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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19일 08시 39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12월 19일 14시 12분 KST

판교 테크노벨리 참사, 희생자에 대한 섣부른 비판

공연 무대와 가까운 환풍구에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몰리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은 과실이 분명하다. 과거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공연 행사장 인근의 환풍구를 사각 지대로 만들어버린 일이 있다. 즉, 대형 행사 현수막을 걸어버려서 환풍구 위에 올라가봤자 볼 수 없는 곳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한 노하우를 볼 때, 이번 판교 참사의 주최 측이 신중하게 검토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 집단의 행동은 위험에 있어서도 둔감하다.

1969년, 컬럼비아 대학교의 심리학자 라테인(Latane)은 또다른 심리학자 로빈(Robin)과 함께 특별한 실험 하나를 했다. 각 방에 인원수를 달리하여 수용한 뒤 문틈으로 연기를 새어 들어가게 했다. 수용된 피실험 대상자(학생)들은 그 연기가 단순히 수증기인지 화재로 인한 것인지 전혀 몰랐는데, 이 실험의 결과는 흥미로웠다. 홀로 대기하던 방에서는 75%가 2분 이내에 연기가 난다는 사실을 연구 조교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여러 명이 있던 곳은 13%만이 6분 이내에 보고했고, 인원수가 늘어날수록 비율은 더 낮아졌다. 이후 심리학계에서는 이 실험의 결과로 "대중적 무관심"을 설명하게 되었다.

이 결과를 체험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였다. 화재로 인해 연기가 객차 내부로 스며들어가는 순간에도 대부분의 승객들은 대피하지 않았다가 참변을 당했다. 앞서 언급한 로빈과 라테인의 실험은 달리와 라테인의 실험 결과였던 "책임 분산"과 유사한 구조를 띄었다. 바로 "판단을 미루는", "인지적 민감성을 둔화시키는" 구조였다.

사실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또한 "대중적 무관심"이 존재했다. 비록 선체 내부에서 "단원고 학생들은 가만히 있으십시오"라는 잘못된 지시가 내려졌지만 사실 다수의 참변에는 "대중적 무관심"이라는 심리적 기제가 존재한다.

판교 테크노벨리 환풍구 붕괴 참사에서 많은 대중과 네티즌들이 희생자들의 경솔함과 안전불감증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은 "말을 듣지 않는" 대중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었겠느냐며 책임을 환풍구 위에 올라간 희생자들로 돌렸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성급한 판단이다. 과거 몇 가지 사건을 복기해본다면 말이다. 과거 뉴 키즈 온더 블록(New Kids on the Block)의 공연장 사고와 프리미어리그 소속팀인 리버풀의 힐스버루(Hillsborough) 참사(입석 좌석 경쟁을 위해 사람이 몰려 96명의 사람이 압사한 사건)를 보면 대중이 위험에 얼마나 쉽게 노출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흔히 스포츠와 공연은 한정된 좌석을 두고 시장이 펼쳐진다. 즉, 관객들이 경쟁적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일종의 선착순 게임인데, 이런 현상은 파격적 할인행사를 앞둔 쇼핑몰에서도 볼 수 있다.

* 힐스버루 참사는 대표적으로 경쟁적 상황과 "대중적 무관심"이 만들어낸 참사였다.

이런 상황과 "대중적 무관심"이 결합하면 위험에 대한 인지도는 매우 낮아진다. 당연히 상식적으로 위험했던 상황마저도 감수하게 되는 것이다. 판교 테크노벨리에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사람의 인터뷰에서도 "위험하다는 것을 인지했지만 (포미닛의) 마지막 곡만 보고 내려가자는 생각"이라고 언급될 정도로 위험 회피에 둔감해지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의 공연장과 스포츠 경기장에서 안전 통제는 강제력을 동원한다. 구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만약 규칙에 어긋난 한 사람을 지목해서 지적을 하는 것은 심각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여러 사람들이 집단행동으로서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은 이른바 "책임 분산" 작용으로서 지적사항이 대중들에게 설득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공연장에서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안전 통제 요원의 부족은 중대한 과실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예측 불가능성'을 이야기하기도 어렵다. 대부분 사람들은 '철제 환풍구 덮개'에 올라가는 일은 원론적으로 하지 말아야 함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위험성을 중대한 위험으로 간주하고 있었느냐는 별개의 문제였다. 사실 환풍구 덮개를 지나가는 일은 위험 인지도 면에서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보다 낮게 인식되고 있었다. 반면 환풍구를 시공하거나 설계하는 사람들은 이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환풍구의 덮개는 철제로서 사실 이 철제 덮개는 공사 현장이나 기타 콘크리트 외벽 마감을 하지 않는 건물에서 발판으로 쓰인다. 즉, 사람이 올라가서 지나다니는 것을 가정한 것이다.

또한 공연의 주최 측은 관람 가능한 모든 곳의 위험성 점검을 했었어야 했다. 하지만 공연 무대와 가까운 환풍구에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몰리는 것을 예상하지 못 했다는 것은 과실이 분명하다. 과거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공연 행사장 인근의 환풍구를 사각 지대로 만들어버린 일이 있다. 즉, 대형 행사 현수막을 걸어버려서 환풍구 위에 올라가봤자 볼 수 없는 곳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한 노하우를 볼 때, 이번 판교 참사의 주최 측이 신중하게 검토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예측 불가능성'을 이야기하며 책임을 면피하는 것은 매우 좋지 않다. 왜냐하면 그럴수록 대부분의 책임 소재가 있는 정부 및 기관, 기업들은 면책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예측 여부는 얼마나 신중하게 다각적으로 검토했는지 여부와 관계가 있다. 개인적 과실로 돌리면 돌릴수록 법과 제도는 쉽게 변화되지 않는다. 그러면 당연히 참사는 재발하게 되어 있다. 이것은 참사를 접하는 살아남은 자의 올바른 대응 방식이 아닌 것이다. 이쯤 되면 용어 하나를 쓰지 말아야 한다. "안전 불감증", 사실 그런 증상은 없으며, 구조가 아닌 개인과 사람 자체에 책임을 돌리는 단어일 뿐이다. 개인의 책임은 가장 마지막에 논의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임형찬 (https://www.facebook.com/bucurestiL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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