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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4월 04일 05시 59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4월 05일 14시 12분 KST

촌극으로 전락한 청년정치

연합뉴스

성인이 된 이래 모든 선거에 관심을 갖고 참여해왔지만 이번처럼 '청년'이라는 두 글자가 우스꽝스럽게 보인 적은 없다. 기성세대도 청년을 유례없이 괄시하고 있고, 청년 또한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경쟁적으로 갉아먹고 있다.

파행으로 귀결된 더불어민주당의 청년 비례대표 경선은 '막장'을 넘어선 '깽판'이었고 그 원흉은 단연 기성세대다. 내정자를 정해놓고 '짜고 친 고스톱' 아니냐는 의심이 팽배할 만큼 문제가 많았다. 모두 22명이 신청했으나 면접의 기회를 얻은 건 고작 9명이었다. 물론 공정한 서류심사를 통해 그리됐다면 문제될 것 없지만 합격자 9명과 탈락자 13명의 면면을 보면 수긍하기 힘들다. 오래도록 정당에서 활동하며 국회, 시의회, 지방의회 등에서 경력을 쌓은 이들은 서류심사에서 탈락한 반면, 당에서 영입한 인사들은 별다른 정치활동 경력이 없음에도 서류심사를 통과했고 각종 행사에 동원되며 홍보 기회까지 얻었다.

탈락자의 증언에 따르면 그들은 뉴스를 통해 탈락 사실을 먼저 접했다. 당이 탈락 문자메시지를 보낸 때는 합격자 9명의 면접이 진행되던 바로 그 시각. 웃긴 건 합격한 9명 역시 1인당 겨우 5분씩만 면접을 치렀다는 점이다. 심지어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 등 신변 질문의 비중이 높았음도 이후 폭로됐다. 정견이나 정책을 논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5분조차도 충실히 진행되지 못했단 뜻이다.

논란이 커지자 당 수뇌부는 '이번 판은 나가리! 깽판이오~'를 외치며 심사를 백지화하고 판을 엎었다. 구역질나는 건 깽판의 사유가 '자질부족'이라는 점이다. 기성세대가 깽판을 쳐놓고선 청년더러 자질이 부족하다고? 오래도록 당에서 활동하며 국회와 의회 또는 민간에서 역량을 닦은 이들이 참으로 만만한 모양이다. 얼마나 얕잡아보면 그럴 수 있을까. 그렇게 온갖 모욕을 선사한 그들은 여전히 접수비 100만 원을 환불하지 않고 있다. 청년 비례대표 경선은 2200만 원짜리 수익사업이었다.

이처럼 기득권에 민감한 주류 정당에서는 청년 정치인이 성장하기가 도통 쉽지 않다. 자연히 군소 정당에서 독자적인 길을 모색하는 이가 많을 수밖에 없는데 근래 보이는 양상을 보면 이 또한 황당하다. '제 살 갉아먹기'라고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국회의원 선거는 국민을 대변할 정치인을 선출하는 절차다. 한데 왜 여기에 '여러분! 제가 진짜 흙수저입니다!'라는 슬로건이 난무하는 걸까. 근래 SNS에서는 일련의 고발과 해명이 다음과 같이 펼쳐지고 있다. 1) 흙수저인 자신이 국민을 위해 뛰겠다는 후보 2) 서른 살 언저리의 재산이 어떻게 몇 억 원이냐며 정말 흙수저가 맞느냐는 의심의 제기 3) 자기도 몰랐던 일이라며 자신은 정말 흙수저가 맞다는 후보의 해명 4) 재산 내역을 분석하며 왜 그가 흙수저가 아닌지 논증하는 누리꾼

촌극이다. 경제적 약자로 전락한 청년, 경제력 세습의 고착화, 그에 따른 박탈감 심화와 배타적 정서 팽배, 우리 편이어야 한다는 공감대 형성, 그렇게 보이기 위한 각종 코스프레와 이어지는 탐정놀이. 이 모든 것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우습고도 서글픈 촌극이다. 정무 능력, 공감하는 능력, 리더십 등에 대한 논의는 뒷전이고 누가 진짜 가난한 청년인지만 놓고 입방아를 찧어댄다. 이 정도로 청년이 노골적으로 우스꽝스럽게 보인 선거가 일찍이 있었을까?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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