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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09일 06시 32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12월 10일 14시 12분 KST

분노는 어떻게 비폭력이 되었나

Kim Kyung Hoon / Reuters

2016년 12월3일 토요일, 주최 측 추산으로 230만명 이상이 전국에서 촛불을 들었다. 상식과 상상을 뛰어넘는 규모이다. '권력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이들을 거리로 뛰쳐나오게 했다'는 설명이 나왔다. 그런데 비폭력적이었다. 분노한 사람들에게서 과격성이 드러나지 않은 것이다. 연행된 사람은 없었다. 짱돌도, 각목도, 죽창도, 화염병도 없었다.

집회는 평화적이었다. 풍자와 해학이 넘쳐났다. 가족단위 소풍인 듯도 하고 대규모 축제인 듯도 했다. 증오와 적대의 분노는 웃음과 화합의 평화로 승화되었다. 참가자들은 경찰차벽에 발길질 대신 꽃송이를 붙였다. 누군가 질서를 파괴하려는 일탈을 보이면 다른 참가자들이 제지를 했다.

권력 내부에서는 썩은 내가 진동했다. 국격은 무너졌다.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대한민국'은 사라졌다. 하지만 집회 참가자들은 폭력 대신 평화의 촛불을 들었다. 권력이 무너뜨린 대한민국을 다시 살아나게 했다. 수준 높은 집회 모습은 외신의 부러움을 샀다. 우리 스스로도 놀랐다. 으레 시위라고 하면 폭력적이라는 생각을 은연중 갖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번 촛불집회의 모습이 한국인의 집회와 시위에 대한 새로운 원형의 인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매 집회 참여자들이 늘어나고, 분노의 농도는 짙어지는데 왜 사람들은 폭력적 군중으로 변하지 않았을까. 왜 사람들은 품격을 잃지 않았을까. 물론 성숙한 시민의식 때문이긴 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는다. 비폭력적 집회의 배경엔 이외에 몇 가지 인식적 요인과 사회문화적 요인이 자리하고 있다.

첫째, 대통령의 권력이 사실상 끝났다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만약 대통령의 권력이 제한되지 않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았다면 시위의 양상은 지금까지와는 달랐을 것이다. 무너뜨려야 하는 대상이 여전히 실질적 권한을 누리고 있다면 과격한 대응이 필요하지만 사실상의 힘을 상실했다면 굳이 물리력을 동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둘째, SNS 등 소셜미디어 확산의 효과가 적지 않다. 참가자들은 집회 장면 사진을 본인의 소셜미디어에 실시간으로 게재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보냈다. 집회에 참가한 것이 본인의 사회적 평판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주변에 노출이 된 것이다. 자발적으로 사회적 시선에 본인을 노출시키면서 자연스럽게 'CCTV 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과거 시위에서는 익명성이 보장되었기 때문에 과격한 행동의 유발이 빈번한 측면도 있었다.

셋째, 자녀를 동반한 가족단위 집회 참가자가 많았다는 점도 중요한 요인이다. 초반부터 평화적이었기 때문에 부모들은 자녀를 대동하더라도 교육상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민주주의의 산 교육현장이라고 여겼다. 곳곳에 어린아이들이 많은 상황에서 어른들은 아무리 분노했다 할지라도 자제하고 질서를 지키며 평화로운 행진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강화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넷째, 집회를 주도하는 특정세력이 없었던 것도 한 요인이다. 물론 주최 측은 있지만 보조적 역할에 가까웠지 전체 집회를 '이끌었다'고 보기 어렵다. 특정 목적을 지닌 그룹이 주도했다면 이렇게 집회 규모가 커지지도 평화롭지도 않았을 것이다. 참가자들은 스스로 주체가 되었다. 과도한 선동에 동조하지도 않았고 냉소와 야유를 보내기까지 했다. 이러한 모습은 2002년 한·일월드컵 응원 때부터 나온 새로운 집회문화이다. 주도세력이 없는 집회, 자발적 참여자들이 중심이 되는 집회에서 양적, 질적 수준이 올라간다.

이번 사태로 인해 권력은 변하지 않았지만 시민은 변했음이 확인되었다. 권력은 공적 가치를 파괴했지만 시민은 이를 다시 쌓아올리고 있다. 무너진 대한민국을 국민이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있다. 이제 정치영역의 수준이 시민 수준에 맞게 올라서야 할 차례이다.

* 이 글은 영남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