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2015년 04월 03일 13시 09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6월 03일 14시 12분 KST

우리 모두는 이주민, 그리고 노동자.

<밑줄 긋기> 『이주, 그 먼 길』, 이세기 지음, 후마니타스, 2012

2015-04-02-1427942457-8012289-00528033501_20150402.jpg

이주공동행동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1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이주노동자의 노동조합을 합법화하는 판결을 조속히 진행해 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이주노조 합법화' 소송은 2005년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 노조가 낸 설립 신고를 노동부가 반려해 시작됐는데, 2007년 서울고등법원이 노조 결성권 보장 취지의 판결을 내린 뒤 노동부 상고로 8년째 대법원에 계류돼 있다. 한겨레 신문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대체, 이런 삶이란, 이런 죽음이란, 어떤 것이란 말인가. 조안 씨가 잠시 일했고, 살았고, 그리고 죽은 곳은 대한민국이다.

2009년 조안 씨는 끝내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그의 남편과 딸은 비행기 편을 구하지 못해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타이완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어머니도 비자를 받을 수 없어 오지 못했다. 그의 사체는 병원비를 대신해 대학병원에 신체 해부용으로 기증됐다.

이제 15년도 더 지난 이야기다. 나는 방학 때면 외삼촌이 운영하시던 김해의 작은 동파이프 공장에서 일했다. 외삼촌의 일도 돕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또 여러가지 경험도 쌓는다는 이유였다. 몸으로 하는 일에 서툰 내가 외삼촌이 하시는 일에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의 경험은 분명 또 다른 나를 만드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하청의 사다리에서 가장 밑에 위치한 말단 공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부터 그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얼마만큼의 노동으로 얼마를 버는지까지도 알 수 있었다. 또 단순 작업이 한 번의 공정만 보면 너무 쉬워보이지만, 그것이 몇 시간 며칠이 쌓이면 그렇게 고된 노동도 없다는 것도 알았다. 순간 정신을 팔면 얼마나 큰 사고가 날 수 있는지도 체험했다. 일하면서 라디오로 꾸준히 들었던 청문회는 덤이었다. 아직도 생생한 당시의 경험들 중에 또 하나 기억이 나는 것이 있다. 바로 인도네시아에서 온 청년과 잠시 함께 일했던 경험.

나는 울산 출신이고 아버지도 노동자였지만 공단 지역에서 살지는 않았다. 또 울산은 공업/산업 도시이기는 하지만 대기업들이 많은 특수한 도시이기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와 직접 마주칠 일은 거의 없었다. 또 그들이 어떤 제도 하에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한국의 얼마나 많은 사업장에 얼마나 많은 외국인 노동자가 일하고 있는지도 당연히 몰랐다. 그 상황에서 본 그 인도네시아 청년, 그러니까 내 형뻘이 되었던 그는 사실 외삼촌의 공장에서 그리 길게 일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쉬는 시간이나 식사 후에 짧은 영어로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가장 놀랐던 점은, 그가 법학을 전공한 대졸자라는 점이었다. 사회 경험이 전무했던 나에게,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사정을 전혀 모르던 나에게, 외국 공장에서 단순작업을 하는 대졸자는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왜 고등교육까지 받은 사람이 타지에 와서 고생을 하는 걸까? 나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 물어보는 것은 실례인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심오한 대화를 할 정도로 영어가 유창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정도의 대화를 나누는 선에서 그쳤던 것 같다.

2015년. 자세한 수치는 모르겠으나(그리고 있다해도 그 수치들이 제대로 된 것인지 믿을 수도 없으나), 아마도 그때보다 이주 노동자의 수는 더 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에 대한 처우나 환경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주 노동자의 유입이 한국 노동자의 노동 환경을 악화시키는 데 일조한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거꾸로된 생각이다. 이주 노동자의 유입이 한국 노동자 전체의 상황을 악화시킨 것이 아니라, 한국 노동자 전체의 상황이 악화되어 이주 노동자의 노동 환경이 더욱 악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다면 화살을, 누구에게, 돌려야 하는가? 제대로 된 질문은 이거다. 누가 노동 환경을 악화시키고 있는가?

이런 일도 있었다. 스리랑카에서 비전문 취업 비자로 들어온 라닐(25세) 씨와 랑말(26세) 씨는 작업 과정에서 지시 사항을 빨리 처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폭행을 당했다. 공장 이사가 라닐 씨에게 안경을 벗으라고 하고서는 뺨을 때리고, 복부와 다리 등을 걷어찼다. 고개를 들지 못할 만큼 아파해도 발로 등을 짓이기며 폭행을 계속하자 함께 일하던 랑말 씨가 말렸다. 그러자 각목으로 랑말 씨까지 가격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이를 알게 된 사장이 두 사람을 사무실로 불러 다시 폭행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사장실에서 팔 · 다리 · 허리 할 것 없이 케이블로 채찍질을 당했다. 짐승한테도 이러지는 않는다.

이 책의 초반, 고향으로 돌아간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시인 이세기가 기록한 이주 노동자의 이야기를 읽으며 뼈저리게 반성했던 것은, 깐에는 이주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주 노동 그 이후의 삶'에 대해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긴, 눈앞에 보이는 이주 노동자의 삶에도 관심이 없는데, 이주 후의 삶에 관심을 가질 리가 있겠는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기에, 그들의 삶에도 관심이 없는 것일테고 그들의 고통에도 관심이 없는 것일 테다. 같은 사회에서 살고 있지만, 절대 '우리'라고 불려지지 않는 그들.

아시아의 하늘은 이어져 있다. 그가 어디에서 왔고 무엇을 하든, 피부색이 어떻고 쓰는 언어가 무엇인지와 상관없이, 우리는 사람이다. 생존과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새로운 세계를 향해 길을 떠나는 우리 모두는 이주민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이주민의 문제가 당사자의 목소리로 발언되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의 문제로 외치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 목소리가 아시아에 대한 애정과 연동의 단초가 되었으면 한다. 세계사의 고리에서 억압당하고 천시되었던 아시아에서 새로운 문명이, 모든 인권이 존중받는 새로운 도약이 움트기를 기원한다. 자신의 존재를 부당하게 잃어버린 투명한 인간이 아니라, 인류의 아픔에 공동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야말로 인간 본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의 이주 노동자는 성장 배경과 환경을 봤을 때 그나마 선택받은 이들이다. 하지만 노동에는 선택이 없다. 그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자랐는지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건강한 노동력을 원할 뿐이다.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많은 이들이 이주 노동을 꿈꾼다. 더 나은 삶을 위해, 가족을 위해, 치욕스러운 오늘을 벗어나기 위해 탈출을 꿈꾼다. 오늘날 우리 모두는 이주민이다.

원론적인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도 '사람'이며 이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점이다. 이 뻔하고 당연한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기에 인간을 '쓰레기'라고 칭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분명 필요는 하지만 한 번 쓰고 버리면 그만인 존재. 버리고 다른 것으로 대체하면 되는 존재. 다 썼으니 버려도 되는 쓰레기.

"인간쓰레기다."

대뜸 뱉은 말이 칼날 같다. 그것도 고용안정센터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담당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그들은 갖은 이유를 만들어 이 회사 저 회사를 전전하며 피해를 주는 철새예요. 쓰레기나 다를 바 없어요."

기가 막혔다. 그는 계속해서 마치 회사 사장의 대변인이나 되는 양 말을 이었다.

"빨리 출국시켜야 합니다."

한때는 한국도 대표적인 '인력수출' 국가였다. 많은 한국인들이 중동으로 유럽으로 그리고 때로는 전쟁터로 돈을 벌러 나갔다. 그들을 종종 '선업전사'로 치켜세우지만, 그들이 현지에서 겪었던 많은 어려움들 또한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 어려움을 두고, '수입인력'이 겪어야 하는 당연한 일이라고 말하는 이는 드물다. 또한 현지에서 정착한 한국인들을 보는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아시아 이주 노동자들이 '정착'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말하는 일 또한 드물다. 왜 대체 우리는 이 엄청난 간극을 이상하다고, 모순이라고 느끼질 못하는 걸까? 법무부 통계에 의하면,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 국적 1위가 중국, 2위가 미국이다. 그 다음은? 베트남, 일본, 필리핀, 타이, 인도네시아, 우즈베키스탄, 몽골, 타이완 순. 일본을 제외하고, 이 국적의 이주 노동자들은 비정상회담에서의 발언권도 얻기 힘들다. 그들은 투명인간처럼 우리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아니, 우리는 그들을 보지 않는다.

이들은 아직도 인천의 월미도가 어디이고, 항구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 모른다. 누군가는 "이주노동자에게 무슨 문화이고 관광인가. 그들이 이 땅에 관광하러 온 것이 아니잖느냐."라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틀린 말이다. 이들도 주말이나 휴일에 쉴 권리가 있다. 하다못해 노동의 재생산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것이 휴식이다.

그러나 이주노동자에게는 여전히 이런 말이 사치스럽다. 쉬는 날이 되어도 공장 기숙사나 동료들의 방을 전전할 뿐이다. 인권 센터에서 마련하는 연극이나 노래 공연 등도 항상 있는 것이 아니어서, 기껏해야 한국어 교실을 통해 이따금 동료들을 만날 뿐이다. 비자라도 있으면 통행의 자유가 있어 그런대로 괜찮다. 그마저도 없는 미등록자에게 세상은 온통 불편한 감옥이다.

한국을 떠나고 싶다, 더 이상 이 나라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동시에 다른 한 쪽에서는 한국을 고향이라고 (한국어로) 말하는, 고맙다고 말하는 한국의 구성원을 단속하고 추방한다.

"영원히 잊지 못할 거예요. 한국은 제게 시를 쓰게 한 고향이에요. 새롭게 인권에 눈뜨게 했고,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게 했어요. 아마도 그런 것은 제가 방글라데시에 가서도 계속될 질문이라고 봐요. 나는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 깨닫게 된 것 같아요. 이런 말을 하고 싶어요. '고마워요, 고마워요.' 그저 아무에게라도 그렇게 말하고 싶어요."

사회의 심각한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확대되고 심화된다. '나의 일'이 아니라 여겼던 비정규직 문제가 그렇지 않은가? 비정규직 문제도 심각한 판에 이주 노동자의 문제를 외치는 것은 배부른 소리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비정규직 문제나 이주 노동자의 문제는 모두 같은 선상에 있는 문제다.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문제를 '외국인'의 문제로 다룬다면, 조만간 또 다른 분할과 구분이 우리에게 다가와 소외의 범주를 점차 넓혀갈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는 이 문제를 '우리 모두의 문제'로 여겨야 한다. 하킴이 추방당하지 않는 것을 넘어서, 그가 이렇게 슬픈 시를 쓰지 않아도 될 세상을 꿈꾸는 것이 무리일까?

세상이 옛날처럼 돌고 있다

모든 사람이 자기 자리에서 항상 바쁘다

달과 태양 그리고 별들이 옛날처럼 빛을 주고 있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어둡다

나는 왜 나처럼 되었나

나의 마음은 아프다

어느 날 하루 나는 마른 꽃처럼 마음도 말랐다

당신은 나를 알아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바보처럼 당신에게 다가가고 있다

하나의 진실을 꼭 잡으면서

너는 나를 버린다 나를 바보라고

그래도 나는 왔다 당신의 사랑을 위해

당신은 나를 모른다 하늘은 있지만 구름은 없다

나는 어디에도 없다

바람은 있지만 나는 어디에도 없다

_하킴, "아무도 모른다, 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