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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1월 27일 12시 38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1월 28일 14시 12분 KST

뻔뻔하거나 쪼잔하거나 'KBS의 뒤끝'

한겨레

어떤 중대한 잘못을 저지르면서 그게 잘못인지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사이코패스라고 부른다. 이런 정신병적인 상태가 아니라면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때 그것이 잘못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1. 뻔뻔함과 쪼잔함

잘못을 저지른 뒤에 갖게 되는 자세는 대개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 하나는 뻔뻔한 것이고, 또 하나는 쪼잔한 것이다. 뻔뻔한 것은 죄를 아예 덮어버리려 하는 것이고, 쪼잔한 것은 잘못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 위해 둘러대고, 보태고, 감추려고 하는 것이다.

뻔뻔함의 대표적인 전형은 김기춘과 조윤선 유형이다. "나는 모르며 관계없다"로 일관한다. 쪼잔한 유형은 끝없이 변명하고 거짓말을 보태고 아닌 것처럼 둘러대고 억울한 코스프레를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지 않냐고 동의를 구한다. 한 마디로 심플하지 못하고 지저분하고 분주하다.

어느게 더 낫고 못하고의 문제는 아니지만 뻔뻔한 것보다는 쪼잔한 것이 훨씬 추레하게 보인다. 특히 그 당사자가 나약한 개인이 아니라 거대한 조직인 경우는 그 추리함이 더 도드라져서 애잔함마저 느껴진다. 황교익 출연정지와 관련, 대선 토론에 불참한 문재인 대표에 대해 쪼잔한 뒤끝을 보이고 있는 KBS의 경우가 그렇다.


2. 호들갑을 부르는 쪼잔함

KBS는 황교익이 문재인 지지그룹인 더불어포럼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계획돼있던 출연을 취소시켰다. 문재인 대표는 이에 항의해 대선후보 좌담 출연을 거부했다. KBS가 뻔뻔한 유형이었다면 그냥 쌩깠을 것이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그럼 다음 기회에" 정도로 반응했을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대표의 출연 거부 방침이 알려지면서부터 해명에, 변명에, 덮어씌우기로 호들갑을 떨더니 진짜로 불참하자 입장자료를 내고 별도의 꼭지를 만들어 보도를 내보내면서 유감이니 뭐니 하면서 또 호들갑을 떨었다. 아무리 KBS가 이미 허접쓰레기가 돼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대한민국 최대의 공룡 방송사의 대응 치고는 너무 쪼잔하다. 아주 좋게 표현을 해주면 최홍만이 연예 프로그램에 나와서 앙증을 떠는 모습이랄까.


3. 하나의 진실도 없는 변명과 해명

KBS의 변명이나 해명은 죄다 거짓말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하나의 진실도 존재하지 않는 해명과 변명이라는 게 있을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다. 출연정지가 아니라 방송 시기를 조정하려 한 것이었다는 변명은 자기도 무슨 말인지 몰라 이리 꼬이고 저리 꼬였고, 자체적인 방송 가이드라인에 의한 것이었다는 해명도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 예능이나 교양이 아닌 '보도 프로그램'에 적용하는 선거보도 세부 지침을 돼도 않게 내민 것이었다.

KBS는 반기문 캠프에 참여하고 있는 어떤 고문변호사를 해촉했다고 밝혔다. 문재인측만 아니라 다른 후보측에 참여한 인사들에 대해서도 같은 조치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형평성의 문제가 아니다. 얘도 때리고 쟤도 때렸다고 해서 누군가를 때린 행위가 정당화되거나 덮어지지는 않는다. 지금 시점에서 누군가를 지지하고 그와 관련된 활동을 한다고 해서 아무런 근거도 없이 방송 출연의 기회를 뺏어버리는 것은 문재인이든 반기문이든 그 어느 쪽이든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짓이다.

그나마 변명으로 둘러댔던 형평성도 거짓말이었다. 황교익의 출연정지 소식이 알려지자 반기문을 명시적으로 지지하는 인사들이 아무 일 없이 KBS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는 사례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원래 하나의 거짓말을 내뱉으면 수십 개의 다른 거짓말이 한꺼번에 터지는 법이다.

여기에 '쪼잔함'이라는 키워드에서 KBS와 강력한 동질감을 느끼고 있는 다른 야당들은 '검증 회피'라며 줄줄이 부화뇌동을 하고 있다. 그래도 이들은 KBS와는 달리 덩치는 작아서 그런대로 귀엽게 봐줄 만하다.


4. 불특정 다수의 자기검열을 노리는 시범케이스

황교익에 대한 출연정지는 사실은 황교익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대선을 앞두고 앞으로 문재인이나 야당 후보에 대해 지지를 표명하고, 그것을 위해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더 나아가 황교익처럼 깊숙하게 역할을 할 수도 있는 모든 잠재 출연자를 향한 것이었다. 앞으로 문재인 지지하는 뭔가를 하면 황교익처럼 당할 테니 조심하라는 것. 이름하여 시범케이스였다.

이는 방송출연을 무기로 자연인의 정치적 의사와 그에 따른 행동을 통제하려는 지극히 반민주적이고 반문명적인 행위다. 갑질 중에도 아주 더러운 갑질이다. 문체부의 블랙리스트는 그게 아무리 많아도 리스트에 올라있는 예술인과 언론들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고, 철저히 비공개됐던 것이라 당사자들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은 가졌어도 공포와 위축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러나 황교익에 대한 출연정지는 너무나 가시적이고 분명한 것이어서 KBS에 출연하고 있거나 앞으로 출연할 가능성이 있는 불특정 다수의 개인들에게 정치적 의사표시와 활동에 있어서 심리적 위축과 자기검열을 강요한다. 이 점에서 KBS의 갑질은 블랙리스트보다 훨씬 더 악질적이고 야비하며 그 영향 또한 광범위하다.

이런 엄청난 짓을 저질러놓고도 그들은 뻔뻔하게 나오지도 못하고 그저 쪼잔하게만 굴고 있다. 그 큰 덩치를 가지고 계속 그렇게 쪼잔하게 살기 바란다. 지들이 하는 짓이 잘못이라는 걸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저 기특할 따름이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