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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07일 07시 12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12월 08일 14시 12분 KST

요즘의 청문회는 왜 이렇게 찌질한가

노무현재단

지금까지 숱한 국정조사 청문회가 있었지만 재벌 총수들이 총출동한 6일의 청문회는 특히 노무현을 떠올리게 한다. 88년 청문회는 노무현이라는 걸출한 스타 정치인을 탄생시켰다는 것 외에도 정치와 국회의 역할, 정경유착의 정체, 무소불위였던 권력의 실체를 드러내 권력에 대한 국민의 기존 인식을 총체적으로 뒤흔들어 놓았던 사건이었다.

노무현의 청문회로 동영상을 검색하면 정주영, 대림회장, 풍산회장, 장세동 정도에 대한 동영상만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진면목은 동영상으로 확인되는 부분보다 일해재단에 직접 관여했던 장세동을 비롯한 전두환 측 관계자들의 신문에서 더 빛을 발했다.


추궁이라기보다 대화를 나누듯 차근차근 질문을 하고 작은 사실들을 확인한 끝에 증인이 옴짝달싹할 수 없는 외통수로 몰려 어쩔 수 없이 시인하게 만드는 장면을 여러 번 연출했다.


그의 신문(訊問)은 예술이었다. 내 기억으로 노무현은 순직 노동자와 관련됐던 풍산금속 회장 신문 외에는 큰 소리를 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말투도 위압적이지 않았다. 추궁이라기보다 대화를 나누듯 차근차근 질문을 하고 작은 사실들을 확인한 끝에 증인이 옴짝달싹할 수 없는 외통수로 몰려 어쩔 수 없이 시인하게 만드는 장면을 여러 번 연출했다. 보는 사람으로서는 기가 막히게 잘 짜여진 법정 드라마를 보고 있는 듯한 통쾌함을 느끼게 하는 순간들이었다.

그의 신문이 워낙 빛을 발하자 소속 당이었던 통일민주당의 동료의원은 자기 질문 시간을 노무현에게 넘기기도 하는 한편으로 그가 너무 뜨는 것을 시기한 다른 의원들이 질문 도중 갖은 방해를 하기도 했다. 그 뒤로는 노무현만큼 청문회를 화려하게 장식한 의원은 없었다.


원인은 의원의 자질보다는 청문회 운영방식에 있다. 그중에서도 1인당 발언시간이 가장 큰 문제다.


그 원인은 의원의 자질보다는 청문회 운영방식에 있다. 그중에서도 1인당 발언시간이 가장 큰 문제다. 88년 당시에도 제한 시간이 있었지만 꽤 긴 시간이 주어졌었다. 30분 정도의 신문을 수차례 반복할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실력 없는 의원들은 시간 때우느라 횡설수설 애를 먹기도 했다.) 지금은 길어야 1인당 10분이고 보통은 그 이하다. 이번 청문회의 1인당 질문 시간은 7분이다. 추가로 5분과 3분의 질문 시간이 주어진다. 이 시간이면 노무현이 다시 나타나도 88년과 같은 치밀한 증인 신문은 불가능하다.

이것은 청문회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 진상규명보다는 TV 중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릇된 관행에서 비롯된다. 88년은 청문회 자체가 언제나 심야까지 이어졌고, 방송사들은 다른 프로그램을 전폐하고 청문회를 생중계했다. 5공 청산이라는 시대적 과제가 가진 무게와 함께, 노무현을 비롯한 청문회 스타들의 활약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워낙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중계를 해봐야 오전부터 정규방송 시작하기 전까지만 중계를 한다. 이 중계시간에 맞추다보니 개별 의원의 발언시간을 짧게 제한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중계가 오전이나 오후로 국한될 때는 거기에 맞춰 신문 순서와 시간을 다시 짠다. 그 결과로 충분히 질문을 하고 충분한 답변을 들으면서 실마리를 잡아 신문을 진행하는 것보다는, 일방적인 발언만 퍼붓듯이 쏟아내고 답변할 기회는 제대로 주지도 않는 부실 청문회로 이어진다.


제대로된 청문이 어려우므로 필요한 답변을 이끌어내는 것보다는 호통을 치고 망신을 주는 데 더 주력하기도 한다.


제대로된 청문이 어려우므로 필요한 답변을 이끌어내는 것보다는 호통을 치고 망신을 주는 데 더 주력하기도 한다. 그것이 제한된 여건 내에서 여론의 관심을 끌기가 더 쉽기 때문이다. 게다가 의사진행 발언이나 자료요청 발언 등으로 질문을 대신하려고 해서 쓸 데 없이 청문회가 지체되기도 한다.

여당이 의회의 근원적인 기능을 부정하고 정부와 권력의 방탄 역할을 자처하는 것 또한 청문회를 찌질하게 만드는 매우 중요한 원인이다. 사실상 여당 의원들은 국정조사위원이 아니라 국정조사 방해위원으로 참여한다. 그래서 증인 채택의 단계에서부터 방해를 시작하고, 국정조사의 기간도 최대한 짧게 잡아서 내실있는 청문회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신문 시간이 짧아도 전체적인 국정조사의 기간이 충분하게 주어진다면, 수십 명의 증인을 한꺼번에 불러놓고 시간에 쫓겨 제대로 질문도 못하고, 증인의 절반은 한 마디도 물어보지 못하고 돌려보내는 일은 없을 것이다.

TV 중계를 하거나 말거나 여야의 입장을 떠나 충분한 신문이 가능하도록 청문회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 그리고 방송사의 외면으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중계없이 진행됐던 세월호 조사특위의 청문회에서는 증인들의 오만방자한 태도와 관계기관의 극악무도한 방해와 비협조에도 불구하고 꽤 의미 있는 성과를 이끌어낸 바 있다.


관련기사


"간사들은 각의원당 1회 신문시간을 30분을 넘기지 않도록... 합의했다."

[일해 2차 청문회 이틀간 증언 듣기로] 동아일보 1988년 11월 5일자


"심문 시간은 간사간 합의에 따라서 답변 시간을 포함하여 7분으로 하도록 하겠습니다."

[최순실 국정조사 청문회] YTN 2016년 12월 6일


"KBS는 13시간 정도 MBC는 7시간 정도 중계한 셈"

[청문회 시청률 올림픽 때보다 높아] 동아일보 1988년 11월 8일자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