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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1월 13일 11시 44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3월 15일 14시 12분 KST

줄기세포 비망록 | "진실, 그것을 믿었다"

영화에서는 '피디추적'이 벼랑 끝에 몰리자 제보자가 어떠한 희생이라도 감수하겠다며 기자회견을 자청한다. 거기에 대해 윤민철 피디는 문제 해결은 자기 몫이라며 만류한다. 사실은 정반대이다. 실제대로 제보자에게 나서기를 요청하는 것으로 그렸다면? 그런 행위를 탓하는 관객도 없지 않을 테지만 더 많은 관객들은 당시의 다급한 사정을 더 잘 이해하고 공감했을 것이다. 또 진실을 밝히고 역사를 진전시키는 건 영웅이 아니라 좌절하고 위축되었다가도 다시 일어서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점을 실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황우석 사태' 또는 '줄기세포 논문 날조 사건'이라고 불리는 전대미문의 소용돌이가 한국사회를 휩쓸고 지나간 지 10년이 되었다. 이 사건은 과학 연구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가 관련된 초대형 스캔들로, 한국사회의 실체를 잘 파악할 수 있는 소중한 소재이기도 하다. 이에 몇 차례에 걸쳐 이 사건의 진실과 배경, 그리고 그 이후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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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보자>는 175만여명이 관람하고 막을 내렸다. 제작진의 기대에는 못 미쳤겠지만 <명량>과 <해적>이 영화시장을 한바탕 쓸고 간 직후에 개봉된 점을 감안하면 선전한 셈이다.

평소 알고 지내는 영화사 '수박'의 정성훈 대표는 '줄기세포 사기·날조극'을 파헤친 MBC 피디수첩의 한학수 피디가 쓴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 드려야 할까요?―황우석 사태 취재 파일>을 흥미진진하게 읽었다면서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는 내게 영화 제작에 도움을 달라고 했다. 그에 따라 얼마 뒤 나를 찾아온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 내정자들과 한 피디의 책과 영화 제작에 관해 제법 긴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인 것은 황우석 전 교수의 책임 범위에 관한 것이었다. 논문을 날조한 책임이 그에게 있다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존재하지도 않는 '환자 맞춤형 복제배아줄기세포'를 만들었다고 세상을 오도한, 즉 사기를 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들은 검찰이 발표한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 수사결과'를 근거로 김 아무개 연구원의 책임이 더 크고, 황 전 교수도 그 점에서는 속은 것이라면서 그렇기 때문에 영화 제작에 참여하기가 꺼려진다고 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다음 회에서 상세하게 다룰 것이다.) 그리고 얼마 뒤 그들이 감독과 작가 직을 사퇴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최근에 들은 바로는 임순례 감독은 네번째로 선임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영화 제작이 순탄치 않았던 모양이다.

집단지성의 힘

2005년 12월 4일 밤, YTN의 '청부 취재와 보도'로 피디수첩은 난파 위기에 처했고 진실은 영원히 묻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바로 몇 시간 뒤인 5일 새벽 5시 28분, 별로 주목받지 못하던 전문 연구자들의 온라인 대화 장소인 브릭의 '소리마당'이 열기를 뿜기 시작했다. 닉네임이 'anonymous'인 한 전직 연구자가 "The show must go on..."이라는 제목부터 매력적인 글을 올림으로써 반전이 일어났다. 그리고 6일 새벽 0시 19분, 이번엔 닉네임 '아릉'이 전날의 열띤 분위기에 힘을 얻어 올린 "DNA fingerprinting 데이타 살펴보기"로 진실 게임은 사실상 끝났다. 'anonymous'는 황 교수팀의 논문이 날조로 얼룩졌다는 사실을 명백히 밝혔고, '아릉'은 줄기세포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접근했기 때문이다. 황 교수팀은 5일 날은 어설프게나마 대응했지만, 6일에는 속수무책이었다. 두 빼어난 무명 과학자의 문제 제기, 그리고 그들에 버금가는 실력과 정의감을 갖춘 '집단지성'의 참여로 승부가 판가름 난 것이다. 나는 이제 누구도 한번 드러난 진실을 감출 수 없으리라고 확신했다.

7일 저녁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의 강양구 기자에게 "조만간 모든 것이 정리될 것"이라고 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강 기자는 얼마 전 내 말을 '알쏭달쏭한 격려'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이튿날 서울대학교 생명윤리위원장인 법대 교수가 찾아왔다. 예상대로, 대학 본부에서 황 교수팀의 연구 의혹에 관한 조사 논의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조사는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그가 표한 공감을 총장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조사위원회가 구성된 15일까지 온갖 방해 공작이 난무했지만 진실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지금이라면 어떨까? 종종 생각해보곤 한다.

<제보자>가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처음 머리에 떠오른 것은 이러한 '대반전'이 영화에서 어떻게 그려질까 하는 점이었다. 그런데 영화는 내 기대와는 달리 사건의 클라이맥스가 실제와 전혀 달리 밋밋하게 묘사되었다. 물론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라 하더라도 실제와 다를 수밖에 없다. 아니, 같을 필요도 같을 이유도 없다. 영화는 영화일 따름이다. 그러니 '대반전'의 실상이 영화에 그려지지 않았다고 탓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영화를 훨씬 박진감 있게 만들고 사건의 역사성을 잘 드러낼 수 있는데 그러질 못해서 아쉽다는 것이다.

"진실, 그것을 믿었다."

한 가지 더. 영화에서는 '피디추적'이 벼랑 끝에 몰리자 제보자가 어떠한 희생이라도 감수하겠다며 기자회견을 자청한다. 거기에 대해 윤민철 피디는 문제 해결은 자기 몫이라며 만류한다. 사실은 정반대이다. 실제대로 제보자에게 나서기를 요청하는 것으로 그렸다면? 그런 행위를 탓하는 관객도 없지 않을 테지만 더 많은 관객들은 당시의 다급한 사정을 더 잘 이해하고 공감했을 것이다. 또 진실을 밝히고 역사를 진전시키는 건 영웅이 아니라 좌절하고 위축되었다가도 다시 일어서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점을 실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 피디는 고뇌 끝에 제보자에게 했던 무리한 요청을 거두어들였다. 자신의 책 개정판 제목처럼 "진실, 그것을 믿었다." (다음 글에 계속)

* 이 글은 다산연구소의 "다산포럼"에 게재되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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