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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2월 27일 09시 15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4월 29일 14시 12분 KST

동물을 사랑하는 패션 포토그래퍼의 비겁한 변명

동물을 사랑하는 내가 동물복지와 환경에 신경 쓰면서 패션 포토그래퍼로 살아간다는 건 참 힘든 일입니다. 내가 추구하는 것과는 너무나 이질적인 일들을 많이 해야 하는 내 직업은 종종 날 회의감과 무력감에 빠져들게 하니까요. 모피 사진이라도 찍는 날이면 스스로를 속이고 사람들에게 변명하는 가식적인 내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워한 적도 많았습니다.

나는 동물을 사랑하는 패션 포토그래퍼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동물을 사랑하면서 과장된 환상의 창조로 소비자를 현혹하고 소비를 부추기는 패션 포토그래퍼죠.

동물을 사랑하는 내가 동물복지와 환경에 신경 쓰면서 패션 포토그래퍼로 살아간다는 건 참 힘든 일입니다. 사진으로 먹고살지만, 내가 추구하는 것과는 너무나 이질적인 일들을 많이 해야 하는 내 직업은 종종 날 회의감과 무력감에 빠져들게 하니까요. 모피 사진이라도 찍는 날이면 스스로를 속이고 사람들에게 변명하는 가식적인 내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워한 적도 많았습니다. 어차피 누군가는 할 일이니 사진 찍고 받은 돈의 일부를 동물보호협회에 기부하면 좀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자기 합리화를 했고, 또 그렇게 하면 약간은 불편했던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습니다. 모피 사라고 꾀는 사진을 찍어서 동물보호협회에 기부하는 행동은 내가 봐도 앞뒤가 맞지 않는데,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모피는 사진으로 찍으면 왜 그렇게 근사한 건지, 난 수없이 갈등과 자기합리화를 반복해야만 했습니다. 사실 난 모피를 반대하는 인터넷 카페 회원이기도 합니다. 가끔 들어가서 글만 읽고 나오는 정도이긴 하지만, 회원들이 내가 모피도 찍는 패션 포토그래퍼라는 걸 알면 아마 내 가죽을 벗기려 들 거예요. 부디 나중에 내 정체를 알게 되더라도 관대한 용서를 바랍니다.

모피 때문에 괴로운 건 나뿐만이 아닙니다. 내가 아는 몇몇 모델들도 동물을 끔찍하게 좋아하면서 모피는 없어서 못 입는다고 하고, 나와 친분이 있는 모남성복 디자이너도 동물사랑이 남다르지만, 그의 컬렉션에서 모피가 등장하지 않는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는 종종 내가 느끼는 것과 비슷한 감정을 내게 호소하기도 합니다. (그가 하루빨리 작은 욕심을 포기하고 마음 편하게 디자인하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이런 면에서 나나 모델들이나 그 디자이너나 모두가 위선자들일 것입니다.

게다가 나는 고기 국물로 만든 평양냉면 마니아이기도 합니다. 냉면이 먹고 싶은 날이면 콩국수로 대신하려고 노력하지만, 사실 평양냉면의 유혹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죠. 매일 자가용으로 출퇴근하고, 온종일 컴퓨터를 켜 놓고 있는 내가 지구온난화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한다는 건 또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요? 내 나이 쉰이 되기 전에 남자들의 로망인 포르쉐 911 스포츠카를 구입하는 작은 꿈을 가지고 있던 나는, 이제 그 작은 소망 하나를 포기했습니다. 6년째 타고 있는 소형 폭스바겐 골프가 나의 마지막 자동차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선언해도 마음이 썩 편하지만은 않네요. 그마저도 집에 세워 놓고 버스를 타고 다니는 날이 많지만 그렇다고 죄책감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수많은 딜레마와 자기모순에 빠진 내가 그래도 내가 원하는 세상을 위해, 조금 더 나은 지구를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요? 모피코트 한 벌을 만들기 위해 30마리의 토끼, 55마리의 밍크, 27마리의 너구리, 100마리의 친칠라, 30마리의 푸른 여우가 희생된다고 합니다. 소고기 1kg을 위해서는 곡물 12kg 이상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온난화가 이대로 지속되면 2020년에는 양서류가 멸종한다고 합니다. 캐나다 하프물범의 하얀 솜털을 얻기 위해서 채 자라지도 않은 새끼를 잔인하게 때려잡는다고 합니다. 북극의 얼음이 많이 녹아서 북극곰들이 디딜 땅을 찾지 못해 지쳐 익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합니다.

난 내가 가진 걸 버리고 동물보호나 환경운동에 모든 걸 바칠 만큼 정열적이거나 용감하지도 못한 속물이지만, 인간이 망쳐 놓은 지구와 환경과 동물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숨길 수도 없습니다. 한 입으로 두말하는 이중인격자인지도 모르지만, 맹목적으로 패션을 찬양하지도, 멋있다는 말을 듣기 위해 콘크리트로 자연을 파괴하며 멋들어진 집을 짓지도, 혀에서 살살 녹는 고기의 맛을 잊지 못해 육식에 집착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나는 패션 포토그래퍼라는 직업으로 사람들에게 새 옷을 사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조장하지만, 이제 좀 더 확신을 갖고 내가 믿는 것을 사람들에게 말하려고 합니다. 상관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겠지만, 우리가 입는 모피 때문에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동물들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우리의 무분별한 에너지 낭비가 얼마나 많은 동물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지, 우리가 샤워하고 이 닦을 때 틀어 놓고 흘려보내는 물이 아프리카의 얼마나 많은 아이들을 살릴 수 있는지를요.

인류는 그 존재만으로도 지구와 자연과 동물들에게 많은 죄를 짓고 있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간에 인간은 지구를 병들게 하고, 자연을 파괴하고, 동물을 도살합니다. 인간중심적인 가치관은 인간을 위해 동물이 희생당하는 것을 정당화합니다. 나도 동물 희생의 불가피성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동물들이 적절한 환경에서 행복하게 살다가 최소한의 고통으로 떠났으면 합니다. 동물들을 지옥 같은 환경에서 평생을 괴롭게 신음하게 하다가 잔인한 방법으로 도살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으니까요. 사람들은 자신의 고귀한 생명을 한 끼의 식사로 제공하는 동물들을 인도적인 방법으로 도축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존중 받아야 할 생명과 다른 존재의 한끼 식사로 취급당하는 생명이 따로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생명도 지구에서 두 번의 생명을 부여받지 못합니다. 억만금을 쥐고 세상의 명예를 다 가져도 인생은 한 번으로 끝납니다. 자신이 소중한 걸 안다면 다른 생명의 존귀함도 알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참 모자라고 부족한 내가 다른 사람을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나는 스스로의 이중적인 행동이 원망스럽기는 하지만, 내가 살아가는 동안 힘없고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생명들에게 도움과 희망을 주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내일 당장 전등 하나 끄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육식 한 번 덜 하고, 그 순간 철창 안에서 비참하게 도살될 시간만 기다리는 가엾은 생명들에 대해서 한 번만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요? 그리고 옷장 안에 걸려 있는 수많은 옷들 중에서 하나만 덜 산다면, 또 그 돈 으로 내가 얼마나 의미 있는 일들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한다면 내일이 좀 더 즐겁지 않을까요? 사람은 자기 인생에서 너무 많은 걸 포기하고 살아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과 돈, 건강과 가족 다음으로 여유가 있을 때야 환경도 걱정하고 동물도 생각하지만, 아주 작은 관심이라도 우리가 아주 잠깐 머물다 가는 지구라는 별을 위해서 의미 있는 행동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