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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27일 07시 01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1월 27일 14시 12분 KST

대중정치인의 조건

한겨레

YS는 '대중정치인'이었다. 정치인은 많지만 진정한 대중정치인은 많지 않은데 그는 단연 돋보였다. 누구나 정치인이 될 수는 있지만 대중정치인은 아무나 되지 못한다. 왜 누구는 대중정치인이 되고, 누구는 되지 못할까. 대중정치인은 어떤 사람이며, 대중정치인은 어떻게 될 수 있는가.

대중정치인은 대중을 위해 정치를 한다. 자기 이익을 위해, 자기 보스를 위해, 자기 계파를 위해, 자기 지역구만을 위해 정치를 하는 정치인은 대중정치인이 아니다. 물론 대중을 위해 정치를 한다고 해서 대중정치인이 곧장 되는 것은 아니다. 대중이 호응을 해야 한다. 열광과 환호를 보내야 한다. 국회의원이라면 자기 지역구를 뛰어넘는 다른 지역의 유권자들도 관심을 갖고 지지를 보내주어야 비로소 대중정치인으로 완성된다. 대중적 지지기반을 갖는 대중정치인으로 서게 되는 것이다. 말 한마디로 대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대중정치인의 반열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대중정치인이 되어야 대통령도 될 수 있다. 모든 대중정치인이 대통령이 되는 건 아니지만 대중정치인이 아니고서는 대통령으로 선출되지 못한다. 대중정치인이라는 '절대반지'를 얻기 위해 많은 정치인들은 이 산 저 산을 찾아 헤맨다. 간혹 손에 넣기도 하지만 대부분 도중에 길을 잃고 만다.

길을 잃는 정치인들은 대개 대중정치인이 되는 핵심 요체가 아닌 비본질적인 것들을 찾는다. 재선, 재력, 지위, 계파, 권력 등을 좇는다. 아무리 지역구에서 여러 번 당선된다 해도 대중정치인이 되지는 못한다. 아무리 정치자금이 충분해도 안된다. 장관, 총리, 당대표 등을 한다고 해서 바로 되는 것도 아니다. 자기 계파를 갖고 있다 한들 대중정치인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 최고권력 가까이에 간다고 해서, 대통령의 측근이라고 해서 대중정치인이 되는 건 더더욱 아니다.

미디어시대이지만 잘생긴 외모로도, 청산유수 달변으로도 대중정치인의 자격을 사지 못한다. 언론에 자주 등장하더라도 쉽지 않다. 많이 알려졌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유리하긴 하지만 높은 인지도가 충분조건이 되는 건 아니다.

대중정치인이 아니라 속물정치인, 계파정치인, 조직정치인, 엘리트정치인, 여의도정치인이 될 뿐이다. 정책과 입법 역량이 뛰어나 성과가 많더라도 정책전문가 또는 입법전문가 소리를 들을 수는 있지만 대중정치인이 되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대중정치인의 조건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권위에 대한 도전 경험'이다. 권력에 맞서고, 기득권에 맞서는 모습을 대중에게 어필해야 한다. '권위'는 지역주의일 수도 있고, 사회의 부패일 수도 있고, 권위주의 정권일 수도 있고, 양김 시대일 수도 있다. 대중이 차마 직접 나설 수 없는 일에 대신 나서서 용기를 내야 대중에게 대중정치인으로 수용된다.

성공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YS도 민주화가 되기 전에 이미 대중정치인이 되지 않았던가. 꼭 도전이 성공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실패해도 대중은 그 도전 자체를 기억해주기 때문이다. 대중은 힘겨운 도전을 한 정치인에게 마음의 빚을 진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일관성을 잃지 않는 한 믿어준다. 이렇게 해서 형성되는 '신뢰가 가미된 정치적 지지'는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게 된다.

헛된 과녁을 향해 의미 없는 각자의 활을 쏘는 정치인이 많은 시대이다. 대중을 위해 깨뜨려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도전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대중정치인은 어디 있는가. 이를 실행하려는 결단과 용기를 지닌 대중정치인은 어디 있는가.

ys

1979년 8월11일 새벽 2시 와이에이치무역 여성노동자들이 농성중인 신민당사에 경찰 1000여명이 들이닥쳤다. 경찰은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를 당사에서 강제로 끌어내 집으로 보냈다. 이날 아침 당사로 돌아온 그는 당 국회의원 전원과 농성을 시작했다. 이 사건으로 김영삼은 한국 현대사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한겨레(자료사진)

* 이 글은 영남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