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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1일 05시 59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2월 21일 14시 12분 KST

[동물원에 가다] 동물이 보이지 않는 파리동물원

[동물원에 가다] 첫 번째 이야기 | 파리동물원에는 정신병으로 머리를 흔드는 동물은 없었다

'동물원에 가다' 연재를 통해 해외 동물원과 야생동물보호소를 돌아본 이야기를 전합니다.


유리벽 앞에 모여선 관람객 네다섯 명이 벽 너머를 응시하고 있었다. 벽 너머에는 마치 작은 밀림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풍경이 펼쳐져 있다. 그러나 그곳에 살고 있다는 퓨마는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목소리를 한껏 낮춰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기다리던 사람들은 곧 망설임 없이 몇 걸음 옆에 설치된 스크린 앞으로 잠시 자리를 옮겼다가 다음 동물을 찾아 나섰다. 어느 누구도 '비싼 입장료를 내고 들어왔는데 동물은 어디 있느냐'고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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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2일 찾아간 파리 동물원(Parc zoologique de Paris)의 모습이다. 파리 동쪽 시내인 12구 벵센 숲(bois de Vincennes)에 위치한 파리 동물원은 프랑스 국립 자연사 박물관의 일부로, 아직도 파리지엔들은 '벵센동물원'이라는 이름에 더 익숙하다.

1793년, 프랑스 혁명 당시 프랑스 국회는 군주나 부유층이 개인적으로 소장한 야생동물을 베르사유 왕궁의 관상용 동물원(Menagerie Royale)로 압수하거나 도살, 박제해서 파리 식물원(Jardin de Plantes)의 과학자들에게 기증하기로 의결했다. 이 과정에서 과학자들은 일부 동물들을 죽이는 대신 식물원으로 이송해 사육하기 시작했다. 곧 왕궁의 동물원이 폐쇄되면서 그곳에서 사육하던 동물들도 식물원으로 옮겨졌고, 이로써 세계에서 두 번째로 전시 목적으로 야생동물을 사육하는 '동물원'이 만들어졌다. 1800년대 초에는 코끼리 등 대형 동물을 들여와 전시하는 등 규모가 커졌지만 곧 공간의 한계에 부딪혔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1934년 벵센동물원이 설립됐다. 파리 식물원에는 이제 크기가 작은 동물 일부 종들만 살고 있다. (파리 식물원 내의 동물원은 다음 기사에서 소개할 예정이다.)

벵센동물원은 '동물들의 사육 공간이 현대적 기준에 비추어 지나치게 협소하다'는 이유로 개장 80년 만인 지난 2008년 완전히 문을 닫고 자그마치 1억3300만 유로, 우리 돈으로 1천 700억 원을 투자해 대대적인 보수공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문을 닫은 지 6년 만인 2014년 4월, '파리동물원(Parc Zoologique de Paris)'라는 새 이름과 함께 그 모습을 드러냈다. 14만 제곱미터의 면적을 종별이 아닌 유럽, 파타고니아, 가이아나, 마다가스카르, 사헬수단 등 총 5개 지역에 따른 '바이오존(biozone)'으로 나눠 각 대륙에 서식하는 동물 180여 종을 수용하고 있다.

공허한 눈빛으로 쇠창살 안에서 '멍때리는' 동물은 없었다.

파리 동물원에서 가장 눈에 먼저 들어오는 점은 쇠창살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런던 동물원, 바르셀로나 동물원 등 다른 유럽국가의 대형 동물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 특히 이곳의 경우 개장할 때부터 당시 동물원에서 쓰이던 철창 대신 깊게 판 도랑으로 관람객과의 거리를 유지했다. 지금은 도랑 외에도 바위나 갈대숲, 밀림 등 동물의 서식지와 어울리는 식물이 동물과 사람 사이를 메우고 있다. 비록 인위적으로 조성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런 자연스러운 환경과 사람과 동물 사이의 충분한 경계선은 적어도 '저 안에 동물이 갇혀 있다'는 생각이 덜 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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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 서식지와 비슷하게 조성된 환경은 곧 갇혀있는 동물들이 고유의 습성에 따른 자연스러운 행동을 하도록 유발한다. 우리나라 동물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숭이의 모습이 장난감 하나 없이 콘크리트 바닥에 앉아 '멍때리는' 모습이라면, 파리 동물원에서 만난 바분(Baboon) 무리는 어울려 놀고, 싸우고, 나무를 타는 눈에 띄게 활발한 모습이었다. 다른 동물들도 마찬가지였다. 공허한 눈빛을 클로즈업한 사진으로 '감옥살이를 하는 동물의 고통을 헤아려달라'고 대중에게 호소할 수 있을 만한 동물은 거기에 없었다. 대신 종일 땅을 파고, 헤엄을 치고, 먹이를 찾아 먹는, 나름 활기를 띈 모습이었다.

자연과 유사한 환경을 제공하려는 노력은 인기 없는 파충류 사육장이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들어오는 사람도 몇 안 되는 우리나라 동물원의 파충류 전시관은 그나마 좁더라도 개별 사육장이 있으면 다행이고, 플라스틱 대야에 뱀 한 마리 덩그라니 놓인 곳도 부지기수인 '찬밥' 신세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파리 동물원의 늪개구리 두 마리가 사는 공간은 달랐다. 돌, 흙, 풀, 나무, 물과 알맞은 온도, 습도, 채광이 갖춰진, 미니어쳐 모양의 '자연'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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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개구리 두 마리가 헤엄치고 있다.

숨겨진 먹이 찾는 늑대, 정형행동 보이는 국내 동물원 늑대의 모습과 큰 차이

먹이를 급여하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바닥에 덩그러니 놓인 물그릇, 사료그릇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웅덩이에서 물을 마시고, 풀을 뜯는다. 늑대 같은 육식동물의 경우에는 사냥을 할 수 없는 데서 오는 무료함을 해소하기 위해 넓은 사육시설 곳곳에 마련된 '비밀 장소'에 먹이를 숨겨 동물이 직접 찾아먹도록 한다.

지난 6년간 국내 동물원은 한 군데도 빼놓지 않고 돌아보았지만, 나는 비정상행동을 보이지 않는 늑대를 본 적이 없다. 보통 바닥에 숫자 8자를 그리며 잰걸음으로 좁은 사육장 안을 왔다갔다하는 정형행동을 보인다. 그러나 이 곳의 늑대들은 달랐다. 이베리아 늑대 세 마리는 무리를 지어 먹이를 사냥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 나름대로의 '먹이생활'을 하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졌던 한 마리가 한참 만에 먹이를 찾아내 입에 물고 등장했다. 곧 냄새를 맡은 다른 녀석이 슬금슬금 다가오니 이빨을 보이며 먹이를 사수했다. 잠시 서로 으르렁거리나 싶더니, 이미 형성된 서열 관계 탓인지 뒤늦게 밥숟가락을 걸치려던 늑대는 꼬리를 내리고 다른 먹이를 찾아 나섰다.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하는 듯 힘없이 누워있다가 식사 때가 되면 철창 안으로 던져지는 생닭을 뜯거나 개사료를 먹는 늑대의 모습에 익숙한 나에게는 주위 자극에 반응하는 늑대를 보는 것만으로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동물이 없는 동물원?

파리 동물원에서는 동물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일단, 동물이 사는 공간의 면적이 매우 크다. '사육장', '동물사'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넓게 펼쳐진 초원에는 크고 작은 언덕, 풀숲, 바위, 구조물 등 몸을 숨길 곳이 천지다. 사람의 시야에 한 눈에 들어오도록 사방이 뚫려있는 우리나라 동물원과는 달리, 대부분 통유리로 된 '관찰 전망대(observation point)'에서만 동물을 볼 수 있다. 운 좋게도 동물이 시야에 들어오는 위치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전망대 근처를 유유히 걸어가기로 마음먹은 날에는 감지덕지한 마음으로 그 모습을 엿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날에는 아쉽게 발걸음을 돌려야 한다. 대신 각 동물사 옆에는 표지판과 터치스크린을 통해 동물의 서식지와 습성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는 부스가 설치되어 있다. 어린이들은 손톱만한 크기로 보이는 동물보다 오히려 생동감 넘치는 화면에 더 관심을 보이는 경우도 많았다.

정말 보고 싶은 동물이라면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기다린다. 긴팔원숭이 전망대 바닥에 카메라와 노트를 끼고 가부좌를 튼 반백의 할아버지는 유리벽 너머 나무 뒤를 가리키며 '원숭이가 저기 숨어 있다'고 친절히 알려주었다. '얼마나 앉아계셨냐'고 물으니 영어로 '종일(All day)!'라고 대답하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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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팔원숭이 사육장의 모습. 관찰전망대에서 보이는 구조물(위)은 개울 건너 작은 섬(아래)까지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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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보지 못한 관람객들이 사육장 옆에 마련된 부스에서 시청각 자료를 시청하고 있다.

동물원 수의사 알렉시스 레수(Alexis Lecu)는 재개장 당시인 2014년 4월 파리 지역신문인 '더 로컬(The Local)'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오락 목적으로 동물들을 사육장 가장자리로 내모는 구시대적인 방식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동물이 관람객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아예 없는 사육장도 많다. 그나마 관람객에게 전시되는 외부방사장과 내실이 분리되어 있는 동물원도 동물이 숨을 수 있는 공간으로 통하는 문이 굳게 잠겨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동물원 관리자는 '동물이 숨어있으면 관람객들이 불평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난감한 반응을 보인다. 심지어 지자체가 운영하는 동물원일 경우 공원을 관리하는 부서를 상대로 민원까지 넣는 경우도 있다. 동물에게 조금이라도 더 편안한 환경을 제공하려면 동물원뿐 아니라 관람객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동물에게 잔인하다' 코끼리, 곰 사라져

파리동물원은 재개장을 하면서 코끼리와 곰의 전시 중단을 선언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파리동물원은 홈페이지와 언론 인터뷰를 통해 활동반경이 큰 동물을 제한된 공간에 가두는 것이 동물의 복지를 해치기 때문임을 밝혔다. 물론 큰고양이과 동물 등 대형동물을 전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동물원이 스스로 한계점을 인정하고 동물의 복지를 고려해 인기종의 전시를 과감히 포기한 것은 고무적이다.

토마스 그레논 프랑스 자연사박물관 관장은 2014년 4월 재개장 당시 보도자료를 통해 '20세기의 동물원이 놀이공원처럼 동물을 전시하는 것이었다면, 파리 동물원이 지향하는 21세기형 동물원은 동물들이 서식지에서처럼 공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동물원에서는 기린과 타조, 얼룩말과 흰코뿔소 등 같은 지역에 서식하는 동물들이 같은 공간에 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대신 작은 동물이 원할 때는 큰 동물이 오지 못하는 곳으로 달아날 수 있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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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말 사육장(위)와 흰코뿔소(아래)의 사육장. 서로 인접해있어 동물들의 이동이 가능하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동물원이 존재하다면, 적어도 고통을 주지는 말아야

물론 파리동물원도 우리나라 동물원과 마찬가지로 보여주기 위해 야생동물을 제한된 공간에 가두는 '동물원'이며, 그 당위성과 존재가치에 대해서는 동물보호단체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프랑스 동물보호단체인 LFDA(La Fondation Droit Animal, Ethique et Sciences)는 2014년 4월 프랑스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동물원이 생태계 보호에 앞장서는 역할을 하는 척하는 것 자체가 사기'라며 동물원을 없애는 대신 큰 세금을 들여 고친 정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앞으로 십 년, 백 년, 몇 세기 후에는 동물원이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지, 혹은 존재하고 있을지 사라졌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인간의 필요를 위해 동물원이 존재한다면, 특히 동물원의 주장처럼 '교육'과 '보존'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면, 파리 동물원처럼 동물이 고유의 모습과 가장 가까운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풀 한 포기 없는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에 멍하니 앉아 죽을 날을 기다리는 동물의 모습,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정신병과 평생을 싸워야 하는 동물의 모습을 보는 것은 전혀 교육적 의미가 없다. '고작 동물일 뿐인데, 사람 편하자고 가둬 놓는 것이 뭐 그리 대수냐'는 우리나라 국회의 낡은 인식은 2013년 어렵게 발의된 동물원법이 국회에서 잠을 자다 못해 폐기가 코앞인 상황을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죄책감 없이 동물원을 돌아볼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할는지. 아직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