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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2월 22일 06시 17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2월 22일 14시 12분 KST

비열한 유희 '사자 통조림 사냥'

지난 여름, 눈을 감은 아름다운 사자와 그 위에서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웃고 있는 치과의사의 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은 전 세계를 분노에 들끓게 했다.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던 짐바브웨의 '국민사자' 세실은 지난해 7월 황게국립공원(Hwange National Park)에서 미국 치과의사 월터 파머의 손에 잔인하게 참수당했다. 비싼 돈을 지불하고 아프리카로 가서 야생동물을 사냥하고, 그 전리품을 가져오는 '트로피 사냥(Trophy hunting)'의 희생양이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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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둬 놓고 총을 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통조림 사냥'

얼핏 생각하면 아프리카의 동물들은 '동물의 왕국'에서 본 것처럼 넓은 초원을 누비며 야생동물로서의 최상의 삶을 살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가난한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야생동물도 미국처럼 돈 있는 나라를 대상으로 한 장사밑천이 된다.

아프리카 중서부에서 행해지는 일반적인 트로피 사냥이 정해진 지역 내에 서식하는 동물을 사냥하는 것이라면, 아프리카 대륙 남단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캔드 헌팅(Canned hunting)',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통조림 사냥'이라고 하는 형태의 사냥이 운영되고 있다. 처음 들으면 어류 같은 해양동물을 사냥해 통조림이라도 만든다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의미를 알게 되면 누구나 인간의 잔혹함과 치졸함에 몸서리를 치게 될 것이다.

통조림 사냥은 사냥에 쓰기 위해 사육시설에서 번식시켜 기른 사자를 통조림처럼 펜스로 제한한 공간에 풀어놓고 쏘아 죽이는 사냥이다. 야생동물을 쫓아가 사냥하는 '페어 체이스(Fair-chase)' 사냥에서는 동물을 쏴 죽이는데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면, 통조림 사냥에서는 사냥에 성공할 확률이 백 퍼센트 보장된다는 차이점이 있다.

사람의 손에 길러진 사자는 위험을 감지하는 법도, 위험을 피해 도망가는 법도 알지 못한다. 보통 사냥터에 풀어놓고 일주일 정도 굶겨서 사람을 보면 혹시 먹을 것을 던져주지는 않을까 다가오게 만든다. 사냥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사냥터에 풀기 전에 마취를 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사자에게 사냥꾼들은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총구를 겨눈다. 갑작스러운 고통에 놀란 사자는 뒤늦게야 달려보지만 더 많은 총탄 세례가 쏟아질 뿐이다. 결국 '밀림의 왕자'라던 사자는 궁지에 몰린 쥐처럼 옴짝달싹 못한 채 총알받이가 된다.

제대로 한 번 피해보지도 못하고 맥없이 쓰러지는 사자를 보며 사냥꾼들은 '퍼펙트 샷(Perfect shot)!'을 외친다. 그리고는 힘센 맹수를 죽였다는 희열에 휩싸여, 쓰러진 사자의 몸뚱이 위에서 축배의 잔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집에 돌아가서 이웃들에게 자신의 용맹함을 증명하기 위해 사자의 머리를 자르고 가죽을 벗겨 가방에 챙겨가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렇게 사자 한 마리의 목숨을 빼앗는데 2만 달러의 비용을 지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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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알받이용으로 길러지는 사자들... 미리 원하는 사자 고를 수도 있어

현재 남아공에는 160여 개의 사자농장에서 약 8천 마리의 사자가 오로지 '쏘아 죽이기 위한' 용도로 사육되고 있다. 크루거 국립공원 같은 야생에서 자생하는 사자 수의 두 배가 넘는 숫자다. 1년에 1천 마리가 넘는 사자들이 사냥꾼의 총에 목숨을 잃는다.

통조림 사냥에 사용되는 사자를 기르는 농장에서는 '사자체험' 시설도 함께 운영한다. 생후 몇 주의 아기사자들을 만지고, 젖병을 물리고, 안고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다. 관광객들은 마치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를 어르듯 사자를 품에 안고 좋아한다. 6개월 정도 된 사자들을 강아지처럼 산책시킬 수도 있다.

농장은 관광객들에게 고아가 된 사자를 보호하는 시설이며, 사자들을 야생으로 돌려보낼 것이라고 말해 후원금을 타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다. 사자, 호랑이 같은 상위 포식자는 사육 시설에서 태어나 야생에 방사할 경우 생존할 확률이 거의 없다.

사자가 4살 가량의 성체가 되면 사냥 미끼로 사용한다. 요즘에는 고객이 방문하기 전에 전자 우편으로 사진을 보내 어떤 사자를 죽일 것인지 미리 고를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보통 갈기가 멋있는 수컷 사자가 인기가 높다.

농장주와 사냥꾼들은 사냥산업이 '교육'과 '보전'의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남아공 사냥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인 '남아프리카 포식자 연합(South African Predator Association)'은 '사육된 사자 한 마리를 사냥할 때 마다 야생의 사자 한 마리를 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1999년에는 1천 마리에 못 미치던 사육 사자의 숫자가 열 배 가까이 증가했지만, 사냥으로 목숨을 잃는 야생 사자의 개체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브리더들은 농장에서 사자를 번식시켜 멸종위기를 막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케이지 안에서, 혹은 누구네 집 지하실에서 수만 마리의 사자가 길러진들 종이 보전되고 생태계가 회복되지 않는다. 오히려 근친교배로 태어난 개체들이 사냥터에서 야생사자와 교미할 경우 유전자풀에 악영향만 미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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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공화국 사자농장의 새끼사자들 (c)Nick Roux

아프리카 국가들은 트로피 사냥 관광이 지역경제를 유지하는데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사냥 관광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매우 미미하다. 2013년 세계야생동물보호기금(IFAW)이 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사냥 관광 수입은 전체 관광 수입의 2퍼센트도 채 되지 않았다. 그나마 이 중 오직 3퍼센트만이 지역사회로 유입되고, 나머지는 정부기관이나 중개인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반면에, 사파리처럼 살아있는 야생동물을 관찰하러 오는 관광객은 늘고 있다. 세계관광기구(UNWTO)의 보고서에 따르면 생태계를 관찰하는 에코-투어리즘은 2013년 342억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다행히 점점 많은 비(非) 아프리카 국가에서 트로피 사냥의 전리품을 반입하는 규정을 강화하는 추세다. 호주는 2015년 3월 사자의 신체 일부를 전리품으로 반입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면서, 단지 '목숨을 빼앗기 위해' 사자를 기르고, 약물에 중독 시키고, 미끼로 쓰는 것은 현 시대의 기준으로 '용납할 수 없다(unacceptable)'은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2015년 11월 프랑스 환경부 장관은 사자의 머리, 발바닥, 가죽을 전리품으로 반입하는 것을 금지할 것임을 밝혔다. 유엔총회도 세실의 죽음 후 '야생 동•식물의 불법 밀거래 차단 결의안'을 193개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현재 유럽연합은 각 국가의 정부가 수입 허가증 발급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노동당 소속 유럽연합위원(MEP) 니나 질(Neena Gill)은 유럽연합 회원국이 모든 사냥 전리품의 반입 금지 규정을 강화하는 내용의 선언문을 발의하고 채택을 요구하고 있다.

트로피 사냥을 위해 아프리카를 찾는 사람의 절반 이상은 미국인이다. 세실의 죽음 이후 미국 어류•야생동물관리국(USFWS)은 아프리카 중부와 서부의 사자를 '멸종위기종'으로 규정해 사자의 가죽이나 머리를 미국으로 들여가려면 보다 엄격한 조건의 허가 절차를 거쳐야 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 규정은 아프리카 남부의 사자들은 여전히 '취약종'으로 분류한데다, 사육되는 사자는 제외하고 있어 통조림 사냥을 막는 데는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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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 전리품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며 트로피 사냥을 옹호해 논란이 된 미국 대학생 '켄달 잭슨' (출처- 켄달 존스 페이스북)

먼 나라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

'아프리카에 갈 계획도 없고, 우리나라에서는 트로피 사냥을 즐기는 사람도 없으니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프리카 사자 문제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접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호랑이 뼈가 약재로 인기가 높은데,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이제는 아프리카에서 사자 뼈가 중국, 베트남으로 넘어와 유통되고 있다. 사자 농장에서는 머리를 자르고, 가죽을 벗기고 남은 부위로 돈을 벌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중국 여행에서 흔히 들르는 기념품이나 약방에서도 아프리카 사자 뼈로 만든 술이 팔리고 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사자의 숫자는 20만 마리에서 3만 마리로 줄어들었다. 급속도로 숫자가 줄어드는 야생동물이 하도 많다 보니 이제는 별다른 감흥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속도로 사라져 간다면 몇 십 년, 백 년 후에는 야생동물을 동물원에서만 볼 수 있게 될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모든 동물의 '포식자(Predator)'가 되어버린 세상이다. 무서운 속도로 진행되는 생태계 파괴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는 한 사람이라도 더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