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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9월 15일 12시 44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11월 15일 14시 12분 KST

어떤 복잡성 이론

문제가 복잡할 수밖에 없다. 이 징병제 국가에서는 한 인간이 제 적성이나 희망으로 군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군대의 폐쇄된 환경에서는 아버지에게 맞고 자랐던 상처가 총기사건으로 폭발할 수도 있고, 학교에서 따돌림 받았던 기억이 한 젊은이를 목매달게 할 수도 있다. 그보다 더 작은 사건도 어떤 계산할 수 없는 과정을 거쳐 더 큰 사건의 씨앗이 될 수 있고, 끝내는 조직의 토대를 허물고 여러 사람의 목숨을 위기에 몰아넣을 수 있다. 군대의 지휘관들이 이 나라의 모든 상처와 기억을 그 계산할 수 없는 작용까지 함께 관리해야 하는 셈이니 복잡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모든 원인이 사병에게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한겨레

조제팽 술라리라는 프랑스 시인이 있었다. 19세기 중엽에 재기 있는 시들을 제법 많이 발표했지만 뒤이어 나온 보들레르, 말라르메 같은 거대한 이름에 묻혀버려 지금은 거의 잊힌 시인이다. 그의 고향인 리옹에 그의 이름을 붙인 거리가 하나 있고, 보들레르의 평문에 그의 이름이 한 번 등장해서 전문가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정도다. 그의 제목 없는 소네트에 이런 시구가 있다. "함께 자던 나비 날아가니, 혼자 자는 장미 끝에 폭풍 인다." 한 사람이 떠난 후, 뒤에 남은 사람의 꿈이 어지럽다는 뜻을 비유하는 말이다.

그런데 한 세기도 더 후에 기상학자 로렌즈 같은 사람이 "브라질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갯짓을 해서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일으킬 수 있는가"라고 물으며, 하나의 원인이 하나의 결과를 초래하는 복잡한 과정을 과학적으로 예측하는 일이 지극히 어렵다는 뜻으로 말을 했을 때, 나비의 날갯짓과 폭풍을 함께 언급한 술라리의 저 시구를 상기하는 사람이 전혀 없었을까. 물론 로렌즈가 술라리의 시구를 알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로렌즈를 포함한 과학자들의 복잡성이론이나 혼돈이론을 믿는다면, 어떤 과학이론과도 무관한, 더구나 전문가들에게조차 망각된 19세기의 시구 하나가 우여곡절을 거쳐 20세기 후반에 이론의 돌풍이 되어 나타났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장담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내가 술라리의 나비와 로렌즈의 나비를 함께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다. 시내의 어느 대형서점에 딸린 커피점에서 다리를 쉬고 있는데, 머리를 짧게 깎은 한 중년남자가 인사를 한다. 내가 머뭇거렸더니, 학생 시절에 내 수업을 두 학기 정도 들었다며, 학사장교로 복무하고 중령으로 전역한 후 어느 기관에서 국방관련 업무를 보고 있다고 자기소개를 했다. 그가 군인이었고 여전히 군인이나 다름없으니, 두 사람의 화제가 최근에 군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들로 채워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는 자기 일이 정훈업무와 무관하지 않아서 일말의 책임을 느낀다고 말하면서 내게 조언을 구했지만, 사병으로 3년 복무한 경험, 그것도 40년 전의 경험밖에 없는 내가 군사전문가인 그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무엇일까. 내가 마지못해 나이 든 국민으로 상식적인 이야기라도 하게 되면 그의 대답은 언제나 "문제가 참으로 복잡합니다"였다.

문제가 복잡할 수밖에 없다. 이 징병제 국가에서는 한 인간이 제 적성이나 희망으로 군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군대의 폐쇄된 환경에서는 아버지에게 맞고 자랐던 상처가 총기사건으로 폭발할 수도 있고, 학교에서 따돌림 받았던 기억이 한 젊은이를 목매달게 할 수도 있다. 그보다 더 작은 사건도 어떤 계산할 수 없는 과정을 거쳐 더 큰 사건의 씨앗이 될 수 있고, 끝내는 조직의 토대를 허물고 여러 사람의 목숨을 위기에 몰아넣을 수 있다. 군대의 지휘관들이 이 나라의 모든 상처와 기억을 그 계산할 수 없는 작용까지 함께 관리해야 하는 셈이니 복잡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모든 원인이 사병에게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어느 육군대장이 취중에 추태를 보였다거나 공군 간부들이 민간인에게 성추행을 했다는 따위의 사건은 오히려 작은 일이다. 역시 최근의 소식이지만, 어느 육군 장교가 초등학교에서 반공교육을 하면서, 북한의 실상을 알리겠다며 잔학하기 이를 데 없는 장면을 보여주어, 몸서리를 치고 악몽을 꾸는 아이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군대의 정훈교육에서 북한의 여성응원단과 관련하여 적화통일을 위한 미인계 운운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반공교육이건 안보교육이건 당면 목표가 있겠지만, 그 목표가 민족의 미래와 인류의 공영을 바라보는 더 큰 목표와 어느 선에서건 연결되지 않으면, 벌써 알 것을 다 알고 있는 장병들에게 진정한 사기를 진작시킬 수 없다. 우리가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각급 지휘관들이 이 시대에 살기를 거부하는 한 저 기억과 상처들을 하나의 힘으로 묶기 어렵다. 내가 이런 소회를 말하자 그는 같은 대답을 했지만 어조가 달랐다. "참으로 복잡하군요."

원인이 결과에 이르는 과정을 계산할 수 없다는 말은 그에 대한 관측과 추론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복잡성이론을 내가 공부한 분야의 말로 이해한다면 나쁜 믿음에 빠지지 말자는 말이 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부지런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유신시대의 흑백 필름을 지금 또다시 한번 돌리면 병사 하나가 피를 토하고 죽는다.

* 경향신문 2014년 9월 13일 <황현산의 밤이 선생이다>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