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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3월 31일 10시 52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4월 01일 14시 12분 KST

통신자료, 누구 마음대로?

전화번호 기준으로 2013년 약 950만건, 2014년 약 1300만건, 2015년 상반기에 약 590만건 등, 이 기간 동안 통신자료 2840만여건이 권력기관의 손에 들어간 것이다. 불과 2년반 만에 유무선통신서비스 가입자 정보의 약 3분의 1을 가져간 셈이다. 수사기관이 수사상 필요해서 개인정보를 확인한 것이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본들 연간 1300만건이나 주고받는 것이 전부 다 필요했다고 믿기는 어렵다. 분명 일부 중복된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국민 전체를 수사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Gettyimage/이매진스

전기통신사업법상 수사 또는 형의 집행,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정보수집이 필요한 경우 수사기관이 이동통신사, 인터넷포털사 등 전기통신사업자에게 가입자의 인적사항인 통신자료(이용자의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아이디, 이용자의 가입 또는 해지일자)를 제공해달라고 요청하면 사업자들은 이에 응해왔다. 법원의 영장이나 허가를 받지 않고도 수사기관이 사업자가 보관하고 있는 제3자의 정보를 가져가는 것이다. 수사기관과 사업자가 국민의 정보를 주고받는데, 정작 정보의 주인은 모르고 있었다.

"수사상 필요"라는 이유로 관계기관이 통신과 관련한 정보를 획득하는 방식은 1977년 12월 31일 개정된 전기통신법 제5조에서 처음 법률체계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공중전기통신사업법을 거쳐 전기통신사업법으로 이어지면서 "수사상 필요"는 "수사 또는 형의 집행,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해를 방지하기 위한 정보수집의 필요"로 확장되었고, 정체를 알 수 없었던 "관계기관"은 "법원, 검사 또는 수사관서의 장(군 수사기관을 포함), 정보수사기관의 장"으로 일부 확장과 제한을 거쳤다. 전화기 한대 없는 집이 많던 시절에 만들어진 법이, 스마트폰 사용이 필수가 되고 인터넷을 통해 세상과 소통함은 물론 사물 인터넷까지 활용하는 시대에 그대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통신자료 제공을 둘러싼 문제

그런데 최근 대법원이, 가입자에게 사전 동의를 받지 않은 채 가입자의 통신자료를 임의로 수사기관에 제공한 네이버에 손해배상책임이 없다며 해당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되돌려보냈다. 당초 항소심(2심)에서는 네이버가 임의로 통신자료를 제공한 것이 위법하기 때문에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한다고 봤고, 이 항소심판결 때문에 2012년 11월부터 네이버, 다음 등 국내 주요포털사들이 수사기관의 통신자료제공요청에 전면적으로 응하지 않기도 했는데 대법원이 그걸 뒤집은 것이다.

전기통신사업법상 정해진 절차에 따라 수사기관이 통신자료제공을 요청하면 전기통신사업자들은 이에 "응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종로경찰서장이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통신자료제공을 요청한 것이 법에 따른 절차라는 것과, 사기업인 네이버가 그 요청의 타당성 여부를 심사하기 어렵기 때문에 법에 따른 적법한 요청인 이상 통신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타당하고 이를 위법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이번 대법원 파기환송판결의 핵심이다. 법이 수사기관은 요청할 수 있고 전기통신사업자는 응할 수 있다고 정한 이상 통신자료 제공을 위법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임의수사에 응한 사인에게 책임을 묻게 되면 임의수사를 할 수 없게 되고 이는 광범위한 강제수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수사기관의 우려가 반영된 결과다.

그런데 문제는 논리, 법리 따위가 아니라 수사기관의 전횡에 대한 전국민적 불신에 있다. 우리 사회에는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유신독재,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수사·정보기관의 서슬 퍼런 횡포, 초법적 권한 행사를 온몸으로 겪어냈던 기억이 각인되어 있다. 이런 상처는 짙은 흉터를 남겼지만 민주화운동, 평화적 정권교체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가 한발 나아가는 듯 보였으나, 최근 민간인사찰, 간첩조작, 선거개입 등을 겪으면서 기억은 또다른 현실이 되어버렸고 역사는 반복된다는 경험만 더욱더 확고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여전히 경찰, 검찰, 국정원 등 소위 '권력기관'의 드러나지 않은 활동에 대한 의심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국민의 불신과 불안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주요포털사들이 2012년 11월부터 법원의 영장 없이는 통신자료를 제공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동통신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전기통신사업자들은 통신자료 제공을 계속해왔다. 전화번호 기준으로 2013년 약 950만건, 2014년 약 1300만건, 2015년 상반기에 약 590만건 등, 이 기간 동안 통신자료 2840만여건이 권력기관의 손에 들어간 것이다. 우리나라 유선통신서비스 가입자수(시내전화, 초고속인터넷)가 약 3600만, 무선통신가입자수가 약 5800만 정도 되니 2013년부터 2015년 상반기까지 불과 2년반 만에 유무선통신서비스 가입자 정보의 약 3분의 1을 가져간 셈이다. 수사기관이 수사상 필요해서 개인정보를 확인한 것이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본들 연간 1300만건이나 주고받는 것이 전부 다 필요했다고 믿기는 어렵다. 분명 일부 중복된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국민 전체를 수사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많은 정보를, 내부결재를 받은 공문 한장으로 수집하면서도 확보한 정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어떤 경우 보존할 것인지, 어떤 경우 폐기할 것인지에 관한 절차도 마련하지 않은 수사기관의 선의에만 기대어 있을 수는 없다.

수사기관에 대한 불신과 그로 인한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수단은 헌법상 영장주의에 충실한 법집행이다. 수사기관의 편의가 헌법 위에 있을 수 없다. 국민적 불안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투명하고 적법하게 권한이 행사되고 있다는 경험이 쌓이지 않고선 해소되기 어렵다. 수사기관은 수사의 밀행성, 효율성이라는 장벽 뒤로 숨을 것이 아니라 국민적 불안의 뿌리에 바로 수사기관에 대한 불신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실천에 나서야 한다.

당장 광범위한 통신자료 제공요청을 중단해야 한다. 반드시 필요한 범위에서 제한적으로만 요청해야 하고, 통신자료를 제공받은 경우 해당 정보주체에게도 수사기관이 통신자료를 제공받았음을 문자메세지, 이메일 등으로 통지해야 한다. 또, 확보한 자료의 활용, 보존, 폐기 등에 관한 세부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런 조치들은 수사기관의 의지만 있다면 법개정 없이도 당장 시행할 수 있다. 당장 시행할 수 있는 조치들부터 해나가는 데서 불신과 불안을 해소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창비주간논평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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