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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8월 26일 19시 00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10월 26일 14시 12분 KST

시골빵집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제빵사인 저자는 수련생으로 있던 빵집에서 과도한 노동에 시달렸다. 또 이윤과 편리를 좇느라 건강을 해치는 나쁜 재료를 사용하거나, 거대 다국적 기업의 투기로 재료 가격이 널뛰기하는 현실도 목도했다. 그렇게 그는 작은 빵집마저 비정한 경제 시스템의 '한가운데'에 있음을 깨달았다. 이내 저자는 시스템 바깥의 삶을 상상하게 되었고, 그 상상을 현실로 바꾸었다.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가, 노동 착취 없고 인근 지역 농민이 기른 친환경 재료로 천연 발효 빵을 굽는, 이윤보다 인간과 자연을 생각하는 가게를 차린 것이다. 저자는 이 같은 자신의 실천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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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정문주 옮김,『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더숲, 2014.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는다니. 눈길을 끄는 제목의 이 책, 요즘 잘 나간다. 3쇄 찍으면 베스트셀러라는 슬픈 전설을 가진 사회 분야에 속하는 책인데, 내가 읽은 게 이미 4쇄였다.

사실 책이 담은 메시지는 크게 새롭지 않았다. 스테디셀러인『조화로운 삶』의 제빵 버전이랄까. 인간과 환경을 파괴하는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하며 시골에서 소박한 삶을 추구했던 니어링 부부. 그들이 미국에서 농사짓고, 집 짓고, 메이플 시럽 만들어 파는 대신 일본에서 빵을 구워 파는 얘기라고 보면 된다. 그럼에도 '제빵'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개인의 경험과 연결시켜 풀어나가는 저자의 글쓰기 방식이, 그리 신선하지 않은 재료를 꽤 맛있게 가공해주었다.

제빵사인 저자는 수련생으로 있던 빵집에서 과도한 노동에 시달렸다. 또 이윤과 편리를 좇느라 건강을 해치는 나쁜 재료를 사용하거나, 거대 다국적 기업의 투기로 재료 가격이 널뛰기하는 현실도 목도했다. 그렇게 그는 작은 빵집마저 비정한 경제 시스템의 '한가운데'에 있음을 깨달았다. 이내 저자는 시스템 바깥의 삶을 상상하게 되었고, 그 상상을 현실로 바꾸었다.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가, 노동 착취 없고 인근 지역 농민이 기른 친환경 재료로 천연 발효 빵을 굽는, 이윤보다 인간과 자연을 생각하는 가게를 차린 것이다. 저자는 이 같은 자신의 실천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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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와타나베 이타루와 마리코, 딸 모코가 빵 진열대 앞에 앉았다. (한겨레)

현대인 대부분을 포섭한 임금 노동 및 소비 중심의 삶과는 다른 길을 제시하고, 그것이 충분히 실현 가능함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에겐 다양한 모습의 삶에 대한 욕구와 그 욕구를 실현할 권리가 있으니까. 하지만 과연 저자가 생각하는 것처럼, 개개인의 실천만으로 우리가 사는 세계가 좋아질 수 있을까?

미안하지만 저자의 믿음은 다소 낭만적이고 순진하다. 그 순진함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생산수단을 가지"고 "소상인"이 되는 것이, '착취'라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에 대한 "효과적인 해결책"이 될 거라는 대목(p.185)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모두가 소상인이 되는 것은 현실화될 수 없는 몽상이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당장 한국 사회를 봐도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여전히 임금 노동을 보편적인 노동 형태로 받아들이며, 소상인이 되는 건 주로 임금 노동체제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이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는 임금 노동을 빼고는 설명할 수가 없다.

대다수 보통 사람들이 임금 노동자일 수밖에 없는 시스템. 그 안에서 노동자가 비교적 쾌적한 노동환경을 확보하고 생계를 유지할 합리적 수준의 급여를 받으며 일할 수 있으려면, 자본가(경영자)와의 협상력을 높일 수 있도록 노동조합과 같은 조직을 제대로 갖춰야 한다. 나아가 이윤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인간과 자연을 희생시킬 준비가 된 경제 권력을 통제할 강한 정당도 필요하겠고. 불합리한 현실을 향한 불만을 표현하고, 그 현실에 맞서 연대하며, 그렇게 이루어진 연대가 효과적으로 힘을 발휘하게 하는 노조나 정당 같은 구조적 장치가 없거나 허약하다면 보통 사람들의 삶은 늘 고달플 수밖에.

그 고달픔은 개인이 생산수단을 마련하고 시스템 밖으로 나가는 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저자와 유사한 삶의 지향을 갖는다고 해서 누구나 저자처럼 그 지향을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자기 사업이나 귀농귀촌은 성공하기보다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설령 성공하더라도 개개인의 감수성 변화와 그에 뒤따르는 실천이 곧장 사회구조의 변화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시스템 안에서 구조적 장치를 견고하게 만드는 데 관심을 가지는 것이 현실적이고 적절하다. 그리고 그 구조적 장치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때, 저자가 강조하는 소상인이나 농민의 삶도 거대 자본 및 그와 종종 결탁하는 국가의 횡포로부터 안전할 수 있으며, 임금 노동과 그 밖의 다양한 삶의 형태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