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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1월 09일 07시 38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1월 09일 08시 38분 KST

강요된 과잉 : 허구적 독특성의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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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여성들께서는 '오빠가~' 를 연발하면서 필요도 없는 내용들을 가르치고 설명하려고 (심지어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말이다!!) 드는 남성들을 보며 "대체 저들은 왜 저러나?" 라는 의문을 품으셨을 것이다. 재미있게도 이러한 현상을 설명해 주는 학술자료가 있다. 2009년 한국심리학회지에 실린 서정대학교 이누미야 요시유키 교수의 논문인데, 한국과 일본의 대학생들을 비교연구한 내용이다. 이 논문에서는 '주체적 자기성', '허구적 독특성', '비현실적 낙관성' 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이 논문을 기초로 한 책 '주연들의 나라 한국 조연들의 나라 일본'이 2017년에 발간 되었습니다. - 편집자

여기서 주체적 자기성이란 쉽게 설명하여 '주인공이 되고 싶은 정도', 즉 남들보다 위에 서고 싶어하는 정도를 일컫는다. 주체적 자기성이 강한 사람은 형, 오빠, 리더 등의 선임적 역할 수행을 선호한다. 허구적 독특성은 '특별해지고 싶은 정도' 를 의미하며 '비현실적 낙관성' 은 미래에 대한 장밋빛 과신을 의미한다. 뒤의 두 개념은 주체적 자기성과 강한 양의 상관관계를 지님이 연구에서 증명되었다. 그렇다면 한국인의 주체적 자기성은 과연 어떠할까?

mansplaining

놀랍게도 이 연구는 우리 사회의 많은 병적 현상을 간접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허구적 독특성의 경우 한국이 일본보다, 남성이 여성보다 유의미하게 높았던 것이다. 연령 비교의 경우 유의미한 결과값을 도출하지는 못했다. 비현실적 낙관성의 경우에도 여전히 한국인이 일본인보다 유의미하게 높은 값이 산출되었다. 즉 원하지 않은 맨스플레인은 과학적으로 한국인 남성 다수의 심리상태가 현재 그렇기 때문에 출현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문제는 '오빠들' 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한국인들 내에서의 남녀 차이도 뿐만 아니라 외국인과 비교했을 때에도 남녀 통틀어 한국인 주체적 자기성은 지나치게 높다. 일례로 허구적 독특성의 경우 결과값이 50에 근접할수록 자기 자신을 그리 특별히 여기지 않는데 한국의 경우 평균 값이 35.23에 불과하다. 일본의 경우 50.39 이다. 비현실적 낙관성의 경우 한국의 평균 값은 7.92이고 일본은 3.15이다. 한국인들은 지나치게 자신은 특별하고 자신의 미래는 밝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때로 우리는 본인이 선택도 하지 않았으며 이따금 당연한 일들에 대해 감사하라거나 되갚으라는 어처구니 없는 요구를 당한다. 고객센터의 직원은 평생 얼굴 한 번 보지 않는 나에게 '사랑합니다' 라고 말하고, 우리나라의 많은 부모들은 자녀(의 의사와 전혀 상관없는)의 출산과 이에 따르는 당연한 양육 절차에 대해 자녀들에게 '감사하라' 고 어이없는 강요를 한다. 일한 만큼 급여를 지급하는 공간일 뿐인 기업조직은 가족도 아닌 사람들이 뜬금없이 '가족같은' 분위기를 강조한다. 식당에서 '서비스' 는 당연한 일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제 일이 안 될 게 눈에 뻔히 보이는데 지휘부는 '돌격' 만을 외치다 보니 돌격하는 척을 하는 것은 기업에서 일상적인 일이 되어 버렸다. 예전에 강성태 씨가 지적했듯이 한국에서 대부분의 부모들은 본인들부터가 공부에 재능 자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녀들은 노력하면 서울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앞에 현실적으로 도저히 넘어갈 수 없는 장벽이 존재함에도 이를 회피하기보다는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식의 정신승리적 레토릭만 넘쳐흐른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였을까? 이는 우리가 죄다 무대 한가운데로 몰려나와 특별한 주인공이 되려 하다 보니, 그리고 '하면 된다' 로 대표되는 지나친 비현실적 낙관성을 통해 발생하는 일인 것이다.

우리는 꿈을 깨야 한다. 나는 특별대우를 받는 고객님이 아니라 그저 돈을 내고 재화를 구입하는 One of Them 일 뿐이다. 자녀에게 양육에 대해 특별한 감사를 강요하는 부모들 대부분은 그들의 자녀들이 정말로 감사할 만한, 평균을 상회하는 특별한 부와 안락한 생활을 상속해 줄 수 없다. (나도 미래에 그렇게 될 것이다.) '오빠들' 은 여성들에게 특별하고 뭔가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 그냥 지루한 연극에 등장하는 나무1 같은 존재일 뿐이다. 몇몇 뛰어난 사람들을 제외한 우리는 다같이 그저 특별하지 않은 인생들인 것이다.

허구적 독특성과 비현실적 낙관성의 결합은 전후 고도성장기에 한국 사회가 역동적으로 작동하는 데에 어느 정도 공헌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방법이 틀렸다. 우리는 그리 특별하지 않은 인생들이며,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하기 나름이겠으나 이제 점점 더 어두워질 수도 있다는 현실적 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지나친 주체적 자기성이라는 파란 약을 먹고 과거에 갇힐 것인가, 현실의 직시라는 빨간 약을 먹고 새로운 미래를 모색할 것인가?

이제 이 서사는 끝이 나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