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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8월 18일 10시 17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10월 18일 14시 12분 KST

박수칠 때 떠나라고?

박수칠 때 떠나지 않고 왜 이렇게 궁상맞게 사느냐고? 그건 영웅들이 하는 일이다. 먹고살 만한 사람들이 하는 멋진 대사다. 누구는 인터뷰 기사를 내면서 "말을 좋아하고, 말 타는 것을 즐기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쇄골이 부서지고, 팔꿈치 뼈, 정강이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으면서, 시력이 떨어져 눈비가 오면 시야를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가 말 타는 이유가 되지 못한다. 박수칠 때 떠나지 못한 이유? 직장생활 하는, 가게 운영하는 비루한 우리의 일상과 다르지 않다. 2남 3녀를 둔 가장이기 때문이다.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김귀배 기수를 만난다. 경마공원에서, 회사에서, 지하철에서.

엉아와 순돌 블로그

조교사는 말을 가르치고 관리하는 사람이다. 프로 스포츠팀의 감독이라 생각하면 된다. 선수가 사람이 아니라 경주마라는 것이 다르다. 선수 선발부터 훈련, 작전, 출전할 경기 결정까지 모든 걸 다한다. 선수인 말과 함께할 기수도 정한다. 43조 조교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똥말이라고 부르는 부진마 한 마리를 훈련해 보란다. 예쁜 이름을 가졌다. 키스미. 올해 네 살이다. 달랑 세 번 경주에 출전했다. 남들은 스무 번 이상 출전하고 은퇴를 고민할 나이다. 남들보다 늦은 세 살에 데뷔했고 다쳐서 뛰질 못했다. 버릇이 나쁘다. 출발선에서는 가만히 기다리지 않고 난동을 부린다. 앞으로 곧장 나가도 우승할까 말까 한데 게걸음이다. 고삐로 지시하면 머리를 쳐들고 거부한다. 갑자기 방향을 틀거나, 공중으로 날아올라 기수를 위험하게 한다. 식욕이 부진해서 기운도 없다. 경주마가 가져서는 안 되는 조건을 빠짐없이 갖추었다. 처음 왔을 땐 웬만한 기수가 훈련했다. 점차 기승 기회가 아쉬운 기수가 훈련하더니 이제는 그에게 기회가 왔다. 부상도 각오해야 한다.

경주마는 고장 난 자동차다. 태어날 때부터 고장이다. 다리가 부러지거나 지병이 있다는 말이 아니다. 어떤 말은 브레이크가 듣지 않아 속도 조절이 안 된다. 어떤 말은 경주 중에 흥분해서 좌우를 보지 못한다. 백미러가 고장 났다. 또 다른 말은 방향 전환이 되질 않는다. 핸들 고장이다. 좌측 회전만 안 되는 말이 있고, 우측 회전만 안 되는 말도 있다. 어떤 말은 연료통이 요쿠르트 병만 해서 뛰자마자 지친다. 클러치가 고장 나서 가속이 되지 않는 말도 있다. 어디가 고장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기수는 경주를 치른다. 경주 경험이 쌓이면서 새로운 고장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나고, 타이어가 펑크가 난다. 아예 엑셀과 핸들이 말을 듣지 않는 경우도 있다. 몇 번 타본 중고차는 파악이 된다. 막 사온 중고차는 간담이 서늘하다. 모두들 신마 훈련은 꺼린다. 키스미처럼 단단히 고장 난 말을 훈련하려는 기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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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엉아와 순돌 블로그

고장 난 말 위에서 그는 가끔 세상이 고장 났다는 생각을 한다. 10 가지면 10가지 모두가 잘못된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보면, 참사 이후 정부와 공무원, 관료들의 행태를 보면 나라가 온통 고장 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고위 공무원 인사청문회에서 일반의 상식으로는 납득이 되질 않는 행태를 저지르고도, 꼿꼿이 고개 들고 관행이라고, 잘하느라고 그랬다고, 혹은 사과한다고 하면서 자리는 맡아보겠다는 사람을 보면, 고장 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시의원 청부살인 사건과 뉘우치지 않는 모습을 보면 지방자치단체도 이미 고장 났다는 확신을 갖는다. 직장생활 하는 친구도 그랬다. 자기만 빼고 동기들이 모두 승진하는 모습을 보면 회사가 고장 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단다. 회사가 자신의 생각이나 기대와 다르게 움직이고 있을 때 고장 난 느낌이란다. 아내의 잔소리가 무한히 계속될 때, 아이들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행동으로 화나게 할 때, 가족도 고장 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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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엉아와 순돌 블로그

경주마는 새벽에 훈련한다. 주말 낮에는 경주가 있기 때문이고, 새벽에 상대적으로 말이 차분하기 때문이다. 축구장 8개가 들어가는 넓은 트랙에는 화살 같은 바람이 분다. 겨울에는 손이 시리다 못해 아리고, 칼로 찢는 아픔이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시린 손의 아픔을 모른다. 견디지 못하면 손을 말안장 아래로 넣는다. 말의 체온이 따뜻하다. 고삐를 놓았으니 위험은 커진다. 1월 새벽 동틀 무렵, 경마장의 찬바람을 맞아보지 않고는 겨울 추위를 말해선 안 된다. 새벽 훈련이 너무나 싫어서 기수를 그만둔 사람도 많다. 한겨울 강풍이 쏟아지는 경주일의 추위는 더하다. 속옷 하나 입지 못한다. 얇은 바지 하나에 가슴 방탄복, 나일론 기수복이 전부다. 체감온도 영하 20도의 추위는 살을 파고든다.

경주 중에 말에서 떨어져 빗장뼈가 부러지고, 무릎뼈, 팔꿈치 뼈가 나간다. 고장 난 자동차를 최고 속도로 몰다 생기는 일이다. 빗속에서의 경주는 말발굽이 쏟는 흙탕물로 뒤따르는 기수는 눈을 뜨지 못한다. 비닐 안경을 여러 겹 쓰고,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는 하나씩 벗어던지며 경기한다. 90년 이후 다섯 명의 기수가 목숨을 잃었다.

배고픔은 이보다 더한 고통이다. 체중을 최대 52kg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 49kg이면 더욱 좋다. 18살에 가졌던 체중을 나이가 들어서도 유지해야 한다. 권투선수는 1년에 몇 번 시합이 있을 때만 체중을 만들면 된다. 기수는 매주 체중을 유지해야 한다. 일요일 경주가 끝난 뒤, 일주일에 단 한 끼만 먹는다. 빠질 때로 뺀 체중에서 1-2kg을 더 빼야 하는 경우도 있다. 나잇살로 불은 체중은 사우나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경주 중에는 힘을 써야 한다. 힘이 없으면 말을 몰지 못한다. 채찍은 연료통이 바닥난 기수가 취하는 마지막 수단이다. 밥 한 숟가락 들 때마다 고민한다. 더 먹으면 체중이 걱정되고, 덜 먹으면 체력을 걱정해야 한다. 나이 40이면 누구도 이 운명을 견디지 못한다.

2009년에는 교육방송의 극한직업에도 출연했다. 당시엔 31년 차 51살이었다. 신인 기수와 대비했다. 그를 쳐다보며 관리사가 말했다. "나이가 있어서 이제는 힘들어요. 조교사나 팬들에게 기승하는 말이 우승한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죠. 이젠 어려워요." 10여 년째 듣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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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국마사회

김귀배 기수. 그의 시대가 끝난 건 오래전이다. 89년 이전, 뚝섬에서 경마가 열린 땐 잘 나가는 기수였다. 1986년에는 한해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는 최고의 경주, 그랑프리 경주에서 '포경선'을 타고 우승했다. '포경선'과 함께 한국 경마의 역사에 남을 기수다. 내로라하는 기수도 그랑프리 대상경주에서 우승한 기록이 없으면 잊힌다. 어찌 보면 운 좋은 기수다. 경마공원이 과천으로 옮기면서 그의 시대는 갔다. 2년에 한번, 3년에 한 번씩 우승하는 퇴물로 전락했다. 사람들은 뚝섬에서의 오른쪽 돌기 주로에서, 과천의 왼쪽 돌기로 바뀐 것이 이유라고 하지만 정확한 원인은 자신도 모른다. 그냥 갑자기 세상이 고장 났다는 기억뿐이다. 올해는 운 좋게 2승을 거두었다. 한 주에 6승씩 하는 기수도 있지만, 그가 1년에 한번 우승하면 뉴스가 된다. 최고령 우승 기록이기 때문이다. 62년생, 우리 나이로 오십 넷이다. 실제로는 61년생이란다. 올해로 기수생활 37년째다. 열일곱에 데뷔했다.

대부분의 조교사가 그보다 어린 나이다. 후배 조교사들이 편하게 기승을 부탁하지 못한다. 그보다는 그의 실력을 미덥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교적이지 못한 사람으로 타고났다. 말주변도 없다. 그러니 새벽에 나와, 악벽 신마를 조교하지 않으면 기승 기회를 얻지 못한다. 대부분 전도유망한 말이 아니다. 그런 말도 능력 있는 말로 판명되면 기승 기회를 잃는다. 남들보다 세배 이상 노력해야 남들의 절반을 얻는다. 고단하다. 기승 기회 한번 한번이 너무나 고된 결과다. 남들은 40이면 조교사 시험 준비하고, 자격증 얻어 조교사 하는데 이렇게 힘들게 산다.

박수칠 때 떠나지 않고 왜 이렇게 궁상맞게 사느냐고? 그건 영웅들이 하는 일이다. 먹고살 만한 사람들이 하는 멋진 대사다. 누구는 인터뷰 기사를 내면서 "말을 좋아하고, 말 타는 것을 즐기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쇄골이 부서지고, 팔꿈치 뼈, 정강이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으면서, 시력이 떨어져 눈비가 오면 시야를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가 말 타는 이유가 되지 못한다.

박수칠 때 떠나지 못한 이유? 직장생활 하는, 가게 운영하는 비루한 우리의 일상과 다르지 않다. 2남 3녀를 둔 가장이기 때문이다.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딱히 할 만한 다른 일이 없기 때문이다. 남들만큼 말주변도, 붙임성도 없었기 때문이다. 관리사 다독이고, 마주 상대하는 조교사가 되길 머뭇거렸고,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다. 내 추측이다.

오늘도 나는 김귀배 기수를 만난다. 경마공원에서, 회사에서, 지하철에서. 분식점에서, 술집에서, 동네 편의점에서 만난다. 부양할 가족이 있고, 돈을 벌어야 하고, 미적거리다 기회를 놓쳐 비루한 삶을 사는 김귀배 기수들이다. 기수 정년인 60살까지 말 타는 게 그들의 소박한 꿈이다.

김귀배 기수의 꿈이 이루어지면 한국 경마사에는 새로운 이정표가 선다.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그를 보기 위해, 응원하기 위해 경마공원을 찾는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