 받고 있는 디자이너에게 단가를 올리라고 얘기하고, 저단가를 받는 디자이너는 기존 고객들 때문에 올릴 수가 없다고 대답한다.이지점에서 느낀 것이 자신의 가치는 자신이 결정한다라는 것이다.

시장에는 다양한 디자이너가 존재하고, 다양한 단가가 존재한다. 물론 디자이너마다 만들어내는 산출물의 퀄리티가 다를 수 있고, 시장 경쟁체제인 우리나라의 경제원칙상 당연한 이야기다. 나는 회사에서 일할 때 슬라이드당 25만 원의 단가를 받고 일했다. 물론 25만 원 안에는 디자이너의 인건비뿐 아니라 복리후생비, 임대료, 각종 기물의 감가상각비 등 다양한 원가들이 들어가 있다. 회사를 나와 독립한 이후에는 15만 원 정도의 단가를 유지하려 했다. 혼자 일하는 디자이너로써 그 정도면 내가 원하는 정도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결정한 금액이었다. 하지만 시장은 그렇게 녹녹지 않았고, 낮은 단가의 일을 수주하게 되며 내가 꿈꾸던 수익에 대한 생각도 깨지게 되긴 했지만 3년 차 때부터는 원하는 단가를 받으며 일할 수 있게 되었다.

몇 해 전부터 이메일이나 쪽지로 상담을 의뢰해오는 디자이너들이 있는데, 대부분 프레젠테이션 디자인 분야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들이다. 막 시장에 진입한 친구들도 있고, 시작하려고 마음먹은 친구들도 있는데 대부분은 독립하고 2년~3년 정도 일한 디자이너들이다. 제일 큰 고민은 역시 수익 문제이다. 자신은 정말 열심히 일을 하는데 수익은 회사 다닐 때만 못하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하나의 원인으로 귀결된다. 너무 적은 비용을 받으며 일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를 매칭 시켜주는 회사가 몇 해 전부터 하나둘씩 생기고 있는데, 그런 매칭 사이트를 이용하면 쉽게 클라이언트를 만나고 일을 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시장에 새롭게 진입하는 디자이너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다. 문제는 그 지점에서부터 시작된다. 한정된 수요에 너무 많은 공급자들이 경쟁을 하다 보니 단가가 땅을 치게 된 것이다. 물론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디자인 회사에 맡겨서 수천만 원씩 주고 하던 일들을 단돈 몇십만 원에 처리하고 있으니 말이다. 몇 년 동안 그 회사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튼실한 기업으로 거듭났지만 그 서비스를 이용해 일을 수주받던 디자이너들은 톱클래스의 몇몇을 빼고는 대부분 큰돈을 못 벌고 있다.

내가 상담했던 대부분의 디자이너들도 그렇게 저 단가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 디자이너들의 실력이 그 정도밖에 안되었을까? 그건 절대 아니다. 그들은 이미 수많은 프로젝트를 혼자 처리해온 프로페셔널 디자이너들이었다. 그들에게 단가를 올려야 삶이 윤택해질 수 있다고 조언했지만, 과연 쉽게 올릴 수 있을까?

다시 말하지만, 자신의 가치는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다. 내가 만원을 받고 디자인을 하고 있지만, 똑같은 디자인을 누군가는 10만 원을 받고 할 수도 있다. 시장 가격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위로하려 하지 말자. 그 시장 가격이라는 것도 자신이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시장이 있는 디자인을 하라

자 그러면 어떤 디자인을 해야 돈을 벌 수 있을까?

블루오션이라는 말이 있다. 경쟁자가 없어서 시장을 혼자 독식할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말인데, 디자인에도 과연 블루오션이 존재할까? 분명 있을 것이다. 지금도 누군가는 블루오션을 개척해 프런티어로써 시장의 트렌드를 이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블루오션이라는 말을 오해하면 안 된다. 블루오션은 시장이다. 시장은 있는데 공급자가 적은 것이다. 블루오션을 개척한 프런티어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시장을 만들어내고 그 시장에 어울리는 디자인을 개발해 시장을 독식한다.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블루오션의 첫 번째 과제인 것이다.

우리는 1인 디자인 기업이다. 과연 내가, 나 혼자서 시장개척을 할 수 있을까?

디자인 사업을 시작한 지 5년 정도 되었을 때였다. 나도 시장을 한번 만들어보고 싶었다. 2009년이니까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이다. VR이라는 단어를 어디서 주워 들었다. 그 당시엔 지금처럼 360도 카메라가 있던 시절도 아니고, VR키트가 있던 시절도 아니다. 그 당시에 VR이라고 하면 사진을 이용해 360도를 돌려볼 수 있는 개념이었다.(현재 다음이나 네이버맵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로드뷰같은 개념)

the

3D VR을 서비스하는 3D Creator 웹사이트 메인 화면

그런 VR 영상을 제작해 서비스하는 업체가 하나둘씩 생기고 있던 시점이었다. 나는 3D를 VR에 접목하면 더 새로운 작업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그것을 이용해 제품을 홍보할 수 있는 툴로 이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해외에서 개발된 프로그램 중에 3D 모델을 유저가 직접 돌려보고 작동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찾게 되었다. 그 프로그램과 3D VR로 콘셉트를 잡고 자동차, 항공기 부품, 선박 등 큰돈이 오갈만한 제품들을 선정해 연구작들을 만들었다. 결과물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회사명을 3D Creator로 짓고 웹사이트도 제작했다. 인맥을 총동원해 국내 유수의 대기업 홍보실, 대기업 계열 광고회사 등의 담당자들과 미팅을 했다. 가지고 간 3D VR을 시연하자 다들 입이 떡 벌어졌다. '와.. 이거 진짜 좋다. 정말 멋있어요.'라고 첫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이어서 '이걸 어디에 써?'라고 되물어왔다.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것이니, 어디에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를 몰랐던 것이다. 모터쇼나 국제행사 등에서 키오스크를 이용해 홍보할 수도 있고, 홈페이지에 개시해 온라인에서도 서비스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단지 그렇게 사용하기 위해서라면 활용도가 너무 낮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땐 지금과 같이 태블릿 PC가 흔하던 시절도 아니었고, 터치가 되는 모니터도 쉽게 볼 수 없었을 때였으니 내 작업물을 본 담당자들도 어디에 써먹어야 할지를 애매했을 것이다.

그렇게 1년을 돌아다녔지만 성과는 없었고, 시장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지에 대해 톡톡히 공부하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화 아바타가 개봉되며 3D를 인식하는 사람들의 개념 자체가 바뀌었고, 더 이상 내가 만든 3D VR에 관심을 갖는 고객은 없었다.

1인 디자인 기업이 된 친구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은, 시장이 있는 디자인을 하라는 것이다.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확신과 자본이 있다면 모를까, 어떻게 변화될지 예측도 힘든 이 전쟁터에서 나만의 시장을 만들어 1인 디자인 기업으로 도전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시장 창출에 한번 실패한 이후, 다른 디자이너들에게 무조건 전통적인 디자인만 하라고 말하고 다녔던 적이 있다. 적어도 없어질 염려가 없는 디자인을 하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광고, 포스터, 패키지, 브로슈어나 리플릿 등의 인쇄물 같은. 하지만 시대는 급변하고 있고 인쇄매체는 포터블 기기 속으로 들어가고, 웹디자인이라는 단어는 UI/UX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대체하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을 바꿔보았다.

'향후 5년간 없어지지 않을 것 같은 디자인을 하자.'

돌이켜보면 5년 전에 하고 있던 업무와 지금의 업무가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시장이 그만큼 탄탄하게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다. 시장이 탄탄하면 다양한 취향의 수요가 존재한다. 그 많은 취향 중, 나를 원하는 고객 한 명 없을까? 먼저 시장을 보고 시장이 원하는 디자인을 만들자. 최소한 밥은 굶지 않을 것이다.

*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