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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5일 11시 48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2월 25일 14시 12분 KST

연대는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Shutterstock / hxdbzxy

최근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아 실제 단행본으로도 많은 관심을 받았던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의 저자가 실명을 드러내고 한겨레와 인터뷰를 했다. 저래도 괜찮을까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학교를 그만두었다. 지방시의 저자는 대학보다는 강의하면서 알바를 했던 패스트푸드점에서 소속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시간강사들은 강의를 하는 그 순간 말고는 사실 학교 어딘가에 앉을 자리조차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속감이라니.

강사법의 발효가 곧 다다음주다. 2년간 유예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실제로 유예될 가능성이 높다. 발효가 2년간 유예될 뿐이지 세부적인 항목을 조정한다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시간강사들의 처우 문제는 계속 지적되어 왔지만 교육부와 학교가 동시에 움직이지 않는 한 수십년간 지속되어온 이 상태가 유지될 수 밖에 없다. 반대로 학교 입장에서는 그 동안 별 문제가 없었는데, 왜 지금에 와서야 문제를 삼느냐고 할 수 도 있겠다. 너희 선배들은 시간당 3만원 받고도 잘했는데 너희들은 왜 말들이 많은가라고 말이다.

이명박정부 시절 시간강사들의 처우 현실화에 대한 정책이 나온 적이 있다. 전업시간강사들에 대한 시간당 강의료를 높이는 것이 핵심이었던 이 정책으로 인해서 국립대의 경우는 실제로 학교마다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8만원대로 올라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국공립대보다 사립대의 수가 훨씬 많고 사립대는 시행이 아니라 권고사항이었다. 국공립대의 강의료가 오르는 사이에도 사립대의 강의료는 오르지 않았다. 전수조사를 해보지 않았지만 국공립대 수준으로 강의료를 주는 학교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것이 분명하다. 흔히 말하는 서울의 명문사립대는 강의료가 높지 않나라고 대학에서 생활하는 사람들도 생각하지만 경험상 그건 사실이 아니다. 결국 그들도 사립대학교일 뿐이다.

그렇다면 국공립대에서 강의하는 강사들의 처우는 개선되었는가? 아마도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강의료가 올라가면서 강사들의 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국가에서 인상된 강의료만큼 지원금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서 강사법이 다시 화두에 올랐다. 시간강사는 4대보험이 아니라 3대 보험이다. 의료보험이 되지 않는다. 한 학교에서 15점을 하면 의료보험에 가입이 되지만 한 학교에서 15학점을 하는 경우는 아주 특별한 경우 말고는 없을 거다. 한 학교에서 15학점을 강의하면 그 학교 전임교원이란 뜻이 아닐까?

강사법의 발효가 가까워오자 전국 비전임교수협의회에서 반대의사를 강하게 내고 있다. 강의를 최소한 9학점씩 배분하고 1년 단위로 계약하는 등 표면적으로 강사법의 내용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결국 이는 강사들에게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올 것이다. 학교에서 부담하는 비용만큼 강사의 수가 줄어들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지방에 소재한 사립대학들은 수도권과의 거리 때문에 강사를 구하는 것이 사실 쉽지 않지만 수도권의 대학들은 강사공고를 거의 내지 않는다. 지방과 반대로 공고를 낼 필요가 없을 만큼 교수요원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문제는 강의를 주고 받는 관계는 결국 학맥과 인맥이 크게 작용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강사법이 발표되면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학연지연 네트워크는 더욱 더 공고해질 수밖에 없다. 한 다리 걸쳐서라도 전공자를 추천받아 부탁하던 강의는 우선 후배들을 챙겨주는 방식으로 변질 될 수밖에 없다. 이 부작용은 강사들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고스란히 전가 될 것이다.

중앙대학교의 김누리 교수는 한게레신문의 「세상 읽기」에서 시간강사는 교수들의 과거이고 제자들의 미래라고 썼다. 너무나 와닿는 말씀이다. 그러나 다른 교수들님도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다. 지금 이 땅의 교수들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70년대 말 80년대 초중반 학번 교수님들은 시간강사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우리 때에는 너희보다 더 힘들었다 혹은 너희가 실력이 없어서 그런거다라는 식의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된다. 학기 초에 개강했다고 강사들이 인사하러 가면 유학시절의 무용담이나 최근에 맡은 대형프로젝트에 대한 엄살을 늘어놓는 교수들은 많겠지만 시간강사의 처우를 물어보거나 걱정하는 이 땅의 교수가 얼마나 되겠는가?

우리나라에선 제법 노조가 큰 현대자동차에서도 결국 파견노동자와 사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대학에서는 아예 이 부분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다는 게 큰 문제이다. 강사법이 발효되기도 전에 대학들은 강의전담교수를 늘리고, 초빙교수를 늘리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법의 발효가 유예된다고 해도 이미 2016년 1학기 시간표는 대학들마다 거의 초안이 완성됐다.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틀은 이미 만들어졌기에 이마저도 예전으로 돌아가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해서는 안되는 일이지만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해마다 중앙일보에서 하는 대학평가에 목숨을 건다. 그래서 순위가 상승하거나 부분 순위가 높게 나온 것이 있으면 학교 정문에 현수막을 걸어놓는 학교들이 대부분이다. 대학평가를 정말로 이런식으로 해야 하는가에 논의를 차지하더라도 이 순위는 온전히 전임교수들의 노력으로만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시간강사들이 논문의 소속을 쓸 때, OOO대학교 시간강사라고 쓰면 해당학교의 업적에도 기여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럴 경우 연구지원금을 주는 사립대는 얼마나 될까? 국립대학교도 전남대학교 등 아주 일부의 학교에서만 주고 다른 학교에서는 일체 주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혹 주는 사립대학교 있다면 항의메일을 보내셔도 된다. 얼마든지 홍보해 드리겠다.

시간강사들은 교육자이면서 연구자이다. 이들의 처우가 개선되면 이들이 연구와 강의의 질이 떨어지겠는가? 연구와 강의의 질이 떨어지면 자연히 도태된다. 연구와 강의의 질이 떨어져도 교수라는 이유로 도태되지 않는 것이 문제지(학교마다 시간강사들은 강의평가시 일정 점수 이하이면 다음 학기 강의가 금지되는데 전임교원들은 이러한 규정이 없다), 처우가 개선되면 강의와 연구의 질은 자연히 올라간다.

연구자들은 졸업논문을 포함하여 논문을 쓰면 저작권이양동의서를 쓴다. 이게 가수나 작곡가라면 기가막힐 노릇이지만 연구자들은 논문을 직접 파는 것이 아니기에.....아무튼 연구의 결과는 공공재가 된다. 연구와 강의질이 올라가면 결국 사회에 대한 공헌도도 커질 수 있다. 강의와 연구가 연구자의 기본적인 삶을 지탱할 수 없다면 그 사회는 온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대학 내부의 시간강사 문제를 눈감고 강의실에서 연대와 공감을 이야기한다면 결국 생계를 위해서 연대와 공감을 파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