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2015년 10월 02일 13시 30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0월 02일 14시 12분 KST

안심번호제는 죄가 없다

역선택 문제도 사실 과장되었다. 경쟁정당의 지지자인 것처럼 속여 선거인단에 참여해 약세후보가 최종 후보로 뽑히도록 한다는 것인데 일반 유권자들이 그렇게 비양심적이지도 않고, 또 그 정도로 전략적이지도 않다. 열성 당원 내지는 특정 후보 캠프 구성원 정도여야 이렇게 할텐데 이들 역시 스스로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그 가능성은 매우 낮다. 설령 몇 명 있다 하더라도 전체 결과를 좌우하지 못한다.

연합뉴스

안심번호제는 그저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 자체로 선이거나 악은 아니다. 선한 결과를 가져올지, 악한 결과를 가져올지는 도구를 어떤 의도와 용도로 사용하느냐에 달려있을 뿐이다. 그런데 안심번호제에 대한 일각의 문제 제기는 정치적 의도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제도 자체를 공격하는 모양새로 전개되고 있다. 마치 안심번호제가 문제가 많은 부실덩어리인 것처럼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오해다.

안심번호제는 실제 전화번호에 별도의 가상번호를 부여하는 것이다. 유권자의 개인정보 노출을 피할 수 있다. 자신의 신분이 보호되니 선거인단 참여에 부담을 덜 느끼게 되고 이는 참여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이미 택배나 콜택시 회사에서 고객번호 보호를 위해 넓게 활용되고 있다.

민심의 왜곡 가능성이 적다. 이제까지는 집전화 여론조사로 일반 유권자의 경선참여가 이뤄져왔다. 집전화 방식은 대표성(representativeness)에 문제가 많다. 유권자가 고르게 선정되지 못한다. 일반전화가 없는 가구도 많고, 070 등 인터넷전화를 설치하는 가구도 늘고 있다. 이들은 기존 조사에서 포함되지 못했다. 늦은 시간에 귀가하는 경우에도 배제되었다. 그러나 안심번호제는 휴대전화 조사가 가능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일거에 해소된다. 오히려 민심에 가까운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조직선거의 폐해도 줄어든다. 경선을 앞두고 후보들은 당원모집에 심혈을 기울인다. 또 각종 조직을 만든다. 현장투표에서 조직력이 강한 후보가 막강한 힘을 발휘하게 되기 때문이다. 조직 구성과 유지에 상당한 비용이 들어감은 물론이다. 안심번호제에서는 굳이 조직을 강화할 유인이 없다. 조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선거인단에 참여할 수 없고, 후보가 인위적으로 참여시킬 수도 없기 때문이다. 우호적 당원을 유지하기 위한 당비 대납이나 현장 투표에 선거인단 실어나르기 등의 폐해는 없어진다.

역선택 문제도 사실 과장되었다. 경쟁정당의 지지자인 것처럼 속여 선거인단에 참여해 약세후보가 최종 후보로 뽑히도록 한다는 것인데 일반 유권자들이 그렇게 비양심적이지도 않고, 또 그 정도로 전략적이지도 않다. 열성 당원 내지는 특정 후보 캠프 구성원 정도여야 이렇게 할텐데 이들 역시 스스로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그 가능성은 매우 낮다. 설령 몇 명 있다 하더라도 전체 결과를 좌우하지 못한다. 여야 정당이 동일한 안심번호로 함께 여당지지층에게는 여당후보 선택권만, 야당지지층에게는 야당후보 선택권만을 주면 완전히 해결될 수도 있다.

비용이 과다하게 소요될 것이라는 우려도 기우이다. 이동통신사에 휴대전화번호 DB 이용료를 일정부분 내긴 해야겠지만 저렴한 자동응답시스템(ARS) 활용이 가능하므로 사람 면접원을 통한 전화조사나 투표소를 설치하고 선거인단이 방문해야 하는 현장 투표에 비해서는 비용도 적게 소요될 수 있다.

안심번호제는 완벽하지 않으나 최소한 지금까지 실시되었던 방식보다는 진일보한 것임은 틀림없다. 이를 놓고 민심왜곡이나 조직선거의 폐해가 있다고 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아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다지 어려운 개념도 아니다. 우리 유권자 수준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당내 후보를 뽑는데 당원들의 참여가 보장되지 않는 것은 정당정치를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거나 여전히 인지도 높은 현역의원들에게 유리하고 인지도 낮은 신진들에겐 불리하니 문제라는 지적은 타당하다. 그래서 당원 참여비율을 인정하고 신인들에게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 방안이 보완되어야 한다는 대안제시도 함께 얘기되면 훨씬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비판이 정확해야 공감이 생긴다. 비판 근거가 부정확하면 오히려 호응이 제약될 수밖에 없다.

* 이 글은 <영남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