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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11일 08시 02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8월 11일 14시 12분 KST

오늘도 무사고입니다

gettyimagesbank

※실제에 근거해서 소설 느낌을 버무려 쓴 글입니다. 한겨레에 게재되었습니다.

"차장님, 추락사고입니다."

현장에서 급히 들어온 소식을 보고하는 김 대리의 얼굴은 다소 상기되어 있었고 목소리의 진동수 역시 평소보다 높았다. 그에 응대하는 차장 또한 숱한 경험으로 다져진 내성에도 불구하고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3층에서? 상태가 어떻대?" "다행히 즉사는 아닌 것 같습니다." 차장은 긴장을 조금 누그러뜨리며 지시했다. "매뉴얼대로 진행해야지. 병원에 구급차는 요청했고? 혹시 모르니까 김 대리가 다시 전화 넣어봐."

하지만 이 평화는 채 3분이 지속되지 못했다. 병원 측에서 구급차 요청을 받은 내역이 없다고 해서 알아본 결과, 현장의 아르바이트생이 다급한 마음에 병원이 아니라 119에 신고한 사실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매뉴얼에 대한 충분한 사전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사무실에선 한바탕 난리가 일었다. 추락사고 소식을 전해오던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든든한 연륜의 차장조차 허둥지둥해댔다.

119로 넘어가면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사고가 났다는 사실을 공표하는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계약된 병원을 통해서 사고를 처리하면 추후에 합의 혹은 다른 방식을 통해 사고 내역을 보고하지 않을 수 있지만 119를 통하면 그게 힘들다. 언론이 들러붙어 매우 피곤해질 우려도 있다. 그래서 병원 구급차의 설비가 119 구급차보다 한결 열악하다고 해도, 그래서 사망률이 훨씬 더 높다는 통계가 있어도 회사는 개의치 않는다. 회사가 중요시하는 건 이면에 숨은 실질이 아니라 표면에 드러나는 숫자니까.

이는 대한민국 현장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우리나라의 산재사고 사망률은 도미니카·러시아·멕시코 등을 상회할 만큼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사망을 제외한 산재사고 재해율은 캐나다·프랑스 등보다도 오히려 낮다. 기이한 통계가 아닐 수 없다. 사고는 그다지 발생하지 않는데 사망률만 독보적으로 높다는 뜻이니까. 이유는 빤하다. 사망을 제외한 많은 사고가 현장에서 은폐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사망은 아무래도 숨기기 힘드니 보고하고 다른 재해는 사적으로 은밀히 처리하는 편이다. 노동계에서는 사고의 80~90%가 이렇게 처리되어 집계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게 사실이라면 실제 사고율은 현재의 5~10배에 달하는 셈이다.

차장을 위시한 사무실 식구들 간의 은밀한 눈치 게임이 시작되었다. 119를 통한 이상 이번 사고는 끝내 산재로 처리될 가능성이 높고 이는 회사 측의 보험료 상승으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이 손실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될 터인데 그 대상이 한낱 아르바이트생일 리는 없다. 10여 년 전 모 원자력발전소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에도 일반노무자가 매뉴얼에 명기된 내부진압팀 대신 119에 신고하는 바람에 큰 소란이 일었고 결국 소장이 감봉 처분을 받았다는 후문이 있다. 이번 사고 역시 아무래도 현장의 소장이 유력하지 않을까, 하고 김 대리는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어수선한 가운데 며칠이 지났다. 사고를 당한 인부는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후유증은 작지 않을 듯하다. 회사는 그에 대한 보상금을 어떻게든 줄여보기 위해 안간힘인 모양이고 차장 이하 직원들은 애써 외면한다. 그러던 와중 또 다른 사고 소식이 사무실이 전해져왔다. 이번엔 119가 아니라 병원에 연락했다고 한다.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래, 오늘도 무사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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