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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0일 07시 13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1월 10일 14시 12분 KST

또 처삼촌 뫼 벌초하듯 할 건가

한겨레

'예산을 읽고 이해하는 자만이 국정을 운영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창조적 파괴'로 잘 알려진 조지프 슘페터이다. 국정운영의 담당자에는 비단 정부뿐 아니라 예산심의를 주관하는 국회의원들도 해당된다. 그러나 이들 국정운영의 주체가 예산을 제대로 읽고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예산을 두고 정권의 실세와 국회의원들이 마치 눈먼 돈인 양 서로 나눠 먹고 은밀히 밀어주는 저질적 행태가 극성을 부리는 때가 바로 예산국회 시즌이다.

예산심의는 정부예산안에 대해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이 국민을 대신해 민주적 통제를 수행하는 과정을 말한다. 민주적 절차가 제한된 정부의 예산편성에 대해 주권자인 국민을 위해 면밀히 스크린을 함으로써 민주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은 임무를 망각하고 자기 지역구 예산 확보에만 열을 올린다. 선거가 없는 평소 예산국회에서도 그러할진대 총선을 코앞에 둔 이번엔 더 심할 수밖에 없다. 전체 예산안에 대해서는 '처삼촌 뫼에 벌초하듯' 건성건성 심의한다.

매년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이른바 쪽지예산, 문자예산, 카톡예산은 올해도 어김없이 등장할 것이다. 예결특위 여야 간사나 예산안조정소위원회 위원들에게 온갖 압력, 부탁, 하소연이 전달될 것이다. 이것이 뉴스에 보도되고 해당 의원은 국민적 비판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좋아한다. 지역을 위해 애썼다는 게 지역주민들에게 쉽게 알려져 오히려 득표에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회후생의 극대화'를 위한 예산안 심의가 아니라 '표의 극대화'를 위한 심의로만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산심의의 본래 의미는 사라진다. 물론 예산과정의 정치적 특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특정 인물의 이익 극대화로 예산과정이 흘러서는 안될 것으로 보인다.

예산과정론의 권위자인 아론 윌다브스키는 한국 예산과정의 특성을 "특정한 개인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 '개인화된 예산(personalistic budget)'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 연구는 1960~70년대 한국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40년이 훨씬 더 지난 한국의 예산과정은 여전히 은밀한 '개인화'가 진행 중이다. 특정한 개인의 의도나 의지가 예산과정을 어지럽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는 예산안 심의는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곧 닥쳐올 사회적 문제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대비하는 예산편성과 심사가 되어야 하지만 당장의 성과, 당장의 선거에만 시선이 고정되어 있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자살률, 노인빈곤율, 출산율, 청년실업률 등의 지표는 바닥으로 질주하고 있다. 예산이 훗날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것을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담당자들이 빚어낸 결과물일 것이다.

이번 예산국회는 19대 국회의 사실상 마지막 역할이다. 얼마 전 끝난 국정감사는 역대 최악의 부실이었다는 불명예를 뒤집어썼다. 예산국회에 임하는 자세를 가다듬음으로써 '과오'를 조금이라도 씻어내고 임기를 마무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표없이 과세없다'에 의해 의회가 생겨나지 않았는가. 국회의원들의 본래의 존재 의미가 현대에선 예산심의인 것이다. 사심은 내려놓고, 공적 사명감을 갖고 예산심의에 나서주길 기대한다. 이것은 나라의 운명에 관한 중요한 일이다.

* 이 글은 영남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