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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3월 02일 13시 30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5월 06일 14시 12분 KST

감정마저 내 것이 아닌 세상

그녀의 명랑하던 하이톤의 목소리가 갑자기 너무나 지친 목소리로 바뀌었다. 순간 나는 '아, 내가 사람과 통화를 하고 있구나' 싶었다. - 고객님, 제가 더 이상 홍보는 하지 않을게요. 제가 오늘 좀 많이 힘들어서... 그래서 그러니까 저하고 잠시만 통화해주시면 안될까요? 긴 시간 뺐지는 않겠습니다.

연합뉴스

<밑줄 긋기> 『감정노동』, 앨리 러셀 혹실드 지음, 이가람 옮김, 이매진, 2009

#1.

핸드폰 진동이 울린다. 모르는 번호다. 이럴 경우 십중팔구...... 역시.

- 안녕하세요, 고객님. 그동안 저희 〇〇카드를 이용해주셔서 감사하구요, 이렇게 전화를 드린 것은 이번 행사 기간 동안 우수고객님들께만 특별한 혜택을 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한 달에 2만원이면 각종 재해, 질병, 사고 등에......

- 아, 저 관심 없습니다.

- 고객님, 많은 분들이 처음엔 관심 없다고 하십니다만......

하아. 이럴 때는 가장 잘 먹히는 카드를 꺼내는 수밖에......

- 아, 네. 제가 지금 학생이라서요, 그럴 형편이 안 됩니다.

끈질긴 경우엔 이렇게 얘길 해도 요샌 학생도 많이들 한다는 식의 말을 하지만, 한두 번만 더 거절하면 웬만해선 통화가 끝나곤 했다. 하지만 그날의 통화는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

- 아... 학생이세요? ... 고객님, 죄송한데... 잠시만 저하고 통화해주시면 안될까요?

그녀의 명랑하던 하이톤의 목소리가 갑자기 너무나 지친 목소리로 바뀌었다. 순간 나는 '아, 내가 사람과 통화를 하고 있구나' 싶었다.

- 네?

- 고객님, 제가 더 이상 홍보는 하지 않을게요. 제가 오늘 좀 많이 힘들어서... 그래서 그러니까 저하고 잠시만 통화해주시면 안될까요? 긴 시간 뺐지는 않겠습니다.

- 아... 네.

그렇게 해서, 그녀와 10분 정도 통화를 했던 것 같다. 그녀는 나보다 4살이 더 많았고, 현재의 직장에서 대리였으며, 지방 출신이었다. 나에게 대학원생이냐고 물었고, 앞으로도 계속 공부할 거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하는 나에게 부럽다고도 했다. 오늘 이상하게도 너무 힘든데 전화는 계속해야하고, 그래서 고객님 붙잡고 잠깐만 통화해달라고 한 거라 했다. 너무나 지쳐있던 그녀의 목소리는, 통화가 끝나갈 무렵 다시 처음의 밝고 명랑한 하이톤으로 돌아와 있었다. 마치 더 이상 경고등이 깜빡거리지 않는, 주유소를 떠나는 자동차처럼.

- 네, 고객님. 통화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구요, 하시는 공부도 잘되시길 빌겠습니다.

- 네, 힘내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그 때 시간이 오후 4시쯤이었나. 아마도 그녀는 지칠 대로 지쳐있었을 것이다. 성질이 더러운 과장에게 호되게 지적을 받았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어제 약혼자와 심하게 다투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분명한 것은 그녀는 자동응답기가 아닌 지쳐있는 한 인간이었고, 생면부지의 나에게 '힘들다'고 감정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지금 5년 전의 그 일을 회상하는 나나, 그녀나, 이 글을 읽는 당신이나, 그녀를 통제하고 있던 회사나, 이 일이 일반적인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 기대를 벗어난 일인 것이다. 친절하되 감정을 표현하지 말 것. 어찌 보면 이 모순에 가득 찬 요구를 우리는 너무나 쉽게 받아들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2.

[감정노동]은 감정노동을 하는 이들이 직면하는 문제를 현장 조사 등을 통해 매우 구체적으로 다룬다. 이 책의 저자는 감정이 막연히 억제해야할 그 무엇, 비합리적인 그 무엇이 아님을 때론 지나칠 정도로 꼼꼼히 설명해 나간다.

그러나 감정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는 경보체계도 없고, 보이는 것, 기억, 꿈꾸는 것의 자기 타당성을 검증할 만한 기준도 없다. 느낌이 없는 사람이 불 속에 손을 집어넣는 것처럼, 감정이 없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기가 힘들어진다. 자기 이익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합리적이지 못한 상태다. 사실, 감정은 '합리적 사고'를 위한 잠재적 통로다. 게다가 감정은 우리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알려줄 수도 있다.

문제는 감정에 대한 일방적인 비난이 아니라, 이성에 비해 천대받는 감정을 차가운 자본주의가 잘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본의 입장에서는 활용이지만, 감정노동을 하는 입장에서는 그것을 착취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그리고 감정의 통제는 육체노동, 정신노동에 대한 통제보다도 훨씬 가공할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 모두가 인간이기 때문에. SF 영화 [가타카]나 [아바타], [블레이드 러너]에서 등장인물이 전환적 행위를 하는 중요한 원인이 바로 감정이었음을 생각보라. 심지어 영화 [이퀄리브리엄]에서는 아예 모든 사람들이 감정을 없애는 약을 먹고, 감정을 느끼는 자들은 처단 받는다.

하지만 현실은 [이퀄리브리엄] 속의 사회보다 더 가혹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회와 자본은 감정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교묘히 책임을 떠민다. 너의 미소가 회사와 국가를 대표하는 것이며, 네가 느끼는 분노와 미움 같은 감정들은 모두 '잘못된 감정' 혹은 '느낄 필요가 없는 감정'이라고. 그러면서도 감정이라는 자원을 바닥까지 캐내 써먹고 있는 것이다.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감정법칙에 예외가 되는, 고객과 노동자, 노동자와 기업 사이의 특별한 감정법칙을 만들어가면서.

이 '감정법칙'이라는 개념도 저자는 또 다시 지나칠 정도로 꼼꼼하게 설명한다(이런 꼼꼼함이 이 책의 강점이자 약점이다). 우리가 특수한 상황에서 특정한 감정을 느끼는 것을 '예상'하는 것, 그것이 감정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나가던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았을 때 느끼는 나의 황당함과 곧이어 느끼는 화. 이런 감정은 우리 사회에서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감정법칙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감정의 정도가 있기 마련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게 그 정도로 좋아할 일이야?", "꼭 그렇게까지 화낼 일이니, 이게?"라는 말을 할 수가 있다. 장례식장에 가서 크게 웃어서는 안 되고, 결혼식장에 가서 아무리 우울해도 통곡하듯이 울어서는 안 된다.

문제는 자본과 기업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감정법칙을 생산해내고, 약자인 노동자들에게 그것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화가 나도 고객은 잘못한 것이 아니다', '고객한테는 절대로 화내서는 안 된다', '고객을 아이라고 생각해라' 등. 기업이 생산한 감정법칙은 단순히 감정노동자에 대한 착취로 끝나지 않는다. 고객은 기업이 만들어낸 그 법칙을 인지하고는, 감정노동자에게 좀 더 막대할 수 있다. "저 사람들은 친절해야 돼. 그게 저 사람들 직업이니까!" 반면 노동자는 자신의 감정에서 소외된다. 자기가 느끼는 감정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고, 감정을 회피하는 과정에서 '진짜 나의 감정'이 무엇인지 헛갈리기도 한다. 기업은 감정노동자에게 단순히 '웃으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진심으로 웃으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3.

이 감정노동은 젠더문제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남자가 화를 내면 그것은 '합리적'이고 이해할 수 있는 분노이자, 성격의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깊은 신념을 드러내는 분노로 여겨진다. 여성이 남성과 비슷한 정도로 화를 낼 경우, 그것은 개인적인 불안의 상징으로 해석되기 쉽다. 여성은 더 감정적이라는 믿음이 있고, 이런 믿음은 여성들의 감정을 무효로 만드는 데 사용된다. 즉 여성의 감정은 실제 사건에 맞선 대응이 아니라 '감정적인' 여성 자신을 반영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것은 굉장히 '보편적'인 성차별 인식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게 아니다.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회적 자원을 가지고 있지 못한 여성들은 자신들의 감정을 상품으로 내놓아야만 한다. 그리고 여성들에게 '섹시한 모성'을 기대하는 사회의 요구와 맞물려 상품화는 더욱 빠르게 진행된다. 때문에 감정노동에 종사하는 여성이 남성보다 압도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다. 그녀들은 가정 안에서나 사회에서나 감정적 불구자인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요구받기 때문에, 소외될 수밖에 없다. 분노한 어머니, 증오하는 어머니, 아이를 던져버리고 싶은 어머니, 좌절한 어머니. 우리는 이런 것에 얼마나 익숙한가? 실제로 많은 현대 여성들이 산후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사회적 모성이 만들어내는 죄책감 때문이다.

저자는 여성을 좀 더 만만하게 보는 인식이 노동사회 내부에서 또 다른 위계를 생산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여자 승무원의 말은 죽어라고 듣지 않던 승객이 남성 승무원의 한 마디엔 고분고분 따르기 때문에, 오히려 경력도 미천하고 직위도 낮은 남성 승무원이 권위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고객은 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다면, 남성 승무원이 그들 중 리더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때로는 좀 더 쉽게 일하려는 지친 여성노동자가 그것을 이용하기도 한다.

#4.

그래서 결론은? 감정노동을 자세히 다룬 이 책은 지나치게 '이성적'이다. 역자의 말대로, 저자는 "시장과 기업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감정'이 매우 미묘한 지점이니만큼 감정노동자와 그 결과물을 소비하는 소비자가 감정 그 자체에서 소외되는 일은 없도록 기업과 조직의 원리에 따라 관리되고 상품화된 감정과 그렇지 않은 인간 본연의 감정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너무 온건하다"라는 나의 생각이 좀 과격한가? 감정노동에 이런 문제들이 있으니, 소비자와 노동자가 스스로 소외되지 않도록 감정들을 구별해야 한다? 구별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어 있는가, 소외되지 않도록 어떠한 조치를 하고 있는가, 임계점에 다다를 정도로 노동강도가 지나치게 높지는 않은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한 시점에서, 저자는 한 발짝 물러서 '개인'을 이야기한다. 마치 신자유주의의 책임론처럼. 취직이 되지 않으면 스펙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게으르기 때문에.

앞에서 나와 통화를 했던 텔레마케터를 생각해보자. 그녀는 매우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었고, 더 이상 계속 일을 하기 힘든 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고객에게 통화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라고? 이건 노동조건을 몰라서 하는 말일 뿐이다. 텔레마케터들은 업무시간 동안 계속 감시를 받는다. 계속 통화하고 있는지에 대한 감시. '그래서' 그녀도 나에게 다른 주제로 통화를 하자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비행사처럼) 더 교묘한 방식으로 회사가 감시를 하고 통제를 한다면? 통화내용까지 다 녹음하여 그 내용을 분석한다면? 나와 통화한 그녀도 '힘들고 우울하다'고 자신의 감정을 느꼈다. 즉 '인간 본연의 감정을 구별'해냈다. 그래서? 그 다음에 이 노동자에겐 어떤 말을 해줄 텐가? 일은 일이니까 신경 끄라고? 이건 저자가 이미 지적한 소외의 한 종류에 불과하다.

또한 감정과 직업에 대한 문제가 더 복잡하다는 생각도 든다. 의사를 예로 들어보자. 이 책에서 의사는 간호사에 비해 감정노동을 하지 않으면서도 더 나은 지위를 보장받는 직종으로 등장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의사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다. 만약 사람의 장기 하나하나를 객관적으로 진단하지 않고 치료과정과 치료결과 하나하나에 모든 감정을 쏟는다면, 과연 그가 의사로서의 직업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그가 버틸 수 있을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비인간적인 의사를 옹호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인간적인 것을 요구하려면 개인에게만 계속 당신이 인간임을 잊지 말라는 것을 외칠 것이 아니라, 구조를 인간적으로 변화시킬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문제제기는 굉장히 흥미롭지만, 그 문제제기에 대한 대답은 좀 심하게 말해서 무성의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 문제는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것이며, 그 답은 우리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적어도 이 책은 이 점에서 중요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