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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4월 05일 07시 16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4월 06일 14시 12분 KST

왜 진보는 패배할까? | (2) 중도층과 네거티브의 원리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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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진보는 패배할까? | (1) 중도층에 대한 그릇된 인식 먼저 보기

중도층의 다른 말은 무당층이다. 그리고 상당한 비율로 투표 참여조차 하지 않는 계층은 우리는 '정치 무관심층'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정치 무관심층'을 엄밀히 해석하자면 '참여' 무관심층이지 의제 자체에 무관심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투표에 참여할 의사가 없는 유권자라고 하더라도 언론을 통해 또는 실생활의 가치를 통해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각종 의제를 체험하거나 인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2년 대한민국에서는 특이한 이력의 후보가 대통령에게 당선되었다.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여당이었던 '새천년민주당'에서도 소수 그룹에 속해 있었던 부산 출신 후보였다. 그는 엄밀히 말해서 '마이너'였다. 당내의 출신에서도 학력에 있어서도 정치권에 등장했던 어떤 후보보다 경쟁력이 없었다. 이것은 기존 정치 게임의 방식에서는 그러했다. 하지만 그 후보는 당내 경선에서도 승리를 했으며, 후보 단일화가 좌절된 상황에서도 대선에 승리를 거뒀다. 그가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당시 경쟁자였던 이회창 후보는 도덕성에 있어서 치명적인 장면이 있었다. 바로 장남 병역문제와 이전 대통령 선거에서 '차떼기' 선거 자금의 당사자였다. 반면 노무현 후보는 한국인들이 동질감을 느끼기 좋아하는 '서민적' 이미지와 자수성가형 법조인이었고, 일관성이 있는 원칙과 도덕성을 표방하는 후보였다. 김대중과 김영삼이라는 지역주의 리더십이 사리진 자리에서 중도층에게 투표를 할 수 있는 좋은 유인이 되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당시 대부분의 유권자들이 노무현 후보의 '정책'을 보고 선택했다기보다 '인물됨'과 '유대감'에 따라 선택했다는 점이다. 바로 '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이하 노사모)'의 탄생은 노무현 후보의 도덕성에 기반 한 정치적 유대감을 확산시키는 장치였고, 중도층을 끌어오는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미국 로널드 레이건의 대통령 선거에서도 발견된다. 당시 레이건의 정책적 견해는 참담한 수준이었다. 설문조사를 통해 드러난 레이건의 사안별 지지도는 형편없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어떤 후보를 선택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해서 많은 유권자들은 레이건을 선택했다. 레이건의 입담과 소통 능력, 친근함에 중도층이 움직인 것이었다. 마침내 레이건은 당선이 되어 대통령이 되었다. 결국 의제 선택만큼 도덕성과 유대감도 중도층에게는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입증시킨 사례였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정치인의 외모가 출중한 것도 이러한 유대감 형성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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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노는 실체가 있는가?

일간베스트(이하 일베)가 사회적 문제가 될 때, 일베 코드는 정치적 네거티브를 담고 있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호남 혐오와 노무현 대통령 혐오, 여자 혐오였다. 이러한 네거티브는 공통적으로 진보진영을 표적으로 삼은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제 1야당을 향한 메시지와도 같았다.

앞서 언급했듯 '노무현 대통령'은 서민적 이미지와 유대감, 재치 있는 입담과 소통 능력으로 당선되었다. 사실 참여정부 정책은 선거 전에 공론화된 적이 별로 없었다. 선거를 주도한 것은 바로 '인간 노무현'이었고, 후보의 도덕성과 후보와 유권자들의 유대감이었다. 이러한 기반을 토대로 그는 지역주의 정서와 달리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정당의 대선 후보가 되었고, 정권을 재창출하였다.

그러한 노무현 대통령에게 임기 초기부터 등장한 네거티브는 바로 '막말'과 '비리 의혹'이라는 도덕성을 훼손하는 네거티브였다. 그의 친형과 측근들의 거듭된 구속과 처벌은 정책적 실패만큼 지지율을 떨어뜨리는 효과를 보였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포괄적 뇌물 수수'라는 혐의를 받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때부터 등장한 것은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친노', '부패', '이중성'이라는 이미지를 연결시키는 프레임이었다.

사실 '친노'라는 것은 실체가 없다. 대체로 '노무현과 친한 사람'으로 해석하지만 주로 '참여정부' 출신 인사와 '노사모'의 핵심 간부들을 지칭한다. 이러한 친노 네거티브가 등장한 것은 이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 사후 대거 정계에 재진입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강점은 호남의 정당과 결합하고, 영남권과 중도층까지 외연을 확대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친노 = 이중적 = 막말 = 부패 = 패권주의'라는 이미지를 연상하지만 가장 중요한 '어떤 사람이 친노인가?'라는 규정은 그 어디에서도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참여정부 출신 정치인?', '2012년 총선 당시의 공천 대상자?', '노무현과 친한 사람?', '노무현을 좋아하는 사람?' 사실은 어떻게 규정하든 상관이 없다. 마치 '친노'라는 프레임에 적게 담으면 작아지고, 크게 담으면 커지는 보자기처럼 범주의 공간성은 지극히 자의적이다. 즉, 인지는 할 수 있으되 명확한 실체가 없는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 네거티브 프레임은 '실체 없는 대상'을 통해 이뤄진다. 한때 매카시즘 열풍이 불던 미국에서는 '빨갱이(reds)'라는 네거티브 프레임이 존재했다. '빨갱이'를 규정하는 기준은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진보적 주장과 분배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는 폭넓게 사용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1988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인 마이클 듀카키스에게 적용된 네거티브도 실체가 없었다. 대표적으로 '회전문 광고'가 그러한 경우였다. 공화당의 리 애트워터는 '회전문'이라는 광고를 통해 죄수들의 주말 휴가 제도의 폐단을 이야기했다. 이 광고는 '윌리 호튼'이라는 '흑인' 죄수가 주말 휴가 제도를 통해 사회에 나와서 '백인 여성'을 강간한 일화를 소재로 했다. 이 사건은 마이클 듀카키스가 재임한 매사추세츠 주에서 일어난 강력범죄였지만 정작 마이클 듀카키스와는 상관이 없는 전임 주지사가 시행한 제도였으며, 전국적으로 시행한 사람은 다름 아닌 공화당 대통령인 로널드 레이건이었다.

조지 부시 캠프의 전략가 리 애트워터가 기획한 "회전문"광고는 가장 유명한 네거티브 선거 광고이다.

광고는 실체가 없는 '흑인' 윌리 호튼과 매사추세츠 주에서 일어난 사건임을 부각하여 마치 마이클 듀카키스의 정치적 실패로 돋보이게 하였다. 이 광고는 주로 백인들을 위한 것이었는데, 바로 백인 중산층과 중도층이 '민주당'으로 이탈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대체로 흑인들은 '민권법'을 지지하였으므로 공화당보다는 민주당을 선택해왔다. 리 애트워터가 노린 것은 다름 아닌 백인들의 속내에 있는 공포심이었다. 결국 리 애트워터와 부시 캠프는 마이클 듀카키스의 실체없는 이중성과 정책적 불안감을 동시에 건드려 대선 승리를 거머쥐었다.

또 다른 사례로서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언급할 수 있다. 당시 알프레드 랜든 공화당 후보는 루즈벨트 정부를 심판하겠다는 염원으로 공화당 후보가 되었다. 그의 선거 운동 초기는 대체로 뉴딜 정책을 비판하는 태도였었다. 야당으로서의 당연한 태도였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이 제대로 먹히지 못하자 급기야 뉴딜 정책에 동조하는 발언과 반대하는 발언을 동시에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여당 후보이자 현직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이것을 놓치지 않았다. 루즈벨트는 랜든의 이중적 태도를 비판했고, 반대로 소아마비에 걸린 자신의 감성적 모습을 대중에게 자주 표현했다. 당시 뉴딜정책은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비판을 받아왔었다. 하지만 랜든의 이중적인 태도와 루즈벨트의 적극적인 대응과 유대감 강화로 결국 루즈벨트는 재선에 성공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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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노 프레임의 효과

앞서 우리나라에서 현재 진행되는 친노 프레임은 사실 친노와 참여정부에 대한 동시 진행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정책적 논쟁 때마다 보수언론과 새누리당 의원들의 발언 중 공통된 한 가지를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정책은 참여정부에서도 추진했던 정책"

그리고 등장한 여러 가지 유행어들도 존재한다. '착한 FTA, 나쁜 FTA'처럼 '착한 **과 나쁜 **'이라는 형태로 더불어민주당의 정치적 입장을 비판하는 유행어가 만들어졌다. 바로 이중적 태도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러한 친노와 참여정부에 대한 네거티브 프레임은 두 가지 효과를 동시 얻을 수 있었다. 먼저 참여정부 출신과 노무현 대통령과 친한 사람들은 '이중적이다'라는 평가와 더불어 무의식적으로 '도덕적으로 모순된 사람'이라는 인식을 퍼트릴 수 있었다. 실제로는 별 문제가 없어도 말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민주당의 정치적 주장 자체를 '반대를 위한 반대'로 치부할 수 있었다. 야권 지지자들은 보수언론과 새누리당의 이러한 말에 "언제까지 참여정부 탓을 할 것인가?"라고 비웃었지만 사실 노리는 것은 그것이었다. 어차피 이 메시지는 '진보진영'과 '야권 지지자'를 위한 메시지가 아니었다. 바로 참여정부, 친노 프레임 속 정치인들의 모순성을 통해 중도층의 유대감과 지지도를 떨어뜨리는 것이 목적이었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이 네거티브의 효과는 중도층이 아니라 핵심 지지층으로 바뀌었다. '친노'라는 네거티브 프레임을 다름 아닌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것은 '친노 패권주의'라는 프레임으로 통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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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노 패권주의라는 프레임의 실체

필자는 국회에서 근무하며 새정치민주연합의 원내 의정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2014년에는 김한길, 안철수 공동 대표 체제였다. 그 후 박영선, 문희상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거쳐 문재인 대표로 이어졌었다. 분당이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여기서 살펴보면 새정치민주연합에게 계파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원내 정치에서 특정한 계파가 '패권'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친노 패권주의'라는 말은 어디서 통용되었던 것일까? 사실 이 말은 호남 사람의 감정을 이용하여 출발했다. 다름 아닌 참여정부 당시에 성장한 부산 경남 출신 정치인과 관료에 대한 해묵은 감정이었다. 국민의 정부라는 정권 교체를 이룩한 민주당 진영은 호남 인사를 대거 중앙 정부에 등용했다. 군사 독재 이후 영남 출신에 비해 호남 출신의 정치인과 관료는 중앙 무대에 있어서 대체로 열세였기 때문이었다.

참여정부 당시 어느 정도 수의 부산 경남권 인사들이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 관료로 발탁되었다. 호남출신의 정치인과 속칭 동교동계는 이에 대한 감정을 '호남 홀대론'이라는 것으로 바꿔서 유통시켰던 바가 있었다. 참여정부 당시 인사권에 개입할 수 있는 청와대 정무 수석이 다름 아닌 문재인 전 대표였다. 친노 패권주의란 사실 '호남 홀대론'과 '문재인 비토(veto)'의 결합 프레임에 가까웠다.

사실 새정치민주연합의 원내 구성에서 '친노'의 실체는 전부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2012년 총선 당시 한명숙 대표가 지휘했지만 속칭 '비주류'라고 하는 사람들은 당시에 경선과 공천을 통해 원내에 들어왔다. 또한 대부분의 호남권 정치인이 참여정부와 관련된 경력이 있었다. 심지어 지금 국민의당에 소속된 천정배, 정동영 후보는 실세였기도 했다. 주승용 후보는 열린우리당의 정치인이기도 했다.

새천년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분당과 합당의 역사를 볼 때, 당내에서 '친노' 혹은 '반노'를 구분한다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경계를 억지로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프레임의 시발점은 바로 공천갈등이었다. 게다가 보궐 선거에서 전략공천을 하거나 그에 따른 계파적 책임론을 부각할 때 등장한 것이 '패권주의'였다. 한 마디로 당내에서 "왜 마음대로 전략공천을 하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지도부 흔들기"라는 정치적 방어가 오갈 때 등장하는 것이 바로 '패권주의'라는 단어였다. 즉, 당내 분쟁에서 '친노 패권주의', '호남 패권주의', '호남 홀대론'이란 실체 없는 프레임에 가까운 것이었다.

문제는 이 단어가 대규모 탈당 사태와 국민의당 탄생 당시에 핵심 프레임으로 작용했다는데 있다. 즉, 실체가 없는 '친노'와 그리고 후속으로 탄생된 '친노 운동권' 프레임은 결국 진성 지지자들의 경계를 그어버리는 패착으로 이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 프레임이 있어야만 탈당의 명분이 생기고, 새로운 정당을 창당할 명분이 만들어진다.

게다가 이 프레임에서 '친노'는 새누리당과 보수 언론이 야당을 공격하는 프레임이었다. 당연히 앞서 언급한 '호남홀대론'과 '문재인을 비롯한 친노 비토' 프레임과 결합하면서 야권 지지자의 거대한 분열을 탄생시켰다. 여기에서 현 김종인 대표는 규율과 리더십을 이유로 '친노' '운동권'을 숙청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즉, 실체 없는 과녁에 화살을 쏴 댄 셈이었다.

결국은 '친노'는 중도층을 표적으로 하는 보수언론과 여당의 네거티브 프레임이었지만 야권 스스로 자신들의 분열 프레임으로 활용했다. 사실상 진성 지지자, 집토끼를 위한 프레임으로 활용해버린 격이 되었다. 앞서 말한 '호남 홀대론'을 기억한다면 '산토끼' 사냥을 위한 '집토끼 냉대' 감정이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분열의 씨앗이 됨을 알 수 있다. 또한 중도층이 도덕성과 일관성에 기인한 유대감으로 정당과 후보를 선택한다는 점을 기억해보자. 이 점을 생각한다면 과연 더불어민주당의 현 상황에서 중도 외연 확장을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인 것이 사실이다.

* 다음 회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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