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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01일 11시 34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7월 01일 14시 12분 KST

낙타보다 무서운 인수공통전염병 방역체계

연합뉴스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MERS)'가 창궐하는 가운데, 동물원에서도 별 주목을 받지 못하던 '낙타'가 화제의 동물이 되었다. 보건복지부에서 '낙타와 밀접한 접촉을 피하고, 낙타고기와 낙타유 섭취를 피하라'는 현실성 없는 내용을 '메르스 예방법'이라고 발표한 것이다. 낙타고기나 낙타유는 국내에서 판매할 수 있는 축산물로 지정되지 않아 수입과 유통 자체가 불가능하다. 설사 찾아 먹고 싶어도 국내에서는 구할 방도가 없다.

서울대공원, 광주 우치동물원 등 살아있는 낙타를 전시하던 동물원들도 낙타를 격리조치했다가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음성 판정을 받고 격리를 해제하는 웃지 못할 풍경도 벌어졌다. 낙타는 호주, 뉴질랜드 등 일부 국가에서만 수입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서울대공원, 광주 우치동물원 등 우리나라에서 전시되는 낙타 46마리는 모두 우리나라에서 태어났거나 호주에서 수입된 개체들이다. 메르스에 감염된 사람이 일부러 동물원에 찾아가서 낙타에게 감염시키지 않는 이상 이 동물들이 감염 매개체가 될 가능성은 없다. 그렇지 않아도 좁은 동물원인데, 영문도 모르는 낙타들은 졸지에 골방 신세로 전락했다.

무능하고 부실한 정부의 대응 속에 아픈 환자들과 국민의 불안감만 늘어나는 상황에서, 평생 구경도 못해본 낙타고기를 먹지 말라니, 국민들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SNS에는 때아닌 '낙타 패러디'가 등장해 지친 영혼들에게 잠시나마 웃음을 줘서 면역력에 좋다는 '엔돌핀'을 분비시켰으니, 그나마 정부의 '낙타를 멀리하라'는 예방법이 아주 무용지물은 아니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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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달군 '낙타 패러디' 포스터 중 하나 (출처: 온라인커뮤니티)


구멍 뚫린 야생동물 방역, 4만 6천 마리 중 정밀검사는 2마리에 불과해

그러나 동물원 낙타들이 중동에 간 적이 없다고 해서 웃어 넘길 일 만은 아니다. 실제로 '인수공통전염병(Zoonosis)'에 대한 정부의 방역체계는 놀랄 만큼 허술한 경지에 와 있다.

메르스뿐 아니라 에볼라, 사스, 조류인플루엔자 등 신종 전염병의 대부분은 동물과 사람 사이에 전이될 수 있는 인수공통전염병이다. 지난 6월 9일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세계보건기구(OIE)의 브라이언 에반스(Brian Evans) 부사무총장은 "최근 20년간 새로 발생한 전염병의 70% 이상이 인수공통전염병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에반스 부사무총장은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야생동물의 서식지 파괴, 지구 온난화와 같은 기후 변화 등으로 인해 야생동물과 사람, 야생동물과 농장동물 간의 접촉이 증가하면서 신형 변종 전염병의 발생 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메르스의 경우에도 박쥐에 존재하던 코로나바이러스가 낙타에 전이돼 사람에게 옮겨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신종 전염병이 아닐지라도 사람에게 감염되는 병원균 중 60퍼센트 이상이 동물로부터 전염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야생동물 수입 시 눈으로만 진찰하는 임상검사 외에 별다른 검역을 하지 않는다. 새정치민주연합 장하나 의원실에서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우리나라로 수입된 야생동물 4만6354마리 중 질병에 대한 정밀검사(조류 인플루엔자)를 받고 수입된 동물은 2013년 중국 시진핑 수석에게 선물 받은 '따오기' 단 두 마리에 불과했다. 농림축산검역본부는 농장동물(가축)으로 분류되는 동물에 대해서는 가축전염병이나 위험 인수공통질병에 대한 정밀검사를 하지만, '관상용'인 야생동물에 대해서는 상태를 눈으로 확인하는 차원의 검사만 실시하는 것이다.


동물과 접촉하는 '동물 체험', 인수공통전염병 감염 위험 커

문제는 더 이상 이 동물들이 쳐다보기만 하는 '관상용'으로만 사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동물원은 물론이고 굳이 동물원까지 가지 않아도 백화점, 동물테마카페, 음식점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뱀을 목에 두르고, 이구아나, 거북이 같은 동물들을 만지는 '동물체험장'이 넘쳐난다. 파충류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살모넬라 균은 사람에게 전염되어 설사, 두통, 발열, 복통을 일으키기 쉽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의하면 2010년 8월부터 2011년 9월까지 18개 주에서 발생한 132건의 살모넬라 감염 중 64퍼센트가 거북이와의 접촉이 원인이었다.

돌고래와 같은 수조에 들어가는 '돌고래 체험장'도 성업 중이다. 해양포유동물과의 직접적인 접촉은 마이코플라즈마 감염증, 돈단독증, 브루셀라, 렙토스피라, 세균성피부염 등의 인수공통감염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 애초에 수입할 때부터 감염 여부도 확인되지 않은 동물들을 만지고, 동물들의 분변이 섞인 수조에 함께 들어가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실제로 지난 2012년 울산 장생포 고래박물관에서 폐사한 큰돌고래의 폐사 원인은 돈단독(swine erysipelas) 감염인 것으로 확인됐다. 돈단독은 돼지, 소, 양, 닭, 해양포유류, 사람 등 광범위한 동물에게 전염되는데, 사람이 걸렸을 때 최악의 경우에는 전신패혈증에 걸릴 수도 있는 위험한 인수공통전염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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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말 TV프로그램에서 방영한 '돌고래 체험' 장면. 돌고래와의 직접적 접촉과 분변 등을 통해 전염병에 감염될 수 있다. (출처: KBS2)


전염병 확산시킬 수 있는 '애완용' 원숭이 불법거래

동물원이나 체험시설만 문제가 아니다. TV에서는 원숭이를 애완동물로 기르는 모습을 훈훈하게 포장해 보여준다. 원숭이는 허가 받지 않은 거래가 금지된 멸종위기종이지만 아직도 포털사이트에는 밀반입된 원숭이를 분양하는 카페들이 버젓이 운영 중이다. 비인간영장류(Non-human primate)와 사람 사이에는 다른 그 어떤 동물보다도 서로 간에 감염될 수 있는 병원균이 많다. HIV, 헤파타이티스 B, 뎅기열 등이 모두 비인간영장류에서 기원한 전염병이다. 특히 불법적인 방법으로 해외에서 반입되는 원숭이들은 애초 밀반입될 때부터 검역을 거치지도 않아 이미 질병에 감염되어 있을 수도 있으며, 어린 나이에 어미에게서 떨어진 데다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장시간 운송되면서 면역력이 약해져 질병에 더 취약할 수 있다.

작년 10월 SBS 에서는 집에서 기르다가 병에 걸려 야산에 유기된 '슬로우 로리스'에 대한 이야기가 방영됐다. 집에서 기르는 원숭이가 질병에 걸려 치료를 하려 해도, 야생동물을 진료하는 수의사를 동네에서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생태적 습성상 반려동물로 기르는 것이 적합하지 않은 외래종 야생동물을 무작정 데려와 기르다가 감당할 수 없게 되면 유기하는 것은 동물에게 잔인할 뿐 아니라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자칫하다가는 전염병까지 확산시킬 수 있는 위험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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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동물농장에 방영된 슬로로리스. 백내장에 걸린 채로 유기되었다. (출처:SBS)

새정치민주연합 장하나 의원은 지난 6월 15일 인수공통전염병을 유발할 우려가 있는 야생동물을 수입할 시 검역을 의무화하는 '야생생물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국회는 이번에도 '동물 관련 법안'이라고 묵혀두지 말고 메르스 사태를 교훈 삼아 이번 법안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할 것이다.


생태계 파괴는 이종간 전이의 원인, 근본적 대책 시급

생태계의 파괴와 기후 변화는 야생동물이 농장동물(가축)과 접촉하는 기회를 늘렸다. 야생동물을 가까이에서 보고 즐기고 싶어하는 문화는 인간과 야생동물간의 거리를 좁혔다. 점점 비정상화되는 생태계에서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전염병이 창궐한 후에야 애꿎은 동물을 가두거나 구경도 못 해본 고기를 먹지 말라고 광고할 것이 아니라, 인수공통전염병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그에 따른 철저한 방역과 관리 대책을 상시적으로 세워야 한다.

또한 현재 우리 사회에서 사람과 동물과의 관계가 '지속가능한' 상태로 유지되고 있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건전한 생태계는 인간과 동물, 환경이 조화롭게 공존할 때 유지가 가능하다. 서식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도심에 살고 있는 야생동물들뿐 아니라 몸을 돌릴 수도 없는 '공장형 농장'에서 사육되며 질병에 대한 면역력이 약해져 버린 농장동물들도 구제역, 조류독감 등 전염병의 원인이 된다. 항생제의 남용으로 변이되는 '슈퍼 박테리아'의 공포도 무시할 수 없다. 병들어가는 생태계의 건강을 회복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 없이는 앞으로 제2, 제3의 메르스가 언제 찾아올는지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