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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29일 10시 25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0월 29일 14시 12분 KST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 | 은퇴 경주마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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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다큐멘터리 보다가 훌쩍거린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영화 '워낭소리'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보면서 훌쩍거린 사람이 많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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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크닉스 스테익스 경주에서 출발 후 멈춰선 바바로(Barbaro)가 고통을 호소하며 뒷다리를 들고 있다. (http://www.two-views.com)

바바로(Barbaro)라는 말이 있었다. 짧은 삶을 불꽃처럼 살다가 갔다. 두 살에 경주마가 되었다. 달리는 데는 천부적인 소질을 가졌다. 데뷔하자마자 유명한 경마대회에 모두 나갔고, 모두 우승했다. 여섯 번째는 세계 최고의 대회, '세상에서 가장 짜릿한 2분', '장미를 향한 질주'라는 켄터키 더비에 출전했다. 2위와는 16m 거리를 두고 우승해 버렸다. 1978년 어펌드(affermed) 이후 사라진 삼관마(Triple Crown) 탄생의 기대가 끓어올랐다. 5주간 3개의 경주에서 우승해야 하는 삼관마, 미 대륙을 횡단하며 다양한 거리에서, 최고의 말이 출전하는 경주에서 우승하는 말은 30년간 나오지 않았다. 모두들 삼관마 탄생 현장을 지켜보고 싶어 했다.

2006년 5월 20일, 두 번째 경주인 프리크닉스 스테익스 경주, 바바로는 출발 후 몇 걸음 가지 못하고 멈춰 섰다. 구름처럼 모인 관중과 텔레비전 중계를 지켜보던 이천만 시청자는 경악했다. 바바로는 오른쪽 뒷다리를 들고 섰고, 수의사는 그 부위가 골절됐음을 직감했다. 펜실베이니아 수의대학으로 옮겨졌고 최고의 의료진이 수십 시간에 걸친 수술을 시작했다. 바바로의 뒷다리는 폭탄 맞은 것처럼 조각나 있었다. 59군데를 쇠못으로 고정해야 했다. 바바로의 상태는 호전과 악화를 거듭했다. 미국민들은 그때마다, 목장에서 그를 만날 희망을 담은 편지를, 또는 병마를 견디고 살아나기를 기도하는 엽서를 보냈다. 바바로를 가족으로, 친구로 생각했다.

희망과 절망을 거듭하는 8개월이 지난 뒤, 상황은 명확해졌다. 바바로는 더는 고통을 견디기 힘들어했다. 마주는 안락사를 결정했다. 치료 기간은 길었고, 힘들고, 엄청난 경제적 부담이 있었지만, 마주는 그 시간이 고통스럽기만 한 건 아니었으며, 행복한 순간이 더 많았다고 했다. 그를 기억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했다. 그녀는 바바로의 유해를 켄터키 더비 박물관 밖에 묻었다. 그를 사랑한 사람들이 비용 부담 없이 바바로를 추억하길 바랐다. 마주는 말의 복지를 최우선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바바로의 죽음 이후, 펜실베이니아 대학에는 기금이 쇄도했고, 대학은 그 돈으로 대형동물의 치료를 위한 기금을 설립했다. 미국경마협회도 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바바로 기념재단을 만들었다. 말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HBO가 만든 이 다큐멘터리를 보며 울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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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실베이니아 대학병원에서 치료 중인 바바로. 말은 오래 누우면 생명이 위험한 병이 생긴다.

다리가 하중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매달아서 치료한다. (https://www.pinterest.com)

사람도 먹고살기 힘든데, 동물까지 그렇게 챙겨야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다. 맞는 말이다. 멀쩡한 사람도 살기 힘든데 우리가 장애인까지 챙겨야 해? 이런 질문과는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나는 한 걸음 더 나가고 싶다. 바바로는 되고, 능력 없는 경주마는 최소한의 보호라도 받으면 안 되나?

여러분들이 기억하는 말은 무엇인가? 알렉산더대왕의 애마 부케팔로스는 알렉산더와 함께 페르시아와 인도를 정복했다. 폼페이 유적에서 발견된 그림에서도 알렉산더는 부케팔로스를 타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부케팔로스는 히다스페스 전투에서 입은 치명상으로 30살의 나이에 죽었다. 알렉산더 대왕은 그를 가장 친한 친구이자, 형제, 충신으로 여겼고, 부케팔로스를 기리기 위하여 도시를 건설했다(알렉산드리아 부케팔로스다). 부케팔로스의 죽음이 알렉산더의 죽음을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다. 역사적으로 명마와 영웅은 운명을 함께했다. 관우와 생사를 함께 했던 적토마는 자신이 선택한 주인이 아니면 태우지 않았고, 관우가 죽은 후에는 식음을 전폐하다 굶어 죽었다는 전설이 있다. 항우의 오추마는 사면초가로 유명한 해하 전투에서 패한 항우가 오 강에 이르러 죽음을 결심하고, 오추마를 살리기 위해 뗏목에 태워 보내지만 오추마는 항우가 죽음을 결심한 것을 알고 스스로 물에 뛰어들었다.

영화로 로마 시대 검투사 경기를 봤을 것이다. 사람이 싸우고, 피 흘리고, 죽어 나간다. 웃고, 떠들고 환호한다. 그 죽음을 보기 위해 콜로세움에 모인다. 피 흘리며 죽을 때까지 싸우는 개들의 싸움은 어떨까? 경주에 나서는 말을 본 적 있는가? 긴장이 가득한 말이 물똥을 싸고, 그 냄새가 퍼진다. 눈치 빠른 말들은 불안함을 못 이겨 눈을 희번덕이고 불규칙하게 몸을 뒤척인다. 배 아래에는 뚝뚝 구슬만한 땀이 떨어진다. 발주대 앞에서는 죽음의 그림자를 예감한 말들이 게이트 진입을 거부한다. 강압에 못 이겨 발주대에 들어서면 죽음의 레이스가 시작된다. 매주 1-2두의 말이 경기 중 골절과 인대파열로 자신의 마방에 돌아가지 못하고, 주로에서 거친 숨을 거둔다. 경주를 무사히 마친 말들도 작게는 찰과상, 크게는 부종, 인대 손상으로 자신의 청소년기를 보냈던 경주장을 떠나고, 요행히 부상을 피한 말들은 모래가 가득한 핏빛 눈동자를 껌벅거리며 내달에 있을 죽음의 경주를 준비한다.

마구간 또한 쉴 곳이 아니다. 한 평 남짓한 공간, 600kg 몸을 한 바퀴 돌리기도 어렵다. 24시간 이곳에 갇히면 극심한 스트레스로 이상 행동을 보인다. 동물원의 늑대, 표범이 보이는 이상행동이다. 말을 극한의 스트레스 몰아넣는 경마를 보며, 경마장을 찾는 사람들은 말들의 질주, 경마를 보면 스트레스가 풀린단다. 그러면서 자신을 '말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자리매김 한다. 그들이 말을 좋아한다는 것, 충청도 사람이 말하는 '개 혀?'와는 얼마나 다를까? 그런 악조건을 견뎌낸 말들은 경마장을 떠난 후 어떻게 될까?

경주마를 가진 마주라고 하면 모두 묻는다.

"은퇴하면 그 말은 어떻게 해요?"

좋은 질문이다. 경마 관계자에게 물으면 거침없이 답한다.

"대부분 승용마로 활용하고, 아주 우수한 말은 씨수말, 씨암말로 활용됩니다."

모범답안이다. 승마하는 사람은 다시 묻는다.

"승용마로 적합하지 않은 말은요? 승용마로 적합한 말은 열 마리 중 몇 마리쯤 되나요?"

대답해야 할 경마관계자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모르는 게 아니라 알고 싶지 않다는 게 정확한 답이다. 씨수말로 가는 말은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수천 마리 중 한 마리다. 로또 당첨에 비견될 일이다. 승용마로 간다는 그 말, 그 말들은 어떻게 될까?

바바로의 죽음에 눈물 흘린 미국민들이 잊은 게 있다. 바바로와 같은 해 태어난 3만여 필의 경주마다. 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일부는 미국의 경마장으로, 일부는 경매에서 해외로 팔려 갔다. 팔리지 못한 말은? 경마장에 갔으나 바바로처럼 뛰어난 성적을 보이지 못한 말은?

우리나라에서는 1년에 1,500필의 경주마가 생산된다. 경주마로 오기 전에 다치고, 안 팔리고, 질병으로 죽는 말이 대략 500필이다. 천 마리가 경마장으로 들어온다. 훈련과 경주에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 안락사하는 말이 연중 100필에서 150필이다. 그럼 얼마나 남는가? 750필에서 850필이 세 살 때까지 살아남는다. 이 가운데 절반은 건강한데도 성적 부진으로 도태된다. 1,000필이 경마장에 들어오면 1,000필이 나간다.

1,000마리의 말이 나오면, 평균적으로 100필이 번식용으로 새로운 삶을 찾는다. 성적을 낸 암말이다. 평균적으로 200필이 부상으로 죽는다. 나머지 700필은 승마장으로 간다. 승마장으로 가는 말은 털 색깔에 따라, 국산 말이냐 외산 말이냐에 따라, 경마장에서 몇 등급까지 뛰었느냐에 따라 가격이 매겨진다. 국산이 비싸고, 흰색 털일수록, 높은 등급까지 뛰었을수록 가격이 비싸다. 보통은 백만 원, 2백 만원에 팔린다. 승용마로 순치시키기 위해 며칠간 테스트해 본다. 가능성이 없거나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면 바로 내보낸다. 순치가 안 되는 말은 없다.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는 말이다.

말 전문가는 말한다. 세상에 순치시킬 수 없는 말은 없다. 내가 다니는 승마장의 사장은 말을 사랑하는 분이다. 본인 말로 단 한 마리의 말도 관상용으로 보낸 적이 없다. 상처받은 말을 1년간 보살피며 사랑받고, 사랑을 주는 법을 가르쳤다. 이제는 누가 가더라도 믿고 따른다. 누가 타도 애정을 주고 충성심을 보인다. 말에서 내리면 사장님이 말한다.

"아빠가 아까 너무 몰아붙였지? 힘들었지?"

경마장에서 인간들에게 갖은 고통을 당한 말들은 사람을 믿지 못하고 매우 예민해진다. 하나쯤은 나쁜 버릇, 악벽을 가진다. 물거나, 사람을 차거나, 쉽게 놀라거나, 자해하거나 하는 습관이다. 이미 심적 상처를 깊이 받은 말은 승마장에서도 적응하지 못한다. 승마장 사람들이 애정으로 대해도 믿지 못하고 놀란다. 철제에 부딪히고 사람도 넘어지게 해서 상처를 입힌다. 이런 말들은 어떻게 처리될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는 말은 어디로 가나요?"

"한 달 관리비용으로 80만 원이 나가요. 두 달이면 말값이 나와요.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죠. 경마장에서 말은 쏟아져 나오는데... 대부분 관상용으로 보내요."

승마장 주인의 답은 여기까지다. 다시 캐묻는다.

"관상용으로 그렇게 많은 말이 필요해요?"

"그건 모르겠어요."

이분들이 말하는 관상용은 하얀 거짓말이다. 경마장의 마주, 조교사, 경마객이 자신을 죄의식에서 구하기 위해, 갔으면 좋겠다고 스스로 믿고 싶은 곳이다.

미국에서는 해마다 경주마를 포함해 매년 9만 필에서 14만 필의 말이 도살장으로 간다. 버려지거나 보호받지 못한다. 도살되어 고양이 먹이로 팔린다. 바바로를 가족으로, 형제로 생각한 미국민이 바바로의 형제, 친구들을 도살시켜 고양이 먹이로 먹인다. 이런 사정은 국가를 정지시키는 경주(The Race Stop Nations), 멜번컵의 나라 호주도 다르지 않다. 호주에서는 해마다 10,000여필의 말을 장총으로 살해하고 동물 먹이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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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경주마보호연합 회원이 어린 은퇴 경주마를 도살하여 동물먹이로 사용하는 행위를 고발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http://www.echo.net.au)

피할 수 없는 질문에 부딪히면 그들은 말한다.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돼지나 소, 닭보다는 낫지 않느냐고? 그들이 말하는 '말 좋아하는 사람'의 실체다. 이완용이, 친일파들이 해방되고 한 말이 있다. '어쩔 수 없었다.' 자신에게 목숨 바쳐 충성하고, 우승의 기쁨을 주고 환호했던 말을, 필요가 없어진 순간, 우리 애, 우리 가족이라 말한 말에게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건 당신들이다. 어쩔 수 없는 건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그 얼어버린 마음이다. 경마로 돈을 버는 한국마사회가 조금만 노력을 기울이면, 경주마의 순치에 조금만 더 노력을 기울여 승마장으로 내보낸다면 많은 말이 살 수 있다. 말의 주인이라는 마주들에게 은퇴한 말에 대해 일정액의 순치기금을 부과하는 것도 방법이다.

인간미를 가진 나라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말 버리는 걸 부끄러워할 줄 알고, 동물보호단체와 동물복지단체의 요구에 귀 기울인다. 홍콩은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경주마 구입에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말의 복지를 최대한 고려한다. 은퇴 후에는 모든 말을 마주협회에서 순치시켜 마주가 승용마로 타게 한다. 다친 말, 장애를 가진 말을 평생 데리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걸 자랑으로 여긴다.

모든 말은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