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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2월 08일 09시 26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2월 08일 13시 00분 KST

여행은 인생의 답을 주지 않는다

Alexey Karamanov via Getty Images

얼마 전 초등학교 선생님을 만났다. 어린 20대에는 여행을 가야만 할 것 같았고, 대학생일 때 배낭여행을 가지 못하면 시류에 도태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고 했다. 엄격한 부모님은 어린 딸자식이 홀로 배낭 여행 가는 걸 원치 않으셨고 자신도 그럴만한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했다. 여행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필자 역시 학창 시절 홀로 배낭 여행을 간 적이 없다.

2017년 화두는 (아니 지난 몇 년 전부터) 여행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느니 오늘 하루라도 즐기며 살자는 욜로(You Only Live Once)족에게 여행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디지털노마드로 세계를 떠돌며 살거나 신혼여행으로 세계여행을 하거나 한 달에 한 도시 살기가 불가능하다면 짧은 여행이라도 다녀와야 할 것만 같은 압박감.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올라온 누군가의 여행사진에 열광하는 것은 그러한 욕구를 대변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여행이 인생의 답은 아니다. 여행을 떠나면 지금 당면하고 있는 문제에 해답을 찾을 것만 같고, 막혀 있는 것들이 뻥 뚫릴 것만 같은 막연한 기대감을 갖게 된다.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여행으로 찾은 인생의 해답에 대한 철학적 수사를 소셜미디어에 늘어 놓는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색다른 경험을 통해 진정한 자아를 찾고 새로운 내가 되었다는 뭐 그런 이야기.

그러나 막상 여행에서 돌아오면 현실은 제자리걸음이다. 여행에서 느꼈던 새로움과 희망은 인천공항에 도착함과 동시에 뿌연 안개가 흩어지는 것보다 더 빨리 사라진다. 시야를 가리우던 현실이 다시 선명하게 눈앞에 들어오면 언제 여행을 갔었나 싶은 기분이다. 제길, 다시 여기라니.

모두가 말하듯 여행은 나를 넓히는 과정이긴 하다. 좁은 우물 속 나와 내 가족, 나를 둘러싼 작은 사회를 탈피해 김치가 없는 밥을 먹는 고역(혹은 즐거움)이고 까막눈, 벙어리가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말이 통하지 않아 좌충우돌 할 수도 있고, 생전 처음 맛보는 향신료에 화장실을 들락거릴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우리는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게 된다.

누군가에게 여행은 일탈이다. 다른 누군가에게 여행은 도피다. 그러나 실상 여행은 수많은 날들 중 하루일 뿐이다. 지금의 현실과 그곳의 현실 속에서도 일상은 계속된다. 여행을 한다고 해서 잠을 자지 않고 돌아다닌다거나 생리 현상을 잠시 중단할 도리는 없으니.

그러나 우리 삶에서 여행은 여전히 소중하다. 때로 한 발자국 멀리 떨어져 보는 것은 확실히 숲에서 나무를 들여다보는 것과는 다르게 숲을 조망할 수 있는 눈을 갖게 한다. 다만 여행을 통해 지금 이곳에서 찾을 수 없는 답을 기대하기 보다는 오늘 서 있는 이곳에서(그리고 그게 여행지이든 전쟁터이든,)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여행을 그리고 삶을 대하는 자세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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