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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1월 25일 06시 15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1월 25일 06시 15분 KST

이상적인 남자의 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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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운사이징>은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집을 살 여유가 없는 가난한 부부에 대한 이야기다. 부부는 동창회에 갔다가 최신기술의 도움으로 엄청난 부자가 된 친구를 만나게 된다. 그 기술이란 다름 아닌 인체 축소, 즉 인간의 몸을 현재의 비율을 유지한 채 키가 14분의 1이 될 때까지 줄이는 기술이다.(178㎝인 맷 데이먼이 12.7㎝로 줄어든다)

키가 14분의 1로 줄면 부피와 무게는 이론적으로 그 세제곱인 2744분의 1로 줄어든다. 2744분의 1로 줄어든 인간은 그만큼 자원을 적게 소비하고 쓰레기도 적게 배출할 것이다. 설령 그들이 작아지기 전의 열배나 백배 수준으로 소비하면서 흥청망청 지낸다고 해도 환경에 가해지는 부담은 전과 비할 바 없이 감소할 것이다. 인체 축소 기술을 개발한 과학자들은 이것이 환경오염과 자원고갈을 해결하는 획기적인 대안이라고 믿으면서 참여자를 모집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네 회사에 1억을 맡기면 120억으로 늘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선전한다. 집으로 돌아온 부부는 전 재산을 다운사이징 회사에 예치하고 풍요로운 소인의 삶을 살아가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한다....(이하 줄거리는 스포일러이므로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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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12.7㎝까지 갈 것도 없이 인류가 지금 크기의 절반 정도로만 줄어들어도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가령 키 170㎝ 몸무게 64㎏인 성인 남자의 평균 신체 사이즈라면, 이를 135㎝, 32㎏으로 줄이는 것이다. 몸무게가 절반으로 줄 때 키는 20% 정도밖에 줄지 않는다(0.5의 세제곱근은 0.794이다). 하지만 이렇게 줄어드는 것만으로도 지금보다 훨씬 여유 있는 삶이 가능하다.

집의 크기를 이야기할 때 흔히 평이라는 단위를 쓰는데, 한 평은 가로와 세로가 각각 181㎝로서 평균 키의 성인 남자가 누웠을 때 어느 쪽으로든 약간 여유가 있는 공간이다. 키가 135㎝인 사람에게 맞추어서 한 평을 가로세로 145㎝로 재정의한다면 30평은 약 63제곱미터(현재의 19평)가 된다. 즉 절반으로 줄어든 인간에게는 19평 아파트가 30평만큼 쾌적하게 느껴질 것이다.

게다가 인류를 이 정도로 줄이는 데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 작아지는 방향으로 강력한 '성선택 압력'이 존재하기만 하면 된다. 즉 키가 작을수록 매력적인 배우자라는 관념이 생겨나면 되는 것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편협한 견해는 때로 놀라운 결과를 가져온다. 푸들은 원래 성견의 체중이 20㎏에서 30㎏에 이르는 사냥개인데, 품종개량을 거듭한 끝에 5㎏ 정도로 줄어들었다. 작은 개가 더 귀엽다는 편견 탓이다. 이런 변화가 인간에게도 나타날 수 있다. 현생인류의 직계 조상으로 추정되는 호모 하빌리스의 키가 130㎝ 내외이므로, 인간에게는 135㎝로 줄어들 진화적 잠재력이 충분하다.

유감스럽게도 아직까지는 키가 큰 배우자에 대한 선호가 압도적인 듯하다. 2015년 한국 20대 남자의 평균 키는 병무청 기록에 의하면 173㎝이다. 하지만 결혼정보 회사가 밝힌 이상적인 신랑감의 키는 이보다 3% 정도 큰 178㎝다. 이는 키가 커지는 방향으로 진화적 압력이 작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래 가지고서는 환경 위기가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 인류가 살아남으려면 진화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인류의 크기를 반으로 줄인다고 할 때 이상적인 남자의 키는 얼마일까? 3%라는 비율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답은 131㎝이다.

* 이 글은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